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102]‘의구비’(義狗碑)를 아시나요?
제 고향의 ‘개’ 이야기입니다. 또 1천년 전에 세운 오수(獒樹)의 ‘의견비’(義犬碑)로 아시겠지만, 아닙니다. 오수의 인접면이 ‘박사고을’(1개 면에 박사가 300명 가까이 배출됐다함다)로 유명한 임실 삼계면입니다. 삼계 어은리 사월(沙月)마을에 오래된 정자(1572년에 지은 雙白亭) 옆에 ‘의구비’(義狗碑)가 있다해 폭염을 무릅쓰고 찾았습니다. 의구비는 금시초문입니다. 안내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의구비 위에 ‘열녀비’(烈女碑) ‘이효일열기실비’(二孝一烈記實碑)가 있다했는데<위 사진>, 흔적만 남아 깜짝 놀랐습니다. 정자는 정면 측면 두 칸에 난간과 추녀받침도 있는 팔작지붕으로 정말 멋들어졌습니다(1834년 중수). 편액도 아주 잘쓴 분이 쓴 듯했습니다. 후손에게 까닭을 물으니 올해초 전주 유씨 종중에서 인근 지역에 납골당을 건립할 때 그곳으로 옮겼답니다(오수면 오산리 오동마을). 의구비의 ‘사연’이 궁금했기에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한문문맹(文盲)' 주제에 오래된 비문을 떠듬떠듬 살펴보니, 정자를 세운 유상규의 사촌형수 남양홍씨가 남편이 죽자 따라서 자진(自盡.자살)을 했고, 주인을 따르던 개가 이를 슬퍼해 10여일 동안 굶어 죽었답니다. 개의 충절을 기리는 비를 세웠겠지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미물인 개의 충절을 나몰라한다면 인간이 아니겠지요. 옛 사람들은 이렇게 사리(事理)가 분명했던 것같습니다. 1892년 고종때에 홍씨의 정려(旌閭)를 세워도 좋다는 윤허(允許)가 떨어졌답니다. ‘이효’(二孝)는 그 집안에 효자가 두 명 있었다는 말이겠지요. 아무튼, 제 관심은 흔히 말하는 ‘개비’였습니다. 미뤄 짐작컨대, 16세기였으니, 혹시, 아마도, 확실하게 그 개가 1천년 전부터 내려오던 ‘오수개’가 아니었을까요? 주인을 불길에서 구하고 대신 죽은 충직한 오수개의 무덤이 세조 때까지 있었다는 것(문신 노숙동의 한시에 근거)으로 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언제 오수개가 완전 멸종됐는지 모르는 것이 답답할 일인데, 최근 이보다 몇 배 더 희한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일간매일신보 1937년 4월 27일자). 매일신보는 일제 총독부기관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꿈꾸며 조선 민중을 극도로 괴롭히며 발악을 하던 시절이었겠지요. 당시 총독부가 모피(毛皮. 짐승의 가죽)까지 공출을 강요했답니다. 모피용 개 사육을 장려했다지요. 일제가 그 개가죽들을 얼마나 걷어가 어디에 사용했는지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말하자면 저들의 국난(國難)에 희생된 죽은 수많은 개들의 혼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임실군과 임실경찰서가 <견혼비(犬魂碑)>를 만들어 임실시장 입구에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유족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제막식을 가졌다나요. 참 웃기지도 않는 일입니다. 이름도 거창한 ‘모피보국운동(毛皮保國運動)’ 일환이었다지요. 억울하게 죽은 개들이 인간인지라 마음에 걸렸겠지요. 혼이라도 위로해주자는 뜻은 좋은 일입니다. 사람한테만 '충혼비(忠魂碑)'를 세운다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요?
그 ‘견혼비’는 어디에 묻혀 있을까요? 비가 발견되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좋은 증거도 되고 세계적으로 토픽도 될 터인데요. 옛 촌로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10살이면 올해로 100살이 될 터이니 기억할 수 있는 분도 있지 않을까요? 천재적인 개그맨 전유성님이 삼계탕이나 삼복(三伏)의 복달음으로 죽어간 수백만 마리의 닭들의 영혼을 달래야 하지 않겠냐며 ‘계령비’(鷄靈碑)를 세우자고 전국의 요식업협회 관계자들에게 제안했다가 묵살당했다고 어느 책에서 쓴 것을 읽은 기억이 떠올라 웃었습니다만 씁쓸했습니다.
아무튼, 의견비든 의구비든 견혼비 등, 가능하다면 전국에 걸쳐 ‘개비’의 실존여부와 그 내용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개비를 유형별로 분류도 해놓고, 개비의 전국지도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수를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만들자는 임실군은 7월 1일자로 아마도 전국 기초자치단체에서 처음으로 ‘반려산업과’를 만들며 의욕에 불타고 있습니다. 의미도 있고 뜻이 깊은, 정말로 참 좋은 일입니다. 이미 몇 년 전 공립으로 세운 전국 최초의 펫추모공원도 개설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의견테마파크가 한창 조성중이고, 반려동물캠핑장도 오픈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세계명견공원이 조성되고, 럭셔리한 반려동물 호텔도 건립되면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확실하게 ‘우이(牛耳)를 잡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지난해 유엔 FAO(세계농업기구)에서 30여년만에 생물학적으로 완벽하게 복원된 ‘오수개’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고유 개품종으로 등재하는 초대형 경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이에 임실군민은 또 1천년만에 힘을 모아 등재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천년전과 똑같이 비 전면에 글자 없이 복원된 오수개만을 양각해 놓으니 보기에 얼마나 좋던지요. 나아가,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 요양원’을 이 작은 면소재지 오수에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기회만 되면 반드시 필요한 게 ‘반려동물 요양원’이라고 외치는 ‘오수개의 의인(義人)’도 있습니다. 혼자 꾸면 그냥 꿈에 불과하지만, 다같이 꾸면 현실이 됩니다. 개든 고양이든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명이 넘어섰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 그 반려동물을 제 부모형제보다 끔찍이 아끼는 세상이 왔지만, 이게 어디 인력(人力)으로 되는 일이겠습니까? 지극히 못마땅해도 이런 것을 추세 아니면 트렌드라고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한번 웃습니다. 하하.
축시 - 오수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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