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계시록 2~3장(1)_내가 아노라
<요한계시록 2장>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책망 없음]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요한계시록 3장>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책망 없음]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우리가 요한계시록 1장을 살펴본 지가 벌써 두 달 가량 지났습니다.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요한계시록은 요한의 계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고, 그분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신의 종 요한에게 알리신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보았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명하셨습니다. 오늘부터 2주간에 걸쳐 바로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서신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당초에는 2장과 3장을 따로 다루려고 생각했는데, 내용의 흐름 상 2,3장을 한꺼번에 다루고 두 번에 걸쳐 다루기로 하였습니다.(이로 인해 7월 첫 주 말씀을 준비하셨던 한 형제님께 누를 끼치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낭독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두 분의 형제님께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을 각각 낭독하겠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가능하다면 성경을 보지 마시고 귀로 집중해서 들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두 장을 읽다보니, 시간이 좀 많이 지났습니다만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하신 말씀의 내용을 모두 들어보았습니다. 지금부터 본문 말씀을 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일곱 교회에 대하여 지리적으로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서신서들은 사실 한 지역에 있는 교회에게 쓰여진 편지글입니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그리고 에베소서는 에베소, 빌립보서는 빌립보, 골로새서는 골로새,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데살로니가...
베드로전후서 같은 경우는 좀 특이하게 여러 지역, 곧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와와 비두니아에 보낸 서신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역명이 오늘날 우리 모임처럼, 좁은 지역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춘천, 원주, 강릉, 동해, 삼척, 양양, 속초, 인제 등지에 있는 지역모임처럼 그런 의미의 지역교회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모두를 강원특별자치도에 있는 교회로 보듯이, 대부분의 신약 서신서들이 그런 지역을 대상으로 쓰여졌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의 수신 대상인 일곱 교회는 사실 에베소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지역은 1세기 당시「아시아」로 불리워지던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지로 정치·경제적 수도 역할을 하던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인구도 약 25만명 정도 되는 대도시였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행전 기록에 따르면,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특히 두란노서원에서 1년간 말씀을 가르침으로 엄청난 부흥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사역하던 곳이기도 하고, 사도 요한이 장로로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초대 교부 폴리캅도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물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풀려난 후에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 소천할 때까지 교회를 섬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요한계시록은「에베소(후)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요한계시록 2~3장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은 네 문장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첫째, 내가 안다. 둘째, 그렇지만 책망한다. 셋째,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넷째, 이기는 자에게 약속한다.
오늘은 ‘내가 아노라’ 하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2:1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2:8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2:12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2:18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3:1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3:7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3:14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이 말씀들을 보면, 각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는 분은 분명 한 분이신데 각각 다르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 표현 자체가 각 교회의 처지와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표현들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창세기 1장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보면, 몇 가지 반복되는 표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각기 종류대로’입니다. 각기 종류대로 식물들을 만드시고, 각기 종류대로 바다의 생물들과, 각기 종류대로 하늘의 새들과, 각기 종류대로 육지의 동물들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획일적이거나 일률적이지 않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로 존재하셨고,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합의하여 창조 사역을 이루셨지만 결코 천편일률적으로 피조물들을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각자의 위치에, 각자의 필요에 따라 각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고 존중해주셨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찬양이 있듯이 우리들 각자 역시 그대로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창조가 완성되었을 때, 심히(아주 크게) 기뻐하셨다고 창세기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며, 시작과 끝이신 분이십니다. 이와 동일하게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와 같이 이 땅의 모든 교회를 그렇게 세워가시고 계십니다. 어느 모임 어느 교회도 똑같은 모양, 똑같은 형태로 존재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각자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대로 섬기고, 세워가기를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3을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지금 살펴보고 있는 ‘내가 아노라’ 할 때 ‘안다’라는 단어가 원어로는 εἴδω(아이도)인데 이는 ‘보다(see)’라는 의미와 ‘알다(know)’라는 의미를 같이 가진 단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 예수님께서 ‘내가 안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본다’라는 의미와 같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1장을 살펴보면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때론 핍박과 함께 죽음까지 당해야 했던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주님께서 보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아실 수 밖에요...
누군가 현재 나의 상태와 처지를 안다고 할 때, 여러분은 마음이 어떠실까요? 좋을까요? 나쁠까요? 그 누군가가 다름 아닌 하늘에 계신 주님이시라면 어떠실까요? 아마도 내가 잘 살고 있다면 이보다 더 위로의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살고 있지 못하다면, 또한 이보다 더 불편하고 부담되고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하늘에서 직접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주님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과 고난을 견디고 인내하고 있는지를 다(All, Everything)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칭 사도라 하는 자를 시험하여 그 거짓됨을 드러낸 것까지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결코 게으르지 않았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보시고, 또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표현입니까?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을까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께서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역시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9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환난을 당하고 있었고, 가난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특히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로부터 비방을 받았습니다. 세상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님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내가 안다. 내가 보고 있다.’
비록 그들이 환난과 핍박으로 궁핍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들이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이 부요한 자들일까요? 그 부요함은 다름 아닌 하늘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요한계시록 2:13입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어디에 사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곳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탄이 세력을 잡고 있었던 버가모에서는 인디바가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고, 알고 계십니다. 순교자가 나오는 순간에도 그들이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음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9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 역시 잘 알고 계셨습니다. 특히 그들의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위한 사업도, 주님을 향한 사랑도, 주님께 대한 믿음도, 주님을 위한 섬김도, 주님으로 인한 인내조차도 처음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요한계시록 3:1b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앞에서 살펴본 네(4) 교회와는 달리 사데 교회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다른 교회는 대부분 칭찬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사데는 이례적으로 처음부터 부정적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주님께서는 그들 역시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서는 아주 부정적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몸이 찟기고, 피를 흘리셨건만 지금 그들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같이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은 십자가 위에서 당하셨던 그 고통보다 더 쓰리고 아파하셨을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3:8~11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사데 교회로 인해 아팠던 주님의 마음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로 인해 위로를 받으시는 듯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에 칭찬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더욱 칭찬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인내의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빌라델비아라는 이름 속에 그 비밀이 있는 듯합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말은 ‘형제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가룟 유다가 떠난 후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만 당부하셨던 말씀, 곧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켰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을 지켜내기 위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인내하였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허물을 참고, 받아주고 인내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찌 이런 교회를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3:15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역시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께서는 그들 역시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무미건조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주님께도 속하지 못하고, 세상에도 속하지 못한 채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열왕기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이런 교회는 세상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사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통해 교회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전에 말씀드렸듯이, 성경기록은 우리에게 쓰여진 것이 아니고, 우리들을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즉 요한계시록은 1세기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본 것이구요.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측면으로도 조명해보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요한계시록 2,3장 1부 말씀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6.28 06:0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6.28 21:19
첫댓글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감추었던 만나와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신다고 했는데, 평범한 누구나 받을수 있는 것은 아니고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할머니나 어머니가 깊이 감추어두었다가 어여쁘고 귀한 자식에게 내어주시는 곶감이나 눈깔사탕에 비유?
사막에서 목마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시원한 생수처럼.. 누구에게나 흔히 값싸게 주어지는 것은 아닌듯한 생각이 듭니다.
모임전에 읽어보니 요한 계시록은 언제나 우리에게 긴장과 교훈을 주시는 귀한 은혜의 말씀입니다.
정성스레 정리하신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