난 가난했다. 지금도 가난한가는 그럴수도 아닐 수도 있다.
돈 때문에 못해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돈 구애받지 않고 살지도 않는다.
돈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크게 돈 독촉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마음껏은 아니지만 사고 싶은 책을 사고, 먹고싶은 음식을 먹으며
여행도 소박하게 할 수 있으니 그리 보면 가난뱅이는 아닌 것도 같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용을 쓰지도 않은 것 같다.
가난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일까? 가난 때문에 울어보지 않아서일까?
가난 때문에 울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까? 모르겠다.
가난 때문에 우는 걸 부끄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어도 질보다는 양을 따졌다.
책을 사도 같은 값이라면 글씨가 작고 쪽수가 많은 책을 골랐다.
같은 값을 주고 여행을 간다면 더 먼거리, 거기서도 더 많이 봐야한다고 조바심을 낸다.
40년 가까이 봉급생활자로 살면서 돈을 모으지 못한 건 순전히 나의 가난에 대한
엉터리 견해에서 비롯됐다.
아니 살면서 보니 가난이 나쁜 것만이 아니었다.
거친 음식이나 싸구려 옷에도 적응이 잘 된다.
골골거리는 나의 몸도 비탈을 오르내리며 짊어졌던 지게의 덕분에
산길을 잘 버텨준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 영대의 딸 결혼식이 토요일 오후 6시에 서울에서 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녀와도 되겠지만 난 7시 40분 고속버스표를 예약했다.
서울대 교수회관이니 관악산을 오른 후 식장에 참여할까 하다가
주변의 목욕탕을 찾지 못해 인왕 북악으로 돌렸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몇년 전 인왕을 오르고 북악을 못갔던 아쉬움을 풀고 싶었다.
배낭 아닌 커다란 가방에 구두와 양복을 구겨 넣고 등산복 차림므로 나서
11시에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한다. 경복궁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서울대역을 고려하여
교대역에 가방을 보관하려 한정거장을 탄다.
물품보관함은 비닐에 감겨 폐쇄상태다. 다시 3호선타고 경복궁역에 내려 보관함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거리로 나선다. 경복궁을 보고 싶긴 한데 마음이 바쁘다.
길옆 골목 첫집에 가 동태내장탕을 주문한다. 소주 한병 생각도 나지만 참는다.
성당에 다녀 온 듯한 노인들이 선거 이야기를 한다.
교육감으로는 여성 박누구가 야물다고 거길 찍었다고 한다.
나도 저런 모습일까를 잠깐 생각한다.
7천원을 주고 나와 사직단 쪽으로 걷는다.
사전투표소 앞을 지나 왼쪽으로 걷는데 보도 완장을 찬 기자들이 보이고
보이지 않은데 누군가 선거 불공정에 대한 이야기를 열변하고 있다.
지나는 어른에게 인왕산길을 물으니 저리 가다 수퍼를 만나면 그리 올라가라고 한다.
종로건강센터인가의 큰 건물 지나 오르막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보이고 하얀 성벽이 보인다.
2천원을 주고 캔맥주 하나를 산다.
왼쪽에 성벽을 두고 산을 오른다. 햇볕이 따갑다.
간단한 가방을 맨 젊은이들이 많고 반바지를 입은 외국인 젊은이들도 많다.
영어를 쓰는 이도 있지만 프랑스말인지 러시아 말인지 구별 안되는 말도 들리고
중국말도 들린다. 성벽 옆을 따라 걷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숲길이 아니어서 덥다.
하얀 화강암을 쪼아 내 게단처럼 두기도 했고, 나무 계단도 많이 두었다.
돌사이 가운데에 하얀 페인트로 나눠두었다.
30여분 숨가뿌게 작은 암봉에 올라 내려다 본다.
서울은 흐릿하다. 큰 탑이 서 있는 남산은 알겠고 경복궁 뒤로 청와대와 그 뒤로
소나무에 덮인 산이 내가 걸어갈 북악일 것이다.
뒷쪽으로 긴 능선을 거느리며 하얗게 솟아있는 산은 북한산일 것이다.
사람이 점차 많아지는 인수봉 봉우리를 숨가뿌게 올라간다.
내려오는 이를 기다리기도 한다. 인수봉 봉우리는 훤하다. 하얀 바위덩어리 하나 서 있는데
할아버지 앞에 손자 하나가 고개를 돌린채 입을 내밀고 앉아있다.
끝이 막혀 돌아나와 잠깐 더 걸으니 기차바위 갈림길이다.
잠깐 기차바위 쪽으로 내려간다. 성벽 공수중인 뒷쪽으로 돌아 앞 일행이 쉬어 간
소나무 아래 앉아 물한모금 마신다.
기차바위 하얀 암반능선을 두고 돌아와 내리막을 간다.
성벽은 여전히 왼쪽으로 따라온다. 윤동주문학관과 창의문(자하문)은 잠깐 헷갈린다.
두시가 다 되어 성문을 보고 안내소로 들어간다.
인적사항을 적고 번호표 목걸이를 받는다.
자북정도라고 한자로 쓰인 돌을 보고 목재계단을 오른다.
내려오는 청년에게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으니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온통 계단이라 힘들거라고 한다.
가파른 계단은 끝이 없다. 성벽을 쌓은 이는 누구였을까?
가끔 자그마한 초소들이 나타나는데 그 안에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왼쪽으로 북한산을 보며 사진을 찍고도 싶은데 촬영금지 구역이 많다.
2,30분 숨차게 올랐을까, 오른쪽에 건물 하나 서 있고 사람들이 쉬고 있다.
나도 들어가 잠깐 쉬고 나온다.
조금 더 오르니 정상이다. 오른쪽으로 작은 봉우리로 가니 소나무 사이 바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외국인 여성이 바위 아래 카메라를 만지고 있다가 웃어준다.
우리말을 한다. 소나무 사이로 내려와 바위 끝에 앉는다.
초소에서 날 못 보게 소나무 뒤에서 캔맥주를 까 마신다.
121소나무에 총탄흔적을 해 두었다.
청운대를 사진 찍고 성벽을 따라 가다가 성밖으로 나간다.
시대에 따른 성벽의 모양 안내판 앞에서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큰 소나무가 늘어선 옆길을 따라 숙정문에 닿아 사진을 찍고 문을 나와 내려온다.
3시가 지난다. 안내소에 번호표를 반납하고 한성대역을 보고 말바위쪽으로 걷는다.
오르내리막 나무 계단 길이 길다. 어르신들도 올라와 있다.
성북동으로 내려서며 몇년 전 만난 도사같은 헌책방 주인을 떠 올린다.
청계천의 광뭐 책방이었는데 난 그후 찾지 못했다.
이태준 생가 등 성북동의 명소를 안내해주시어 저녁 먹으며 술에 취해 헤어졌었는데.
마을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한성대역입구에서 내린다.
길찾기 네비게이션을 켜도 방향을 모르겠다.
명선사우나를 묻는데 다 모른다. 길가의 신발파는 젊은이엑 물으니
명선인지는 모르겠는데 저 아파트 앞에 뾰족한 건물에 목욕탕 있다고 한다.
삼선사우나이다. 7천원을 주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양복을 입고 검은 옷가방을 들고 서울대교수회관을 찾아간다.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대 안을 한참 돌아 교수회관에 가 친구들을 만난다.
신링신부의 지도교수가 주례를 하고, 사회는 김태균이 한다.
식전에 영재발굴단의 어린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식후에도
어린 꼬마애가 바이올린 축주를 한다. 가수가 노래도 한다.
풍향동에서 같이 살던 넷 중 나만 아직 자식 혼사가 없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다음달엔 한볕이가 친구 결혼식에 온다는데 아마
그 놈이 먼저 식을 치를지도 모르겠다.
멋진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태현이가 낙성대역까지 태워주고 충호형이 지하철 타는 길을 가르쳐 줘
반쯤 취했지만 강남터미널까지 잘 왔다. 바보의 모자를 싸게 사고 9시 45분 광주행
고속버스를 한참 동안 기다린다.
광주에서 급하게 달리는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1시 반이 다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