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단 일원으로 일본 입국하려 했으나
집시법 위반으로 인한 집행유예 이유로 입국 금지 통보
이의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강제 국내 송환
인권단체들 “인권 탄압하는 일본 정부 강력히 규탄”
지난 19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국제앰네스티 인권 편지쓰기 전시회 및 간담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22일, 국제 연대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12년 전 선고받았던 집행유예가 그 사유이다. 박 대표는 일본 정부의 입국 금지 통보에 이의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국내로 송환됐다.
- 일본, 12년 전 ‘집행유예’ 이유로 박 대표의 입국 금지 통보
전장연에서 파견한 일본 특사단은 한국에서의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를 알리고 국제 연대를 확대하는 투쟁을 진행하기 위해 오후 12시경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박경석 대표의 경우 별도의 입국 심사 후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으로부터 입국 금지 통보를 받았다.
박경석 대표의 입국 거부 결정이 명시된 입국금지통지서. 사진 전장연 제공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은 박 대표에 대한 입국 거부 사유로 2012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사실을 내세웠다. 해당 사실이 일본의 ‘출입국 관리 및 난민인정법’ 제5조 제1항 제4호에 해당한다며 입국을 거부했다.
일본 ‘출입국 관리 및 난민인정법’
제5조(상륙의 거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은 일본에 상륙할 수 없다.
4. 일본 또는 일본 이외 국가의 법령을 위반하여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이에 상당하는 형에 처해진 사실이 있는 사람. 다만, 정치범죄로 형에 처해진 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은 2012년 박 대표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벌금 10만 원을 선고받은 사건의 기사를 미리 인쇄해 놓고 박 대표에게 보여주며, 입국 거부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박경석 대표가 받은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이 미리 인쇄해 놓은 기사. 사진 전장연 제공
박 대표가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2010년,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 및 장애인활동지원법 대상제한, 자부담, 시간제한 폐지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한 투쟁이었다. 당시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와 비리문제에 연루된 인물을 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하고, 인권위의 독립성과 민주성을 무시한 채 상임위원을 내정하는 등 반인권적 행태를 보여온 인물이다.
2010년 12월 2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인권위 건물을 점거했다. 그 다음 날인 3일, 인권위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대표가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 DB
- 박 대표, 일본 정부의 결정에 이의신청했으나 기각… 결국 국내 송환
오후 4시 35분, 박경석 대표는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의 입국 불허 결정에 이의신청을 제출했으나 오후 6시경 이는 기각됐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오후 7시 25분 항공편을 통해 국내 송환됐다.
- 인권단체들 “인권 탄압하는 일본 정부 강력히 규탄”
전장연은 “박경석 대표는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의 일본지부 공식 초청을 받아 방문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박 대표는 ‘국제앰네스티 2024 편지쓰기 캠페인’ 사례자로 선정됐다. ‘국제앰네스티 2024 편지쓰기 캠페인’은 200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에서 전 세계 1,000여만 명의 국제앰네스티 회원 및 지지자와 함께 수백만 통의 편지를 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권 캠페인이다. 박 대표는 일본 도쿄, 오사카 등에서 편지쓰기 토크쇼, 인터뷰 등에 참여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이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성명을 내어 “깊은 우려와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정당한 인권 활동을 억압하는 행위로, 국제 인권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다. 특히 박경석 대표는 불과 몇 달 전에도 일본을 방문해 평화로운 국제연대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으며, 당시에는 아무런 입국 제한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갑작스럽게 입국을 금지한 것은 장애인권리 옹호 활동가를 겨냥한 차별적이고 부당한 조치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규탄했다.
전장연은 “어떠한 법적·정치적 이유로도 인권 활동은 중단되거나 탄압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강제송환에도, 오세훈 서울시장의 장애인권리 약탈에도, 장애인권리 보장을 향한 국제적 연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입국 거부에 대한 향후 투쟁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