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시월의 한기 속에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어스름의 미세한 입자들이
한기에 떨며 부유하고 있었다.
어스름의 부유는
바람의 흔적과도 다르고
안개의 자취와도 다르다.
바람은 일정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단조로운 질서를 지키고,
안개는 잠긴 듯한 무거운 꿈틀거림 속에서
농도가 다른 층을 이룬다.
그런데 어스름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땅 넓이만큼 내리는 것이며,
농도가 다른 층을 이루는 아니라
전체가 서서히 변색해 가는 것이었다.
벌교의 어스름은
언제나 두 곳의 하늘로부터 내려
하나로 어울러졌다.
제석산, 정광산, 금산이 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과
긴 포구를 짓고 있는
바다 쪽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스름이
땅과 물의 경계 그 어디쯤에서
포옹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벌교의 어스름녘은
환상적인지도 몰랐다.
태백산맥 제 1부 한의 모닥불../ 8. 이념 이전의 인간 중에서
첫댓글 제석산, 정광산, 금산이 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과
긴 포구를 짓고 있는
바다 쪽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스름이
땅과 물의 경계 그 어디쯤에서
포옹을 하는 것 같았다..(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