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10月 28日(水曜日)
1.본문:雅歌 5章1〜16節
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5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7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8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9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10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
11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15 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생김새는 레바논 같으며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16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2. 시작기도
아버지….
오늘도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주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상황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아가서 5장은 사랑하는 자의 방문과 사랑받는 자의 추적을 노래한다. 심야의 방문과 사라짐(5:2-8), 사랑하는 자에 대한 묘사(5:9-16)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는 잠자리에 들었으나 마음은 깨어 있었다. 남자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간청하지만, 여자는 이미 옷을 벗고 발을 씻었다는 핑계로 망설인다. 남자가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여자의 마음은 사랑에 젖어 문을 열고 일어선다. 그러나 남자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여자는 밤거리로 그를 찾아 나섰다가 파수꾼들에게 맞고 겉옷까지 찢기는 수모를 당한다. 이 장면은 제의적 표현으로, 지하계의 파수꾼들이 남신을 찾는 여신을 능욕하는 모습과 닿아 있다. 3장에서처럼 여자는 찾고 또 찾지만 도리어 봉변을 당한다. 상처 입은 여자는 예루살렘 딸들에게 사랑의 병을 앓고 있다고 그에게 전해 달라고 간청한다.
딸들은 그 남자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자는 그가 일만 명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답하며 그의 몸을 금과 상아, 사파이어, 대리석에 비유한다. 이 묘사는 "그의 전체가 아름답다"는 고백으로 요약된다. 딸들이 그가 어디로 갔는지 묻자, 여자는 그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양떼를 먹이고 백합을 따고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고백한다. 이는 2:16을 떠올리게 하며, 찾는 자와 찾은 바 된 자의 연합을 가리킨다.
사랑하는 자가 문을 두드리는 장면(5:2)은 계 3:19-20의 말씀을 암시한다. 주님은 사랑하는 성도를 책망하고 징계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신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고, 누구든지 문을 열면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겠다고 하신다.
오늘도 신랑 되신 주님은 다른 신랑을 두고 있는 성도를 찾으신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의 눈으로는 부요했으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가련하고 눈멀고 가난하고 벌거벗은 자들이었다(계 3:17). 이들은 주님과의 교제를 떠나 하늘의 부요함을 알지 못했고, 그 자리를 세상의 존재물로 채우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성도의 영적 상태이기도 하다.
주님과 먹고 마시는 교제가 없는 신앙은 존재물을 즐거워하거나 종교 행위로 자기 의를 높이는 데 머문다. 경건의 정상에 선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았으나 결국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한 자들이었다(눅 16:14-15). 그러나 이들 또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고 대신 죽으신 형제들이다. 자신의 벌거벗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은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신다. 이 은혜를 먼저 받은 자는 자만하지 않고, 뒤에 이 은혜를 받을 자들을 위해 주님의 긍휼을 구하게 된다.
4. 나의 묵상
밤이 깊었다. 하루를 마친 여인이 불을 끄고 누우니 온 집 안이 고요하다. 그때 문 밖에서 가만히 인기척이 난다. 낯익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여인을 부른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구나"(2절).
그분은 밤이슬에 흠뻑 젖은 채 서 계신다. 동산에서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꿀과 포도주를 차려 놓으신 그분(1절)이, 이제는 여인을 찾아 문 앞까지 오신 것이다. 이 밤중에,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해서.
그런데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이러하다. "벌써 옷을 벗었는데 어떻게 다시 입어요. 발도 씻었는데, 또 더럽히기는 싫어요"(3절).
바깥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문틈으로 손 하나가 들어온다(4절). 돌아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내밀어진 손이다. 그 손을 본 순간 여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마음이 움직인다. 여인은 일어나 문으로 달려가 빗장을 잡는다. 그 손에서 몰약 향이 배어나 문빗장 위로 뚝뚝 떨어진다(5절).
문을 활짝 열었으나 아무도 없다. 그분은 이미 물러가신 뒤였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이름을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고, 어둠 속을 더듬어 찾아도 만날 수 없다(6절). 조금만 일찍 일어났더라면, 조금만 덜 머뭇거렸더라면.
여인은 겉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밤거리로 뛰쳐나간다. 골목마다 그분을 찾아 헤매는데, 성을 순찰하던 파수꾼들이 여인을 붙잡아 때려 상하게 하고 겉옷마저 벗겨 간다(7절). 사소한 편의를 먼저 챙긴 대가가 이토록 아프다. 찬 돌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던 여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너희가 그분을 만나거든 전해 주렴.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8절).
이 여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주님이 부르시는 기척을 느끼고도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이 일만 끝내고요" 하며 돌아누운 밤이 나에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적으로 깊어지는 일보다 내 페이스와 익숙한 루틴, 소소한 안락을 지키는 쪽을 택한 날들이었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누군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교회 안에 있고 조직도 규칙도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돌아가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그리스도는 마음 바깥에 세워 둔 이들의 이야기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러했고, 어쩌면 내가 그러했다.
주님과의 교제가 식자 내 마음 한가운데 구멍이 뚫렸고, 나는 그 구멍을 규칙을 지키는 일과 열심히 봉사하는 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으로 틀어막아 왔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다"고 안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충만함이 아니라, 차갑게 식어 버린 관계와 고독을 가리는 번듯한 간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는 높임을 받았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했던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눅 16:14-15).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소망으로 끝난다. 내가 편의와 두려움 때문에 문을 걸어 잠갔어도, 그분은 여전히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누구든지 문을 열면 들어와 더불어 먹고 마시겠다고 하신다(계 3:20). 내 벌거벗음이 해결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문만 열면 된다고 하신다.
그러니 이 은혜를 먼저 받았다고 자만할 수 없다. 나 역시 문을 늦게 열었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주님이 끈질기게 찾아와 주신 덕분이다. 그래서 아직 문을 열지 못한 이들, 종교적 열심이라는 간판 뒤에서 홀로 외로워하는 형제들을 정죄하기보다 주님의 긍휼을 구하게 된다. 그들 또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고 대신 죽으신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여인에게로 돌아온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묻는다.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9절). 여인은 상처 입은 채로, 그러나 오히려 또렷해진 눈으로 대답한다. 그분은 일만 명 중에 뛰어나신 분이라고(10절). 머리는 순금 같고,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고, 입은 심히 달콤하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한다. "그 전체가 사랑스럽다"(16절). 찾아도 만나지 못한 아픔 속에서 그분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더 선명해진 것이다.
나도 이 고백을 배우고 싶다. 효율과 정답, 안전한 일상의 테두리 안에 갇혀 가는 나를 향해, 이 오래된 이야기는 지금도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으로 묻고 있다. "너는 지금 누구에게 문을 열고 있느냐"고.
5. 묵상기도
아버지…
밤이슬에 젖으면서까지 저를 찾아오시고, 제가 머뭇거리는 순간에도 문 밖에서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조금만 더, 이 일만 끝내고"라며 돌아누웠던 수많은 밤에도, 주님은 문틈으로 손을 내밀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아버지…
제 안의 구멍을 규칙과 봉사와 사람들의 인정으로 틀어막으며 스스로 안심해 온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과 먹고 마시는 교제 없이도 괜찮은 것처럼 살아온 저의 모습을 용서해 주옵소서. 편의와 두려움 때문에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오늘 다시 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벌거벗음을 그대로 아시는 주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오니, 들어오셔서 저와 더불어 먹고 마셔 주옵소서.
아버지…
이 은혜를 먼저 받았다고 자만하지 않게 하시고, 아직 문을 열지 못한 형제들을 정죄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 또한 주님이 사랑하시고 대신 죽으신 이들임을 기억하며, 그들을 향한 주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옵소서. 일만 명 중에 뛰어나신 주님의 아름다움이 제 삶에서 더욱 선명해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주님의 음성이 들릴 때마다 지체하지 않고 문을 여는 제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