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의 옛모습
1910녀대 솥전
경주 읍성 밖에 장이 열리고 솥 가게에 손님이 많다.
1910년대 포석정과 바지, 저고리 입은 아이들
1914년 4월 경주기생
경주고적보존회(현 경주문화원)의 온고각 앞에서 기념촬영
1915년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 이전
봉황대에 있던 종을 경주고적보존회 (현 경주문화원)로 옮기고 있다.
1922년 경주 집경전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셨던 곳으로 1960년대 초까지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다. 사진은 집경전의 비각으로 추정되며 현재 경주여중 교정 동편에는 집경전 옛터라는 비석만 서 있다.
1920년대 황남동 고분
갓 쓰고 한복 입고 나귀 몰고 간다
1920년대 황남동 고분
죽은 아이를 넣은 옹기를 지게에 지고 묻으러 가는데 일본 순사가 검문한다.
1920년대 첨성대 뒷길을 오고가는 사람들
1920년대 삼 릉
아이들이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다가 삼릉에서 놀고 있는 모습
1920년대 석조여래입상
왕정곡 제2사지 석조여래입상으로 하반신이 땅에 묻혀 있다. 지금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26년 신라금과 발굴당시 스웨덴 쿠스타프 황태자
서봉총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쿠스타프 (왼쪽에 안경 쓰고 무릎 꿇은 사람)와 일행.
스웨덴의 한문 표기인 서전(瑞典)과 출토된 금관에 새겨진 봉황(鳳凰)에서 한자씩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란 이름이 명명되었다.
송지 목욕탕
1930년대 경주 중심가
지금의 중앙로에서 대릉원쪽으로 바라본 모습
1930년대 경주 시장의 신목
멀리 보이는 나무가 신목이다.
1930년대 삼존불
남산 삼불사에 있는 불상으로 지금은 보호각을 설치했다.
1930년대 석조약사여래좌상(연대미상)
경주남산 용장계곡에 있던 불상 지금은 머리와
광배가 복원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태종 무열왕릉비
비석은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택시 승강장
경주역 구내에 있던 오카모토(岡本)유람자동차 출장소로 운전기사들이 차량에 기댄 채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경주극장
일제 강점기 시절의 경주역
1939년 10월 10일 경주 안압지 수학여행
1950년대 봉황대의 오솔길
노동. 노서동 일대의 전경. 봉황대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1950넌대 감은사. 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1950년대 안압지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뒷산은 소금강산.
일제때 세운 임해정은1977년에 황성공원으로 옮겼으며 지금의 호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