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60
우리 불자님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인공자리, 우리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란 말입니다.
우리 주인공 자리는 내내야 우리 마음자리 아닙니까. 우리 마음은 주인공이니까요. 그러나 남을 미워하고 남을 좋아하고 욕심을 내고 진심을 내고, 나는 김 아무개다, 나는 누구 남편이다, 나는 누구 아내다, 이런 것은 참다운 자기 본래면목 자리가 되지를 못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은 천지 우주의 근원적인 문제, 천지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이라 하는 것은 뿔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현대물리학도 증명하지만은 모든 존재는 근본에서는 다 하나로 합해져 있습니다.
세상만사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을 분석해 놓고 보면 원자가 되지 않습니까. 원자는 소립자로 구성되고 또 소립자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알 수 없는 에너지, 알 수 없는 우주의 정기가 꽉 차 있단 말입니다. 그 알 수 없는 우주의 정기는 무엇인가? 이것은 물리학이 모르는 분야입니다. 왜 모르는가? 시간ㆍ공간을 떠나 있단 말입니다. 물리학이라는 것은 공간성(空間性)과 시간성(時間性)이 있어야 측정이 되는 것인데 시간이나 공간을 떠난 문제를 물리학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없지만은 다만 신묘한 하나의 생명이라 말입니다. 눈방울이나 물방울이나 공기나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의 원자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두가 다 근원根源 자리에 가서는 하나의 신비로운 생명이란 말입니다.
이 자리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성 자리입니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우주의 진리기 때문에 참 진[眞]자, 같을 여[如]자, 진여(眞如), 합쳐서 진여불성(眞如佛性) 그럽니다. 내가 여가 있고 우주의 근본자리 진여불성은 저만치 내 대상적으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대상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것은 오직 진여불성 그것뿐이라 말입니다. 일원적인 그뿐입니다. 도둑놈의 마음자리나 또는 아주 선량한 사람의 마음자리나 겉에 뜬 것은 업의 차이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더 깊이 들어가서 가장 마음의 밑바닥 자리 그 자리는 똑같은 부처입니다.
우리가 현대심리학도, 그야말로 참 우리 육식(六識)이 있으면 육식 밑에 가서는 말나식이라는 잠재의식이 있고, 말나식보다도 더 깊은 식은 아뢰야식 아닙니까. 그러면은 아뢰야식보다도 더 깊은 우리 마음자리는 어딘가? 그것은 암마라식이라, 암마라식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여기나 저기나 한계를 초월한 시간 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생명체에 이르고 만다 말입니다. 그 자리가 이른바 불성입니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따라서 우리가 근원적인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분들이 이른바 성자(聖者) 아닙니까.
말하자면, 근본을 볼 수 있어야 성자인 것이고 우리 중생은 현상만 상만 보기 때문에 우리가 상(相)을 내지 말라, 상을 내지 말라, 그러는 것도 역시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그런 의미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중생들은 상으로만 봅니다. 현상만 봅니다. 헌데 근본 자리는 결국은 보지를 못한다 말입니다. 공부를 좀 했다고 그래서 근본 자리를 훤히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정작 깨달아서 근본 자리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말입니다. 아, 이치로 아는 것이야 불경 좀 보고 말주변 좀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도인(道人) 행세도 하고 다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자기 스스로 근본 자리하고 하나가 딱 되어버려야 이른바 성자란 말입니다. 그 자리를 되기 위해서 몇 년이고 몇 개월 동안이고 애쓰고 공부하지 않습니까. 그 자리가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냥 보통으로 해서는 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업장이 가벼운 분은 빨리 되고 업장이 무거운 분은 더디 되겠습니다만은 아무튼 염불을 한다 하더라도 또는 화두를 참구한다 하더라도 그냥 당장에 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경에서도 이즉돈오(理卽頓悟)라, 이치로 아는 것은 문득 알 수가 있지요. 재주가 있고 업장이 가벼우면 문득 알 수가 있지요.
그런 재주 있는 사람들은 보통은 이치로 알아가지고서 더 닦을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업을 닦는다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일을 요하는 것이고 또 음식도 주의해야 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생략해 버리고서 도인 행세만 할라고 한다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우주의 근본 바탕에서 이루어진 그런 가르침이기 때문에 꼭 거기에 따르는 공덕이 붙습니다. 가령 하루 참선하면은 하루 참선한 만치 마음도 몸도 맑아지고 우리 건강도 더 증장增長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바른 참선을 하지 못하면은 이른바 상相을 여의지 않고서 근본을 여의고서 하는 공부는 그렇게 안 된다 말입니다. 근본을 여의고 하는 공부는 몸도 안 풀리고 마음도 안 풀리고 여러 가지 거기에 따르는 법열(法悅)이라, 또 행복도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참선을 할 때는 꼭 근본 자리, 본래면목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그때그때 근본 자리를 안 떠날 라고 해도 안 떠날 수가 없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 현상이라는 것은 근본을 떠난 상만으로 이루어진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론적으로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천지(天地) 우주(宇宙)가 모두가 다 일미평등(一味平等)한 불성뿐이다.’ ‘진여불성뿐이다.’ ….
제가 『육조단경』을 번역하려고 수십 번을 보고 이번 겨울에는 가까스로 번역을 마치었습니다. 과거 선지식들도 많이 한 것도 있고 해서 그런 것도 참고로 하고 그래서 가까스로 읽기 쉽게 누구나가 흥미있게 보는 것을 대중해서 맞추어놔서 몇 개월 되면 나올것입니다만은 아무튼 『육조단경』에도 보면은 불성ㆍ자성, 스스로 자[自]자, 성품 성[性]자, 자성自性이라, 또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라, 그 말씀이 조그마한 경전에 가서 백 군데가 넘어요. 백 군데가 넘습니다. 그 얼마만치 불성ㆍ자성에 대해서 역설을 하셨기에 그러겠습니까.
우리는 그 자리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따라서 그 자리를 그 불성 자리, 자성自性 자리, 본래면목 자리, 그 자리를 여의지 않고 공부해야 비로소 참선이 됩니다. 화두를 참구한다 하더라도 그 자리를 여의지 않고 참구를 해야 됩니다. 따라서 우선 이치로 해서 천지 우주가 모두가 다 진여불성뿐이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 나와 남의 구분이 있겠습니까. 불성이라는 것은 나와 남의 구분이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자리란 말입니다. 진여불성 외에 다른 것은 없는 자리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은 우리 중생이 근원을 못 보고서 가상적(假相的)인 상을 봐서 그럽니다.
『금강경』을 보나 『반야심경』을 보나 제법(諸法)이 공(空)이라,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원래 물질이라는 것은 있지가 않습니다. 가령 우리가 근래에 와서 칼 맑스라든가, 엥겔스라든가, 레닌이라든가 사회주의 학설들이 많이 유포가 되고 또 젊은 사람들은 상당히 거기에 관심을 갖고 아직도 역시 이북이라든가 중공이라든가 공산세계에서는 그야말로 맑스주의가 그대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만은, 그네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구성한 근본철학이 무엇인가? 근본철학이 내내야 결국은 철학적으로 따지면 하나의 유물론(唯物論) 체계란 말입니다. 유물론 체계입니다. 모든 것이 본래로 다 물질이라는 그런 체계입니다. 모두가 본래로 물질이라는 체계 위에서 이른바 유물변증법(唯物辨證法)이 나온다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부처님 가르침은 그 반대 아닙니까.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라, 모두가 다 마음뿐이라 말입니다. 물질은 본래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본래 없다는 말을 가장 명백하니 말씀한 분이 부처님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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