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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번화가인 흑룡가는 밤낮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늦은 밤 시간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차도에는 차들로 가득 메워져 있고 사람이 다니는 인도까지 노점상들이 점령을 하고 있어 가뜩이나 복잡한 도로를 더 복잡하게 했다.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을 앞세운 큰 상점들 사이에 볼품없는 조그만 만두가게가 초라한 불빛 아래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가게 앞의 진열대에는 연신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수증기 아래에는 둥근 만두통 다섯 개씩이 올려져서 그 속에는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고기만두가 쪄지고 있었다. 만두통 앞에는 만두가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근육질의 남자가 만두를 빚고 있었다. 그리고 그자의 옆에는 하얀 밀가루 부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근육질의 남자 얼굴에도 하얀 밀가루가 분칠을 한 것처럼 묻어 있었지만 그는 연신 만두를 빚어 수증기가 오르는 둥근 통속에 담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남녀 손님들이 가득했다. 모두들 고기만두를 앞에 두고 맛있게 먹고들 있었고 근육질의 남자는 연신 김이 오르는 만두를 손님 테이블로 옮기기에 바빴다. 그때 만두가게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검은 양복을 입은 서너 명의 남자들이 만두가게에 나타났다. 검은 양복들은 곧장 근육질의 남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꾸뻑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근육질의 남자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을 힘끔 쳐다보고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양복의 남자가 근육질 남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근육질 남자의 손동작이 멈췄다.
“뭐야! 그게 사실이야?”
근육질 남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양복 입은 남자들이 황급히 그의 앞에서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근육질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밀가루 반죽을 내 팽개쳤다. 그리고 가게에 가득찬 손님들에게 외쳤다.
“오늘 더 이상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모두 나가 주십시오!”
손님들이 항의를 하려 하자 양복 입은 남자들이 강압적으로 손님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손님들이 쫓기듯이 빠져 나가고 어느덧 만두가게에는 근육질 남자와 양복 입은 남자들만 남았다. 근육질이 다시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다시 말해봐! 모두 쫓아내다니! 그게 말이 돼?”
양복이 허리를 굽히며 입을 땠다.
“우, 우리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사실인 것 같습니다. 조금 전 조선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우리 조직원들이 대부분 조선 땅에서 쫓겨난 것 같습니다!”
“뭐야? 그럼 놈들이 더 이상 아편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닙니다! 그것은 아니고 아마도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아편을 판매하려는 것 같습니다!”
“뭐야! 직접 판매를 한다고? 우리 삼합회를 무시하고 놈들이 직접 아편을 만지겠다는 거야?”
근육질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예! 대인어른. 지금으로선 그렇게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음! 조선 놈들 간이 부었구먼! 아편으로 돈을 만들어 줬더니 이제 와서 직접 판매까지 하겠다고? 우리 삼합회를 우습게 봤단 말이지?”
양복 입은 남자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근육질 남자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근육질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푸른 여우는 뭐라고 해?”
“아,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몇 차례 연락을 해보려 했지만 끊어 버렸습니다. 물론 푸른 여우와 직접 연결되지는 안고 중간 연결책이었지만 말입니다!”
“뭐야? 그럼 푸른 여우도 조선의 변질을 묵인 하겠다는 거야? 그런 거야?”
“그, 그게 아직…….”
양복이 우물거리며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런 씨팔!”
근육질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당장 회의 소집해! 지금 당장!”
“예! 대인어른!”
근육질이 소리쳤고 양복 입은 자들이 기급을 하며 우르르 몰려 나갔다. 그리고 만두가게는 근육질 남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신호가 가고 전화를 받은 남자에게 근육질의 큰소리가 튀어 나갔다.
“나야! 바꿔!”
잠시 후 전화를 받은 자가 먼저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들으셨겠지만 조선이 우리 조직원들을 밖으로 내 쫒았습니다! 들은 것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조선이 더 이상 삼합회에겐 물건을 건네지 않겠다는군.”
“뭐라고요? 그럼 조선 놈들이 삼합회 없이 장사를 해보겠다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모르지! 하지만 당분간은 물건을 중국으로 건너보네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삼합회는 물론 자네 상회에도 물건을 넘기지 않겠다는군.”
“음! 그래요? 누군가에 의해 바람이 들어갔군요. 그렇지요?”
“아마도 그런 모양이야. 아니면 푸른 여우가 장난을 치거나 말이야!”
“예? 푸른 여우가 장난을 쳐요? 감히 우리 삼합회와 등을 돌린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놈을 잘 단속했어야지! 우린 아직 푸른 여우가 어떤 놈인지 신상파악도 못하고 있잖아!”
근육질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전화기 속의 남자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도무지 무슨 속셈인지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군! 이 장연명이 삼합회의 회장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조선 놈들이 장난질을 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 중요한 시점인 지금에 와서 아편 공급을 끊어 버린다고? 그동안 우리가 온갖 감시 속에서도 조선 아편을 팔아줬는데 이제 와서 독식을 하겠다는 거야? 이, 이런 개새끼들이!”
장연명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 그게 저……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푸른 여우의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김정은이 외화벌이에 환장해서 저지른 짓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만…….”“뭐야! 그래서! 그래서 감히 중국 대륙에서 아편 밀매를 하면서 우리 삼합회를 무시하겠다는 거야? 우리를 배제하고 놈들이 아편 장사를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장연명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당장 압록강 두만강을 통해 들어오는 길목에 우리 조직을 심어! 필요하면 현지 공안들을 구워삶아서라도 조선 놈들이 중국으로 아편을 들여오는 것을 막으란 말이야! 알겠어?”
그리고는 그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장연명의 목에 시퍼런 핏줄이 섰다.
“음! 조선 놈들이 장난을 쳐? 감히 우리 삼합회를 무시하면서 말이야?”
장연명이 그리고는 하얗게 밀가루가 묻은 앞치마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곧장 만두가게의 셔터를 내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푸른 여우와의 중간 연락책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곧이어 변조된 중간 연락책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다시 음성변조기를 착용 하고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나요!”
장연명은 속이 뒤틀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조선에서 우리 식구들을 모두 밖으로 내쫒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장연명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연락책이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북조선은 지금 대인어른의 삼합회를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뭐라고요? 실험이라니! 우리 삼합회를 실험 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명심 할 것은 이번 실험이 장차 삼합회가 조선에서 생산되는 마약을 독점 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장연명의 얼굴이 굳어 졌다.
“조선 마약의 독점이라고요?”
“그렇소! 그래서 우린 대인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뭘 말입니까?”
“지난번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번에는 물건이 좀 다르긴 하지만 말입니다.”
“뭐라고요? 지난번과 같은 것이라면 그 상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하지만 이번에는 속에 내용물이 다릅니다! 이번에는 완성품입니다!”
장연명의 안색이 굳어졌다.
“완성품이라니요? 그, 그럼 핵폭탄이란 말입니까?”
장연명은 너무 놀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연결책이 대답했다.
“그렇소! 이번에는 핵폭탄이오. 쉽게 말하면 핵배낭!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소형화된 핵폭탄 말이오!”
장연명은 너무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소형화 된 핵배낭이라면 개인이 간단하게 짊어지고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가서 터트릴 수 있는 폭탄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개인이 핵폭탄으로 자살테러를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이, 이것 보시오! 핵배낭이라니? 우리에게 지금 핵배낭을 운송하라는 것이오? 지난번 우라늄을 옮긴 것처럼?”
“그렇소! 이번에는 우라늄이 아닌 핵배낭이오! 지난번과 똑 같이 한국의 휴전선을 통해서 말이오!”
어지간한 장연명도 크게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난번과 같이 라고 한다면 핵폭탄을 한국을 거쳐 휴전선을 통과해 조선으로 들여오라는 것이었다.
“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시오? 휴전선을 통해서라니! 핵배낭을 들여오는 것도 큰 문젠데 왜 하필 한국을 통해서 들어와야 한다는 거요? 중국을 통해 건너가면 훨씬 쉬울 탠데 말이오.”
“안 돼요! 분명히 말하지만 한국을 통해서 들어와야 합니다! 지난번과 같은 똑 같은 루트를 통해 말입니다!”
“왜지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흐흐! 이유는 묻지 마십시오! 한국을 통해 들어와야 하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다만 난 그렇게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삼합회는 한국을 통해서 북조선으로 핵배낭을 옮겨주어야만 합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우린 삼합회와의 모든 거래를 끊겠습니다!”
장연명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조선과의 마약거래를 끊는다는 것은 삼합회의 자금줄을 끊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어, 어떻게 옮기란 말입니까? 지난번과 같이 파키스탄으로 가는 겁니까?”
“그렇소! 이번에는 인도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가는 것이오. 인도에 중간 연락책이 있습니다. 그 연락책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물건을 건네받으면 되는 것이오!”
“음! 루트는 지난번과 같단 말이지요? 좋소! 그럼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 일을 성사시키고 나면 조선과 우리 삼합회와의 마약거래는 계속 되는 것이오. 알겠소?”
“물론이오! 당신들이 함께 하기로 했으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추방한 삼합회 조직원들을 다시 입국을 허락 하겠소! 다만 한 가지 더! 물건을 한국으로 들여와도 휴전선을 넘는 시기는 차후에 다시 연락을 주겠소.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연락책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만 전화를 끊었다. 장연명은 한참을 그대로 서있었다. 지난번과 같은 루트라면 인도에서 중간 연락책과 접선하여 파키스탄으로 건너가 물건을 인수해서 다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지난번 우라늄을 넘길 때의 과정이 그랬었다. 휴전선을 넘을 때는 이미 휴전선 일대가 비워져 있어 쉽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휴전선을 넘어갈 수 있도록 푸른 여우가 미리 손을 써 놓겠다는 것이었다.
‘음! 왜지? 왜 물건을 한국을 통해서 건네받으려는 거지? 중국을 통하면 쉽게 전달할 수가 있는데 왜 굳이 한국을 통하려는 것이지?’
장연명은 아무래 생각을 해도 도통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선 조선과의 마약거래는 계속 할 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조선과의 마약거래는 그들에게 있어 밥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삼합회를 마약거래로 이끌고 있다고 봐도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카오와 한국 제주도에 자신들 조직 소유의 카지노가 있었지만 카지노 수입만으로는 삼합회를 이끌 수가 없었다. 조선과의 마약거래가 없으면 그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핵배낭이었다. 그동안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삼합회였지만 핵폭탄을 취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구소련이 망할 때 러시아 마피아가 파키스탄과 인도에 핵폭탄을 팔아먹은 사실이 있었지만 말이다.
‘음! 핵배낭이라! 조선이 소형화된 핵폭탄을 갖추려 한단 말이지?’
장연명의 눈이 번쩍 빛났다. 어쩌면 삼합회로선 두 번 다시 만지지 못할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러시아 마피아가 핵폭탄을 팔아먹고 엄청난 부를 축척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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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님이 건넨 삼합회 조직원들 명단은 G3팀을 긴장케 했다. 명단에 속해있는 조직원들 개개인들은 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G3팀원들이 일제히 회의실에 모여 다윗을 중심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인호가 명단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건 아무래도 검찰과 수사공조를 해야겠는데요? 우리가 독점하기엔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다윗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니야! 검찰과 공조는 더 힘들어. 잘 알겠지만 삼합회는 우리나라 폭력조직이 아니야. 중국이 본거지란 말이야. 검찰이 쉽게 손대지 못하는 이유야.”
“하지만 중국 공안과는 더 공조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 대두분이 삼합회와는 연관이 있는 자들인데 공안들이라고 한국의 삼합회 수사에 협조 하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중국 공안들은 대부분이 삼합회와 연관이 있는 자들이었다. 삼합회를 견제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할 공안들이 폭력조직과 연계해 자신들 이득만 챙기기가 일쑤였던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수사는 중국 삼합회까지는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어. 너무 범위가 광대하단 말이야. 그래서 우린 우리나라에서 움직이고 있는 삼합회 조직들만 잡아 족치잔 말이야. 어때?”
종규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국내거주 삼합회라면 여기 이 명단 속에 들어있는 자들이잖아? 이자들이라면 뭐 큰 걱정 할 것이 없겠는데? 모조리 잡아들이면 되잖아?”
다윗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니야! 문제는 이속에 들어있는 명단들이 대부분 조무래기들이라는 거야. 몸통들은 여기 들어가 있지도 않다는 거지. 이까짓 조무래기들은 아무리 잡아들여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아. 놈들을 잡으려면 뿌리를 잡아 흔들어야 한단 말이야!”
“뭐! 조무래기들이라고? 어디 그 명단 다시 한 번 보자고.”
종규가 다윗 손에 들려 있는 명단을 가져다가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이름 하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놈 봐라! 이놈은 내가 아는 놈인데!”
종규가 이름 하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다윗이 종규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는 놈이 있어? 누군데?”
“여기 이놈 말이야! 도찬호! 목포 뱃놈 도찬호!”
“뭐? 도찬호를 안다고? 이자를 안단 말이야?”
“그럼! 쌍끌이 어선을 네 척이나 가지고 있는 목포 뱃놈이야. 그런데 이놈이 삼합회 조직원이란 말이야? 아닌데! 이놈은 밀항자들을 밀입국 시키는 놈인데!”
종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밀항자를 밀입국 시킨다고? 그럼 이자가 중국에서 넘어오는 밀항자를 국내로 몰래 들여오는 놈이란 말이야?”
“그래! 그 도찬호가 분명 하다면 이자는 밀항자를 밀입국 시키는 그놈이 맞아! 분명해!”
종규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윗이 도찬호의 프로필을 보며 물었다.
“도찬호를 잘 안단 말이지?”
“잘 알지! 지난 번 중국에서 건너오는 밀항자들 수사를 할 때 그때 알게 된 놈인데 내가 육 개월 동안 조업을 못하게 한 적이 있었거든. 아마 지금도 날 보면 꽁지를 내리고 도망칠걸? 후후!”
종규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조업을 못하게 했다고? 어떻게?”
“후후! 간단해! 수산업법 위반으로 육 개월 운항 정지를 먹도록 해버렸거든. 아마 도찬호 그놈 평생 내 얼굴 잊지 못할 거야! 하하하”
다윗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삼합회 수사는 네가 맡으면 되겠네? 도찬호를 수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말이야. 안 그래?”
“뭐! 내가 맡으라고?”
종규가 얼굴을 찌푸렸다. 다윗이 종규에게 명단을 넘겨주며 어깨를 두드렸다.
“이만한 조건이면 수사할 만하잖아? 명단 있겠다! 거기다가 지원 빵빵하겠다! 뭐가 문제야?”
종규가 피식 웃으며 명단을 받았다.
“제길! 나 이럴 줄 알았어! 팀장이 없을 때가 좋았어! 돌아오자 말자 사람을 아주 혹사를 시키는구먼!”
종규는 투덜대면서도 명단 속에 들어있는 인물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인호가 종규에게 다가가 배시시 웃었다.
“선배님! 그래도 G3가 다시 결성되고 첫 수사를 책임 맡은 것 아닙니까? 축하합니다! 히히히!”
“니미 씨팔! 간섭하는 사람 없어 느긋하고 좋았는데 축하는 무슨!”
종규가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검색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군! 도찬호 번호 말이야!”
종규가 번호를 가리키며 웃었다. 벌써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종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요원에게 도찬호의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주며 말했다.
“이 번호 지금 위치추적 좀 해줘.”
요원이 종규가 가르쳐준 번호를 검색하고는 말했다.
“목폰데요? 현제 목포에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목포야? 젠장! 목포까지 출장 가야겠군.”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윗에게 말했다.
“삼합회 수사는 시작을 이 도찬호에게서부터 시작하란 말이지? 그런데 꽁지들을 좀 쓰려는데 생각이 어때?”
“너 마음대로 해. 삼합회는 완전 너에게 맡긴 것이니까 꽁지를 쓰던 대가리를 쓰던 네가 알아서 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알아서 하란 말이야.”
“OK! 나중에 딴 소리 하기 없기야. 내게 맡겼으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종규가 시원하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나갔다. 다윗이 조용히 인호에게 말했다.
“부산에 혁두파는 요즘 어때? 삼합회를 누를 수 있을만한 조폭들이 혁두파가 아니야?”
“맞습니다! 혁두파는 요즘도 부산을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직 이경제가 혁두파 오야붕 맞지?”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넌 이제부터 혁두파 이경제를 한 번 만나봐. 내가 보냈다고 하면 협조해 줄 거야.”
“이경제를요?”
“그래! 몇 년 전에 이경제가 일본 야쿠자들과 분쟁이 있을 때 내가 구해준 적이 있었어. 아마도 내가 보냈다고 하면 소탕 작전에 협조해 줄 거야.”
다윗은 웃으며 인호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다윗은 평소 안면이 있는 검찰청 김민효 검사의 번호를 눌렀다.
“김 검사님! 나 G3 윤다윗입니다!”
“아이고! 이게 누굽니까? 도대체 얼마 만입니까?”
김 검사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네! 오늘부로 다시 G3에 복귀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삼합회를 다시 수사하려고 합니다. 검사님께서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럼요! 당연히 도와야지요.”
“고맙습니다. 그럼 우선 우리가 확보한 명단이 있는데 이중에 검사님이 가지고 있는 폭력조직 명단과 겹치는 놈이 있는지 확인 좀 해주시겠습니까?”
“당연하지요! 당장 해드리겠습니다.”
김 검사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럼 우리 요원을 보내겠습니다. 번거롭지만 꼼꼼하게 확인 부탁드립니다.”
다윗이 재차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인호에게 눈짓했다. 김 검사를 찾아가 보라는 신호였다. 인호가 부리나케 일어서 나갔다. 다윗이 컴퓨터를 켜고 인물검색을 했다. 모니터에는 삼합회 조직원들 얼굴이 차례로 나타나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자들이었다. 전국에 분산돼 활약하고 있는 삼합회 조직원들 현황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다윗은 하나하나 천천히 모니터를 보면서 얼굴을 확인했다. 아는 얼굴들도 몇몇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전산실 요원에게 말했다.
“여기 이자들 특별히 신경 써서 살피도록 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거나 기차표를 끊어도 빠짐없이 체킹하란 말이야.”
다윗의 명령에 전산실 요원들이 일제히 명단 속의 인물들을 컴퓨터와 연결해 살피기 시작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다. 그때 다윗의 핸드폰이 울렸다. 실장의 번호였다.
“네.”
“난데 이상호 말이야. 아무래도 G1이 개입 하려는 것 같아!”
“뭐라고요? G1이 개입한단 말입니까? 아니 G1은 정치인들만 담당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맞아! 그런데 아무래도 윗선에서는 이것은 단순히 보지를 않는것 같단 말이야. 아무래도 G1이 윗선에 줄을 넣은 것 같아.”
다윗이 발끈해 언성을 높였다.
“무슨 말입니까? 윗선이 그런 것까지 개입합니까? 이미 우리 G3가 활동 중인데 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글쎄 말이야! 난 안 된다고 하긴 했었는데…….”
실장이 곤란한지 말끝을 흐렸다.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상호가 문을 닫아 버린단 말입니다! 닭 쫒던 개꼴이 된단 말입니다!”
다윗이 발끈해 소리쳤다. 실장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자네가 청와대를 들어갔다 와야겠네. 안보수석을 만나야겠어!”
“네? 청와대 안보수석을요?”
“그래! 이번 일은 청와대 안보수석이 전담하고 있네. 자네가 그 사람을 만나 G1이 이번 일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해줘야겠네.”
“안보수석이라면 G1을 총괄하는 곳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의 말을 들으려 할까요?”
“그러니까 더 안보수석에게 설득을 해야겠지. G3가 이상호와 연결돼 있다는 것과 82구역에 대한 쓸데없는 개입은 자칫 북쪽을 잘못 건드려서 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 시켜야겠지.”
실장의 말에 다윗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안보수석을 만나겠습니다. 실장님이 시간 약속을 해주십시오.”
“언제들 들어가면 돼! 그쪽도 자넬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지금 곧 들어가겠습니다.”
다윗은 전화를 끊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G1은 같은 국정원 소속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청와대에 속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팀이었다. 청와대 안보수석이 G1을 총괄했던 것이다. G3와 G1은 서로 앙숙이었다. G1이 수시로 G3의 사건까지 간섭하곤 했던 것이다. 덕택에 다윗과 많이 부딪쳤고 서로 멱살잡이까지 간 적도 있었다.
“씨팔 새끼들! 도무지 보탬이 안 돼!”
다윗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청와대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밖으로 나오자 비가 오고 있었다. 봄비가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가랑비속에 도로에는 수많은 자동차로 차들이 더디게 움직였다. 차량이 많아서 조금 가다가 멈추고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하며 그는 지루한 나머지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폴모리 악단의 연주였다. 음악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쪽 팔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빗줄기가 그를 시원하게 했다. 갑자기 금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금님의 신문사와 청와대는 거리 멀지 않는 거리였다. 다윗은 금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웬일이세요? 전화를 다 주시고?”
금님이 통통 튀는 목소리로 외쳤다.
“가까운 곳에 가는 중입니다. 오늘 시간 어떠세요? 잠시 좀 뵐까요?”
“지금요?”
“아니요. 지금 말고 볼일을 다 마치고 나서 말입니다. 사실은 지금 청와대로 들어가는 중이거든요.”
“어머! 청와대로 들어간단 말이에요? 나도 청와대 출입증 있는데.”
“앞으로 두 시간 후가 어떨까요? 제가 신문사 앞으로 가겠습니다.”
“좋아요! 기다릴게요.”
금님이 기분 좋게 응수했다. 다윗은 전화를 끊고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그의 머릿속을 깨끗하게 청소해준 느낌이었다. 생글거리며 웃고 있는 금님의 얼굴이 떠오르자 다윗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묘하게도 마음이 설렜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의 가슴속에는 어느새 금님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자동차가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입구에 도착했다. 정문에는 이미 다윗의 기록이 올라와 있었다.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청와대의 푸른 기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윗이 차에서 내려 전화를 넣었다. 실장이 가르쳐준 안보수석의 전화번호였다.
“안녕 하십니까? G3의 윤다윗입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들어오시지요.”
안보수석이 흔쾌히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 그를 안내했다. 춘추관을 지나 들어간 곧은 안보수석의 집무실이었다.
“어서 오시오! 나 안보수석 김기태요!”
김기태 안보수석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첫눈에 김기태는 활발한 사람으로 보였다. 김기태가 그를 소파로 안내했다. 그리고 차를 권했다.
“들었겠지만 오늘 G3 책임자를 보자 한 것은 아무래도 이상호에 대해서는 G3가 총괄해 왔기 때문에 자문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말입니다.”
김기태가 차를 권하며 다윗을 향해 웃음 지었다. 다윗이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아무래도 이상호에 관한 것을 G1이 담당하려는 것으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하하하! 아주 직설적이시군! 좋아요. 나 역시 뒤끝이 깨끗한 것이 좋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렇습니다! 이상호에 관한 것은 앞으로 G1이 맡을 겁니다. 별 큰 어려움이 없다면 말입니다.”
다윗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안 됩니다! 그것은 안 됩니다!”
다윗이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김기태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물었다.
“왜지요?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안 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호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 부서를 바꾼다는 것은 그동안 일 년이 넘도록 이상호와 접근해 왔던 G3에 대한 신뢰도가 깨지는 것입니다! 이상호 입장에선 생소한 G1에 대해 신뢰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칫 그 사람 생명이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 생명이 위험해 지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상호는 지금 자신의 목숨을 걸고 김정은과 담판을 짓고 있습니다! 82구역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상호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만약 우리와의 협약이 깨진다면 김정은은 절대로 그 사람을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G1이 이상호를 맞는다고 협상이 깨어진다는 것은 좀…….”
김기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다윗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깨집니다! 깨지는 이유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습니다! 첫째는 일 년 전부터 우리 G3와 이상호가 비밀리에 서로 협상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담당부서가 바뀌면 새롭게 다시 협상을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이 절대로 가만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김정은 부근의 강경파들은 이상호를 죽이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둘째는 이상호의 가족들 입니다! 이상호의 부인과 딸은 이미 숙청되어 모처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번 일이 잘못된다면 그의 가족들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그래서 이상호는 어쩌면 자신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82구역을 김정은에게 완전 넘겨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남쪽은 단념을 하고 말입니다!”
“뭐, 뭐라고! 우릴 버린단 말입니까?”
김기태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 사람에겐 자신의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건 간단하게 서로 협의해야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상호 입장에선 자신과 자신 가족의 생명이 걸려 있는 일입니다!”
“음! 그래서 이번 일은 G1이 맡아선 안 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믿기진 않겠지만 우린 지금으로선 전적으로 이상호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번 작전의 승패를 좌우할 겁니다!”
“음! 믿는단 말이지요? 이상호를?”
김기태가 심각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고 다시 물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G3가 이상호를 맡도록 합시다. 하지만 단 조건이 있습니다. 수시로 진행 상황을 내게 보고해 달라는 겁니다. 대통령께서도 이번 일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기태가 기분 좋게 다윗에게 악수를 청했다. 역시 처음 볼 때처럼 마음이 결정되면 망설임 없이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고작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 안보수석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안보수석 역시 그런 것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상호에 관한 것이 어떻게 결말날지에 따라 자신의 수명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마무리가 잘 되어야 그들의 정치생명이 연장되는 것이었다.
청와대를 나오자 벌써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다윗은 차를 몰고 금님의 신문사 근처까지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넣자 금님이 금세 기다렸다는 듯이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청와대는 잘 다녀왔어요? 왜 들어갔던 거예요?”
금님이 환하게 웃으며 물어왔다.
“네! 잘 됐습니다.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쉽게 해결됐습니다.”
“그래요? 잘 됐다니 다행이네요.”
금님이 생긋 미소 지었다. 다윗은 가슴이 뛰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우리 밥 먹을 가요? 나 지금 무척 배가 고픈데.”
금님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좋아요! 우리 뭐 먹을까요? 난 지금 초밥이 땅기는데!”
“초밥이오? 나도 좋습니다. 갑시다.”
다윗이 앞장서 걸었다. 가까운 일식집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초밥과 간단한 튀김종류를 주문하고 마주보고 앉았다.
“어때요? 잘 되 가요?”
“뭐가요?”
“이상호 말에요. 언제 서울로 오게 되는 거예요?”
“글쎄요. 빠른 시일이라고 하긴 했는데 구체적 날짜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금님이 자신의 가방 속에서 부스럭거리더니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낡은 흑백사진이었다.
“이게 뭡니까?”
“실은 신문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을 검색해 봤는데 이런 것이 나오더라고요? 오래전에 김일성과 장개석이 만주 군사학교를 졸업하면서 같이 찍은 사진이 말이에요. 여기 이 사진 말이에요.”
금님이 내민 사진은 약 삼십 명 가량의 남자들이 두 줄로 늘어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사진의 남자들 중에 두 사람의 얼굴에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 이 사람이 장개석이고 여기가 바로 김일성이에요.”
금님이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김일성과 장개석의 젊어서 얼굴이지만 두 사람의 본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금님이 다시 가방 속에서 스크랩된 문서 한권을 꺼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접은 부분을 다윗에게 내밀었다.
“이건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벌어진 전투를 기록한 문서에요. 여기에 보면 김일성과 장개석이 같은 부대 소속으로 같은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여기 만주의 관동전투에 말에요! 다시 말하면 두 사람은 같은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라는 것이에요.”
“그렇군요! 장개석이 김일성을 믿고 황금을 넘길만한 근거가 되겠군요!”
“맞아요! 그리고 이곳을 보세요. 여기에 보면 김일성과 같이 관동전투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이호영이란 이름이 보이지요? 바로 이상호의 아버지 이호영 그 사람입니다!”
다윗은 금님이 가리킨 곳을 보고는 감탄을 했다. 꼼꼼히도 근거를 찾았던 것이다.
“결국 이상호가 하는 말이 모두 맞는다는 것이네요? 그렇지요?”
“그래요! 이상호의 아버지 이호영이 김일성의 오른팔이었고 김일성이 자기 자식들에게까지 비밀로 했던 82구역을 이호영에게만 맡겼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금님의 말에 다윗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배가 고팠던 다윗이 초밥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준 삼합회 명단 말입니다. 그때 삼합회 조직 명단을 넘긴 제보자가 숨졌다고 했었지요?”
“네! 그래요. 명단을 넘겨준 그날에 제보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 됐어요. 한강 고수부지에서 말에요.”
“그래요? 그럼 그때 삼합회에 대한 제보를 하고 죽은 사람이 누구지요? 사실은 우리가 삼합회에 대한 수사를 하려고 합니다. 국내에 존재하는 삼합회 조직원들 모두를 말입니다!”
“그래요? 그렇게 결정 났어요?”
금님의 눈이 반짝거렸다. 잠시 생각을 하던 금님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 명단 속에 그 사람 이름이 들어 있었어요. 고인을 생각해서 명단에서 그 이름을 빼었지만 제보자도 삼합회 조직원이었어요.”
금님이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오달수. 종이에는 오달수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달숩니까? 제보자가?”
“그래요. 그 사람 이름은 오달수에요. 삼합회 조직원들 중 유일하게 대학물을 먹은 사람이에요. 그것도 명문대학을 말이에요.”
“예? 명문대학 출신이 깡패 짓을 했단 말입니까?”
“그래요. 그래서 갈등이 심했었어요. 결국 우리에게 제보를 하게 되었고 말에요.”
금님이 측은한 얼굴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럼 누가 그자를 죽인 거지요? 같은 조직원이었습니까?”
금님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직 누군지 몰라요. 범임이 잡히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난 누구 소행인지 알아요! 증거가 없어서 잡을 수가 없을 뿐이에요!”
“그래요? 누굽니까? 오달수를 죽인 자가?”
금님이 목소릴 낮추며 말했다.
“조봉달! 제주호텔 카지노 총 지배인인 삼합회 한국조직 책임자인 조봉달이에요!”
“조봉달이라고요? 그럼 조봉달이 오달수를 죽었단 말입니까?”
“네! 분명히 그랬어요. 오달수가 우리에게 제보하게 된 동기도 바로 제주호텔 카지노 때문이었거든요. 카지노에서 나오는 수입을 조봉달이 독식을 해서 오달수가 반기를 들은 것이거든요.”
다윗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호텔 카지노와 부산 해운대 호텔 카지노, 그리고 서울의 웨스턴 호텔 카지노에 대한 삼합회 조직의 관여를 수사하려고 했었다. 삼합회가 카지노를 장악하면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삼합회에 대한 수사를 하게 된 동기도 바로 카지노에 관한 제보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이다 보니 고발자 대부분이 외국인들이었다. 한국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으로 판명되어 삼합회를 중심으로 하는 카지노를 수사했던 것이다.
“결국 오달수가 제주호텔 카지노에 대한 제보를 하는 바람에 조봉달이 오달수를 죽였다는 것이군요?”
“맞아요! 심증은 가는데 증거가 없어 조봉달을 잡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난 분명히 언젠가는 조봉달이 잡힐 것이라 확신해요. 죄를 지은 자가 숨을 곳은 없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조봉달을 꼭 잡아 주세요! 죽은 오달수를 생각하면 그놈 아주 뼈를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놈이에요!”
금님이 표독스럽게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조봉달, 분명히 기억해 두겠습니다.”
다윗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가 모두 끝이 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윗이 말했다.
“아버님은 여전 하시지요?”
“그럼요! 여전히 하루에 소두 세병! 끄떡없이 드시고 계세요.”
“하하하! 정말 걱정입니다. 누가 금님씨에게 장가올지 모르지만 장인어른 상대하려면 보통 술 솜씨로는 안 될 탠데 말입니다!”
“호호호! 그런 걱정은 마세요. 아빠가 나하고 약속한 것이 있거든요. 내가 시집가서 아들을 낳으면 절대로 술 마시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은 뭐 허전해서 마신다나 뭐라나? 시집가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만 낳으면 절대로 술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 했거든요.”
“하하하! 아들을 마음대로 낳는 건가요?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야 낳는 거지! 히히히! 이건 우리 엄마의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내리 세 명의 딸을 낳고 나서야 저를 낳았거든요. 할아버지의 극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우리 엄마의 말을 빌릴 것 같으면 아들만 낳을 수 있다면 뜨거운 아궁이 속에 들어가라고 해도 들어가려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밥하느라 아궁이 앞에 앉아서 말입니다! 하하하!”
다윗이 배를 잡고 웃었다. 금님이 측은한 눈으로 말했다.
“어머님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셨나 보네요. 그 까짓 아들이 뭔데 키워 놓으면 자기 혼자서 컸는지 하는데 말에요!”
“무슨 말이에요? 나 이래봬도 효잡니다! 난 우리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하곤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어머! 그래요? 그럼 어쩌나? 결혼할 결심이 서는 여자가 나타나면 일단 어머니에게 먼저 선부터 보여야 하겠네요? 통과가 돼야만 결혼 할 거 아니에요?”
“아, 아니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내말은…….”
“저것 봐! 금세 말이 바뀌는 것 좀 봐. 그래서 아들놈은 모두 도둑놈이라니까!”
금님이 콧방귀를 꼈다. 다윗이 겸연쩍은 웃음으로 넘기려 했다.
“히히히! 그건 아니지만……그래도 그렇지 도둑놈이 뭡니까? 하여간 내가 첫눈에 알아 봤어. 아주 남자를 쥐 잡듯이 잡을 여자란 것을 말이야!”
그리고는 다윗이 자신의 차문을 열어주었다. 금님이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
“타라는 거예요?”
“예! 집까지 모셔 드릴게요.”
“집까지요? 아, 아니에요. 나도 차 있어요.”
“압니다. 그냥 내가 모시고 가고 싶어서 그럽니다.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싶고 말입니다.”
“좋아요! 정 그렇게 원하시면 같이 가주지요, 뭐.”
금님이 냉큼 다윗의 차에 올랐다.
“그런데 집은 어디에요? 날 태워주고 가면 너무 도는 것 아닌가?”
“전 세곡동에 삽니다. 혼자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머! 혼자 사세요? 그럼 부모님은?”
“부모님은 시골에 계시지요. 고향 말입니다. 저 고향은 대전입니다.”
“네! 그래서 혼자 계시는군요.”
금님이 수다를 떨며 재잘거렸다. 다윗은 금님과 함께하면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녀의 수다가 하나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조잘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활발한 모습이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기도 했다. 그러나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를 그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녀가 좋기만 하고 부담 없는 친구와도 같았던 것이다. 다윗이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애인이 없어요?”
금님이 샐쭉해 대답했다.
“누가 그래요? 애인 없다고?”
“임 기자 아버지가요. 집으로 남자를 데리고 간 것이 내가 처음이라면서요?”
“어머! 집으로 남자 데려간 것이 처음이라면 무조건 애인이 없는 거예요?”
“당연 하지요! 애인이 있는데 왜 날 아버지께 데려가요? 뭇매 맞으려고요?”
“네? 기가 막혀서! 도대체 남자들은 왜 그래요? 모두가 자기들 편한 데로 생각 한다니까!”
금님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찼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속마음이 들켜버린 것이다. 차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금님이 다윗에게 물었다.
“그쪽은 결혼 생각은 없는 거예요? 애인은 있어요?”
“후후! 왜요? 없어 보여요?”
“네!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거든요? 애인 없는 사람들 공통된 포스 있잖아요. 그쪽은 그게 느껴져요.”
“하하하! 이런! 정말 거짓말은 하지 못하겠군요. 사실인 즉은 정말 애인은 없습니다. 결혼 대상자는 더더욱 없고요.”
다윗이 겸연쩍어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머 왜요? 그 나이에 왜 아직…….”
“글쎄요!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사실은 내 직업이 문제긴 합니다. 매일같이 위험한 일과를 하다 보니 사실은 결혼하기가 겁이 납니다. 공연히 생과부를 만들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어머나! 무슨 그런 되도 않는 말이 있어요? 그럼 그쪽이 죽기라도 한단 말이에요? 아니면 국정원 사람들은 모두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거예요? 무슨 그런 괴변이 있어요?”
금님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항의를 했다. 그러나 다윗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금님이 다윗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어머! 정말인 모양이네? 정말 자신이 죽을 까봐 결혼하지 않는다는 말이네? 그래요?”
“네! 그래요. 그것 때문에 어머니가 매일 저에게 국정원을 그만 두라고 하세요. 5대 독자 장가가지 못해서 대가 끊어지게 생겼다고 말입니다!”
다윗의 말은 진실이었다. 사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얼마 전가지만 해도 어머니가 매일 그에게 선을 보라고 성화를 하셨다. 괜찮은 규수가 있다며 시간 내서 고향에 다니러 오라고 매일 극성스러울 정도로 그를 몰아쳤던 것이다. 하긴 나이 38이면 장가들 나이가 지났긴 했다. 그러나 그가 결혼을 망설이는 것은 동료들의 고충을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선배 몇 명은 작전 임무 수행 중 순직하기도 하고 또 대부분의 요원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집으로 들어가면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만큼 국정원 요원이란 개인적인 사생활은 아예 접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 역시 결혼을 하면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니 자연히 결혼이 망설여졌던 것이다. 금님이 측은한 눈으로 다윗을 보며 말했다.
“그렇겠네요! 어머니께서 아들 때문에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네요. 그런데 그런 것이 두려워 장가를 가지 않겠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인명은 제천이란 말도 몰라요?”
“물론 나 자신도 생각해보면 괜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부딪치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망설여지곤 합니다. 그래서 여자를 사귀는 것 자체가 싫어지고 말입니다.”
“그럼 문제가 간단하네요! 국정원을 그만 두던가 아니면 마음이 통하는 여자를 만나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던가! 둘 중 하나 하면 되겠네요? 안 그래요?”
“…….”
“왜요? 겁나요? 혹시 여자들이 겁나는 것 아니에요? 아니면 자라면서 누나들 등쌀에 여자들이 싫어지셨나?”
“아,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도 여자가 좋습니다!”
다윗이 극구 부인했다. 금님이 입을 가로막고 웃었다.
“후훗! 은근히 순진하셔! 자꾸 마음이 가려고 하네. 어때요? 난 어떻게 생각해요? 정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으면 나라도 노총각 구제해 줄 수 있는데!”
“네? 아, 아니 무슨 여자가 부끄럼도 없이 그런 말을 함부로…….”
다윗의 얼굴이 붉어졌다. 금님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나이 사십이 다되어 가는 남자가 십대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던 것이다.
“호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금님이 배를 잡고 웃었지만 다윗은 여전히 얼굴을 붉히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