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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리핀 바기오의 모든 것 원문보기 글쓴이: 바기오현지인
어느새 코론에서의 마지막 다이빙 날이다. 재미있던 상갓 건보트와 함께 112m짜리 거대한 난파선인 '모라잔' 을 가보기로 했다. 모라잔에는 말로만 들었던 '에어포켓'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니!
코론 다이빙 여행 DAY 3
오늘의 난파선 포인트는 모라잔
오늘 첫 다이빙으로 갈 곳은 바로 Morazan이라는 수송선이다. 길이는 112m 폭은 13m인 선박으로 수심 12~26m에 위치해 있어 딱 부담없이 다이빙하기에 좋아 보였다.
우리가 난파선 다이빙을 좋아하자 테디 강사님이 오늘은 그럼 이 모라잔을 앞 뒤로 반반 나눠서 자세하게 보는게 어떻냐고 했다. 비슷한 크기였던 올림피아 마루는 뭘 봤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대충 훑어 본것 같아 아쉬웠는데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보는것에 우리 모두 찬성했다.
난파선 다이빙을 처음 나갈때와 달리, 이제는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다이빙 나가는 길이 편하고 설렜다.
장판처럼 파도 하나 없이 정말 잔잔한 바다가 우리를 반겼고, 오늘 처음 같이 다이빙을 하는 이제 막 어드밴스드를 딴 남자분 한분과 같이 다이빙 보트에 올랐다.
맨날 셋만 가다가 한명이 더 늘어서 그런가 배가 더 붐비는 것 같았다. 그만큼 얘기할 사람도 많아져서 더 재미도 있고!!
테디 강사님은 교육하는 분을 담당하고, 우리는 1년전에 같이 다이빙 했던 대만 출신 마스터 럼보와 같이 들어가기로 했다.
어제 그제 같이 다이빙 했던 지오강사님도 좋았는데, 왠지 1년전에 그 악조건에서 같이 다이빙하며 친해진 럼보랑 이번에 꼭 다시 같이 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럼보랑 같이 다이빙 하게 해달라고 졸랐었다. ㅎㅎ
진짜 오늘 바다는 파도가 하나도 없어 거울 속을 떠 다니는 것 만 같았다. 오늘은 조류가 좀 없었으면 좋겠네...
코론 다이빙 여행 DAY 3
침몰한 배의 승조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려와 달리 오늘은 조류가 별로 없었다. 그날 올림피아 마루 간 날이 특별하게 조류가 센 날이었나보다.
조류가 없으니 편하게 하강하면서 내려갈 수 있었다. 수심 20m쯤에 가라앉은 배는 수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입수후 한 7m쯤 내려가면 바닥에 검은 거대한 물체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판에 자라고 있는 산호들 때문에 옷을 갈아입어 완벽한 배의 모습을 하고있지는 않다. 하지만 조금 더 내려가다 보면 선실과 마스트 등의 배의 구조물들이 보이면서 비로소 배의 형체를 알 수 있다.
모라잔은 옆으로 넘어져있는 배라 옆으로도 갑판으로도 출입이 가능했기에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줬다. 이런 배니까 아직 난파선 초보인 우리들을 데리고 왔겠지?
으스스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갑판 밑으로 들어가봤다. 폭격으로 찢어지고 갈라진 배에는 정신없이 흩어진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해골은 없었다.
이정도 규모의 배면 승조원이 꽤 될꺼고 2차대전 전쟁중이었으니 폭격이나 익사 등의 이유로 사람들이 꽤 많이 죽었을 것 같은데 해골이 없는게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가지고 갔으려나?
이에 대해 강사님한테 물어보자 생각보다 폭격으로 승무원들이 많이 죽지는 않았다고 했다. 배들이 섬 근처에 정박된 상태라 배가 침몰하자 대부분은 섬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언제 공습이 끝나고 미군이 직접 이 섬으로 와 자신들을 죽일 줄 모르니 섬에 있는 바위틈이나 동굴에 꼭꼭 숨어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새벽에 몰래 나와 사냥을 하거나 민가를 습격해서 식량을 공급했다고 하는데.
일본이 패망하여 전쟁이 끝난지도 모른채 수십년을 이 섬에 숨어 살다가 죽어간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해골을 보려면 바다가 아닌 섬 속에 있는 동굴로 가야 한다고 했다.
동굴에 숨어 살던 일본군은 동굴 밖으로 먹고 남은 동물의 뼈다귀조차 버릴 수 없었다. 은신해 있는 곳이 발각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배설도 안에서 음식도 그 곳에서 해결해야 했다고 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전쟁의 참혹함은 사람이 죽는것 이 것 뿐이 아니었다.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 그게 제일 전쟁의 참혹함이 아닐까 싶다.
코론 다이빙 여행 DAY 3
생전 처음보는 에어 포켓
이런 비참하고 가슴 아픈 얘기들 듣고 다이빙을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솔직히 이 모라잔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긴 했는데 뭐가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에어포켓 때문이었다. 수심 20m쯤에 있는 오래된 에어 포켓. 세월호 사건이 아니었다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에어 포켓'이라는 단어.
수십년간 갇혀있는 공기이기에 마시면 절대 안된다는 당부를 듣고 에어포켓을 만나러 좁고 컴컴한 배 안을 여기저기 헤집으며 들어갔다.
어느 순간 정말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공간에 도착했고, 머리 위를 향해 랜턴을 비추자 수면이 보였다. 뭐? 수면??
원래는 햇빛을 받아 찰랑거리는 수면과 똑같은 파장이 랜턴 빛에 생겨 머리 위에 있었다. 아 여기가 에어 포켓이구나!!!
잠깐 BCD에 공기를 넣고 떠올라 봤다. 물 속에선 느껴지지 않는 머리카락의 무게가 느껴졌다. 정말 신기했다. 에어 포켓의 공간은 한 2평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정말 물속에 공기가 있었다.
다이브 컴퓨터를 물 밖으로 올려봐도 보니 수심은 14m를 가리키고 있었다. 와 진짜 신기했다.
그런데 에어포켓을 경험하고 나니, 세월호 사건때 에어포켓이 있으니 생존가능성이 있다고 했던 말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에어 포켓에 있어도 구명조끼 없이 물 위에 떠있는 것 자체가 계속 발장구를 치고 수영을 해야 했기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나같이 다이빙 장비를 다 착용한 경우에는 부력을 조절할 수 있지만 구명 조끼 없이 에어포켓에서 1시간 이상 생존하는건 불가능해 보였다.
운좋게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배가 전복될 걸 예측하고, 배 밑 제일 깊은 곳까지 내려가 기다리고 있지 않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에어 포켓이 생성된 곳까지 구명조끼를 가지고 물이 차있는 통로를 잠수해서 가는건 사실 불가능하다. 구명조끼를 끌어안고 잠수하는게 얼마나 힘든데.. 거기다 찬 물에서...
암튼. 그 말 많았던 에어포켓을 보니 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현실은 내가 듣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혹한 것 같다.
이렇게 모라잔을 두번 들어갔다 나왔다. 깜깜하고 차갑고 모든게 부서지고 망가진 난파선에서 나와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배 위에서 수면 휴식을 취하니 여기가 천국인 것 같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평범한 상황으로 바뀌자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순간이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코론 다이빙 여행 DAY 3
다시 찾은 상갓 건 보트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 상갓 섬. 이틀 전에 왔을때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아마 그때는 난파선 다이빙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겁을 먹고 있었나보다.
오전에 두번의 모라잔 다이빙을 했으니, 상갓 건보트 포인트에 도착후 점심을 먹으며 잠시 수면휴식을 취했다.
오늘 역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점심상이 차려졌다. 진짜 이 사랑다이빙에서 다이빙을 하면 단백질이 모자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오늘 메뉴만 해도 유니콘 피쉬, 왕새우 구이, 닭다리, 삼겹살 이렇게 육해공의 모든 단백질이 메인으로 있고, 시금치와 가지 양파와 오이 그리고 쌈채소로 비타민과 섬유질까지.. 가히 완벽한 식단이다.
다이빙 하고 나면 물이 섞인 공기를 많이 마셔서인가 그렇게 배는 고프지 않은데 또 부실하게 먹으면 오후 다이빙 할때 힘이 없긴 하다. 원래 물놀이가 에너지 소모가 크니까!!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오랫만에 가져온 드론을 띄웠다. 아름다운 이 상갓 섬의 바다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슬기와 윤식이가 급히 오리발을 신고 물로 뛰어 들었다.
왜 그렇게 급히 물에 들어가냐고 물어보니 물 속에 배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오~!! 나도 따라 들어가고 싶었는데 일단 힘들게 띄운 드론.. 최대한 써먹어야 하기에 배 그처로 드론을 조종해 배 밑을 살펴봤다.
하늘에서 직부감으로 보니 배 밑에 또다른 배 하나가 그 모습을 희미하게 드러낸 모습이 보였다. 저 배가 상갓 건보트 일 텐데.. 배의 길이는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보다 약간 긴 정도.
물속에서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다른 팀이 지금 다이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이버들을 스노클링 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ㅎㅎ
상갓 건보트는 이틀 전에 했던 곳이라 이번 다이빙에는 크게 신기하거나 막 멋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때는 약간 공포의 대상이었던 창문과 좁은 통로가 이번에는 놀이터 처럼 느껴졌을 뿐!!
최대한 핀질을 덜 하며 부유물을 조금 일으키면서 돌아다니는 연습을 했고, 창문과 입구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중성부력으로 좁은 곳을 통과하는 연습을 했다.
어차피 여기는 배의 구조도 단순하고, 수심도 얕아서 체크다이빙을 할 만큼 쉬운 곳이고 수심도 낮고 조류도 없어 어느 순간 부터는 그냥 알아서 놀았다.
함포속에 자라는 말미잘과 산호를 구경하기도 하고 가라앉은 바닥 속에는 뭐가 있는지 땅을 파 보기도하고.. 그냥 그렇게 최대한 오래 있을 수 있을 만큼 오래 있다가 물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 다이빙. 시간과 돈과 기회가 된다면 물론 다시 코론을 가고 싶지만 이제 한동안은 다른 곳을 돌아다녀도 될 것 같다.
작년에 실패한 난파선 다이빙이라는 숙제를 이번 코론 여행을 하면서 풀었으니!!!
여행일자 : 2019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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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리핀 바기오의 모든 것 원문보기 글쓴이: 바기오현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