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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에서 배운 것 |
땅끝마을, 직장 문제로 해남으로 이사와 7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인구10만 명도 넘지 않은 해남은 역사적으로 고산 윤선도 선생의 해남윤씨 땅이며 김남주 시인의 고향이며 김지하 시인과 황석영 작가의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옮긴 직장 일에도 손에 익고 이웃 사람들과 정을 나누게 되면서 참 살기 좋은 곳이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깊어질 때 자식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해남의 교육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지역이 갖는 인구 이탈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하나둘씩 학교들이 문을 닫는 모습을 보게 되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 해남읍 아이들이 다니는 읍내 두 곳의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해남의 서른다섯 곳의 초등학교는 현재 교육인적자원부 지침이라면 조만간 폐교가 되어야 한다. 게다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사정은 초등학교보다 더욱 심각하여 모든 교육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유일한 읍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 중학생 때부터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현실이다. 이렇게 해남의 교육과 학교 문제는 해남 땅의 인구 유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서정분교 작은 학교 살리기
지역 주민들의 도움과 학부모들이 작은 힘이 모여 서정분교를 살리는 원동력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작은 힘을 바탕으로 서정분교가 갖는 작은 학교의 장점들을 살려내기 위한 실험들이 시작되었다. 방과후 방치되는 아이들을 위해 피아노, 미술, 영어, 컴퓨터, 노작, 글쓰기, 요가, 탁본 등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었고 이런 프로그램들은 아이들과 자원 봉사자, 교사들이 서정분교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매달 토요일에 열리는 생태 체험은 서정분교 학생이 아니더라고 누구나 동참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서정분교가 학교의 담을 허물고 지역공동체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이 밖에도 차문화 답사, 도자기 문화 답사 등 체험 활동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이런 활동 역시 교사, 학부로, 학생, 자원봉사자,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서 이 시대에 작은 학교가 왜 필요한가를 알리고 지역 여론을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와 같은 ‘서정분교 작은 학교 살리기’의 노력들은 서서히 지역 여론의 관심을 받으며 지역 사회의 힘을 받기 시작했다.
푸른 꿈을 키우는 서정분교 여름캠프
교육을 고민하는 공부 모임
2004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위해 교사와 예비학부모, 현 학부모가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 전교생 수가 2004년 20명, 2005년 37명, 2006년 52명으로 증가하였다. 교사와 학부모, 지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학부모, 지역민의 교육참여가 어둡게만 보이던 현실이 희망을 주는 시골 농어촌 작은학교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아직 서정분교 작은학교는 실험 중
“산하야 한길아! 도시에서 아파트에 살 때가 좋아 이곳 시골 서정분교에서 살 때가 좋아?”
하지만 나와 아이 엄마의 만족과 아이들의 행복을 떠나 여전히 서정분교 작은학교는 실험 중이라고 본다. 이미 시작된 작은 학교의 몸부림도 지금처럼 1개군 1학교 원칙이 고수된다면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부디 큰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경제적 논리로만 교육문제를 접근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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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예중은 서정분교 학부모로 2001년 해남으로 이사온 후, 2003년 11월에 서정분교 아랫마을로 옮겨왔다. 12살이 되는 큰딸 산하와 10살이 되는 작은 아들 한길이와 서정분교 풍물, 공동체놀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아이엄마(김해숙)와 함께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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