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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님의 핸드폰이 울렸다. 바쁜 기사 마감 시간이라 그녀는 한참 기사 교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 임금님 기자입니다!”
그녀는 한쪽 귀에 핸드폰을 대고 다른 손으로는 컴퓨터 키보드를 부르며 전화를 받았다.
“임 기자시죠?”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잠시 좀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신문사 정문에 나와 있는데 밀입니다.”
“정문에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전 지금 마감 치르느라 바빠서 말이에요.”
“그래요? 난 국정원 소속 요원입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잠시 좀 볼 수 있을까요?”
“국정원이요? 알았어요. 금방 내려갈게요.”
금님은 전화를 끊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다윗이 아닌 요원이 그녀를 찾아왔다고 하니 영문을 몰랐던 것이다. 정문으로 나가자 검은 양복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임 기자님?”
검은 양복이 물었다.
“그런데요?”
“실례가 많습니다. 잠시 같이 자리에 앉을까요?”
검은 양복이 정문 옆에 놓여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금님이 의자에 앉자 검은 양복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왔다.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전 여기 소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검은 양복이 신분증을 보였다. 국정원 마크가 또렷한 신분증이었다.
“기자시니까 잘 알겠지만 전 G1에 속해있습니다. 들어 보셨지요?”
“G1이라고요? 그럼 청와대에 속해 있는 G1 말에요?”
“그렇습니다!”
금님은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G1이 제게 무슨 볼일이 있나요?”
“다름이 아니고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는데 솔직히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뭐지요?”
“먼저 G3의 윤다윗 팀장과는 무슨 사이십니까? 솔직히 대답해 주실 수가 있습니까?”
“예? 무슨 사이라니요? 우린 아무런 사이가 아닌데요?”
“아니라고요? 정말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데 말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금님은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봐요! 여긴 대한민국이에요.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서로 만날 수도 있는 것이고 수틀리면 헤어 질 수도 있는 거예요! 댁이 뭔데 날 더러 누굴 만나냐 따지는 거예요?”
“아, 아니 내말은 그게 아니고…….”
상대방이 순간 당황해서 말끝이 흐려졌다. 그때 누군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였다. 상대방이 그를 보자 급히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선글라스의 남자가 금님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초면에 우리 요원이 너무 무례했었지요?”
금님은 새로 나타난 선글라스의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자칼과 같이 날카로운 인상의 사람이었다.
“난 G1의 팀장입니다. 윤다윗 팀장과는 영원한 맞수라고 할 수가 있지요. 후후!”
자칼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금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칼을 노려봤다.
“우리가 임 기자에게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는데 질문에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뭔데요?”
“다름 아니라 이상호에 관한 말입니다.”
“네? 이상호요?”
금님은 깜짝 놀랐다. 자칼은 분명 이상호에 관해서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예! 이상호 말입니다. 임 기자는 이상호를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자가 정말 순수하게 우리에게 협조하려는 사람으로 보고 계십니까?”
“그, 글쎄요. 그걸 제가 어떻게…….”
“만약 말하는 것처럼 이상호가 우리 남쪽에 협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라니요? 그럼 그 사람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있단 말인가요?”
자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금님이 따지듯이 물었다.
“네? 아, 아니라고요? 그럼 지금까지 이상호가 연극을 했다는 건가요? 그런 가요?”
“그렇습니다!”
자칼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
“우린 그럴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자칼이 금님에게 제법 두꺼운 서류철을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자칼이 읽어 보라고 했다. 금님은 자칼이 내민 서류철을 넘겨봤다.
“아, 아니 이것은!”
금님은 깜짝 놀랐다. 서류 속에 들어있는 것은 김연주에 대한 기록이었다. 김연주! 그녀는 바로 이상호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상호의 딸인 이숙희에 대한 기록도 들어 있었다.
“이것이 왜요? 그의 부인이 잘못된 것이라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우린 여기 이 여자 이상호의 처 김연주에 대해 여러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김연주는 바로 김정일 시대에 조선의 외화 벌이를 하던 외무성 관리였습니다. 물론 김정은 시대가 되면서 외무성에서 물러나고 말았지만 그녀는 대단한 밀수꾼으로서 태국과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에 거쳐 보석을 밀수하던 여자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나오는 사파이어는 거의가 그 여자의 손에 의해 밀매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여잡니다. 그런데 그 김연주가 요즘 들어 다시 캄보디아에서 보석 밀매를 제기 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엄청난 자금력으로 말입니다!”
“엄청난 자금력으로요?”
“예!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 자금력입니다. 도대체 김연주가 어디서 그런 자금력을 동원 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시 하던 중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이상호가 중국 폭력조직인 삼합회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네? 사, 삼합회라고 했습니까?”
어지간히 놀라지 않는 금님도 놀랄 일이었다. 이상호가 삼합회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그녀로서도 전혀 예상지 못한 것이었다. 자칼이 실눈을 뜨고 금님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조선이 중국 삼합회와 불법마약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지요? 그리고 그 마약거래를 주선하고 있는 삼합회와 연결 고리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이상호란 것입니다! 이상호가 중국 폭력조직인 삼합회와 연관이 있단 말입니다!”
“정말 이에요? 저, 정말 이상호가…….”
자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활동을 제기하면서 조심스럽게 살폈더니 그 자금이 바로 삼합회에서 흘러나온 것이란 결론을 얻었습니다. 물론 자금의 배경에는 이상호가 있었고 말입니다!”
아찔했다. 자칼의 말은 이상호가 주선해서 그의 부인인 김연주에게 중국 삼합회 자금을 풀어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칼이 왜 이런 중요한 기밀을 그녀에게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제게 이런 말을 전하는 거지요? 제가 무슨 큰 역할을 한다고요?”
“후후!”
자칼이 웃었다. 소름이 끼치는 차가운 웃음이었다.
“후후! 그건 윤다윗 때문입니다. G3에게 전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G1이 전하려니까 아무래도 우린 라이벌 관계라서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네? 단순히 그것 때문이란 말이에요?”
금님은 믿어지지 않았다. 같은 국정원에서 그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정보를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후후! 아무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문제로 우리 G1과 G3 양쪽이 격돌하기 싫다는 겁니다. 내말 이해하십니까?”
금님은 아리송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G1과 G3가 서로 견제하는 라이벌 관계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협력하는 것조차도 서로를 견제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자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직까지 우리도 김연주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윤 팀장에게 이렇게 전하십시오. 이상호를 앞으로 우리 G1에서 많이 주시할 것이란 말을 말입니다. 어쩌면 그의 부인을 통해서 엄청난 것이 발생 할 수도 있다는 말도 함께 전하십시오!”
그리고는 자칼이 미련 없이 돌아섰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서 말이다. 금님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도무지 그녀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의 의중을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확연한 것은 이상호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의 부인에 대한 지식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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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곽지역 허름한 오층 건물 앞에 종규의 자동차가 오전 내내 잠복하고 있었다. 종규의 옆에는 도찬호가 같이 타고 있었고 볼멘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어메! 이것이 뭔 난리다요? 나가 시방 한나절을 요로크롬 쪼그리고 앉자 있는디 어째서 날 붙들어 놓는다요? 참말로 육이오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땅께!”
도찬호가 잔뜩 부어 불만을 쏘아댔다. 그러자 운전대에 앉아 빵을 우걱우걱 씹어대던 종규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지! 너만 깨끗하면 이렇게 쪼를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
“어, 워메! 쫄긴 누가 쫄았다 케삿소? 나가 참말로 사람이 원체 조응께 참는 줄 아쇼! 아니면 벌써 눈썹이 휘날리게 토겼을 탱께!”
종규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도찬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오층 건물에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는 휴대폰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휴대폰을 소지한 자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던 종규와 도찬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도찬호가 투덜대며 말했다.
“어따! 썪을 놈인가 보네! 어째 꼼짝하지 않고 있다냐? 혹시 임자 없는 전화기여서 팽개쳐 버린 것 아니다요?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저렇게 꼼짝하지 않을 수가 있당가?”
도찬호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휴대폰의 위치추적을 보며 투덜댔다.
“그라지 말고 확 쳐들어 가잖께요? 건물 어딘가 잇을 건디 위에서부터 내려오면서 확 쓸어 버리잖께요!”
“아니야! 기다려야 해. 기다리면 놈이 움직이게 되어 있어.”
종규가 느긋하게 음료수를 마시며 남은 빵을 어적대며 씹어 먹었다. 도찬호가 종규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의 옆에 놓여있는 빵을 들었다가 질린 표정을 하며 다시 빵을 내던져 버렸다.
“워메! 망할 빵만 먹어대니 입속이 까칠해서 미치겠소! 어디 가서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라도 한잔 하잖께요!”
도찬호가 불평을 터트렸다. 휴대폰의 GPS위치추적은 계속 4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다. 휴대폰이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누군가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쓸데가 있을 때에만 사용한다는 것이었고 움직임이 없이 비치하고 있는 핸드폰이란 말이었다. 건물을 유심히 보고 있던 종규가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들고 본부와 연결했다. 그리고는 건물의 주소와 위치를 가르쳐주고 전기를 끊어 버리라고 했다. 잠시 후 전기를 RSMGDJQJFUt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자 종규가 다시 요원들에게 무전을 넣었다. 잠시 후 전기공사 직원으로 위장한 요원들을 건물 안으로 긴급 투입되었다.
건물 전체가 갑자기 정전이 되자 따로 자가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 건물이라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되면서 마비되고 말았다. 곧이어 전기공사의 마크가 붙어있는 승합차가 건물에 도착했다. 종규가 승합차로 다가가 승합차에 실려 있는 전기공사 마크가 붙어있는 안전모를 받아 머리에 썼다. 그리고 허리에는 연장들을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혁대를 맺다. 누가 봐도 완벽한 전기공사 직원이었다.
종규의 신호에 따라 전기공사 직원으로 가장한 요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경비원이 전기공사 직원들이 들어오자 항의를 했다.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정전이 일어나는 거요? 어떻게 건물 전체가 한꺼번에 정전이 된단 말이오?”
경비원이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종규를 비롯한 요원들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건물 위층으로 올라갔다. 핸드폰이 있는 곳을 나타내는 4층까지 올라가자 4층 복도입구에는 유한케티탈이란 상호가 적인 사무실이 나타났다. 캐피탈이라면 대부 업을 하는 회사였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짧은 미니스커트의 여직원이 그들을 보고 항의를 했다.
“전기 언제 들어와요? 컴퓨터가 멈춰 버려서 업무를 볼 수가 없단 말에요?”
종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벽면 뒤에 붙은 두꺼비집을 살피고는 여직원을 향해 말했다.
“전기선이 너무 낡아서 합선된 모양입니다. 곧 고쳐드릴 태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는 두꺼비 집을 고치는 시늉을 했다. 종규가 눈치를 살피다가 재빨리 두꺼비 집 안쪽에 도청기를 설치했다. 여직원이 투덜대며 한쪽에서 무리지어 앉아 있는 남자들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들이 무리지어 모여 앉아 카드 포커를 하고 있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선량한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핸드폰 위치추적기는 사무실 한쪽에 세워져 있는 캐비닛을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폰이 캐비닛 속에 들어가 있다는 증거이었다. 포커를 하던 남자 한 명이 종규에게 퉁명스럽게 언성을 높여 물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에어컨을 켤 수가 없잖아! 이거야 원 더워서 미치겠구먼!”
남자를 향해 종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전선이 낡아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을 낸들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불편하시다면 직접 전선을 전부 가시든가!”
종규의 대답이 퉁명스러워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야! 이런 씨팔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짜증나 죽겠는데 이게 아주 불을 붙이고 있네!”
남자가 시비를 걸 작정으로 하고 덤벼들었다. 그때 한쪽에서 앉아 있던 남자가 덤벼드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야! 조용히 있어. 수고하는데 너무 그렇지 마.”
그러자 덤벼들던 남자가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종규가 투덜거리며 목청을 높였다.
“거 참 너무하네! 내가 여기에 월급 받는 사람도 아닌데 왜 욕을 하고 지랄이야! 만만한 게 우리야? 씨팔!”
종규가 일부러 목청을 높이며 남자에게 시비를 걸었다.
“뭐야! 이 자식이!”
남자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와락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종규의 멱살을 잡았다. 멱살이 잡힌 종규가 뿌리치려 하자 남자의 주먹이 얼굴로 향했다.
“어이쿠!”
종규가 코를 감싸고 넘어졌다. 그리고는 외쳤다.
“어이구! 사람 치네! 어서 경찰에! 경찰에 신고 해!”
종규의 흥분하며 너스레를 떨자 동료 요원이 경찰에 112 신고를 하려 했다.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곧장 종규를 때린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그만 하라고 했지!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썽 일으킬 거야? 대표님이 보시면 어쩌려고!”
전갱이가 걷어 채인 남자가 고통에 다리를 감싸며 쩔쩔맸다.
“미안 합니다! 우리 애들이 워낙 과격하다 보니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미안 합니다!”
남자가 종규에게 급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봉투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사과의 뜻으로 드리겠습니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십시오.”
봉투를 건네주며 남자가 사과를 했다. 종규가 짐짓 참는 듯이 거만한 얼굴을 하고는 봉투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캐피탈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건물 뒤에 주차해 있는 승용차에 올랐다. 승합차 뒤쪽에는 도청장치를 들을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고 인호가 헤드폰을 귀에 꼽고 대기하고 있었다. 종규가 인호에게 물었다.
“잘 들려?”
“예. 선배! 청명하게 들립니다.”
“좋아! 하나도 빠짐없이 녹음 하도록 해.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박인호가 녹음기를 돌리며 도청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4층 캐피탈 사무실에서 들리는 대화는 모두 고스란히 도청되어 녹음되고 있었다. 종규가 남자가 건네준 봉투를 꺼내 속 내용을 살피며 말했다.
“어디 얼마가 들었는지 볼까?”
봉투 속에는 오만 원 권 네 장이 들어 있었다.
“후후! 20만원이네? 한 대 매값치곤 괜찮은데? 오늘 일과 끝내고 이것 가지고 모두들 생맥주나 한 잔들 하라고.”
종규가 봉투를 인호에게 넘겨줬다. 인호가 미소 짓고는 봉투를 받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때 인호가 종규에게 급히 헤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선배! 아무래도 이것은 들어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뭔데 그래?”
박인호가 헤드폰을 종규에게 넘겨줬다. 도청기를 통해 누군가와 전화하는 내용이 들렸다.
[뭐라고? 대인어른께서 몇 시에 도착한다는 거야? 저녁 7시 반이라고? 홍콩 공항에 확인했어? 장연명이란 이름이 들어 있어? 좋아! 모두들 명심해! 이번 제주도의 모임은 우리 삼합회 한국조직의 변영과 직결되어 있어! 모두 신경 써서 대인어른을 접대하도록 해야 해!]
그들의 전화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되었다. 드디어 삼합회란 단어가 터져 나온 것이다. 틀림없이 삼합회와 연관 있는 대인어른이란 자가 공항에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7시 반에 도착하는 비행기에 삼합회에 연관이 있는 장연명이라 불리는 대인어른이란 자가 도착한다는 것이고 제주도에서 모임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음! 오후 7시 반이라고? 좋아! 당장 인천공항에 알아 봐! 오후 7시 반에 도착하는 홍콩발 비행기의 탑승자 명단에서 장연명이란 이름이 있는지 확인 해봐! 어서 서둘러!”
종규의 지시에 요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항과 연결해서 오후 7시 반에 도착하는 홍콩발 비행기 탑승자 명단을 확보하고 장연명이란 이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장연명이란 이름이 나왔다. 7시 40분에 도착하는 홍콩발 비행기에서 그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종규는 시계를 보며 인호에게 외쳤다.
“7시 40분이면 이제 불과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어! 서둘러 인천공항으로 가자고! 어서 서둘러!”
인호가 잽싸게 운전석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을 태운 승합차가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인천공항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