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조 : 자유게시판 1881 코로나시대 집콕 탈출 새봄을 맞다 20.05.04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5월 6일 부터'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됐다. 국내 코로나 사태가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방역 지침은 완화됐지만 코로나 때문에 누적된 피로
감과 긴장감은 여전하다. 이젠 지친 몸과 마음에 면역성 제고를 위한 단련과 휴식이 필요하다.
신록의 계절이 짙어져 가는 이때 잠시나마 자연 속으로 파고들기 위하여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산사(山
寺)중심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첫째날 순천 송광사에 들러 법정 스님의 자취를 둘러보고 여수에서 숙박 후
다음날 아침 여수 광양공단을 통과하여 남해(원예촌, 독일마을)여행 후 사천을 통과하여 무주에서 숙박,
마지막 날은 보은 법주사에 들러 귀환하였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소문난 山寺들 이지만 실로 인적이 드물 정도로 너무 한적하여 타인과 거리
를 신경쓰지 않고, 마쓰크도 필요없는 안전한 걷기 힐링여행이었다.
● 5.12(화)
분당 ⇒ 송광사 305km (3시간 35분 소요)
송광사 ⇒ 여수 유탑 마리나호텔 숙박 78km(1시간)
● 5.13(수)
여수 ⇒ 남해(원예촌/독일마을)
남해 ⇒ 사천 ⇒ 무주(숙박)
● 5.14(목)
무주 ⇒ 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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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 불일암(5.12)
● 불일암을 찾아서
분당에서 아침 9시 30분경 출발하면서 네비 추천도로1 선택하니 국도 23번 도로로 용인 수지, 경부고속도
로 신갈/수원 IC 진입, 논산~천안, 완주~순천간 고속도로 등 총 305km, 소요시간 3시간 50분이다. 휴게소
들러 점심 등 적당히 쉬면서 그대로 가니 다소 늦어져 오후 2시 20분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역시 코
로나로 큰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은 몇대 안되어 황량하다.
송광사 경내는 30여분 간 대강 철저히 돌아보고 경내를 나와 법정 스님이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간
기거하며 글을 썼던 불일암(佛日庵) 출발했다. 불일암은 조계산 송광사의 산내암자이다. 불일암은 원래 고
려 시대 16국사의 한 명이던 7대 자정국사가 세운 자정암 자리에 법정 스님이 1975년 중건했다. 스님은 이
곳에서 저작 활동으로 명성이 높아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1992년 불일암
을 떠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으로 옮겨지냈다. 이후 스님은 겨울이면
추운 강원도를 떠나 따뜻한 불일암에 들러 잠시 머물다 가곤했다. 그래서 불일암은 법정 스님의 자취가 가
장 많이 베어있는 곳이다.
법정스님이 불임암을 떠나기 전에 스님의 외사촌 누님이자 현장 스님의 어머니가 “스님 돌아가시고 나면 이
제 어디로 가서 스님을 뵐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법정 스님은 “제가 보고 싶으면 불일암으로 가세요”라고 했
다고 한다.
불일암은 '무소유길'을 통해서 올라간다. 약 1.5 km, 가파르지만 자연스럽게 잘 닦여있다. 편백나무, 대나무
숲을 지나면서 법정 스님의 대표작인 '무소유'의 글귀가 담긴 글 판이 나타 날 때마다 걸음을 멈춰 찬찬히 읽
었다. 예정시간 30분 거리를 40여분 걸려 불일암에 도착해 보니 아담한 기와집 한 채다. 법정 스님의 흔적들
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소박한 암자, 사용하던 필기용품, 낡아서 꿰맨 신발, 직접 만드셨다는 앉기에 좁아보이
는 나무의자(삐삐욘), 해우소 등을 보는 순간 검소하신 무소유의 의미가 절로 새겨진다.
계단으로 오를때 마당 가 키 큰 후박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는데 이 나무가 법정스님이 평소 좋아하던 벗이다.
여행 후 돌아올 때마다 껴안아 주었다 하는데 스님은 나무도 한 생명으로 생각하며 교감하신 모양이다. 스님은
이 나무 아래 흙이 되어 이 나무와 일체가 되어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장례식을 하지 마라. 사리를 찾지 마
라. 재는 오두막의 꽃밭에 뿌려라”고 하셨다는데 결국 이 후박나무 밑에 안치하게 된 것이다.
오후 4시 조금 넘어 무소유 길을 내려오는데 스님 두 분이 탄 승용차와 마주쳤다. 불일암 참배시간이 끝나 올
라가는 것으로 보였다. 참배 당시는 관람객이나 스님 어느 한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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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경내에서 나와 불일암(佛日庵)으로 가는 ‘무소유길’ 초입에 접어들었다. ‘무소유’ 정신을 주창한 법정 스님이 평소에 다녔던 오솔길이다. 글판을 모두 읽으면서 쉬엄쉬엄 오르니 30분 예정거리가 40분 걸렸다.
속세를 벗어나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가 듯한 대나무 숲 길이다. 병환중인 아내는 이 길만큼은 잘도 간다.
아름다운 다소 어두운 대나무 터널이다. 이 대숲 터널을 나가니 밝은 빛이 암자 마당을 비추고 있다.
일주문 같은 대숲 터널을 지나자 불일암 경내가 보였다.
불일암에 들어서니 인적 하나 없다. 이따금 대숲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가지 사이로 한 번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전부다. 법정 스님이 이곳에 계실 때 찾는 이가 너무 많았다는데 이 또한 코로나 영향이겠지.
법정 스님의 유품 고무신옆에 앉아 보니 '무소유'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를 회상하게 되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
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
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빠삐욘 의자다.
필기구, 필통, 노트 등도 그대로 놓여있다.
법정스님의 유골은 이 키큰 아름다운 후박나무 아래에 모셔져 있다.
스님께서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나무라는데 이 나무를 보니 스님의 숨결이 느껴진다.
* 욕실을 겸한 해우소
* 내려 오면서 보니 왼쪽에 1차선 정도의 좁은 차도를 공사중이다.
집에 돌아와 보유하고 있는 법정스님 저작들 속에서 후박나무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텅빈충만> 1989년
7월 5일 발행 수상집 '책 머리'에 "후박나무 묘목을 15년전에 심었는데 이럴게 잘 자라 시원하고 향기로운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언급, 후박나무에 애정어린 마음을 표시하였다. 헤아려보니 이 나무는
심은지 46년된 고목이다. 법정스님의 후박나무를 두고 비유법으로 묘사된 내용을 오려 보았다.
● 순천 송광사(順天 松廣寺)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관광명소다.
자녀에게는 책으로만 접하던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과 국보 제43호 고려고종제서, 보물 제572호 수선사형지기, 보물 제1366호 화엄탱화 등 6천여 점의 불교문화재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어른들에게는 세상 시름 잊고 자연과 하나 되는 힐링의 경험을 선사한다.
대나무숲과 아름드리 삼나무, 편백나무가 울창한 산속에 수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고즈넉한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명의 국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을 배출해 3보 사찰 가운데 하나인 승보사찰로 이름나 있다.
* 송광사(불일암) 주차장옆의 음식점,
품점 가계들은 일부 문은 열었으나 손님이 전혀 없어 그냥 지나가기가 미안하다.
■ 보은 법주사(5.14)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사찰.사적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2009년 12월에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창건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그 뒤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을 법주사라 한 것은 창건주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다.
● 중창
신라 영심의 중창 이래 이 절은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 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1605년(선조 38)부터 1626년(인조 4)에 걸쳐 유정(惟政)이 팔상전을 중건하였다. 1624년(인조 2)에도 벽암(碧巖)이 중창하였으며, 그 뒤 수차례의 중건·중수를 거쳤다.
● 천왕문
*국립박물관 소장 사진(상)
* 정이품송 빼 닮은 쌍동이 소나무가 天王門앞에 우뚝 서있다. 천왕문은 절의 입구에 있는 사천왕을 모신 문으로 불법을 지키고 밖에서 오는 사마(邪魔)를 막으려고 세운다.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가 코로나19로 한 달 연기된 5월 30일 봉행 준비된 화려한 오색 연등과
좋은말씀의 현수막이 걸려 있건만 관람객이 없어 썰렁하다. 우리 또래의 한 나이든 부부 관람객만 보았을 뿐
이다. 우리 부부의 촬영을 부탁 할 사람도 찾기가 힘들었다.
● 법주사를 대표하는 금동 미륵대불, 팔상전
'속리산 법주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금동미륵대불은 거대하다. 법주사에 들어서기 전부터 보이는 이 거대한 불상은 정면에 자리한 팔상전의 왼편에 자리한다. 현대식으로 보이는 미륵불은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작업으로 몰수됐던 미륵불은 1964년 시멘트로, 이어 1990년 청동대불로 태어났다. 지금의 금동 모습을 되찾은 것은 2000년에 들어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조탑 팔상전과 더불어 법주사를 대표한다.
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탑 중 유일하게 근대 이전에 지어진 5층 목탑이다.
임진왜란때 한 번 불탔으나 인조 2년(1624)에 승려 벽암에 의해 다시 건축되었다. 8층 목탑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5층이며, 벽면에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8개의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서 팔상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 세조길
법주사~복천암(편도 3.2km)구간으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가
복천암에 있던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한 사은순행(謝恩巡幸)길이자 피부병에 걸린 세조가 요양차 속리산을
왕래했던 길이다. 2016년 9월에 개통했다. 수변경관과 피톤치트가 풍부한 자연환경을 갖춰 힐링과 건강을
주는 속리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우측 법주사길과 좌측 세조길로 갈라진다. 법주사길로 들어섰다가 나와서 세조길로 들어섰다
세조길은 하늘다람쥐, 담비, 물괴, 식물 등 여러 동식물등을 만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생태 학습장이다.
정이품송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에 있는 소나무이다. 1962년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됐다. 속리산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정이품 소나무를 만나게 되었다. 나무를 중심으로 주
차장도 넓게 준비되어 있었다. 차를 세우고 안내판을 보면서 촬영하였다. 언듯 보아도 참 잘 생긴 나무다.
1464년(세조 10)에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처져 있어 “연(輦)이 걸린다.”고 말하자 이 소나무는 가지를 위로 들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연걸이소나무’라고도 하는데, 그 뒤 세조가 이 소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하여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설에는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였다는 말도 있다.
이 소나무가 서 있는 앞마을의 이름을 진허(陣墟)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 당시 세조를 수행하던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데 연유한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충성스러운 전설을 안고 오래 살아오는 동안 각종의 피해도 받았는데, 특히 1970년 이후부터 우리 나라의 소나무에 큰 피해를 준 솔잎흑파리가 이 나무에도 피해를 주어 1982년 넓은 보호구역을 만들어 철책을 치고 길을 약간 우회시키는 등 보호 조치를 취하여 생기를 되찾게 한 바 있다.
충북 보은군이 2019년 4월부터 정이품송의 10년생 자목(子木) 200여 그루를 판매하려 하다 문화재청과 갈등을 빚고 있다. 보은군은 2019년 4월 5일 문화재청의 전날 요청에 따라 정이품송의 자목 판매 계획을 잠정 중단하였다. 문화재청은 종 보존을 위해 정이품송의 씨앗을 받아 증식하는 허가를 내줬을 뿐 판매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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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를 다녀와서
마(魔)의 코로나시대를 맞아 나그네 길을 떠돌았다.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순천 송광사(불일암)
古 사찰과 단양, 삼척, 여수, 순천, 진도, 무주 등 사찰 인근의 리조트 등 과 증도 엘도라도, 속초, 정동진,
사천, 남해 원예촌&독일마을까지... 특별 할인가격으로 숙박하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구름처럼 떠돌면서 매우 한적한 곳곳을 찾아 다녔다.( 참조 : 자유게시판 1881 20.05.04 )
사찰을 자주 찾은 것은 신앙심으로서 보다는 호기심으로 나를 설레게 했고, 그 설렘은 나를 숨 쉬게 하였
다. 오래된 전통 목조․석조 건축물과 석조상, 그리고 시대를 거치며 용케도 살아 있는 큰 고목을 보며 그
시대를 떠올리며 자기 최면 속에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 때 큰 희열을 맛보게 되었다. 산세, 지형지세와
잘 보호된 자연생태계를 살펴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고, 청정 공기는 고질의 비염증세를 멈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