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내 사랑
원제 : Murder, My Sweet
1944년 미국영화
감독 : 에드워드 드미트릭
원작 : 레이먼드 챈들러의 'Farewell, My Sweet'
다른 제목 : '안녕 내 사랑'
출연 : 딕 파웰, 클레어 트레버, 앤 셜리
오토 크루거, 마이크 마주르키, 마일스 맨더
더글러스 월튼, 도날드 더글러스, 에스더 하워드
'살인 내 사랑' 은 미국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 원작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탐정 필립 말로우를 주인공으로 했는데 그 캐릭터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로는 '빅 슬립' 이나 '기나긴 이별' 등이 있습니다. '살인 내 사랑'의 원작은 'Farewell, My Sweet' 인데 이걸 영화에서는 'Murder, My Sweet' 로 변경했습니다. 1944년 2차 대전 말기에 발표된 영화인데 얼핏 원작 제목만 보면 전쟁으로 인한 아픈 이별을 다룬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서 Murder' 라는 제목을 넣어 범죄물로 인식할 수 있게 했다는데 사실 유명 소설이라서 그런 혼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아무튼 원작과 제목을 슬쩍 바꾸어서 '안녕, 내 사랑'이 아닌 '살인 내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가 겪는 아리송한 모험이 주요 내용입니다. 몇 사람이 죽은 사건과 연루되어 눈을 다친 그가 경찰에서 회상하듯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필립 말로우(딕 파웰) 탐정 사무실에 무스 라는 이름의 거한이 찾아와서 8년전에 실종된 벨마 라는 여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벨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무스의 옛 애인이라지요. 그리고 또 다른 남자 의뢰인도 찾아오는데 메리엇 이라는 이름의 그는 단지 어느 보석을 되찾으러 가는 길에 동행해 달라는 요구로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합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의뢰인이 부탁한 두 개의 다른 사건, 이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두 사건과 관련되어 필립 말로우는 꽤 혼란스럽고 위험한 상황을 겪습니다. 공격을 당해 죽을 뻔도 하고 감금되었다가 탈출하기도 하고.... 코난 도일 원작의 셜록 홈즈,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에르큘 포와로, 에드가 알렌 포 원작의 오귀스트 뒤팽 같은 탐정이 머리를 써서 추리하는 탐정의 전형이라면 필립 말로우는 뛰어다니고 몸으로 부딫치고 죽을 고생하면서 사건을 맞닥드리는 하드 보일드한 탐정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그가 그리 유능하거나 추리를 잘하는 인물이 아닌, 무대포적 성격과 용감함을 가졌지만 허술함도 함께 갖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드보일드 탐정물이 1940-50년대 주장르인 필름 느와르 영화로 탄생된 사례입니다. 당연히 팜므 파탈도 등장하지요. 의뢰인인 메리엇을 따라 갔다가 머리를 얻어 맞고 죽을 뻔한 필립 말로우, 메리엇이 시체로 발견되고 그가 찾으려 했던 비취 라는 고가의 보석도 얻지 못한뒤, 필립 말로우에게 두 명의 여인이 접근하여 그 비취찾기 의뢰를 하는데 앤(앤 셜리)이라는 젊은 처녀, 그리고 앤의 계모인 헬렌(클레어 트레버) 입니다. 특히 육감적인 분위기의 헬렌은 은근 필립 말로우를 유혹하면서 그를 사건속으로 끌어들입니다. 헬렌의 이끌림에 빠져든 필립은 하마터먼 죽을 고비도 넘기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첫 의뢰인 무스가 슬쩍 헬렌의 사건속으로 끼어들기도 합니다. 아리송한 내용이 시종일관 어지럽게 펼쳐집니다.
교묘하게 두 사건을 하나로 엮는 결말로 끝나는 내용이고 등장인물 상당수가 죽어 나갑니다. 여러 고비를 겪으면서 결국 사건은 마무리되는데 탐정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달리 필립 말로우는 종횡무진 활약하는게 아니고 오히려 크게 당할뻔 했지만 운 좋게도 살아남고 사건이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제목과는 달리 그는 사랑을 쟁취하지요.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며 적절한 로맨스와 무드도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별 매력을 못 느끼는 배우 딕 파웰이 필립 말로우를 연기하는데 저는 '빅 슬립'의 험프리 보가트나 '안녕 내 사랑'이라는 원제대로 리메이크 된 버전의 로버트 미첨이 더 마음에 들지만 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는 딕 파웰을 괜찮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역마차'의 클레어 트레버가 팜므파탈인 헬렌을 연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배우와 또 한 명의 여주인공 앤 셜리의 존재감도 다소 부족한 느낌입니다. '애수의 호수'의 진 티어니,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라나 터너, '이중배상'의 바바라 스탠윅, '길다'의 리타 헤이워스 등 당대 여배우들 중에서 훨씬 매력적인 팜므파탈 감이 더 많았지요. 상당히 재미있고 배배꼬는 내용이지만 주요 배우 3명은 개인적으로 맘에 안 들었는데 저는 오히려 단순무식한 거구의 의뢰인 무스를 연기한 마이크 마주르키가 조연이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덩치 크고 투박한, 단순무식한 남자 역으로 잘 어울렸고, 특히 그가 처음 찾아달라고 의뢰한 벨마 라는 여인이 중요한 단서이기도 했습니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재미난 탐정물 입니다. 신묘하거나 기발한 추리의 귀재는 아니지만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탐정 필립 말로우가 겪는 여러 모험을 꽉 차게 잘 닮아낸, 매우 흥미롭고 알쏭달쏭한 필름 느와르 입니다. '십자포화' '부러진 창' '케인호의 반란' '산' '젊은 사자들' 등 재미난 할리우드 고전으로 기억되는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의 연출작인데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그 영화들보다 앞서서 만든 초기작품에 해당되지요. 대부분의 필름 느와르 영화가 재미있듯 이 영화도 꽤 흥미진진한데 다만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빠른 진행이 초중반의 아리송한 내용과 함께 펼쳐져서 되새김질이 안되는 극장에서 보려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할 듯 합니다. 짜임새 있는 내용보다 그때 그때 펼쳐지는 장면과 표현에 더 촛점을 두어야 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특히 필립 말로우가 겪는 위기때의 상황을 처리한 영상과 스타일은 굉장히 탁월합니다.(특히 환각장면들) 느와르 수작이지요. 개인적으로 '이중배상'이나 '사냥꾼의 밤' '길다' 등이 더 마음에 들지만.
ps1 : 레이먼드 챈들러는 51세나 되어서 첫 장편 '빅 슬립'을 발표했으니 꽤 뒤늦게 이름을 알린 작가였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막막한 삶을 살다가 작가로 제 2의 삶은 산 것이죠. 인생에서 늦은 출발이란건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준 인물이지요.
ps2 : 영화말미에 앤이 필립 말로우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좀 부자연스런 설정으로 느껴집니다. 영화보다는 소설이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런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이해도가 책으로 보면 훨씬 높아질 것 같으니까요.
[출처] 살인 내 사랑(Murder, My Sweet, 44년) 레이먼드 챈들러 원작 탐정물|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