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7 - 7. 3 경인미술관 제6전시관(T.02-733-4448, 인사동)
"향기"
고수영 개인 조각전
글 : 김향금(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장)
조형작가 중에서 물성을 이용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와 물성에 의지하지 않고 새로운 성질을 만들어 내거나 역이용하는 작가들이 있다. 이 두 가지의 방법 중에 어떤 방법이 작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먼저 물성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것이 현대에 와서 조금은 고리타분하게 느껴 질 수도 있겠지만 변형도 본질적인 것을 이해하는 깊이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가벼워 질 수 있는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다.
주제나 물성을 선택하는 데도 작가의 주관과 기질이 작용한다. 그리고 환경 역시도 그 몫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에는 카라라(Carrara)라는 산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대리석을 가지고 있는 그곳은 미켈란젤로의 산이라고도 불려 지기도 한다. 고대부터 르네상스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건축물과 예술품의 재료로 쓰여 진 카라라의 거대한 대리석을 처음 마주했을 미켈란젤로를 상상해 보면 작가라면 누구나 경이 그 자체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고수영은 자연적인 재료에서 영감을 받고 그것을 조형화하는 작가이다. 그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의 작업이 재료적인 이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국립미술아카데미 조각과를 졸업하여 대리석이라는 재료가 친숙할 수도 있었겠지만 화강석을 사용하기도 했다. 6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그가 몇 년간 작업해왔던 추상적인 표현은 ‘연기시리즈’로 만들어 졌는데 그 때의 재료는 대리석이 아닌 화강석이었다. 연기시리즈가 거친 화강석이라는 물성위에서 좀 더 힘 있는 조형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추상적인 연기시리즈가 가장 그를 닮은 듯하다. 연기의 이미지를 거친 화강석을 이용하여 함축적인 조형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힘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미처 표현하지 못한 부드러움이 있다. 부드러운 내면이 표현되어져 나온 작품이 ‘향기시리즈’이다. 꽃과 연기의 이미지를 구상과 추상으로 조형화한 향기시리즈로 작가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세상에 물들지 않는 순수함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 심성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작가는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작품 속의 ‘향기시리즈’는 이전의 향기와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중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도록 친숙한 재료의 하나인 돌을 선택했다. 작업의 이미지와 대리석이 하모니를 이루어 일상에 놓여 지기를 원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성 때문에 잃어버리게 되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상적인 소재와 향기를 접목시켜서 작업을 한다. 마치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장미꽃이 작은 위로가 되듯이 일상의 소재인 고양이, 자동차, 집 등에 장미꽃을 선물마냥 매달아서 건네는 것이다.
위로하고자 하는 이면에는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사실은 위로받음과 위로함은 똑같을 수도 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우리 사회가 준 어떤 이질감이 그를 잠시나마 고립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 자신에게서 시작한 에너지의 흐름이 세월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타인과의 관계맺음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에서 어떤 긍정성이 엿보여 진다. 언젠가는 자신의 모습을 많이 닮고 있는 연기시리즈로 대중성이라는 고민마저 털어낼 수 있을 정도의 작가로 성장하길 바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카라라(Carrara)라는 거대한 대리석 산을 아는 이는 많을지 몰라도, 카라라 산에서 돌을 옮겨 나르는 수고를 마다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고. 그리고 그 거친 돌조각을 쉼 없이 사포질을 하면서 염원을 가지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련다.
그것으로 당신의 위로는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