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6. 큐티
창세기 13:10 ~ 18
롯과 아브람의 선택
관찰 :
1) 롯이 요단 온 지역을 선택하다
-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 아브람의 양보에 대해서 롯은 최소한의 겸양도 없습니다. 그냥 삼촌 아브람이 말한대로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롯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브람과 함께 있었기에 누렸던 축복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 11절.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 롯은 요단의 풍요롭고 비옥한 땅을 선택해서 동으로 옮겼습니다. 당시에 치안이 유지되지 않던 상황에서 아브람은 롯을, 롯은 아브람을 의지하며 지냈던 상황이었습니다. 둘이 헤어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잘못된 선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에 다녀온 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랐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의지하게 되었고, 눈에 보기에 좋은 풍요로운 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12절.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 아브람은 여전히 광야에 머물며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롯은 요단으로 가서 동쪽의 풍요로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지역의 도시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중에서 풍요롭고 번성한 소돔으로 들어가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희석되고 약해지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 13절.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 특별히 소돔은 이미 동성연애로 말미암아 음난한 성읍으로 소문이 났던 도시였습니다. 고모라와 더불어 두 성읍은 너무나 타락한 도성이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소돔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롯의 믿음이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풍요를 선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다시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언약하시는 하나님
-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 하나님은 롯과 헤어진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주셨습니다. 롯과 헤어짐은 서로 의지하던 존재와 헤어진 것이었습니다. 조카였지만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같이 나온 사이로 상당히 의지하는 사이였을 것입니다. 그런 조카가 주저없이 떠나게 되었고, 그 빈자리로 인한 상실감과 주변 족속들과의 갈등에 있어서 힘이 약해진 것을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주시고, 다시금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 15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하나님은 아브람이 보고 있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을 아브람과 아브람의 자손에게 줄 것이고, 그것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경험 이후에 롯에게 양보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이 때의 만남을 통해서 아브람은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 16절.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 하나님은 땅의 약속 뿐만이 아니라 자손에 대한 약속도 아브람에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직 자녀가 아무도 없던 상황인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의 티끌과 같이 자손이 많게 될 것을 언약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 17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의 어디를 다니든 그 땅을 주시겠다 다시금 언약해 주시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만난 초월적인 하나님이 계속 함께 하시며 반복해서 약속을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아브람은 그 믿음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시고자 사람의 열심보다 더 열심을 내시면서 아브람의 믿음을 이끌어 올리고 계신 것입니다.
- 18절.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 아브람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네게브 사막에서도 부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고, 바로 왕도 굴복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롯과 헤어졌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질에 좀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가 있는 곳에서 다시금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람의 이러한 행위는 가나안 원주민들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행위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의 하나님에 대해서 가나안 족속들도 알아가고 있었고, 아브람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서 그들도 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믿음이 성장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가르침 :
1) 롯은 삼촌 아브람의 제안을 덥썩 물었습니다. 본인도 목자들을 통해서 아브람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아브람의 목자들과 부딪히는 문제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롯은 아브람에게 양보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 롯이 탐욕에 물들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하나님을 알게 된 자로써 최소한의 배려를 선택하기보다 자신의 유익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왕왕 일어납니다. 아브람은 이 일로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목하게 되는 포인트입니다.
2) 아브람은 풍요로운 요단을 선택한 롯과 달리 척박한 광야에서 계속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아브람의 부는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광야에서 가축이 늘어나고 은과 금이 늘어나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3) 더 큰 일은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 때 아브람에게 임하셔서 원래의 약속을 다시 해주시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동서남북 온 땅을 아브람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단 한 명도 없던 아브람에게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이 많게 될 것을 언약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더욱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수풀, 보다 많은 가나안 사람들이 머물던 그곳에서 공개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공개적으로 가나안의 신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알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데 당시의 치안이 거의 없다시피하던 족장시대에 대놓고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너희들의 신을 섬기지 않을 것이고, 나는 나의 신만을 섬기겠다는 선포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이 그만큼 자라게 되었습니다.
적용 :
1)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손해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손해를 보고 본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더 큰 것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아브람은,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개인의 손해를 감수한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채움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서가 아니라면 하나님 나라에서라도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미래는 철저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선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렇기에 지금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길을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여정 속에서 그러한 테스트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나 역시 그런 테스트를 받아왔고, 계속해서 그런 테스트가 이어집니다. 그러한 테스트를 힘들어하거나 귀찮아하지 않고 더욱 주님을 신뢰하는 계기들이 되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믿음을 부어주시옵소서.
3) 믿음이 자라게 되면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공개적인 제사가 될 수도 있고, 헌금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재능기부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나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여 그에 합당하게 표현하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