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내 안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해주십니다.
그런데 정작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뿌려진 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말씀'이 '씨앗'으로 뿌려졌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뿌려진 씨’는 사람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뿌려진 씨’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뿌려진 하느님의 씨앗’입니다.
‘밭’이 아니라 ‘씨앗’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아들어야 할 것은 말씀이 열매가
아닌 ‘씨앗’으로 뿌려졌듯이, 사람도 열매가
아니라 ‘씨앗’으로 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사된 선물일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맺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우리에게 결실을 맺어야 할
‘소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 ‘소명’은 자신이 원하는 열매가 아니라,
씨앗(말씀)이 원하는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곧 우리 자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뿌려진 씨앗(말씀)을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이처럼 말씀은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도구로 하여 당신의 뜻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 ‘소명’은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이라는 환경(조건)과의 관계에서 맺는 결실입니다.
곧 ‘길’, ‘돌’, ‘가시덤불’, ‘좋은 땅’과의 관계 안에서 맺는 결실입니다.
예컨대, 씨앗을 물어가는 ‘새’(악한 생각)와,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막는 ‘돌’(시련과 박해)과,
씨앗을 숨 막히게 하는 ‘가시덤불’(재물과 유혹)
등과의 관계 안에서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이는 우리가 형제와 더불어 구원의 길을 함께
가도록 짝 지워진 구원의 동반자요,
동행자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형제나 공동체가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협조자’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형제나 공동체가 열매를 맺도록 자신이 거름이 되는 것,
죽어 거름이 되는 것, 그리스도처럼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일’입니다.
한편 우리는 밭이 씨앗을 일구는 줄로 알지만,
사실은 씨앗이 밭을 일굽니다.
씨앗이 밭을 규명하는 것이지,
밭이 씨앗을 규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곧 밀 씨가 뿌려지면 밀밭이 되고, 콩이 뿌려지면 콩밭이 됩니다.
돌이 깔려 있으면 돌밭이 되고, 가시덤불이 덮고 있으면 덤불밭이 됩니다.
쓰레기가 가득하면 쓰레기밭이요, 똥이 뿌려지면 똥밭입니다.
그러니 결코 밭이 스스로 밀밭이 되거나 콩밭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지금 내 안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내가 어떤 밭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곧 내 안에 말씀이 자라고 있으면 향기를 뿜는 좋은 밭이요,
쓰레기로 쌓여 가고 있으면 온갖 악취가 뒤범벅이 된 오물 밭일 것입니다.
옛 교부들은 “그리스도인은 한 권의 책, 곧 한 권의 복음서다.”라고
표현했으며, 특히 “성모님은 말씀의 도서관이다.”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분 안에는 말씀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안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고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요?
말씀이 자라고 있는 ‘말씀의 도서관’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욕망이 자라는 잡초밭인가요?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마태 13,23)
주님!
좋은 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좋은 땅일수록 뿌린 씨앗만이 아니라 뿌리지 않은 잡초도 잘 자라기에
시련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열매를 맺는데 당연히 있기 마련인 죽음의 길에서 도망치지 않고,
어떤 처지에서도 방관자로 살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기꺼이 죽어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