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켜온 건 줄다리기에 담긴 화합정신”
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 자서전
기지시줄다리기 보유자 구자동씨
국가무형문화재 ‘기지시줄다리기’ 구자동 보유자가 줄다리기 줄 앞에 섰다. 짚으로 150m 넘게 꼰 줄은 액운을 쫓는 지네를 형상화했다. 문화재청 제공
“지푸라기 한 가닥은 별 힘이 없죠. 하지만 여러 가닥을 엮으면 많은 이가 달려들어도 끊어지지 않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기지시줄다리기’ 보유자인 구자동 씨(79)에게 ‘줄다리기’는 단순한 전통놀이가 아니다. 국립무형유산원이 지난달 펴낸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 자서전―기지시줄다리기 구자동’에 자신의 생애를 담은 그는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지켜온 건 줄다리기에 담겨 있는 화합의 정신”이라고 했다.
줄다리기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진다. 그중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건 경남 창녕군 영산면의 ‘영산줄다리기’와 충남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지시줄다리기’뿐이다. 기지시줄다리기는 100m 넘는 지네 모양을 형상화한 줄이 특징이다.
구 보유자는 10대 때 수천 명이 맞붙는 줄다리기의 에너지에 매료돼 당시 1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고 이우영 선생(1928∼2000)을 사사했다. 그는 “힘만 들고 돈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하나 되는 줄다리기가 좋아 60년 넘게 전통을 지켜왔다”고 했다.
“수백 년 이어온 줄다리기 전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적도 있어요. 1972년 미신 타파라며 줄다리기 존폐 논란이 일었죠. 큰일 났다 싶어 지역 원로들의 증언을 채록해 1973년 충남 민속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1982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죠.”
그는 2015년 ‘한국의 줄다리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을 때를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꼽는다. 제자 30여 명과 부둥켜안고 목 놓아 만세를 불렀다. 그는 “우리가 지킨 가치를 세계에서 인정받아 뿌듯했다”며 웃었다.
“모든 겨루기는 상대에게 쳐들어가 정복하는 방식인데, 줄다리기는 상대를 내 편으로 끌어와 동화시킨다는 뜻이 있어요. 함께 하나 된 판을 만드는 것이 줄다리기의 참모습이죠.”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