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앰버슨가
1942년 미국영화
각본, 감독 : 오손 웰즈
편집 : 로버트 와이즈
음악 : 버나드 허만
출연 : 조셉 코튼, 돌로레스 코스텔로, 팀 홀트
앤 백스터, 아그네스 무어헤드, 레이 콜린스
리처드 베넷
'맹크' 개봉 기념으로 오손 웰즈의 걸작 한 편 리뷰합니다.
1942년 작품 '위대한 앰버슨가' 입니다. '시민 케인'에 이어서 만든 오손 웰즈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입니다. 정말 오손 웰즈는 확실한 천재입니다. 미국 영화역사에 과연 이런 천재가 있었을까요? 존 포드, 윌리암 와일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거장들은 경험을 쌓으면서 무르익어간 장인 이었지만 오손 웰즈는 그냥 천재입니다 '위대한 앰버슨가'를 발표할 당시 27살이었습니다. 놀랄것도 없긴 하겠네요. 26세에 이미 '시민 케인'을 만들었으니, 그렇지만 그 차기작에서 대중성이 좀 더 높아지고 규모는 소박해지고, 내용은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해진 영화 '위대한 앰버슨'은 정말 인생경험 산전수전 다 겪은 장인의 관록이 보이는 느낌입니다. 물론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이런 감동적이고 따뜻한 연출은 20대 신인 감독이 쉽게 할 수는 없죠.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서 물질문명 시대로의 변화입니다. 자동차, 전기의 활성화로 마차가 사라지고 기업과 산업이 발달하면서 구식으로 살아가는 가문은 사라지거나 몰락하기 마련입니다. 그 격동의 시기에서 한 남자의 오랜 세월에 걸친 지고지순한 사랑과, 철없던 청년의 성숙해가는 과정을 잔잔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대한 호화저택으로 이루어진 앰버슨가, 그 집은 앰버슨 대령의 소유이고 아들 잭과 딸 이사벨(돌로레스 코스텔로)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웃의 청년 유진(조셉 코튼)은 이사벨을 사랑했지만 세레나데를 불러야 할 순간 넘어져서 첼로를 부서뜨리는 실수로 이사벨을 실망시킵니다. 이후 이사벨은 윌버 미내퍼 라는 남자와 결혼합니다. 이사벨과 미내퍼 사이에서 태어난 조지는 악동으로 마을 사람들의 공분을 삽니다. 하지만 조지는 자라면서 그런 못된 행실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이 되어 돌아온 조지(팀 홀트), 그를 환영하는 파티에서 오랜만에 자동차 공장 사장으로 변신한 유진이 딸 루시(앤 백스터)와 함께 나타났고 조지는 루시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후 사업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던 윌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미망인이 된 이사벨에게 유진은 자주 만남을 갖습니다. 조지는 루시에게 청혼을 하려고 하지만 루시는 아버지와 이사벨의 관계를 알고 일부러 기피합니다. 조지는 고모인 패니(아그네스 무어헤드)로부터 이사벨과 유진의 관계를 알게 된 다음부터 노골적으로 둘의 관계를 방해합니다. 이사벨과 유진은 괴로워하지만 조지를 위해서 이별을 견디고 이사벨은 아들 조지와 기약없는 세계여행을 떠납니다. 이후 병약해진 이사벨이 돌아온 뒤 숨을 거두고 조지는 어머니의 죽음과 고모의 파산을 겪으면서 유진과 어머니의 사랑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이루지 못한 지순한 사랑, 그런 삶과 세월이 흐르면서 성숙해가는 모습을 다룬 휴먼드라마로서의 완성도를 갖춘 내용입니다. 그런 내용을 기반으로 담고 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변해가는 문명화 되는 세상속에서 서서히 몰락해가는 구식 집안 앰버슨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앰버슨가는 마을에서 선망하는 거대한 저택과 재산을 소유한 가문이었는데 망나니로 자란 조지는 아무런 직업도 갖지 않고 놀고 먹으려는 청년이었고, 반면 조지의 어머니 이사벨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유진은 미래사업인 자동차의 생산으로 점차 부유하게 됩니다. 구세대의 상징 앰버슨 가문, 그리고 미래시대의 사업으로 번창하는 유진, 이 두 가문의 관계에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모두 사랑을 하지만 이루어가지 못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유진과 이사벨은 젊은 시절과 중년이 된 시절을 넘어서면서 계속 사랑을 갈구하지만 끝내 이루어내지 못한 애틋함을 보여줍니다. 이사벨이 미망인이 되어 유진에게 새로운 기회가 오는 듯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방해하는 아들 조지와 이사벨의 병환으로 이루지 못하지요. 조지 역시 망나니였지만 유진의 딸 루시를 향한 사랑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루시의 기피로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지요.
마차 시대에서 자동차 시대로의 변화, 그리고 고전적 저택에서 도시형 건물로 바뀌는 변화를 보여주면서 명문가였던 한 가문의 엔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년기까지 자기만 아는 망나니였지만 어머니의 죽음과 고모의 파산 이후에 철들어가는 조지 라는 인물이 겪는 삶의 변화도 나타내고 있지요.
'시민 케인'으로 36세 늦깍이 데뷔를 한 조셉 코튼이 그 영화에서는 조연이었지만 이번에는 주인공 비중으로 격상되어 사업의 성공과 사랑의 아픔을 겪는 핸섬한 신사 유진을 연기합니다. 상대역인 이사벨 역은 무성영화 시대 배우인 돌로레스 코스텔로. 그리고 역시 '시민케인'에서 41세의 나이로 데뷔한 아그네스 무어헤드가 이사벨의 시누이 패니로 등장하는데 노처녀이면서 유진을 은근 사모하지만 올케언니 때문에 바라만 봐야 하는 역할을 합니다. 등장인물들이 각각 바라보는 상대에 대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내용들이 펼쳐지지요.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들과 오손 웰즈 영화를 통해서 뒤늦게 발탁된 배우들의 경연입니다. 유진의 딸 루시로 등장하는 앤 백스터는 조셉 코튼과 연인으로 나와도 될만 했지만 아버지와 딸로 등장하고 당시 앤 백스터는 19살의 신예였습니다. 별 매력이 없고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배우인데 의외로 오래 주연급 배우로서의 위치를 이어가며 '십계'같은 5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대작에도 여주인공을 맡았습니다. 1950년 출연한 '이브의 모든 것'에서의 성공이 제법 오래 가는 배우로서의 디딤돌이 되었지요. 조셉 코튼은 청년과 중년을 모두 연기하는데 핸섬하고 신사다운 이미지 때문에 이후에도 로맨스 멜러물에 어울리는 배우로서 1953년 '나이아가라'까지 전성기를 이어갑니다.
수십년 세월을 다룬 깊이있는 드라마를 20대 중반의 오손 웰즈가 격조있게 그려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20대 증반 오손 웰즈의 머리속에는 이미 산전수전 겪어온 인생의 관록이 묻어있었는지 데뷔작 '시민 케인'도 그랬지만 2번째 작품에서는 더 성숙된 연출을 보여준 셈이지요. 오손 웰즈는 배우로서 출연은 안했지만 직접 나레이션을 하고 엔딩에서는 배우와 스탭진을 나레이션으로 소개하기까지 합니다.(이런 방식은 '심판'이라는 영화에서도 쓰였지요)
이 영화 역시 아카데미 후보에 다수 부문이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오손 웰즈가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로 취급받지 않고 '시민 케인'이나 이 영화로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수상했다면 이후의 위상이나 행보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 영화도 '시민 케인'에 이어서 RKO 라디어 픽쳐스에서 배급했고 '시민 케인'에서 편집을 맡았던 로버트 와이즈가 다시 편집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로버트 와이즈 편집버전은 132분, 오손 웰즈가 원한 버전은 110분 정도인데 결국 최종 결정된 88분 버전이 지금 볼 수 있는 버전입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담은 영화치고는 매우 짧은 러닝타임이지요. 아마도 로버트 와이즈 버전이나 오손 웰즈의 뜻대로 편집된 버전이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당시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고 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이후라서 영화를 밝게 만드는 걸 선호한 영화사에서 어두운 장면들을 많이 잘라낸 것으로 알려졌고, 잘린 원본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복원본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시민 케인' 과 '위대한 앰버슨'을 함께 한 로버트 와이즈와 오손 웰즈는 편집 문제로 사이가 갈려져서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고 하고, 조셉 코튼과 오손 웰즈는 1943년 차기작에도 함께 작업했고, 1949년 '제 3의 사나이'에서 함께 공연했을 만큼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한 때 오손 웰즈 감독 영화에서 편집을 맡았던 로버트 와이즈가 이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는 거장이 되었으니, 단역, 조연 배우를 전전하게 된 오손 웰즈와 위치가 뒤바뀌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두 거장은 모두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매우 위대한 영화인으로 모두 인정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의도대로 편집된 버전이 아닌 '위대한 앰버슨'은 훌륭한 영화임에도 그런 아쉬움이 남은 작품입니다.
ps1 : '시민 케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미개봉된 영화인데 1940년대 태평양 전쟁시대에 발표된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 많이 개봉이 안되었습니다. 당시의 몇년이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잃어버린 시대였지요.
ps2 : 아그네스 무어헤드 역시 오손 웰즈 차기작에 등장하는데 결국 비중있는 악녀로서 자리를 잡은 것도 데뷔초기에 오손 웰즈의 영화들을 통해서 얼굴을 알린 덕분인 셈이죠. 오손 웰즈가 배우로만 출연한 '제인 에어'에도 아그네스 무어헤드가 출연했으니 두 사람의 인연도 각별하네요.
ps3 : 영화 초반에 남자의 의상, 모자, 구두 등의 변화를 통해서 시대가 달라지는 부분을 나레이션과 같이 보여주는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출처] 위대한 앰버슨가(The Magnificent Ambersons, 42년) 오손 웰즈 감독 수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