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단차(乳團茶) / 한국차문화(정영선, 너럭바위 1992)
덩이차는 곱게 가루내어 말차(末茶)로 만들어 차유로 마시는 유단차(고급단차)와 그냥 끓여 맑은 차탕으로 마시는 떡차(餠茶)로 나눌 수 있다.
유단차는 가루내어 차유로 마시기 위해 만든 고급 덩이차이다. 대개 한식(寒食:4월 5일무렵) 전, 즉 금화전(禁火前 혹은 火前)에 움이 튼 어린 차싹을 따서 찌고 찧어 덩이로 만들어 말린다.
유단차는 주로 왕이 마시는 [어차(御茶)]나 국제간의 예물 혹은 하사품으로 쓰인 고급차였으며 고려 초엽의 토산차인 뇌원차(腦原茶)도 유단차에 속한다. 승려와 문인들도 특별하 만들어 즐겨 마시기도 했다.
차싹을 따서 찐 후에 덩이(團)로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10세기와 11세기의 토산차인 뇌원차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며, 고려의 문인들이 주로 보았던 육우(陸羽,727-803)의 [다경]과 모문석(毛文錫)의 [다보(茶譜, 935년 경 저술)]를 참작하면 아래와 같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찻잎 - 찌기 -(압착)- 갈거나 찧음 - 모양만듬 -(구멍 둟음)- 말림 - 말리며 보관.
어차는 찐 찻잎을 찧거나 맷돌에 갈아서 된 죽 모양으로 만든 후에 조금 굳어지면 용이나 봉황새 혹은 글씨를 새긴 틀에 찍어내어 찻덩이로 만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만든 귀한 차는 운반할 때 손의 냄새가 배거나 모양이 손상되지 않도록 나무나 종이로 만든 상자에 보관했는데, 내시였던 방연보가 이규보에게 보낸 차는 옥색 상자에 자줏빛 머루덩쿨로 묶었다고 했다.
덩이차를 말리거나 보관하기 좋도록 가운데 구멍을 뚫은 것을 돈차 혹은 전차(錢茶)라고도 했는데, 이규보의 아래 시에서는 녹태전(녹색 이끼같은 전차)을 점다하여 차유로 마셨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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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대막대) 하나로 녹태전차를 뚫어 깨뜨리니
시냇가 청둥오리 졸다가 놀라 깨네
점다(點茶) 삼매경의 솜씨 덕분에
찬 찻사발(氷0)의 눈같은 차(雪液)는 답답하고 속타는 마음을 씻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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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흔히 끓여 마셨던 떡차는 고려시대에도 대중적으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떡차는 찻잎이 자라길 기다렸다가 따서 납작한 떡모양으로 만든 조금 거친 차인데, 대강 부수거나 그냥 그대로 끓는 물에 넣어 끓여 맑은 차탕으로 마셨다.
만드는 방법은 위의 유단차나 조선시대의 떡차 제다법과 같이 찻잎을 쪄서 찧은 다음 모양을 만들고 말렸을 것이다. 떡차는 운반(여행시)과 보관에 편리하여 대개 발효된 차였을 것이다.
관련내용 링크보기
2-2090- 가루로 된 차 (말차(抹茶, 가루차), 가루녹차, 분차.) 종합
2-2092-덩이차[단병차(團餠茶)=병차(餠茶, 떡차)=단차(團茶) ]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