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비밀(Five Graves to Cairo, 43년) 북아프리카 전선을 배경으로 한 이색 스릴러. 출연 : 프랑코트 톤, 앤 백

[아스팔트정글]

열사의 비밀

원제 : Five Graves to Cairo

1943년 미국영화

다른 제목 : 카이로까지의 5개의 무덤

각본, 감독 : 빌리 와일더

음악 : 미클로스 로자

출연 : 프랑코트 톤, 앤 백스터, 아킴 타미로프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피터 반 아이크

이집트 사막에 위치한 어느 한 호텔,

그곳에서 전쟁의 역사를 바꿀 숨가쁜 비밀이 드러난다.

빌리 와일더, 1940년대~1960년대를 주름잡았던 할리우드 클래식시대 명감독 입니다.  크게 될 잎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듯이 빌리 와일더 역시 연출에서는 정말 일찌기 그 재능이 두드러졌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출발한 그는 오래도록 작가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감독을으로활동했습니다  자신이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을 하면서 활짝 만개했고, 그의 연출 조기작품인 '열사의 비밀' '이중배상' '잃어버린 주말' 등이 모두 수준급의 작품이 되어 이미 명감독으로서 두각을 나타났습니다.  '열사의 비밀'은 전선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잃어버린 주말'은 알콜중독자를 주인공으로 한 사회물, '이중배상'은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필름 느와르 였습니다. 참 장르가 다양했던 만큼 그는 비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이미 소개한 두 작품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열사의 비밀'이 오늘 소개할 작품입니다. 뭔 영화일까요? '열사'라는 곳은 사막을 의미합니다. 몇 차례 영화로 등장한 2차 대전 당시의 북아프리카 전투, '토브룩으로 가는 택시' 같은 명작도 있었듯이,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펼쳐지는 전투는 처음엔 롬멜을 앞세운 독일이 우세했지만 이후 전세를 역전하여 몽고메리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이 유리해진 전투였습니다.  이 북아프리카 전투가 벌어지던 1942년의 상황에 스릴러 방식을 대입한 흥미진진한 영화입니다.

사막지대에 고립된 병사​

이 사람을 어쩐다

독일군에게 발견되면 총살당할텐데​

이곳을 우리 독일군 임시 숙소로 사용하겠네

롬멜의 진격으로 인하여 나치에게 주요 지역을 점령당한 북아프리카 상황, 동료와 탱크를 잃고 사막을 헤매던 브램블 상병(프랑코트 톤)은 어느 호텔을 발견하였지만 일사병으로 쓰러집니다.  호텔운영자 파리드(아킴 타미로프)와 여종업원 무쉬(앤 백스터)는 독일군이 들이닥치자 그를 카운터 뒤로 숨깁니다.  나치장교인 슈베글러 중위(피터 반 아이크)는 이곳을 임시 숙소로 이용하고자 결정하고 롬멜 장군(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을 불러들입니다.  브램블 상병은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얼마전 공습으로 인하여 지하실에 파묻혀 죽은 웨이터 다보스로 가장하여 다리를 저는 그의 흉내를 내며 웨이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다보스는 나치의 비밀 스파이 노릇을 하며 영국군 정보를 빼내던 요원이었습니다. 다보스의 얼굴을 모르는 슈베글러와 롬멜은 브램블을 다보스로 믿고 그를 자기쪽 스파이로 여기며 신임합니다.  나치일행과 빈번히 접촉하면서 그들이 카이로의 어딘가 다섯곳의 장소에 물과 식량, 무기를 잔뜩 숨겨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 브램블, 그는 어떻게든 그 위치를 알아내서 영국군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호텔운영자 파리드는 중립적으로 행동하는 척 하면서도 연합군의 편이었는데 종업원인 프랑스 여인 무쉬는 덩케르크 후퇴에서 영국군만 쏙 퇴각하고 프랑스인을 남겨두었다는 것 때문에 영국군에게 어느 정도 안좋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는 전선에 있는 자기 남동생을 빼내기 위해서 롬멜과 슈베글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그녀에게 흑심을 품은 슈베글러는 남동생을 빼내는 것을 미끼로 친근하게 접근합니다.  5곳의 비밀 장소가 지도에 있다는 것을 아는 브램블은 지도의 비밀을 알아내는데 성공하지만 그 순간 위기가 닥치는데.....

전쟁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의 장면이 카이로의 어느 가상의 마을, 가상의 호텔안에서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이 호텔에 롬멜장군, 그의 충직한 부하 슈베글러 중위, 낙오된 영국군이지만 나치스파이 웨이터로 가장한 영국군인, 그리고 프랑스 여성이지만 남동생을 빼내기 위해서 나치 고위층을 이용하려는 무쉬라는 여자, 그리고 호텔운영자로서 나치를 영접하지만 마음은 연합군의 편인 파리드, 이렇게 5명의 주요 인물들간에 벌어지는 숨가쁜 머리싸움입니다.   ​

영국군을 숨겨준 두 사람

들이닥치는 독일군 때문에 "난감하네"​

"위험하니 제발 떠나주시오"

"아니오, 지금부터 난 웨이터요"​

첫 번째 위기의 순간....

'자넨 누군가?'

롬멜을 연기한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원제인 Five Graves to Cairo 는 직역하면 '카이로까지의 5개의 무덤'이 되지만 나치의 보급품이 숨겨져 있는 이집트의 5곳의 비밀 장소를 의미합니다. 독일군을은 보급품을 구하기 어려운 이 사막에 넉넉한 장비를 숨겨놓고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유리한 상황을 전개하는데 이곳의 정보를 연합군이 알게 될 경우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위치입니다.  주인공이 지도를 통해서 그 5곳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그 위치의 비밀도 정말 탄복스럽습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전개 빠른 연출도 훌륭했지만 군더더기 없고 긴박감있는 시나리오 역시 탁월합니다. 가짜 스파이와 나치가 벌이는 머리싸움이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정말 숨가쁘게 벌어집니다.  특히 가짜 스파이의 정체가 드러나려는 장면에서의 스릴은 숨을 죽이게 만드는데 마치 2차대전 전선을 배경으로 알프레드 히치콕 식의 스릴러를 가미한 느낌입니다.

주인공 브램블 상병을 연기한 프랑코트 톤은 주로 1930년대에 많이 활동했던 배우이고, 50년대 부터는 거의 TV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는 매우 생소한 고전배우입니다.  한국에 많이 알려지고 개봉도 많이 하고 방영도 많이 된 고전영화들이 거의 50년대 영화들이 많다보니 30-40년대 많이 활동한 배우들은 덜 알려졌는데 이 배우가 전형적으로 그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30년대에 주연급으로 많은 활동을 보였던 인물입니다.  당시 20세였던 '앤 백스터'는 오손 웰즈 감독의 '위대한 앰버슨가'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출연한 작품입니다.  이례적으로 프랑스 여성을 연기했는데 처음에 영국군에게 시큰둥한 듯 행동하지만 아주 결정적인 중요한 역할을 숭고하게 하는 비중있는 캐릭터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작 호텔 여종업원에 불과한 평범한 한 여성이 북아프리카 전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뭐하는 겁니까?"

"어딘가 숨어있는 5개의 비밀 보급품 저장소를 찾아야 하오"

다국적 배우들이 다양하고 등장하고 다양한 국적의 인물을 연기하는데 대신 실제 배우의 출생지와 많이 엇박자가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미국배우인 프랑코트 톤이 영국군을 연기했는데 당시 캐리 그랜트, 데이비드 니븐, 제임스 메이슨, 랄프 리차드슨 등 괜찮은 영국 배우들이 제법 있었는데 굳이 미국배우를 캐스팅했고, 프랑스 여배우는 더 많았을텐데도 앤 백스터가 프랑스 여인을 연기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이집트인 호텔 주인은 러시아 출신의 아킴 타미로프가 등장했는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사악한 악역이었는데 여기서는 순박하고 다소 코믹한 아랍인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은 같은 독일어권 국가출신이라서 롬멜로 캐스팅되었겠지만 20대 시절부터 미국에 살아서 오히려 독일어가 어색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5명의 비중있는 인물중 실제 자기 출신 국가 인물을 연기한 이는 피터 반 아이크 뿐입니다. 

1942년에 벌어진 이야기를 1943년에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도 특색이고, 특히 당시에는 아직 2차대전이 끝나기 전이었고, 히틀러도 여전히 기세등등하던 시기였고, 무엇보다 파리 해방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는 2차대전의 미래를 미리 예언한 영화가 된 셈입니다.  물론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의 기세는 연합군이 역전한 상황이었지만. 이렇듯,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내용의 전쟁영화가 은근 만들어졌습니다.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사하라 전차대' 역시 1943년에 등장했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미니버 부인'은 연합군의 참전을 응원하고 승리를 염원하는 내용입니다., 진주만 공습과도 연관된 '동경상공 30초' 도 1944년에 나왔고, 이렇게 아직 2차대전이 종전되기 전에 등장한 연합군 응원영화들이 많습니다.  '열사의 비밀'은 한 여성의 비징한 결단으로 인하여 독일측 스파이로 가장한 영국군이 연합군측에 무사히 이집트에 숨겨진 독일군의 비밀 보급장소의 위치를 전달하여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의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가상으로 꾸민 영화입니다.​

바보 같은 영국놈들은 5개의 비밀장소를

지도를 봐도 모를거야

"영국군은 덩케르크 철수때

우리 프랑스를 버리고 갔어요"​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매우 중요한 결단을 내린 무쉬

미국여배우 앤 백스터는

이례적으로 프랑스 여인 무쉬를 연기한다.

 무쉬의 행동여부에 따라서 전선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순간

긴박한 스릴을 극대화시킨 연출이

돋보이는 재미난 이색 스릴러

전쟁영화 배경에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스릴러 방식의 내용을 입힌, 꽤 재미난 영화입니다. 빌리 와일더는 이렇게 떡잎부터 알아봤던 감독인데   '사브리나' 이후에 거의 로맨틱 코미디 전문 감독처럼 인식되어 코미디 장르의 영화가 많았던 것이 그의 재능을 너무 한쪽으로 쏠리게 했던 아쉬움입니다.  초기의 3대 걸작 외에도 '선셋대로' '제 17 포로 수용소' 등 진지한 걸작들을 제법 만들어냈던 인물이지요.

6.25 전쟁 휴전 이후인 1954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이후 방영, 출시등이 안되면서 '잃어버린 주말'이나 '이중배상'과는 다르게 거의 잊혀진 작품입니다.  하지만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는 두 작품과 비교해서 뒤질게 없는 수준이고 역시 빌리 와일더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시키지 않은 영화입니다.  전투장면이 거의 없는 2차대전 배경 영화지만 그 대신 어지간한 스릴러 못지 않은 긴박하고 알찬 내용으로 상당한 재미를 제공하는 수작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남녀 주인공이 뭔가 로맨스를 엮을 만한 상황으로 전개할 수도 있었지만 키스 장면 하나 없습니다.  그만큼 군더더기 자체가 없는 깔끔한 내용이지요.

ps2 :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은 장 르노아르 감독의 명작 '위대한 환상'에서 포로수용소를 관리하는 독일장교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1950년 만들어진 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 에서 망상에 빠진 여주인공 글로리아 스완슨을 곁에서 충실히 지켜주는 연기도 인상적이었죠.

ps3 : 이집트 지도에서 이집트를 의미하는 알파벳 Egypt 가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데 원래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는 Agypten 으로 7글자라고 합니다.  지도가 독일군 지도이니 원래 '카이로까지의 7개의 무덤'이어야 맞지요. 하지만 미국영화라서 관객들이 헷갈릴까봐 부득이 영어 알파벳으로 그냥 처리한 것입니다.

ps4 : 늘상 볼때마다 느끼지만 앤 백스터는 주연급 여배우 치고는 참 평범해 보이는데 작품을 매번 잘 고르는 느낌입니다. 

[출처] 열사의 비밀(Five Graves to Cairo, 43년) 북아프리카 전선을 배경으로 한 이색 스릴러|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