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새해는 캄보디아 여행에 대한 기대 덕분에 기분좋게 맞이하였다.
언제부턴가 막연히 노래 부르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를 가고 싶다는 열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결국은 노래 부르다가 부르다가 지쳐 떨어질 즈음에 찾게 되었다.
물론 아니라도 진작에 갈 수는 있었지만 꼭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해도 피곤하지 않을 친구와 동행하고 싶기도 했고
여건이 허락해야 하는데 또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다녀오게 된것.
작년 봄에 다녀온 일본의 예술의 섬 "나오시마" 역시 그러하였지만 두말 할 것도 없이 결과는 좋았다.
얼마 전에 딸과 자유여행을 하였던 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하니 이번 캄보디아 또한 부푼 기대와 열망이 있었던지라 아마도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게 되리라는 예상쯤은 쉽게 할 수 있었고
그 예상은 여러 부분에서 맞아 떨어져 개인적으로는 캄보디아 여행은 좋았다.
단 자유여행이었다면 좀더 자유롭게 곳곳을 찾아다니며 원하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만큼은
사진에서 자유로와지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다녔기에 그야말로 쥔장이 좋아하는 말, "아니면 말고"를 실천하며 다녔다는 후문.
사실 출발하고자 하는 당일이 성수기도 한참 성수기여서 출발하기 까지는 여러가지 변수가 작동을 하였다.
미리 선점해놓았던 여행 상품들의 향방이 성수기라는 이름을 달고 날짜와 비행기편과 호텔이 자꾸 뒤바뀌어서 급기야는
죽어도 1월 5일에 떠날 수밖에 없는 여건을 강조하여 선택된 4박 6일 캄보디아 / 베트남, 대한항공을 이용한 모두투어 여행은
몇번의 시도와 여행사 직원과의 끊임없는 카톡 대화로 얻어낸 성과이기도 하니 그 담당자-송가원씨는 일본여행전문가 박인숙쌤의 조카라는-도 어지간히 인내심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 없다.
어쨋거나 저가 항공보다는 제대로 된 항공편을 이용하자는 동행들의 주문이 있었던 까닭에 오전에 출발하려던 일정이 오후로 바뀌면서 완전히 하루는 그냥 떠난다는 것에 의미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와 어디론가 향한다는 것, 한 두번 떠나는 것도 아닌데 늘 설레고 기분좋고 도착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흥분된다는 것, 여행의 매력이 되시겠다.
좌우지간 세계 1위라는 인천공항에서 오랜 시간을 죽이고 또 날린 다음에 와우, 더 이상 못참겠다가 될 즈음에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5시간여를 비행하는 내내 피곤이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잘 수가 없어 애를 먹는데 마침 옆 자리에 동승한
아주 친절한 여행객 덕분에 잠 못 이룬 좁은 공간에서의 피로도가 싸악 가셨다.
테이블 세팅을 해주거나 기내 서비스를 받아서 챙겨 주거나 잠이 들었을 때 대신 일을 봐주거나 여러가지 친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줌은 당연지사.
하지만 채식주의자 이다 보니 먹는 것이 부실해 보여 내내 안타까움을 유발하던 그런 남자 덕분에 편안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징하기도 징한 서류 작성, 웬만해서는 두장이면 끝인데 이 나라는 비교류국이어서 그런지 원 4장이나 써내라고 하니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 보이지 않는 글씨와 캄보디아 글을 뭔 수로 알느냐고....해서 할 수 없이 승무원에게 쌤플 작성을 부탁하고
일일이 순서대로 따라 적는 비극은 도도보기의 부재 덕분이라.
그럴까봐 아예 여행 준비시에 모든 것을 적어서 갔건만 실제 상황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못했고 여기저기서 머리에 쥐 난다고 아우성.
암튼 자리 착석부터 사실 좀 불만이 있었던 터라 그 남자의 친절이 더 돋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본래 동행한 친구가 복도 자리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가운데 자리를 지정해준 티켓 발권자의 엉뚱함에 화를 내며 자리에 착석하자 마자
뒤이어 찾아든 그 남자 오규범씨는 친구가 사정 이야기를 하며 들락거릴 회수에 대해 미안함을 표하자
" 아니 괜찮습니다. 10번까지는 제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원할 때마다 미안해 하지 말고 말씀만 하십쇼"
정말이지 그 남자, 대단했다.
물론 친구가 눈치껏 그 친절한 남자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잽싸게 화장실로 가기도 하고 아니면 급 공손 모드로 다시한번 일어섰다 앉았다 하기를 반복시켜도
아, 그 남자 한 번도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내지 아니하고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서주는데 키도 장난이 아니게 크더라는 말씀.
그것 아니라도 처음부터 친절 모드로 일관하는 그 남자를 처음에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보다가 결국엔 그 남자 자체가
워낙 친절함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말문을 트기 시작하여 직업을 못 속이고 또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대략 5명의 남성으로 보이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찌 그리도 친절매너 가득인지 기타 등등....아하, 박수가 절로 나왔다.
공항에서 부터 휠체어에 몸을 실은 남자가 눈에 띄여 혼자 속으로 "친구들이 합심하여 여행을 시켜주는 것"이라 짐작을 하였다.
워낙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호탕하게 웃던 그들이기에 절로 시선을 끌었던 것.
웬만하면 한번쯤 시선을 주었을 그들이 바로 곁에 동승을 하기에 속내로는 "시끄럽겠군" 하였지만 일정 부분은 맞는 이야기요
또 다른 부분은 놀라움과 찬탄을 금할 수밖에 없는 아니 존경심이 들 정도로 숙연해지기도 했다.
말인즉은 옆자리의 친절한 남자는 주문진 사람으로 강릉에서 대성수산-자연산 미역, 다시마 등 해산물 취급. 감자떡 판매 033 661 8225-을 운영하는 자영사업자이자
일년에 몇 번씩이나 캄보디아를 오가며 자원봉사를 하는 봉사의 달인.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이 사업하며 버는 경제력의 일부분은 물론 그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동참하는 일원들의 경제력을 모아 동남아시아 일원에 전달 보급하는 일을 책임지고 행하는 와중에
가장 힘이 되어주는 휠체어의 남자. 그 남자가 모든 것을 선두지휘한다는 말을 전해 준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그 남자가 끌어올리는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자원봉사팀이 꾸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을 전하는 오규범씨.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 학교에 필요한 부자재, 책, 자전거, 옷-을 지원하고 3박 4일동안 그들에게 도움이 될 지원 사격을 하고 함께 놀아주는 일을 해내며
한번 봉사할 때 마다 몸은 고달파도 그들로 부터 받는 즐거움을 온 몸으로 가득 안고 돌아온다고 했다.
한 지역이 끝나면 또 다른 지역을 선택하여 실질적 구상과 나눔을 실천하고 나라를 달리하여 헌신적인 문화 교류는 물론
필요 물품 구비까지 전격적으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실천중이라는 그 남정네들을 보면서 가까이 있는 우리 이웃들의
남몰래 지원하는 자원봉사의 물결이 얼마나 많은 동남아시아권에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지 그 순간 울컥.
나랏님은 물론 고위 권력층은 말할 것도 없고 "노불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 경제대군단들은 겨우 "갑질"하느라 애면글면 할 때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남의 나라까지 신경을 쓰며 자원봉사를 하는 그들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특히 몸이 불편한 후원자를 위해 직접 휠체어를 밀어가며 동행을 자처하는 그들을 보는 것,
자국민 도움에 선뜻 통역 자원자로 나선 캄보디아 청년의 한국말 솜씨는 또 바라보는 쥔장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으나
아차 하는사이에 촬영할 기회를 잃었다.
뭐, 당연히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어쨋거나 비행기 안에서의 에피소드는 그렇게 끝이 나지만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자원봉사가 일상이 되어 거국적으로 움직이는 한
동남아시아의 여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행복해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 졌다.
좀 산다 는 대한민국의 남성들,
골프와 쓸데 없는 기타 등등을 누리려는 군상들이 대다수였던 그 비행기 안에서 참 감동스런 장면을 목격하고 나니
어쩐지 여행길이 즐거울 것이라는 예감, 그 예감은 캄보디아에서는 적중하더라는 말씀.
첫댓글 좋은분들과의 행복한 동행에 멋진분들을 만나셨군요.
이런분들이 계시기에 아직은 살아볼만한 세상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여봅니다.
맞아요...한때 경기도 자원봉사센타 총괄본부에서 취재 기자로 일햇던 경험으로 보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남몰래 선행을 하는 그런 분들이 도처에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해외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들도 가까이에 많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 참으로 마음이 뿌듯하고 감동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근사한 소시민이 많은 꽤 괜찬호은 나라입니다만
나랏님과 위정자, 경제군단이 삐딱선을 타지 않고 소시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나라를 만든다면
정말 멋진 나라일텐데 싶은 아쉬움도 있다는.
모르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면 왠지 더 경계하는 숩관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밴것이
참 씁쓸하긴 했지만 아무리 가려도 자신의 정체성은 가릴 수 없음을 느꼈지요~!
아뭇튼 아름다운 발걸음을 하는 이들이 참 멋졌던 것은 사실~! ^ ^
난 아직도 여독을 핑계로 여행기 쓰는 일을 미루고 미루었답니다. ㅋ~! ^ ^
알게 모르게 의심병이 팽배해진 사회에 사는 우리네들의 초상입니다.
그래도 그런 분들을 만나서 마음 한 켠이 따스했던 것도 사실이구요
여행기, 굳이 독촉하거나 제촉할 사람 없는데 슬슬 쉬엄쉬엄 써내려 가시길.
몸의 회복이 먼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