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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 : 13. 세상의 소금 5 : 14. 세상의 빛
2. 소금과 빛 ( 5 : 13 – 16. 막 9: 50. 눅 14: 34-35 )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 : 13. 세상의 소금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너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님 믿고 그의 말씀을 배우고 그를 본받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자들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고 그를 섬기지 않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님도 모르고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이며 성경말씀도 모르고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소금의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짠맛이고, 다른 하나는 부패 방지이다.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 할라스)은 고대의 종교 세계에서 인내와 순결과 부패 방지의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거룩한 제사에 사용되었고 하나님과의 영원불변하는 언약에 연관되었다.
* 출 30: 35 -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 레 2: 13 -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 민 18: 19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예수께서는 주로 비유적인 의미에서 이 소금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셨다. 예를 들면 제자들은 희생의 의미를 담고서 소금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막 9: 49 -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2]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본문에 언급된 바대로 소금이 그 맛을 잃는 것에 대한 언급은 흔한 이야기이면서도 중요한 의미(意味)를 지니고 있다.
* 눅 14: 34-35 –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 막 9: 50 -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사실 '소금과 햇빛보다 유용한 것은 없다'(Pliny) 이처럼 소금과 빛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앞서 소금의 여러 용도가 이야기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소금은 음식을 보존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을 수는 없다. 염화나트륨(Nacl)은 완전한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소금의 첫 번째 역할은 짠맛이다. 소금은 모든 음식에 필수적이다. 만일 소금이 없다면,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소금은 맛있는 음식에 필수적이다. 너무 짜게 먹는 것은 건강에 안 좋다고 하지만, 음식은 간이 적당할 때 가장 좋은 맛을 낸다.
영적으로도, 인생의 최고의 맛은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알고 거기에 맞게 사는 것이다. 삶의 의미가 없고 목적이 없고 허무하고 부도덕한 삶은 맛이 없는 삶과 같다. 사람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은 바로 경건과 도덕성에 있다. 거기에 기쁨과 평안도 있다.
소금의 두 번째 역할은 부패 방지이다. 이것은 짠맛의 부수적 역할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상하기 쉬운 식품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한 방법은 소금에 절이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중요한 방법이다. 소금은 식품의 부패를 방지한다.
영적으로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사회의 부패와 악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늘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교회에 모여 성경적 교훈을 받는다.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받는 자들만 악을 떠날 것이다. 그들이 그 교훈대로 산다면 세상이 급격히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악된 이 세상에서 도덕성의 최후의 보루이다.
3]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러나 주의 말씀대로, 만일 그들이 짠맛 곧 경건과 도덕성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밟힐 뿐일 것이다. 경건과 도덕성을 상실한 교인들은 세상에 아무 유익이 없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 짓밟을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사용되던 대부분의 소금은 소금물을 증류하여 얻은 것이 아니다. 염분이 있는 늪지 등에서 추출된 것이기 때문에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었다. 소금은 불순물보다 쉽게 녹기 때문에 용해되어 나오기 쉬웠고 그렇게 희석(稀釋)되어 소금이 추출되고 남은 나머지는 쓸모가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는 아직도 맛을 잃은 소금이 평평한 지붕의 흙 위에 뿌려진다고 전해진다. 이 소금 때문에 흙은 더 단단해지고 새는 구멍이 생기지 않는다. 지붕이 운동장이나 공공집회의 장소도 되기 때문에 소금은 여전히 사람에게 밟히고 있다(Deatrick, 'salt', p. 47).
'어떻게 다시 짜게 할 수 있는가'하는 본문의 질문은 슈바이쩌(Schweizer)가 지적한대로 어떤 구체적인 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소금을 다시 짜게 할 수 있는 것이 '노새의 태(胎)'와 같다고 대답한 랍비의 말(노새는 번식력이 없으므로 결국은 불가능하다는 뜻)은 요점을 놓친 것이다(Schweizer).
여기에서 말하는 요점은 예수의 제자들이 천국의 규범에 따름으로써 세상에서 방부제로 행동하여야 하며, 도덕적 기준이 저급하고, 끊임없이 변경되거나,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 속에서 소독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계속 유지하여야만 이 역할을 할 수 있다(Tasker).
너희는 소금이라는 말씀은 소금의 맛을 강조한 것이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고 말씀한 대로, 소금의 맛은 짠 맛이다. 왜 성도를 소금에 비유하셨는가? 그것은 성도의 인격과 삶을 가리킨다. 성도의 인격과 삶의 특징은 경건과 도덕성이다. 이 세상에서 성도만이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산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참모습이다.
세상은 불경건과 부도덕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세속 속에서 성도의 인격과 삶, 즉 참된 경건과 도덕성은 인생의 참된 맛이라고 볼 수 있다. 경건과 도덕성을 가지지 못한 인생, 하나님도 모르고 바르게 사는 것도 모르는 삶은 정확히 말해 맛이 없는 삶, 무의미한 삶, 인생의 독특성을 갖지 못한 삶, 혹은 다른 말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인 것이다.
만일 성도들의 인격과 삶에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속에서 경건과 도덕성을 볼 수 없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것을 찾아볼 수 없다. 주의 피로 구속받은 교회밖에 인생의 참 의미와 가치를 보여 줄 곳은 이 세상에 아무 곳에도 없다. 교회밖에는 무의미하고 허무한 세상을 구원할 해결책이 없다. 교회밖에는 우리의 소망과 기대를 걸 곳이 아무 데도 없다. 주의 몸 된 교회만이 우리의 소망과 기대이다.
맛 잃은 소금이 사람에게 밟히듯이, 맛 잃은 교회, 세속화된 교회는 세상에 밟히기나 한다. 밟힌다는 것은 세상이 교회를 지배하고 황폐케 함을 말한다. 처음에는 세상이 그런 자들을 친근히 하고 인정하는 듯하나, 결국에는 세속화된 교회를 밟고 일어서며 세상의 노예로 만든다.
세상은 결코 세속화된 교회를 평안케 놓아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이든지 교회이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세상과의 타협은 파멸에로 나아갈 뿐이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지식과 경건과 의와 선과 진실의 도덕성으로 충만한가? 소금의 맛을 잘 내고 있는가? 혹 그 맛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가지는 않고 있는가?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마 5 : 14. 세상의 빛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
성경에서 ‘빛’은 지식, 의와 진실, 기쁨과 행복,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나 반대로, 어두움은 무지, 불의와 거짓, 슬픔과 불행, 죽음을 상징한다.
세상은 어두운 세상이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고 의와 진실이 없고 기쁨과 행복도 없고 영원한 생명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지식과 의와 기쁨과 생명을 주셨다. 그것이 구원이다. 교회는 이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었다.
1]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13절에서와 같이 '너희'가 강조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제자들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생각하였다.
* 롬 2: 17-19 –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그러나 진정한 빛은 선지자들이 예언한바 고난받는 종. 한 분뿐이다.
* 사 42: 6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사 49: 6 -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그리고 이것은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
* 요 1: 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비취는 새 빛이 되었다.
* 엡 5: 8-9 –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빌 2: 15 -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빛은 종교적 상징이다. 구약에서도 빛이 부정함에 대립하는 순수함, 거짓이나 무지와 대조되는 진리와 지식,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자들에 대조되는 하나님의 계시와 임재를 상징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성경에서 빛은 지식과 도덕성과 행복을 가리키고, 어둠은 무지와 부도덕과 불행을 가리킨다. 주께서는 빛이 특히 ‘선행’을 가리킴을 말씀하셨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부도덕하고 불행하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런 어두움의 세상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의 경건과 의와 선과 진실의 삶은 세상의 빛이다.
사람들은 보통 육신적, 물질적 차원의 것들만을 크게 여긴다. 그러나 종교적, 도덕적 문제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하다.
2]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주께서는 제자들을 ‘산 위에 있는 동네’라고 부르셨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가 있다. 기독교는 은밀한 교훈을 주고 받는 밀교(密敎)가 아니다. 기독교회의 모임은 공개된 모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시대로부터 교회로 모이며 예배를 드렸고 설교들은 다 공개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다 공개되어 있다.
이 문구는 의미가 분명하다. 고대의 마을은 흰 석회암으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태양 속에서 빛나는 것이 많은 사람 눈에 보이고 감추어지지 않는다. 밤에는 동네 주민들이 켜놓은 등불이 주변 지역에 빛을 드리우게 한다(Bonnard).
'산 위에 있는 동네'에 대한 말씀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의 산 또는 시온의 세계 속에서 뛰어나게 되고 모든 족속(族屬)이 그리로 몰려올 때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Grundmann, Trilling, K. M. Campbell).
* 사 2: 2-5 –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5 야곱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 사 42: 1-9 –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 사 49: 1-7 –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 사 54: 1-10 –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 사 60장 –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8 저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 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10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불쌍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 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12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 13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14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15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 16 네가 이방 나라들의 젖을 빨며 뭇 왕의 젖을 빨고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17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18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21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추측은 아니며 산 앞에 정관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사야서의 예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전자의 주장이 옳다면 본문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이는 참된 모임이다.
종말에 도래하는 천국의 전초기지로써 그리스도의 참 빛을 세상에 비추는 순결한 반사체인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모두 마태복음에서는 중심적인 것들이다(C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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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합시다.
강해 설교 감사합니다.
우리는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