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기린
아빠가 어렸을 때 봤던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의 문제가 답과 함께 아직도 기억이 나는구나.
“사람의 목뼈는 7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기린의 목뼈는 몇 개인가요?”
이 문제였는데, 질문자의 의도를 눈치챘다면 답인 7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야.
아무튼 아빠는 그걸 보고 나서, 모든 포유류의 목뼈는 7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목이 그렇게 긴 목도 똑같이 7개…
그게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어.
목뼈 하나하나가 길면 되지, 개수가 뭣 중요하겠니.
길쭉하게 빼어난 몸매와 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큰 눈을 가지고,
때론 우아하게 걷고, 때론 열정적으로 달리는 기린.
기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구나.
특히 어린 아이들도 더욱 더…
너희들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원에서 만난 기린의 모습에 웃음꽃을 피웠잖니.
…
그렇게 어렸을 때 기린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만큼의 기린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런데 이번에 아빠가 읽은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의 지은이 군지 메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기린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셨나 보구나.
18세가 되고 나서 평생 기린 연구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구나.
기린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린의 생태를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린 몸 자체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기린을 해부하는 일도 해야 하는 거지.
음, 보통 동물들을 좋아하는 것은
살아 있는 귀여운 모습들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데,
죽음 시체의 모습, 그리고 그걸 칼로 직접 해부한다고 하면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하구나.
1. 여덟 번째 목뼈
막상 기린을 연구한다고 하니,
연구할 것은 참 많았어.
우리가 생각해봐도 다른 동물들과 달리 기린 만의 유별난 특징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기린은 왜 목이 길어졌을까?
기린은 긴 목을 어떻게 움직이고 지탱하고 있을까?
기린의 목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그 외 여러 가지…
이런 것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기린을 해부해야 하는데,
그럼 기린의 시체들은 어떻게 구하게 될까.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기린을 볼 수 있는 곳은 동물원뿐이야.
그래서 동물원으로부터 기증을 받는다고 하는구나.
지은이 군지 메구는 10년 동안 30마리의 기린을 해부했다고 하는구나.
기린이 예고를 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서,
기린의 죽음 소식, 그러니 기린의 해부 일정은 예측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의 스케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대.
기린이 죽고 나서 오랫동안 방치하지 못하고 바로 해부를 해야 하니까 말이야.
기린이 크다 보니 무니 무게도 엄청 나갔어.
기린 전체를 온전하게 운송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죽은 기린은 늘 몇 부분으로 절단되어 나뉜 다음 배달이 된다고 하는구나.
보통 머리랑 목이 한 덩어리,
그 밖에 몸통 부분, 다리 부분 등이 나뉘어 배달이 된대.
너무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해 주다 보니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니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이 책은 너희들과도 함께 읽어보려고 산 것이지만,
이런 리얼한 잔인함 때문에 아직 어린 너희들에게는 추천해주고 싶지 않더구나.
아무튼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은이 군지 메구는 기린의 목에 대한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것이 목뼈, 그러니까 경추와 연결된 흉추에 있지 않을까 의심했어.
그래서 기린의 온전한 시신을 받아서 연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그런 지은이의 뜻을 이해한 한 동물원에서 협조를 받아서,
분리된 시신이 아닌 온전한 기린 시신을 받았어.
그리고 군지 메구는 드디어 발견하게 된단다.
기린이 그 긴 목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를 말이야.
그건 바로….
8번째 목뼈의 발견….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린의 제 1 흉추가 목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단다.
흉추는 원래 움직이지 않는데,
기린의 1흉추는 마치 목뼈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군지 메구는 해부를 통해 1흉추를 움직이게 하는 근육을 발견함으로써,
기린이 스스로 1흉추를 움직여서 마치 8번째 목뼈처럼 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야.
군지 메구의 10년 기린 해부의 여정의 결실이라고 하는구나.
…
이 책은 기린 덕후라고 할 수 있는 군지 메구의
기린에 대한 연구와 결실을 정리한 책으로
한 사람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단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아쉬움 점이 많았어.
과학 관련 책이긴 하지만 너무 사실에 대해서만 기술했다는 거야.
논문도 아니고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한 글인데 말이야.
물론 개인적인 에피소드들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도 사실을 바탕한 글들이었어.
과학 교양서가 좀더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감성의 글들이 포함되어
읽은 이로 하여금 감정을 마사지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점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 이건 아빠의 기준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너희들이 나중에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
자, 그럼 오늘은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기린이 죽었습니다.”
책의 끝 문장: 수많은 표본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자주 공격받는 지금이야말로 ‘3무’를 잊지 않고 소중히 지켜 나가고 싶습니다.
책제목 :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지은이 : 군지 메구
옮긴이 : 이재화
펴낸곳 : 더숲
페이지 : 240 page
책무게 : 307 g
펴낸날 : 2020년 11월 18일
책정가 : 14,000원
읽은날 : 2021.12.06.~2021.12.07.
글쓴날 : 2021.12.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