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과 훈련의 차이 목회자가 어떠한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을 프로그램이라고 통칭하게 된다. 교회에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틀을 프로그램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전세계의 모든 교회는 공통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린다. 한국은 11시에 예배를 드리고 예배후 신자들이 함께 식사친교를 하게된다. 교회에 따라 식사후 성경공부 모임이나 성격에 따라 분류되는 소그룹 모임들이 시행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저녁예배로 모이게 된다.
왜 11시인가에 대해서는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아무래도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도입된 교회이니 미국스타일을 따르게 된다. 하지만 중국의 교회들은 9시나 10시에 주일예배를 시행한다. 각자의 생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농촌교회들은 9시예배를 드린 후 바로 농업에 종사하게 되니 그 시간을 선호하게 된다.
한국교회에는 외국의 교회에 없는 예배들이 추가된다. 주일저녁예배와 매일 새벽마다 드려지는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등등. 이러한 모임들은 외국교회의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러한 모임들을 결코 프로그램이라고 분류하지 않는다. 당연한 모임이라 정의한다.
영어를 배우려면 알파벳을 먼저 배워야 한다. 수학을 하려면 구구단을 외워야 한다. 가장 기초가 되는 바탕을 배워야 다음 단계를 터득할 수 있다. 성경을 이해하려면 문자만 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교리를 알아야 하고 성경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생활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 습관을 바꾸는 훈련이다. 술 담배를 가까이하는자는 금주와 금연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거짓말을 일삼는 자는 언어의 훈련이 필요하다.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던자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과 프로그램은 다르다. 프로그램은 기법의 전달이라면 훈련은 기법을 생활화하는 과정이다.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 훈련이다. 단순히 방법론만 전달한다면 교육으로서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거 말씀묵상(콰이어트타임)이 도입될 때 지나칠만큼 강요된 경향이 있다. 교육생은 교사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형식에 메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준비가 부족하다면 예수동행일기 역시 그런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러므로 정확한 훈련이 필요하다. 신자가 교육을 통해 예수동행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그는 동행일기를 작성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동행일기는 나눔방이라는 소그룹을 통해 공개를 하게된다. 공개라는 과정을 통해 다듬어지기도 하고 정제의 과정을 거치는 장점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보여주기"의 유혹에 넘어갈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그러므로 일기를 기록해야 할 이유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알파벳이나 구구단을 특별한 프로그램이라 말하지 않는다. 교육을 위한 기초과정이라 말해야 한다. 예수동행은 성경공부도 제자훈련도 아닌, 신앙에 입문하는 필수 교육과정이다. 어떤 과정이든 기초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에 소개된 프로그램은 지도자 자신의 자격에 대해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지도자가 실천하지 않는, 시범을 보일 수 없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 예수동행훈련은 지도자 자신의 모범이 첫째이다. 반드시 예수동행의 증거가 분명한 자라야지만 타인을 가르칠 수 있다.
예수동행일기 역시 지도자 자신이 몸소 시범을 보여야 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예수동행훈련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훈련이다. 그것도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다. 예수의 향기라는 표현이 있다. 신자가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살 때" 타인은 그를 통해 그 속에 예수가 함께함을 목격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향기이다.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냥 기독교를 사랑하는 사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정도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동행이다. 그리고 여기서 머무는게 아니라 매일의 생활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일기로 기록함으로써 결단에 대한 증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동행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