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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70편 ※
여포의 속셈
한편, 도겸이 죽고난 뒤, 서주 태수
(太守)가 된 유현덕은 인의(仁義)의 선정(善政)을 베풀어, 오십 삼만에 이르는 서주의 육군(六郡)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정치와 치안을 보살폈다.
얼마전 있었던 메뚜기떼로 부터의 피해 복구도 육군 백성들이 협력하여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다가 유비는 이곳에서 아내도 얻고, 탁현에 홀로계신 어머니까지 서주로 모셔 들였다.
이러다 보니 유비, 관우, 장비, 자룡을 비롯한 도공의와 미축등 전임 성주 도겸이 거느렸던 문무백관들 조차,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으니, 태평성대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난데없이 성루에 걸려있는 징이 세차게 연속해서
세 번 울렸다.
이 소리는 성 밖에 적군이 나타났을 때를 알리는 징 소리이었다.
유비를 비롯한 만조 백관들은 모두 깜짝 놀라는 바로 그때,
"아뢰옵니다 ! 아뢰옵니다 !"
수문 경계병이 큰소리로 뛰어들며, 황급히 아뢴다.
"여포가 팔천 철기(鐵騎)를 이끌고 성 밖에 와있습니다."
"여포가 ?"
유비는 흠칫 놀라며 관우,장비,자룡을 비롯한 도공의와 함께 성루로 급히 달려나갔다.
그리하여 밖을 내다보니, 저만치서 여포가 수천 군사를 이끌고 서주성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을 본 도공의가 걱정스런 얼굴로 유비에게 묻는다.
"유 공 ! 여포가 우리 서주성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
그러자 성밖의 군형(軍形)을 유심히 살펴본 유비가 ,
"진형(陳形)으로 봐선, 아닌 것같네 !"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유비를 비롯한 문무백관들이 걱정스런 시선으로 성 밖의 동태를 유심히 살피는 중에, 여포쪽에서 한 장수가 말을 달려 성문밖 조교(弔橋) 앞으로 내닫더니, 말에서 뛰어내리며 두 손으로 서신을 받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군위장군(軍尉將軍) 여포가 뵙자하옵니다 !"
그러자 유비가 부하에게 명한다.
"가서 받아오라 !"
성문이 열리고 한 장수가 말을 달려나가 서신을 나꿔채 왔다.
이런 모습을 멀찍이 지켜보던 여포가 초조한 듯 옆에 있는 진궁에게 묻는다.
"공대 선생, 유비가 우리를 들여보내 주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
"염려마시오. 유비는 인의군자요. 지금 그의 가장 큰 적은 조조이니, 조조의 대군을 막으려면 우리 도움이 필요할게요."
"음 !... 좋소이다. 그럼 유비가 우리를 거둬준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
그러자 성문쪽을 유심히 바라보던 진궁이 여포를 돌아보며,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아주 간단하지요, 상황을 지켜 보다가 행동에 옮기면 되는겁니다."
그 말에 여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성루에선 여포의 서신을 받아들고, 이를 본 뒤에 유비가 주변을 휘돌아보며,
"잘됬어 ! 여포가 조조한테 패한 뒤에 갈 곳이 없어 우리한테 의탁하러 온거야."
하고 말하자, 장비가 대번에 콧방귀를 뀌며,
"흥 ! 그놈이 우리한테 무슨 낮짝으로 왔답니까 ?
우리 삼형제가 그놈하고 붙었을 때, 목을 베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판인데 !"
하며, 화가 잔뜩 실린 걸걸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그러자 유비가 타이르듯이 말한다.
"그때와는 다르지않나 ? 잊지 말게, 후일 여포가 바른 마음을 먹고 동탁을 없애 버리고 한 실(漢室)을 다시 일으키는 공(功)을 세웠으니, 영웅이라 칭할 만 하지.
그 일로 천하의 칭송도 받았고, 더구나 여포는 맹장인데다가 팔천 철기가 있으니, 여포의 도움을 받는다면 조조의 공격도 두려울 것이 없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관우가,
"형님 ! 여포는 용맹하기는 해도 신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를 곁에 두는 것은 호랑이를 키우는 격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하고 조용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장비가 대뜸 말을 받으며,
"맞아요, 맞아 ! 둘째 형님 말씀이 맞아요 !
여포 저 놈이 잘 하는 거라곤 뺀질뺀질한 얼굴로 여자 후리는게 제일이고, 나머지는 하나도 쓸데가 없는 놈이라구요 !"
그러자 유비가 웃음을 머금으며 장비를 쳐다본다.
"훗 ... ! 그게 무슨 말인가 ?"
"사실이잖소 ? 형님 ! 생각해 보시오.
여포한테 애비가 몇 명이오 ? 네 ?
정원도 애비, 동탁도 애비, 왕윤도 애비, 거기다 제 놈 친아버지까지 더하면, 자그마치 애비가 네 명이 아니오 ?
애비 넷이 모두 여포 저놈 때문에 죽었으니, 저놈은 살(殺)이
내린 놈이라오.
누구든지 저놈의 애비가 되면 곱게 죽지 못한다구요."
장비의 투정어린 소리를 내내 미소로 듣던 유비는, "나는 여포와 친구가 되려는 것 뿐이지,
애비가 되려는 것이 아니니 너무 걱정말게."
하고 말하자, 장비가 덛붙여 한 마디를 더한다.
"이번에는 저놈이 아들이 되려는게 아니라 애비가 되겠다는 거라구요.
분명 우리에게 의탁하러 온 게 아니고, 서주를 삼켜버릴 속셈을 가지고 나타난거라구요.
틀림없어요 !"
유비는 더 이상 장비와 입씨름 하지 아니하고 찬찬한 시선으로 성 밖을 다시 내다 보았다.
여포가 몰고온 팔천 철기는 기다림에 지쳐서 말과 병사들이 좀이 쑤셔온 듯이 질서 정연한 대열에서 연실 꿈틀거렸다.
기다림에 지친, 여포가 진궁에게 말한다.
"선생 ! 이만 갑시다. 우릴 받아주지 않으려나 봅니다."
그러자 진궁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한다.
"아니오 ! 기다려봅시다 !"
그러자 여포가 짜증이 섞인 말로,
"벌써 두 식경이나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
동탁을 만날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금하고 그때와는 다르오. 유비가 동탁도 아니고 말이오."
한편, 성루의 유비는 자기의 결정을 모두가 따르게 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도 차근차근하게 따져보세,
얼마전 여포가 조조의 본거지인 연주를 기습하지 않았다면,
조조가 우리 서주에서 어찌 퇴각했겠으며, 우리가 어찌 안전을 되찾을 수가 있었겠나 ?
그런 여포가 우리에게 의탁하러 왔는데 받아주지 않는다면 도리가 아니네.
더구나 우리가 한 실을 부흥시키고 대업을 이루려면, 많은 영웅들과 교류해야 하네.
현재 우리의 적은 조조고, 여포의 적 또한 조조이니, 여포와 합세하여 조조에게 대적해야 비로서 승산이 있네.
조조가 남긴 명언이 있지 않나 ? <내가 천하를 대신할지 언정 천하가 나를 대신 할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나도 한 마디 할까 ? <천하가 날 대신 할지 언정, 내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자 이때까지 듣고만 있던 조자룡이 나서며 말한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
이어서 관우, 장비, 도공의와 미축등은 유비의 결정에 대한 더 이상의 반론이 없었다.
유비가 명한다.
"성문을 열어라 ! 내가 친히 여포를 맞을 것이다 !"
그러자 장비가 심통어린 소리를
한 마디 내지르며 자리를 뜬다.
"보려면 형님이나 보슈 ! 나는 저런놈 꼴은 보지 않을테니 !"
이윽고 성문이 열리고 유비가 호위병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순간, 그것을 본 여포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진궁을 돌아보며 말한다.
"보십시오, 유비가 직접 맞으러 나오는군요."
진궁이 여포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명심하시오. 유비를 만날때는 필히 공손히 대해야 합니다."
여포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여포와 진궁은 천천히 말을 몰아 유비앞에 이르러 말에서 뛰어내려, 걸어오는 유비를 맞았다.
그리고 여포는 가까이 다가오는 유비를 향해 국궁배례로써, "패전지장 여포가 서주 자사 유현덕을 뵈옵니다."
하고 기쁜 소리로 외치자 유비가 웃는 얼굴로 화답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 이제서야 봉선, 공대 두 분을 뵙는군요.
오늘 뵙게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하고 말을 하며,
"어서 들어가시지요."
하고 두 사람을 안내하여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 유비는 여포를 환영하는 환영연을 벌였다.
그리하여 술이 여러 순배 돌아가 여포가 고단한 몸에 술이 몹시 취하자, 유비에게 취중소리를 한다.
"현덕, 천하의 기량중에 누구의 기량이 가장 최고인 줄 아시오 ?"
여포의 말끝은 술에 취해 꼬부라져 있었다.
유비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한다.
"모릅니다.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여포는 유비에게 한 손의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한심하단 어조로,
"이 여포가 이끄는 팔천 철기가 천하의 으뜸이지요,
※삼국지(三國志)제71편※
관우와 장비의 한바탕 웃음
한편, 여포의 휘하 장수인 이봉과 설란으로 부터 자신의 본거지인 연주성을 탈환한 조조는 책사(策士)
순욱을 자신의 거처로 불렀다.
"주공, 찾으셨습니까?"
조조는 순욱이 나타나자 화난 어조로 책망 하듯이 말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힘든 출정으로 연주와 서주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면서 수십 만의 군사와 군량을 허비했지만 땅 뙈기라곤 한 뼘도 얻지 못했소.
헌데 유비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서주 육군을 차지했소.
그것만 봐도 그 작자가 겉으로는 후덕한 척하나, 속은 간사한 자 라는 것을 알 수 있소!"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순욱이 차분한 어조로 대꾸한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유비는 겉으로는 인의군자 같지만 어리석은 척하며 큰뜻을 품은 그런 인물입니
다.
절대 얕잡아 보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조조가 순욱의 말끝을 자르며 단호한 어조로 대꾸한다.
"유비를 한번도 얕잡아 본 적 없소! 오히려 놈이 속으로 나를 얕잡아 보는거지..."
"그러면 앞으론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순욱이 조조의 의향을 묻자, 조조가 긴 숨을 내쉬며 말한다.
"당신을 부른 것은 상의할 게 있어서요.
우리가 군량 준비만 된다면 다시 유비를 쳐서 서주를 취할거요."
"안 됩니다 주공!"
"안 될 게 뭐 있소? 서주는 중원을 얻기위한 요충지요.
대업을 이루려면 필히 서주를 얻어야 하오."
조조는 단언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순욱은, "숙고하십시오. 서주는 예전과 다릅니다.
지금은 유비와 여포가 연합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주공께서 성급히 공격하신다면,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필사적으로 저항을 할 것입니다.
반대로 주공께서 좀 더 참고 기다리시면 서주성은 두 사람의 각축장이 될 것입니다.
여포와 유비 두 사람은 하나는 호전적이며 하나는 가식적이기 때문에 곧 부딪칠 것입니다.
그때를 틈타 군사를 일으켜 서주를 공격한다면 간단히 끝날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가 매서운 눈길로 순욱을 쏘아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으음...일리가 있소! 서두르면 힘을 합쳐 대항하고 인내하면 분열이 보일 것이다? ... 순욱?... 당신 말이 옳소! 내가 부족했소!"
조조는 순욱에게 자신의 경솔함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그러자 안도의 미소를 띤 순욱이 조조를 향해 두 손을 읍하고 허리를 굽히며,
"주공께서 순간적으로 노하셔서 판단하시는데 성급하셨던 탓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공께서 평소처럼 마음의 평화를 찾아 평정을 가지신다면, 어떤 일이든지 대번에 핵심을 짚으실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가 감탄한 어조로,
"그 말도 옳은 말이오. 앞으로 내가 화를 참지 못하면 내가 정신이 들도록 욕을 해 주시오!"
하고 말하자, 순욱은 다시 허리를 굽히며,
"소인이 어찌 주공께 욕을 하겠습니까?"
그러자 조조가 순욱의 말을 자르며 말한다.
"이건 명령이오!"
순욱은 머리를 다시 한번 조아리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
한편, 서주에서는 진궁이 유비를 여포의 객사로 안내하며 말한다.
"유 장군께서 호의를 베풀어 서주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연회를 열어 주시고 백방으로 보살펴 주시니 여 장군과 저 진궁은 감격스럽다 못해 불안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하고 말을 하자 유비가 대답한다.
"공대형 말씀에 오히려 제가 불안하군요.
서주는 두 분의 집입니다. 두 분께서 오래 머무르신다면 저 유비의 복일 뿐만 아니라 서주 모든 백성들의 행운입니다."
"하.... 고맙습니다, 여 장군도 너무 감격스런 나머지 오늘은 특별히 저희가 연회를 열어 유 장군을 청하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유비가 진궁과 이런 대화를 하며 여포가 머무르는 객사앞에 이르자, 여포가 마중을 나왔다가 반갑게 맞으면서 말한다.
"아우님! 어서오시오."
유비가 두 손을 합장 배례하며,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하고 예를 표하자, 여포도 마주 예를 표하였다.
여포가 유비의 한 손을 잡아 끌며 말한다.
"아우님을 하루라도 못보면 좀이 쑤실 지경이오,
그래서 약소한 주안상를 차려 아우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오.
오늘은 마음껏 마셔 봅시다."
유비가 여포가 안내하는 자리에 앉으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한편, 무료한 한 때를 군사들과 봉술 겨루기로 보내고 있던 장비에게 관우가 다가가 말한다.
"이보게 아우, 나 하고 애기좀 하세!"
"왜요, 형님?"
장비는 군사들을 물리고 나서 다시 관우와 마주했다.
관우가 말한다.
"여포가 무슨 연회를 연다고 형님을 모셔갔네."
그러자 장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에이, 그게 뭐 어때서요? 그냥 술마시는 것이 아니오?"
하고 대꾸한다.
그러자 관우가,
"시중드는 사람이 초선이라고 하는데 듣자하니, 그 여자가 천하의 절색이라 남자들이 한번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고 하는데, 초선을 내세웠다는 것은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에이 형님두, 초선이라는 여자는 동탁이 죽고난 뒤에 자진했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죽은 초선이가 나타난단 말이오?"
장비는 황당하단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관우는 딱하다는 듯이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말한다.
"그러게 말야, 듣자하니 여포에게는 이처 일첩(二妻一妾)이 있는데,
첫째 부인은 엄씨(嚴氏)요, 둘째 부인은 조표(曺豹)의 딸이요, 첩의 이름은 초선(貂蟬)이라는군.
그런데 여포가 동탁이 살았을때 왕윤(王允)의 양녀 초선을 무척 사랑했으나 동탁에게 빼앗긴 일이 있었지.
그 후에 동탁을 죽이고 초선이 자결을 했지만, 여포는 그녀에 대한 연모의 정을 잊지 못해, 새로 취한 애첩의 이름을 <초선>으로 고쳐부르고 있다는거야.
그래서 이번 초선이는 먼저 초선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지..."
장비는 관우의 말을 귀담이 듣고 한 마디로 일갈해 버린다.
"그러게 내가 뭐랬소? 여포란 놈이 제일 잘하는 것은 뺀질뺀질한 얼굴로 여자 후리는데 일등이라고 하지 않습디까?"
"여하간 얼른 유비 형님에게 가보세!"
"갑시다, 형님! 이번 기회에 여포란 놈을 기어이 없애버려야겠군!"
장비는 이 말 한 마디를 내뱉고 쏜살같이 여포의 객사로 향한다.
그러자 관우가 황급히,
"장비야! 장비야!"
하고 부르며 뒤따라갔다.
한편, 여포의 객사에서는 여포가 얼마 전에 맞아들인 초선이라는 애첩을 시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유비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있었다.
"장군, 드시지요."
초선이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유비는 초선에게 국궁배례를 하며 술잔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형수님."
그러자 여포가 이 모습을 보고 자신의 가슴을 <탁탁>치며 말한다.
"현덕! 오늘부터 우리는 한 집안 형제요.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거요. 자, 자, 듭시다. 드시오!"
유비가 여포를 향해 술잔을 들어보이며,
"드시지요."하고 말하며 술 한잔을 들이켰다.
"채앵 ~"....
그 순간, 여포의 옆으로 방천화극이 굉음을 내며 벽에 냅다 꼿히는 것이 아닌가?
"응 ?..."
"엇 ?"
유비와 여포가 동시에 놀라며 방천화극이 날아 온 곳을 건너다 보니, 그곳에는 한 손에 장팔사모를 꼬나 쥔 장비가 서 있는 것이었다.
장비가 여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친다.
"여포! 우리 형님이 어떤 사람인데 네놈이 감히 아우라고 부르는 것이냐! 네 놈이 뭔데?...
성(姓)이 네개나 되는 이후레자식아!
정원, 동탁, 왕윤이 모두 네놈 때문에 죽었는데 어디서 뻔뻔스럽게 우리 형님에게 아부를 하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퇘 ! 퇘 !"
장비가 마지막에는 <카악~, 퇘 !>
하고, 여포를 향해 가래침을 뱉었다.
그러자 여포는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유비도 마찬가지로, 유비는 장비를 향해 노여움이 가득한 어조로 외쳤다.
"셋째! 닥치지 못해!"
그러자 장비는 손에 쥔 장팔사모를 높이 들어 흔들며,
"여포! 잘 들어라. 내가 네놈의 방천화극을 그리 던져주었으니, 당장 그걸들고 이쪽으로 와서 죽을때까지 한번 붙어보자!"
유비가 장비를 향해 소리친다.
"셋째, 당장 물러가라!"
그러자 장비가 뒷걸음으로 물러나면서 여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말한다.
"여포, 잘 들어라! 성문 앞에서 기다리겠다. 겁내지 말고 나와라!"
여포는 장비에게 모욕을 당하자, 이를 악물고 주먹을들어 탁자를 내리쳐버리니 단숨에 탁자가 박살이 나버렸다
※삼국지(三國志)제72편※
이간계(離間計)
이 무렵 장안(長安)의 정세는 매우 어지러웠다.
동탁 사후, 그의 수하였던 이각과 곽사는 정권을 잡고 나자 이각은 스스로가 대사마(大司馬)가 되었고,
곽사 역시 스스로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동탁못지 않은 횡포를 일삼으며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고 있었다.
백성들은 그러한 폭정에다 메뚜기 떼로부터의 극심한 피해가 겹쳐 흉년이 계속되자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각과 곽사는 그런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는 것이어서 오로지 자신만이 장안과 조정을 독차지 하고 싶어진 그들은 점차 자신의 욕심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옅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태위 양표(太尉 楊彪)는 그들의 행태를 보다못해 하루는 헌제에게 이렇게 품하였다.
"조조가 지금 산동 지방에 이십만의 병력과 수십 명의 걸출한 무장과 모사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조조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조정의 간당배(奸黨輩)들을 제거케 하여 나라를 바로 잡도록 명하시옵소서."
헌제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내 일찍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인 어린시절에는 선제(先帝)의 주변에는 십상시들이 있어 나라를 주물러 왔었소.
그후 하진과 동탁을 거쳐 오늘 날에는 이각과 곽사에게 조정의 실권을 빼앗기고 보니 그 어떤 사람이 구국(求國)을 핑계로 봉기하더라도 그 피해는 수많은 백성들에게로 갈 뿐, 또 다른 도둑에게 나라를 맡기는 격이 될까 두렵소."
양표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품한다.
"이각과 곽사는 본시 미천한 출신으로 출세를 한 인물이오나 조조의 경우는 승상 조참(曺參)의 후예로서 명문거족 출신이옵고,
그 자신도 선제때 부터 지금까지 관작(官爵)을 받아온 터인지라, 그의 충성도는 여타의 다른 자들에 비하여 믿음이 가옵니다.
하오니 지금의 혼란을 수습할 인물로는 조조가 적당할 것으로 아옵니다."
"무지막지한 이각과 곽사의 무리를 물리칠 수만 있으면 얼마나 기쁘리오.
그러나 조조가 대군을 일으켜 장안으로 온다면 또다시 큰 싸움이 벌어지지 않겠소?"
헌제는 백성들의 안위는 물론이고 전쟁으로 자신이 겪어야할 참화가 끔찍한 듯이 몸을 떨며 말하였다.
그러자 양표는,
"이각과 곽사간의 이간계(離間計)를 써서 그들간에 서로 반목하고 다투게 만들어 힘을 빼게 만들고 그 틈을 이용하여 조조가 장안으로 진격해 온다면 가장 적은 피해로서 이각, 곽사의 무리를 물리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이간책을 말해 보오."
"듣자옵건데 곽사의 처가 투기가 매우 심한 여자라고 하옵니다.
그러므로 그 점을 이용해서 이각과 곽사를 이간하도록 만들고, 조조로 하여금 두 사람을 치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줄로 믿사옵니다."
"그렇다면, 조조뿐만 아니라 형주 유표(邢州 劉標 ), 기주 원소 (冀州 袁紹), 남양 원술(南陽 袁術)에게도 밀서를 보내도록 하오.
그들도 한 실(漢室)의 녹(祿)을 대대로 먹은 사람들이 아니오?"
천자는 밀서(密書)를 써서 양표에게 주었다.
양표는 은밀히 사람을 시켜 형주, 기주, 남양을 비롯하여 연주의 조조에 까지 밀서를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불러, 조금 전에 조정에서 모의한 계책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신이 나라를 위해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곽사의 부인이 맹렬한 질투를 일으키도록 해줘야겠소."
하고 말하였다.
"알겠어요.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이튼날 양표의 부인은 곽사의 마누라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요사이 항간에 은밀히 떠도는 말을 들으니, 곽 장군께서 이 사마(李 司馬)댁 부인과 가깝게 지내신다고 하는데, 만약 이 일을 이 사마께서 아시면 큰일일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큰 망신이 될 것입니다.
하오니 부인께서는 아무쪼록 유념하셔서 앞으로의 왕래를 삼가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듣고 나자, 곽사 부인의 눈에서는 불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우리집 양반이 요사이 가끔 자고 들어오기에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아무튼 부인께서 이렇게 알려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
곽 부인은 그날부터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은밀한 감시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공교롭게도 이각의 집에서 곽사를 초대하는 기별이 왔다.
그리하여 남편이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 하자 곽 부인은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 사마가 당신을 없애고 혼자 세도를 잡으려는 야심이 있다하는데, 만약 당신이 그 댁에 초대에 응했다가 독약을 든 음식을 내어 놓으면 어떡합니까?
그러니 당신은 절대로 그 댁에 가셔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어디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걱정을 하오.
이각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오."
"내가 어젯밤에 꿈자리가 하도 사나웠으니 어쨌든 오늘만은 가지마세요."
이렇게 되어 이날 곽사는 이각의 초대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튼날, 이각의 집에서는 어젯밤에 차렸던 음식을 곽사의 집에 보내왔다.
질투심에 불타는 곽사 부인은 남몰래 음식에 독을 섞어 가지고 남편앞에 들고 나왔다.
"응? 이 사마 댁에서 보내온 음식인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군!"
곽사가 음식을 집어 먹으려 하자, 부인이 황급히 만류하면서,
"그 집에서 보내온 음식을 함부로 드시면 어떡하오.
우선 시험삼아 개에게 먹여 봅시다."
하고 음식 한 덩이를 뜰에 있는 개에게 던져 주었다.
개는 그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더니 즉석에서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곽사는 그 모양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음 .... 이각이란 놈이 그런 놈이었던가?"
이로부터 곽사는 사사건건 이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뒤, 곽사는 이각의 간청에 못이겨 그의 집에 끌려가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어디서 이렇게 취하셨어요?"
"이 사마댁에서 한잔 마셨어."
"아니, 내가 그만큼이나 조심하시라고 일렀는데, 그 집에 가셨단 말이오?"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야단이야?"
"그때 개가 즉사하는 것을 당신 눈으로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오?"
"글쎄, 괜찮다니까 그래 !"
곽사는 마누라와 시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응 ? 배가 아파오니 웬일일까 ?"
"그것 보세요. 그냥 계시다가는 큰일 날 테니 빨리 해독약을(解毒藥)을 잡숴야 해요."
곽 부인은 맑은 똥물을 떠다가 꿀을 섞어, 약이라 속여 가지고 들어왔다.
"숨도 쉬지 마시고 한번에 드세요."
곽사는 부인이 가져온 해독약을 단숨에 들이키곤 기어코 구역질이 나서 먹었던 음식을 모조리 토하였다.
그러고 나서야 속이 편안해졌다.
'"그것 보세요. 잡수신 음식을 토하고 나니 속이 편해지시지 않아요?
이번에도 음식 속에 필시 독이 들어 있었어요."
"음... 나와 더불어 대사를 도모했던 이각이 내게 이럴 줄은 몰랐는걸 !
그렇다면 내가 더 당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그놈을 없애 버려야겠군!"
곽사는 그길로 군사를 일으켜 이각을 처치하려고 하였다.
이각이 그 소식을 듣고,
"곽사란 놈이 나를 없애고 권세를 혼자 휘둘러 보겠다구?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하고 크게 화를 내며 즉시 군사를 동원하여 곽사를 치게 하였다.
이리하여 한밤중에 도성인 장안에서는 군사가 두 패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각의 조카 이섬(李暹)이 말한다.
"황제를 우리 편으로 모셔와야 합니다.
황제를 등에 업은 쪽이 관군이 되고, 황제에게 대항하는 쪽은 역적이 되는 법입니다.
그러면 제후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옳은 생각이다. 그러면 당장 황제를 끌어내 미오성으로 데려가라."
이각은 조카에게 명하였다.
"이각의 조카 이섬이 천자를 납치해 갔다!"
부하한테서 그런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사람은 곽사였다.
"뭐라고? 천자를 빼앗기다니! 이래 가지고서야 내 입장이 뭐가 되는가!"
곽사가 부하를 이끌고 부랴부랴 후제문(後帝門)으로 달려가 보니, 이각의 군사들이 천자를 모시고 미오성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앗! 저기 간다. 저놈들을 제압하고 황제를 빼앗아라!"
곽사는 호통을 치며 부하들을 독려하여 공격을 가했으나, 적의 반격이 예상보다 커서 많은 군사만잃어버렸다,
※삼국지(三國志)제73편※
허수아비 황제
한편, 헌제와 황후는 이각의 군사에게 이끌려 미오성에 무사히 도착은 하였
으나 그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장안을 떠나 한낮이 될때 까지 무지막지한 군졸들에게 무참한 학대를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음식이라곤 상한 것들 뿐이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황제를 수행하는 시종들에게
는 상한 음식이나마 제대로 주지 않아서 모두가 굶어 죽을 판이었다.
헌제는 그런 참담한 광경을 보다못해 하루는 이각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일렀다.
"시종들이 굶어 죽을 판이니 쌀 한 자루와 쇠고기 몇 근만 보내라."
이각은 그런 전갈을 받자 화를 내며 이렇게 떠들어댔다.
"이 난시에 끼니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 만으로도 고맙게 알 일이지 무슨 요구가 그렇게나 많은가?"
신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무엄
한 언사였다.
헌제는 그 소리를 전해 듣고 참다
못해 소리높여 꾸짖었다.
"역적놈이 아무러기로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그러자 태위 양표가 국궁배례를 하면서 아뢴다.
"폐하! 이각은 성질이 포악한 놈이오
니 노여움을 참으소서. 모든 것을 참고 때를 기다려야 하옵니다.""....."
헌제가 고개를 수그린 채 말을 못하고 눈물을 짓자 옆에 있던 시종들도 옷자락으로 눈물을 씻었다.
마침 그때, 성 밖이 무엇인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무슨 소리냐?"
시종이 밖을 살피고 들어오더니 아뢴다.
"곽사의 무리가 성 밖에 몰려와 폐하를 자기네에게 내놓으라고 야단입니다."
헌제는 그 소리를 듣고 땅을 치며 한탄하였다.
"아아, 앞문에는 호랑이가 있고 뒷문에는 이리가 있어서 짐을 볼모로 싸우고 있으니 짐의 신세는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 무렵, 이각은 군사를 거느리고 성문 밖으로 달려나가 곽사를 맞아 싸우려 하였다.
그러자 곽사가 이각을 보고 이렇게 외친다.
"이 반적(反賊)놈아! 천자는 네놈의 천자가 아니라 천하의 천자이거늘 너 같은 반적놈이 어찌 천자를 납치해 갔느냐! 이 곽사가 만인을 대신해 너 같은 놈은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각이 대답한다.
"천하의 악당 곽사 놈은 듣거라! 네놈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내가 천자를 보호하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 천자에게 창을 겨누는 네놈이야 말로 천하의 역적이다!"
곽사 또한 지지않고 떠들어 대는데,
"이놈아! 천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무슨 놈의 개수작이냐! 개수작 그만 하고 나와 단둘이 싸워서 생사를 겨루자!"
"좋다! 네깟 놈 쯤은 내 상대도 안되지!"
이각과 곽사는 군사들을 물리치고 단 둘이 성밖에서 맞붙었다.
창검을 부딪치기를 이십여 합, 그러나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양쪽 군사들은 제각기 결전의 북을 치며 위세를 북돋웠다.
그래도 싸움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이때에, 성중에서 말을 달려나와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있었다.
"두 분 장수는 싸움을 거두시라는 어명이 내렸소.
만약 이 명에 거역을 한다면 역적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으실 게요."
그렇게 외치며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태위 양표였다.
애초에 이간계로써 그들 두 사람을 싸우게 만들었던 장본인인 양표였던 것이다.
어명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통에 이각은 양표의 말을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실상인즉 천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터였지만, 겉으로는 대의를 존중하는 듯이 보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자를 되찾기 위해 싸움을 걸어온 곽사의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어명이었다.
"이놈아! 무조건 화해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소리냐!"
곽사는 크게 화를 내며 양표와 그를 따라온 주전을 비롯한 조신들에게 모조리 포박을 지웠다.
"이건 너무 심하지 않소? 화의를 중재하려던 우리에게 결박을 지우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양표가 항의를 하였으나 곽사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린다.
"잔소리 말라! 이각은 천자를 볼모로 잡고 있으면서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나는 너희들을 볼모로 잡아둘 생각이로다!"
"오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오.
조정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두 분이 한 사람은 천자를 위협하고 한 사람은 조신(朝臣)들을 위협하고 있으니 이래 가지고서야 세상이 무슨 꼴이 된단 말이오?"
"이놈아! 잠자코 있지 못하고 무슨 잔소리냐?"
곽사가 칼을 뽑아 양표의 목을 후려치려 하자, 중랑장 양밀이 가까스로 만류하며,
"이각을 제거하지 못하고 조정의 원로를 주살하는 것은 후일에 크게 불리합니다."하고 말리는 것이 아닌가.
곽사는 양밀의 말을 쫒아 양표와 주전 두 사람만은 포박을 끌러 주면서 놓아 보내고 나머지 조신들을 모조리 가두어 두게 하였다.
주전은 이미 노인인지라 곽사에게 풀려나 미오성으로 들어온 직후 양표를 보며 눈물로 한탄한다.
"우리가 사직지신(社稷之臣)으로서 군주를 구하여 모시지 못하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가겠소."
주전은 대궐 기둥에 스스로 머리를 부딪치고 피를 토하며 분사(憤死)하고 말았다.
태위 양표는 헌제를 배알하며 잠시 전에 있었던 이각과 곽사의 접전을 보고 하고 주전의 자결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헌제는 눈물을 흘리며,
"이각과 곽사 어느 쪽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은 생각하지 않고 있구나.
이제는 노신(老臣) 주전마저 잃었으니 도대체 짐은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그러자 양표가 이렇게 아뢰는 것이었다.
"폐하, 어느 쪽도 의지하지 마시고 이 성에서 달아나야 하옵니다.
이대로는 이용만 당하실 뿐입니다."
"하지만 무슨 수로 빠져 나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
성밖에는 곽사 군까지 버티고 있는데."하며 절망어린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표는,
"얼마 전에 연주와 형주, 남양의 원술과 기주의 원소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니, 조만간 무슨 소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여, 이곳을 빠져 나간다면 옛 도읍인 낙양으로 피신 하심이 옳을 듯 하옵니다."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낙양으로 피신할 방법을 찾아 보라."
천자는 기어코 미오성 탈출을 승낙하고야 말았다.
그러자 양표는,
"알아 보니 이 성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비밀 통로가 있었습니다.
마침 이각 군이 성밖의 곽사 군에게 정신을 빼았기고 있으니 기회를 보아 성 밖으로 빠져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소. 빨리 손을 쓰도록 하시오."
그날 밤이었다.
양표는 늦은 밤에 천자를 깨웠다.
"어찌 되었느냐?"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감시병은 없느냐?"
"어렵게 술을 구해 모두 잠들게 해 놓았습니다."
천자는 양표의 안내를 받아 마차에 올랐다.
이윽고 미오성의 비밀문인 후문(後門)이 열리고 천자와 황후를 비롯한 측근 조신과 시종들이 탄 마차가 성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낙양을 향하여 북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시각 이각은 밤 늦게 몇몇 측근 장수들과 함께 술 한잔을 하고 있었다.
이각이 경계를 담당한 장수에게 물었다.
"아직도 곽사 군은 성 밖에서 아우성이냐?"
"예, 황제를 내놓지 않으면 성을 공격하겠답니다."
"멍청한 놈들! 이 미오성은 동태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은 거야.
간단히 함락되지 않아. 실컷 떠들게 내버려 둬라. 오늘은 술 맛이 다른 날보다 좋군!"
이각은 곽사를 무시하는 말을 하며 술 한 잔을 들이켰다.
바로 그때, 연락병 하나가 급히 달려들며 외쳤다.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웬 소란이냐?"
"폐,폐하께서 성 밖으로빠져나갔습니다."
"무엇이!" 이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바보같은 놈들!
대체 감시병들을 뭘 하고 있었느냐?
빨리 뒤쫒아서 황제를 찾아와라!"
술자리에 함께 있던 장수들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의 거처로 달려갔다.
이각이 외친다.
"황제가 곽사의 손에 들어가면 우린 반란군이 된다. 속히 황제를 뒤쫒아라!"
이각을 비롯한 몇몇 장수들이 후제문을 통하여 황제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곽사의 척후병이 성문 근처에 숨어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다가,
"어라? 이각 장군과 부하들이 성을 급히 빠져나오고 있어.
틀림없이 무슨일이 벌어진 거야. 그렇다면 저들에 휩쓸려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군."
그리하여 곽사의 척후병은 이각의 군사들 후미에 섞여 들어갔다.
"이봐, 어디를 이리 급하게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