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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해도 괜찮아. 또 찍으면 되지.”
촬영 현장에서 들었다는 아이들의 이 말은, 이번 영화제가 품은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지난 11월 21일, 용인시 기흥구 CGV 기흥에서 ‘제3회 우리들의 아지트 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제는 ‘지나간 필름에 우리의 순간이 머물다’를 주제로, 흥덕·매탄·아미·도담·은행동푸른학교 등 5개 지역아동센터 아동·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13편의 작품을 상영했다. 행사장에는 학부모와 시민, 아동 등 160여 명이 모여 스스로 만든 영화를 스크린으로 마주한 아이들의 순간을 함께 지켜봤다.
영화제는 집행위원장 김혁·조윤지 학생의 사회로 조용히 문을 열었다. 부집행위원장 김승현 학생의 개막선언 뒤, 영화제추진위원장인 김승민 위원장이 무대에 섰다. 그는 “이 영화제는 단순한 상영회가 아니다”라며 “아이들이 기획부터 촬영·연기·편집까지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만들어낸 성장의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교육 현장에서 함께한 영화 강사들의 헌신,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의 지지, 아이들의 열정이 모여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축사에 나선 유진선 용인시의회 의장은 “학생들이 제작한 작품에는 각자의 시선과 노력이 담겨 있다”며 “지역 청소년들이 문화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의회에서도 지원 방안을 살피겠다”고 밝혔다.
영화제는 두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섹션 ‘스탠 바이 미’에서는 일상의 작은 감정부터 학교에서의 관계, 성장의 고민까지 아이들 눈에 비친 세계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됐다. 흥덕지역아동센터 김이수 감독의 ‘라면’은 사소한 일상의 풍경을 세밀하게 포착해 관객에게 미소를 자아냈다. 이와 함께 총 11편의 작품이 첫 섹션을 채웠다.
두 번째 섹션 ‘말아톤’에서는 더 깊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김민섭 감독의 성장 다큐멘터리 ‘변하지 않는’은 진학을 앞둔 청소년이 겪는 불안과 흔들림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관객들은 작품 속 ‘불안’이라는 감정에 공감하며 작품에 귀를 기울였다.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흥덕지역아동센터 김민서 학생은 “나도 고입에 대한 불안이 있는데 감독님의 감정이 공감된다”며 “잘되기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관객석 곳곳에서 박수가 터졌다.
무대 아래에서 영화를 본 아이들의 소감은 더욱 솔직했다. 매탄지역아동센터 안희주(초6)는 촬영 과정에 대해 “서로 실수해도 ‘괜찮아, 또 찍으면 되지’라고 격려하며 완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얼굴이 나오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나온 장면은 귀여웠다”고 덧붙였다. 같은 센터의 정유미 학생은 “우리가 찍은 영화를 CGV에서 보게 되니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아미지역아동센터 이정원 학생은 “영화 수업을 하며 친구와 관계가 더 좋아졌다”며 “엄마가 칭찬해줘 더 뿌듯했다”고 했다. 은행동푸른학교 정영우 학생은 “저학년이 떠들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조용해서 기특했다”며 “영화제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도담지역아동센터 허서연 학생은 “처음엔 흑역사로 남을까 걱정했지만 상영 후엔 뿌듯했다”며 “6학년 때는 더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남긴 이 소감은, 영화가 단순한 매체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게 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어른들이 만든 영화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경험이었다.
한편, 영화제에서는 참여한 아동과 교사 14명이 용인시장·용인시의회 의장·국회의원 표창을 받았다. 성취도가 높은 4명의 아동에게는 장학금이 지급되었고, 라온뜰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참여한 모든 아동에게 영화인 인증 뱃지를 전달하며 격려했다.
‘우리들의 아지트 영화제’는 지역아동센터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창의미디어교육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센터 간 협업, 전문 강사 배치, 실제 촬영 실습 등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관계자들은 “영화 제작 과정이 자연스럽게 협업 능력, 자신감, 사회성, 표현력으로 이어지는 교육 효과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CGV 앞에는 여운이 남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서사(敍事)는 어른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훨씬 따뜻했다. 아이들의 시간이 머물렀던 이날의 필름은, 앞으로 이들이 나아갈 길에 또 하나의 작은 불빛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