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빨강 외 2편
정승화
5센티미터로 날리는 삼색도화의 모서리에 베이고
복사꽃이 되어 나풀거리는 몸을 재생한다
깊이 수면 중인 모순이 어이없이 삼색이 되는 절차를 밟는다
빨강의 감정이 포말을 일으킬 때 도망치지 않게
입천장에서 떴다 기우는 초승달이 내내 어색하지 않게
금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바람이 5센티미터 근방에 누울만큼
주소를 잃은 분홍들이 수취인불명으로 떠돌던 때를 지워라
파마한 머리카락처럼 곱슬거리는
야릇한 미소를 침상에 들여 매일 밤
수밀도의 입맛을 길들여라
도화의 활을 당겨라
달빛도 등돌린 어둠 속에 몸을 숨겨라
단숨에 퍼올린 붉은 낭설의 현을 켜라
어디서부터 다음까지라도 끊어지지 않는
질긴 고래의 힘줄로 회오리를 만들어라
심장의 안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발목 잡힌 나비의 무늬가 높은 체온으로 날고
처음부터 입이 없었던 침묵과
때로 온통 입뿐인 물결 위로
단내나는 문장들을 울컥울컥 쏟는다
태생이 이별은 몰랐던 미풍으로
밤의 졸음이 씻겨나가고
나른과 권태 위에 혼란하게 찍힌
발자국의 방향이 사막을 건너고
초원을 건너고 범람하는 장마를 지나
형체도 없이 휘날리며 몸무게를 줄인다
물러터진 새끼손가락이
오래도록 열락 사이를 거닐었다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분홍과 하양을 지우고
빨강 위에 덧씌워진다
밤에 더 환해지는 무게를 내리고
미증류의 득음은 마지막 빨강으로부터
달아나는 중이다
*능수삼색도화 : 하나의 복숭아나뭇가지에 빨강, 분홍, 흰색의 꽃이 동시에 핀다.
놋뱀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
사람의 고향인가 저 광야는, 오지 않는 사람을 찾아오는가 자궁에 피었던 한 송이 꽃이 무덤에서 불꽃으로 피어오른다 비밀의 알을 깨고 나와 부활을 부르짖는다 빛은 있으나 창문은 없는 늙은 게르에서 꽃이 만발한 광야를 꿈꾸지만 그곳은 검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곳
슬리퍼를 끌며 스스로 걸어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서나 아몬드 꽃은 피어나고 시나이 사막에서 다시 뱀의 혓바닥을 만났다 금식은 통하지 않았다 맨발의 걸음에서 흘러나온 촛불들의 유혹, 빛에서 번진 그림자에게 축복을 내리는 긴 수염의 사람은 불온한 눈빛으로 싸움을 부추긴다 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의심과 믿음은 어디까지 왔는가 어디에 더 가까운가 짐승에 가까울수록 다른 세상을 향해 울부짖을 때 창백한 시름은 부서지지 않고 일어선다
동굴에 묻힌 이름은 누구인가 돌무덤 위에 선 놋뱀은 하늘을 향했는가 아래를 향했는가 잠들지 못하는 육신을 떠난 영혼에게 해방의 불꽃을 전한다 홀로 떠나야 하는 길, 무덤을 열고 나온 거룩한 사내에게 부끄러운 무릎을 꿇는다 사람을 지우고 여자도 아니고 남자는 더욱 아닌 붉은 꽃이 피어난다 촛불을 켜고 애도하는 시간이 지나자 염증처럼 번진 흉측한 얼룩이 은둔자처럼 숨는다
허락했는가 죄의 시작을 떠나 치유의 땅, 보이지 않아도 나무가 자라는 곳, 끊임없이 쏟아지는 축복의 땅에서 갈증과 작별하고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처럼 죄는 먼 과거에 있다 다른 이름이 어린아이로 돌어가고 그동안 굶주렸던 선함이 피어난다 끝이라고 선언할 때까지 아직 끝은 아니다 구속된 죄, 추방된 십자가는 자유롭고 고요한 무덤에서 빛이 되었다 데시벨 높은 승리가 뜨겁다 선함에는 고독이 필요하고 기도의 끝에는 상냥한 입맞춤이 있다 조용히 잠에 든 새 줄이 끊어진 춤, 은밀한 죄들은 탈출구를 통해 가장 오래된 어둠을 벗고 빛으로 돌아갔다
어떤 몽상가의 생애
1.
숨결이 바람이 되었고 시선은 태양이 되었다
사막과 초원에서 태어나
거룩한 반지를 가운데 손가락에 끼고
숨결 잃은 갈대 사이에 누워 태양을 본다
사랑스런 이름들이 태어났다 돌아가고
혼돈은 벌어진 틈으로 오래 머물다
어둠의 문으로 빠져나갔다
목숨 받쳐 지켜냈던 이름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공허의 이름을 지운 별들이 낭자하게 자랐다
연기를 먹고 자란 숨결의 눈동자가 사납다
한잔 술의 취기에 존귀한 이름을 버리고
21일 동안의 기도가 은총의 종을 울린다.
때를 잃은 감성과 장소를 잃은 이성을 두고
치열한 승부를 겨룬다.
2.
웃음이란 치아가 보이는 일
목젖이, 막 출산한 산양의 젖처럼 보이는 일
길을 걸어오는 일은 선물 같은 것
뾰족한 고깔 위로 하늘이 열리고
약속을 이루지 못한 꿈이 첫눈처럼 내린다
멈춘 적 없는 기도와 응답과 약속이 단결한다
가죽옷을 걸친 동상이 우상으로 서 있는 사막
눈빛이 초록인 노래와 흥겨운 발바닥의 춤들,
숨겨진 몽상가의 치마가 커튼으로 내리는 날
이뤄질 약속이 근엄해진다
3.
위대한 이름을 머리띠로 두르고 천막 가운데 불길로 치솟는다
태양이 유산으로 남긴 사막에서 짧은 순간 붉은 낙타를 탄다
광활이 광오가 되어 사막을 밟는다
혼돈이 온순히 어루만져지는 날, 칼을 뽑은 언어가 태양에 닿는다
울음이 웃음으로 웃음이 벅찬 눈물로 부활한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숨결이고 태양인가
숨결 위에 태양이 흐르고 빛이 쏟아진 자리에 바람이 분다
시선이 머물다 돌아오고 돌아가는 길목의 묘지 위에
타오르는 뜨거움이 만져지는 땅의 체온이 죽어있다
4.
유언이 유산이 되어 기약의 도장을 찍는다
주소를 찾아 가는 길에 허물을 벗고 불의 편견을 깬다
소금이 낳은 지점에 닿아 두려움을 지우고
포로가 된 교란을 잠재우는 매복,
산양의 젖물 같은 노래로 세수를 하고 경계를 허문다
수많은 밤이 시작되는 날 거친 낙타처럼 맨발로 서서
통곡이 불멸하는 지상에서 방랑자의 시작이 끝난다
시인의 사색
시의 탄생
무엇 때문에 나는 늘 시에게 패배하는가. 동전을 넣었는데 제품이 나오지 않는 자판기처럼 수많은 낱말을 머릿속에 담고도 자주 시가 고장난다. 그것을 빌미로 딴 짓만 늘었다. 요즘은 매일 18km의 거리를 걷는다. 대략 26,000보 정도가 된다. 매일 같은 길을 걷지만 한 번도 지루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길 위에 서 있으면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 덕분이다. 자잘한 야생화나 돌멩이, 새소리, 물소리, 때로 크게 작게 바람에 흔들린다. 고요해지는 나무 잎사귀, 햇살의 온도 차이와 나를 보고 놀라서 순식간에 도망치는 고라니, 땅에 지문처럼 남겨진 짐승들의 발자국 등 흙을 기반으로 서 있는 많은 것을 보면 절대 심심할 일이 없다.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음으로 불편하지도 않다.
매일 자연을 느끼면서 깨달아지는 것도 많다. 전에는 자연풍경이 좋았고 점점 구체적으로 길이 있는 풍경이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풍경 속 길 위에 사람이 있을 때가 가장 완벽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렇듯 시 또한 많은 낱말을 자연과 불편하지 않게 접목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처럼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자연을 닮은 시로 평안과 위안을 주고 싶다. 도시의 늦은 밤거리 같은 시가 아닌 밤, 잠자리의 이불 같은 그런 시 말이다. 그런 시는 자주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시를 쓸 수 있을까.
마음으로 봐야 더 감동적인, 시를 쓰고 싶다. 시의 첫 구절부터 강력한 울림을 주는 시도 좋지만 읽을수록 맘을 잡아당기는 좋은 시말이다. 등단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를 쓰려고 펜을 잡으면 처음 온 거리에서 길을 잃은 아이 같이 막연하고 두렵다. 시 앞에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을넘어져도 나와 시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시가 있는 지점이 완벽하게 휘발되고 소실된다. 그제야 잠든 불씨를 쥐고 허둥거리며 옹알이하듯 낱말들을 재편성하기 시작한다. 낱말의 근원과 나 자신의 본능과 자연의 본질이 원초적으로 섞이는 순간이다. 시에게 파양 당한 우울한 기억을 지우고 시의 주변인으로 접근하면서 나 자신의 사용법을 배운다.
비단처럼 매끄럽지 못하지만 한 편의 시를 끝내고 나면 후련함 보다는 못마땅함이 더 크다. 왜 생각만큼 좋은 시가 써지지 않을까. 내가 나를 과대평가하는 자조일까. 시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무수한 낱말로 사람들에게 고자질하는 짓이다. 그래서인가, 시는 참 버르장머리
가 없다고 끝까지 내 탓을 거부한다. 얼마나 많이 써야 얼마나 오래 써야 시에 대한 기본이 튼튼해질까. 오늘도 시는 여전히 내게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