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복의 일생
겨울내복
하면 어릴 때 엄마의 성화로 껴 입던 두꺼운 빨간 내복이나 겨울옷 소매 밑으로 땟국물 묻은 채 튀어나오는 보온메리 자락이
떠오르곤 한다. 촌스럽고 예스럽고 거기다가 실루엣을 망가뜨린다는 생각에 그 보온성과 실용성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의 미움과
냉대를 받곤 하는 겨울내복. 과연 내복은 무엇이고 언제 어떻게 태어났을까.
내복(內服)은 겉옷 안에 입는 ‘속옷’의 총칭이 본래 의미이나, 겨울에 입는 란제리 류의 내의를 지칭한다. ‘데이웨어’ 라고도 하고 길이는 3부, 5부, 7부, 9부로 나누어진다. 그렇다면 이 내복은 언제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게르만족의 투피스가 시초?
내복의 기원을 정확히 가려내긴 어려우나 시초는 게르만족이 대 이동을 시작한 4세기 무렵, 북방으로 움직인 게르만 족 사이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위 아래로 나눠진 투피스형태의 ‘튜닉’이라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후 6세기 이후부터 이북방계 주민들이 스모크(Smock)라는 것을 착용하게 됐다. 이것은 원래 겉옷으로 튜닉위에 착용 된 것이나 12~13C가 되면서 몸체에 꼭 맞는 속옷으로 변형되었다고.
좁고
긴 소매로 된 언더튜닉은 린넨이나 모직으로 만들었으며 길이는 발목까지로써 벨트를 매었다. 특히 귀족들은 넓고 장식이 많은 벨트를
착용했으며 뒤트임 있는 상의 형태인 브리오 속에 린넨이나 얇은 모직으로 만든 튜닉형의 속옷인 쉐엥즈(Chainse)를 착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귀족들이 금을 장식하거나 견으로 만들어져 화려했다고 한다. 내복의 기능성이 유럽 귀족들의 ‘섹시컨셉’ 에 맞춰지던
시기였다. 내복이 코르셋 류의 압박형 보정속옷에 밀리던 시기라고 볼 수 있겠다. 이후 1차대전 이후 복식이 실용화 되고 여성들도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기능적 내복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내복의 조상''''게 르만족 튜 닉
고구려 벽화의 리얼리티
사가들에 의하면 고구려의 벽화에 등장한 인물의 옷 소매 밖으로 ‘내복’ 으로 추정되는 옷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도 ‘내의’ 혹은 ‘내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속 저고리나 속치마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 여인들은 다리속곳, 속 속곳, 바지, 단속곳
등 최대 아홉 가지의 속옷으로 하체를 싸맸으니 내복이 필요 없었을지 모른다. 남자들은 속바지를 입어 보온효과를 노렸고, 서민층은
여자들이 속바지를 입었다고 한다. 허나 이도 실용성 보다는 관습이 주 이유로 보인다. 속옷의 종류와 주름이 그 가문이나 신분,
계급을 표시하는 기능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내복이 등장한 것도 역시 복식에도 근대화 바람이 불던 1960년대로 추정한다.
근대 생활사의 한 획 ‘빨간 내복’
바야흐로 빨간 내복은 이렇게 등장한다. 왜 하필 빨간색
인고 하니, 1960~70년대 우리 부모님들은 ‘빠숀’을 논하기에 너무 가난했다. 붉은색은 염색하기 쉬운데다 빨간색은 열기가
느껴지는 색이라고 한다. 계절로는 여름, 방향으로는 남쪽을 상징한다고. 한마디로 빨간색은 ‘싸고 따뜻한 색’ 이었던 것.
I.R.I 컬러 컨설팅은 빨간색을 “잡귀를 쫓고 액운을 막는 색‘ 이라고 정의한다. 즉 손톱의 봉숭아물이나 색동 저고리 처럼
빨간내복은 ”추위 막고 귀신 쫓는“ 과학과 신앙이 결합된 색상이었다.
이 빨간 내복은 첫월급 탄 자녀들의 부모선물 1순위로 올라서면서 1980년대 초반 까지 서민들의 겨울철 옷장 안에 집집마다 채워지며 전성기를 누린다. 필자의 기억 속에서 신축성이 떨어져 무릎과 엉덩이 부분이 늘어지면 기워 입고 또 기워 입던 추억속의 내복, 그 시절 연탄난로로 부족한 서민들의 난방을 보조해 왔던 빨간내복의 열기는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수그러들었다가 최근 ‘복고’ 열풍에 힘입어 대중가요나 애니메이션 소재로 컴백했다.
털실 내복
니트류를
속옷에 응용한 한민족의 지혜와 뚝심을 엿보게 하는 옷. 속옷의 기본 기능인 흡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털실내복은 가난했던 한국
현대 생활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털실로 짠 이 내복은 아이들의 실내복과 평상복을 겸한 형태로 주로 ‘가내수공업’
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색상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장점을 가졌다. 특히 털실내복은 재료 절약과 자원 재활용이란 취지로
자투리 털실이 활용되어 형형색색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내복의 발전기
1980년대
초반에는 내복의 두께는 그 가정의 ‘부’ 의 척도였다. 빨간 내복보다 비싼 분홍색, 베이지색 면 내복이 등장하자 겹으로 만들어진
‘2중메리’ 가 나타났고, 얼마 후 3중으로 공기층을 형성한 ‘3중메리’가 나와 내복 계를 평정하게 되었다.
점차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겨울 난방기구가 대중화 되면서 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 사람이 늘어났다. 모피류의 두터운 겨울 외투가 등장하고 유색 스타킹과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겨울 내복은 점차 인기가 시들해 져 노인과 아이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해 갔다. 다시 내복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지난
1998년 IMF 자금지원 여파로 절약이 서민들의 화두가 되었을 그 때였다. 이후 실루엣을 잡아주고 기능성을 강화한 다양한
내복들이 선보이면서 다시 내복을 찾는 ‘알뜰족’ 이 늘어났다. 지난 해부터 겨울마다 ‘에너지 시민연대’ 는 시내에서 내복 퍼포먼스를 보이며 내복입기 켐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 ‘장기화된 경기침체’ 로 인해 내복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적외선,
콩, 황토, 은 등 각종 물질을 포함해 기능성을 극대화한 내복들이 등장해 내복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이끌고 있다. 관계자들은
앞으로 세라믹, 허브 등 다양한 재료들이 내복에 응용되어 새롭고 실용적인 내복들이 선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번 착용 해 본 사람이면 그 기능성에 반해 다시는 벗을 수 없다는 겨울철 내복은 앞으로도 더 다채롭고 실용적으로 발전해 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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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