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沈默)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러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
[작품해설]
「님의 침묵」의 첫 구절,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된 시집 『님의 침묵』은 마지막 작품인 「사랑의 끝판」의 끝 행, ‘예 예 가요 이제 곧 가요’로 마무리되는 이별과 만남의 존재론적 드라마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시집 『님의 침묵』에 강한 연계성과 극적인 구조로 배열되어 있는 88편의 시를 대표하면서 나머지 시들을 해명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작품이기도하다.
만해시가 갖는 시적 특질을 가장 압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님’과 ‘침묵’의 상징체계가 어떠한 연관ㅇ르 지니는가 하는 것을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집 『님의 침묵』의 머리말격인 ‘군말’을 보면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중략」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그것이 생명이 있건 없건 간에 만해는 모두 ‘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해의 ‘님’은 그의 영혼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그를 존재하게 하는 원점이고,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動力)이라 할 수 있다. 자아를 출발시키는 근원으로서 존재하는 그의 ‘님’은 역사 속에서는 조국이나 민족이며, 진리의 의미로는 참자각의 세계요, 그의 종교적 환경에 비추어 본다면 절대 신앙의 가치요, 그 외에도 단순한 연인으로서의 의미 등 다양하게 변모하며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될 수 있으며, 또한 그 어느 하나만으로 되어서는 안 되는 복합적 의미의 ‘님’인 것이다. 가장 포괄적으로 그의 ‘님’을 말하면 인간의 삶을 삶답게 해 주는 모든 가치의 총체를 의인화한 것이라 하겠다.
‘님’의 다양한 의미처럼 ‘님의 침묵’ 역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인가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렵고 도달하기 어려운 부처의 경지, 피안(彼岸)의 진리 세계,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암담한 조국 현실 상황, 현상으로는 이미 사라지고 본질로서만 있는 영원한 임의 존재 양상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만해의 생애와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던 민족의 삶이었던 만큼 역사적, 현실적 의미를 떠나서는 그의 시가 온당하게 해석될 수만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1행은 ‘님’이 떠난 사실을, 2행은 ‘님’이 떠난 모습을, 3행은 ‘님’이 떠남으로써 파기된 ‘님’과의 약속을, 4행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님’과의 추억을 말한다. 이렇게 1~4행이 ‘님의 떠남’, ‘님의 부재’를 형상화하고 있다. 5행은 ‘님’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6행은 ‘님’이 떠남으로써 야기된 슬픔을 보여 주어, 5~6행은 ‘님’과 함께 있으면서 ‘님’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했던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뜻밖의 이별에 대한 충격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1~6행까지는 사랑하는 ‘님’과 이별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일어나는 슬픔과 괴로움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러나’라는 접속어에 의해 7행은 시적 상황이 급전하게 되어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이것은 바로 그가 ‘거자필반(去者必反: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옴)’과 ‘회자정리(會者定離:만남 사람은 반드시 떠남)’의 철리(哲理)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8행에서는 ‘거자필반’이라는 재회의 확신을 보여 줌으로써 이 시의 주체를 암시한다. 이처럼 만해에게는 이별이 부정적 이별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을 극복한 긍정적 이별이 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가 ‘소멸’과 ‘생성’, ‘이별’과 ‘만남’, ‘눈물’과 ‘웃음’의 변증법적 구조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결국 ‘님은 갔지만 난 님을 보내지 아니한’ 상태가 된다. 9행은 주제행으로 ‘님’이 부재하는 객관적 사실을 ‘마음으로는 보내지 아니하였다’는 주관적 의지로써 슬픔을 극복하고 있다. 마지막 10행에서는 현상적으로는 사라졌지만, 본질적 존재로서는 남아 있는 침묵의 깊은 경지 속의 ‘님’을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을 그리며 시상ㅇ르 마무리한다.
1~5행에서 ‘만남은 만남, 이별은 이별’이라는 단순히 객관적인 사실로서만 존재하던 평면적 사고(思考)가 6행에 이르면서부터 입체적인 사고로 변한다. 만남의 배후에 있는 이별과 이별의 배후에 있는 만남을 설정함으로써 만남은 곧 이별이요, 이별은 곧 만남이라는 역설이 가능해진 것이다. 바로 이 역설적이고 입체적인 사유가 5행에서 주제행인 10행으로 전개시킨 원동력이 되었고, 또한 ‘님’과의 이별이라는 비탄과 절망의 상황을 소망과 기대의 밝은 공간으로 이끌어 준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님’이라는 존재와 이별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제시하여 인간 정서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별의 한(恨)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정서를 ‘절망이 아닌 희망’일는 새로운 장으로 열어 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러한 이 시는 ‘이별’ → ‘이별의 슬픔과 고통’ → ‘희망적 기다림’ → ‘만남’에 이르는 ‘소멸’ → ‘모순, 갈등’ → ‘생성’이라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드라마이다. 따라서 이별은 만남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생성의 존재 원리에 해당한다. 결국 만해는, 국권 상실도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소멸에 불과한 것으로, 더 큰 의미의 광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현실적 고통이며 역사적 시련으로 인식함으로써, 1944년 숨을 거둘 때까지 조금도 변절하지 않고 일제와 맞서 싸운 실천적 지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소개]
한용운(韓龍雲)
본명 : 한정옥(韓貞玉)
1879년 충남 음성 출생
1896년 동학에 가입하였으나 운동이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감.
1919년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1927년 신간회(新幹會) 중앙 집행위원
1930년 월간지 『불교』 발행인
1944년 사망
시집 : 『님의 침묵』(1926), 『한용운 전집』(1973), 『한용운시전집』(1976)
첫댓글
침묵하는 님
사랑의 노래가
흐른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