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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평온의 지혜 여섯 덕목
2018년 8월 12일 초전법륜경 84강 中
https://cafe.naver.com/koreamahasi/2030
-법문: Ven. 한국마하시 사야도(우 소다나 사야도)
-통역: 우 담마간다 스님
-녹취: 박희구 님
(전략)
이것은 ‘갈애가 완전히 소멸된 열반이라는 소멸의 진리는 성스러운 도로 직접 경험하여 알아야 할 법이다’라고 아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소멸의 지혜와 관련해 해야 할 역할을 아는 지혜이기 때문에 kiccañāṇa, 역할의 지혜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열반을 직접 실현해서 압니까?”라고 묻는다면 “차례차례 위빳사나 수행을 해서 형성평온의 지혜가 구족돼 완전히 무르익었을 때 그 열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잘 알게 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방금 위빳사나 수행을 해서 형성평온의 지혜가 완전히 무르익었을 때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들어서 아는 지혜가 생겨나도록 형성평온의 지혜saṅkhārupekkhāñāṇa 行捨智에 대해서 조금 설법해 드리고자 합니다.
마하시 수행방법대로 여섯 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물질·정신 법들을 볼 때, 들을 때 등에 <본다; 들린다; 맡는다; 부푼다, 꺼진다; 오른발, 왼발; 아픔; 망상함; 생각함; 졸림> 등으로 잘 관찰하고 관찰하면 위빳사나 지혜가 향상됩니다.
물질과 정신이 구별되고, 원인과 결과가 파악되고, 생겨남과 사라짐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항상하지 않는 법이구나’라고 무상을 알고, 생겨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괴롭히기 때문에 ‘괴로움이구나’라고 알고, 더 나아가서 ‘내 마음대로 주재할 수 있는 자아라고 하는 것이 아닌 고유성품법일뿐이구나’라고 무아를 아는 지혜가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생멸의 지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겨남과 사라짐을 계속해서 관찰하다가 나중에는 생겨남이 매우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생겨남이 분명하지 않고 계속 사라지는 것만 관찰하는 무너짐의 지혜가 생겨납니다.
그렇게 계속 사라지고 없어지고 무너지고 소멸하는 것만 경험하는 수행자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 지혜에 도달한 일부 수행자에게 울려고 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실제로 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지혜가 생겨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다고 해서 또 이 지혜에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충분조건을 잘 아셔야 됩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힘들다고 그만두지 마시라고, 여러분들도 열심히 하면 이렇게 향상될 수 있다고 이런 지혜에 대해 미리 좀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법문을 듣고 지도받아서 잘 관찰하면 그런 두려움에서는 벗어납니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나면 자꾸 안 좋은 것만 보게 되는 허물의 지혜에 도달하고, 더욱더 나아가면 안 좋은 것만 계속 보기 때문에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고 넌더리치고 지겨워하는 염오의 지혜가 생겨납니다.
그러면 지겹고 싫어하고 염오하기 때문에 어떻게 됩니까? 물질과 정신의 생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벗어나려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벗어나려는 지혜가 생겨날 때 일부 수행자들에게 신체 일부분에서 어떠한 현상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직접 도달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시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관찰하다 보면 재성찰의 지혜가 생겨나고, 그 지혜가 무르익었을 때 지금 말씀드릴 형성평온의 지혜가 생겨납니다. 이 형성평온의 지혜가 갖춘 덕목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각각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형성평온의 지혜 첫 번째 덕목은 두려움이나 즐김을 버리고 평정하고 평온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하기 전에는 세간적으로 만나게 되는 여러 두려움, 위험 등을 숙고하거나 실제로 만나서 두려워하거나 걱정하기도 합니다. 세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법의 측면에서도 관찰을 계속해서 두려움의 지혜, 허물의 지혜 등이 생겨났을 때 매우 빠르게 생멸하는, 특히 소멸하는 물질·정신 형성들을 계속 관찰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구나’라고 숙고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이전에는 생겨났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하게 되면 세간적인 측면에서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것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걱정거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는다 해도 자신에게는 전혀 걱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평온하게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법의 측면에서도 생멸의 지혜에서 기뻐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 단계에 이르러 두려워하기도 했고, 허물을 보기도 했고, 역겨워하기도 했고, 버리려고 하기도 했고, 계속해서 관찰하려고 특별히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형성평온의 지혜에 이르면 그런 것들이 다 사라져서 관찰하던 대로 계속해서 고요하고 평온하게 계속 알기만 알게 됩니다.
이러한 형성평온의 지혜 첫 번째 덕목을 마하시 사야도께서 “걱정즐김 사라진다”라고 게송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원래는 두려움인데 걱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어서 한국말로 ‘걱정즐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형성평온의 지혜의 두 번째 덕목은 기뻐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고, 새기면서 바르게 알면서 평온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형성평온의 지혜가 성숙됐을 때는 마음에 드는 좋은 대상과 만나더라도 너무 기뻐하지도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더라도 너무 싫어하지 않고 평온하게 잘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나 혹은 친척, 친구와 관련되어, 예를 들면 복권 당첨 소식, 자식의 승진 소식, 주식이 올라 재산이 늘어난 소식 등을 들으면 일반 사람들은 아주 기뻐합니다. 하지만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한 수행자는 아주 그렇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평온합니다.
반대되는 경우로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의 죽음, 부상 소식, 재산이 손실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반 사람들은 매우 싫어하거나 슬퍼합니다. 그러나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한 수행자라면 이러한 소식에도 평온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덕목은 게송으로 “불고불락 평온관찰”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너무 행복해하지도 않고 너무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평온하게 잘 관조한다, 관찰한다는 뜻입니다.
형성평온의 지혜 세 번째 덕목은 형성들을 관찰하는 것에 있어서 중립적인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형성평온의 지혜라고 하는 것은 형성들인 물질·정신 대상들에 대해서만 평정하게 관찰하는 것 아닙니까? 관찰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평온하게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할 수가 있습니다.
형성들에 대해서 중립적인 것이지 관찰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다시 중립적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청정도론 복주서』에 이렇게 설명돼 있습니다.
Saṅkhāresu viya tesaṁ vicinanepi udāsīnaṁ hutvā.(Pm.ii.460)
형성들에 대한 것처럼 그것들을 조사하는 데도 평정하게 되어.
【대역】
Saṅkhāresu viya형성들에 대해서 평정하게 평온하게 관찰함과 마찬가지로 tesaṁ vicinanepi그 형성들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udāsīnaṁ hutvā평온하게 관찰한다.
형성평온의 지혜의 두 번째 덕목을 설명할 때 그 관찰 대상인 형성 대상, 예를 들면 좋은 대상에 대해서도 너무 기뻐하지도 않고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너무 슬퍼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형성에 대해서 평온하게 관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위빳사나 관찰하는 마음 자체도 평온하게 관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전의 위빳사나 지혜 단계에서는 관찰 대상들에 대해서도 조금 애써서 관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관찰하는 앎이 생겨나게 하기 위해서도 애써서 해야 했습니다. 이전 단계에서는 이렇게 좀 애를 쓰듯이 관찰을 했다면,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하게 되면 관찰하기 위해서 그렇게 더 이상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이전 단계에서는 여러분들이 <부푼다, 꺼진다>라고 계속 관찰하도록 좌선하는 1시간 내내 애써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형성평온의 지혜에 이르면 <부푼다, 꺼진다> 혹은 <앉음, 닿음>이라고 관찰할 때 처음 4~5번, 많으면 10번 정도만 조금 신경 써서 관찰이 생겨나도록 노력하면 다음에는 저절로 관찰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처음 4~5번, 10번까지 조금 애써서 관찰하는 것까지는 그 이전의 지혜의 단계고, 하지만 짧습니다. 4~5번, 10번 정도 지난 후에는 일부러 애를 쓰지 않아도, 다음 표현이 중요합니다.
관찰되어지는 대상도 저절로 계속해서 드러나고, 따라서 그것을 관찰해서 아는 앎도 계속해서 이어져서, 계속 관찰하고 알고 관찰하고 알면서 관찰하는 그 힘에 관성이 붙어 계속 관찰하고 새겨서 알아나갑니다. 그래서 관찰하고 새기는 것이 아주 편안하게 저절로 계속해서 알고 알고 하는 것뿐으로만, 중간에 틈이 없이 계속해서 관찰해서 이어져 나아갑니다.
이것을 게송으로 마하시 사야도께서 “애쓰잖고 쉽게관찰”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어렵게 표현하면 관찰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평온하게 된다는 뜻이고, 쉽게 표현하면 쉽게 관찰한단 뜻입니다. 그 다음 게송이 형성평온의 지혜가 갖춘 평온과 관련된 세 가지 덕목이라는 의미로 “평온지 평온세덕목”입니다. 처음 게송부터 여기까지 함께 독송해 보겠습니다.
걱정즐김 사라진다
불고불락 평온관찰
애쓰잖고 쉽게관찰
평온지 평온세덕목
사-두 사-두 사-두
방금까지의 게송은 두려워하거나 즐기는 것이 없는 것이 하나, 좋은 대상이나 나쁜 대상에 대해서 너무 행복해하거나 너무 괴로워하지 않고 평온하게 잘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하나, 계속해서 아는 것일 뿐으로 평온하게 관찰하고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쉽게 관찰해서 알아가는 것이 하나, 이 세 가지가 형성평온의 지혜가 가지고 있는 평온과 관련된 세 가지 덕목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으로 형성평온의 지혜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특별한 세 덕목입니다. 네 번째 덕목은 『빠띠삼비다막가』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Santiṭṭhanā paññā saṅkhārupekkhesu ñāṇaṁ.(Ps.197)
잘 유지되는 통찰지가 형성평온의 지혜라는 것이다.
【대역】
Santiṭṭhanā잘 유지되는 paññā통찰지, 지혜를 saṅkhārupekkhesu ñāṇaṁ형성평온의 지혜라고 한다.
여기서 ‘잘 유지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청정도론 대복주서』에서 형성평온의 지혜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잘 생겨나고 있는 상태를 말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Ñāṇassa santānavasena pavattiṁ sandhāyāha.(Pm.ii.469)
【대역】
Ñāṇassa지혜의; 형성평온의 지혜의 santānavasena상속을 통해; 연속을 통해 pavattiṁ sandhāyāha생겨나는 것을 두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형성평온의 지혜는 계속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잘 이어진다, 잘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이전의 지혜 단계에서는 10분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10분 이상 지나면 어떤 이유로 망상이나 아픔이 생겨나거나 어떤 이유로 관찰이 무너지고 계속 끊어집니다. 관찰이 끊어지면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로부터 다시 관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형성평온의 지혜가 생겨날 때는 처음 4~5번, 10번 정도만 조금 신경 써서 관찰하면 그다음에 저절로 관찰해서 알고 관찰해서 알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처럼 오랫동안 이어져서 이 지혜가 유지됩니다. 어느 정도 유지되는지 묻는다면 1시간도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기도 하고, 힘이 좋을 때는 2시간, 힘이 더 좋을 때는 3시간까지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마하시 사야도께서 게송으로 “오랫동안 유지된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목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할 때 수행자가 아프지도 않고 관찰도 끊어지지 않고 졸림도 없이 계속된다고 보고하면 좌선 시간을 2시간, 3시간까지 늘이도록 지도합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번 3시간 좌선하다가 나중에는 하루에 두 번 3시간 좌선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그때는 그렇게 도달할 것입니다.
억지로 참아서 3시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절로 그냥 3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 이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한 수행자는 얼굴 모습, 말하는 모습, 행동하는 모습에서 다 드러납니다. 지도하는 분도 그렇게 다 경험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수행 시간을 늘이도록 지도하는 것이지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성평온의 지혜 다섯 번째 덕목은 성전에 “판에 비벼진 밀가루 반죽처럼; 밀가루 반죽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워지는 것처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밀가루나 모래 등을 계속 체에 치면 칠수록 부드러운 것만 남습니다. 미세해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형성평온의 지혜가 생겨나기 전보다 형성평온의 지혜가 생겨났을 때, 혹은 형성평온의 지혜가 계속 향상되고 향상될수록 관찰되는 지혜 대상도 미세해지고 관찰하는 지혜도 미세해집니다. 수행자들이 직접 경험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하다는 의미로, 이 덕목을 마하시 사야도께서 게송으로 “지날수록 미세하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부풂과 꺼짐을 관찰할 때도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하게 되면 부풂과 꺼짐이 매우 미세해집니다. 어느 정도로까지 미세해지는가는 직접 수행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형성평온의 지혜 여섯 번째 덕목은 성전에 “움츠린다, 물러난다, 반대로 펼치더라도 펼쳐지지 않는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표현이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한 수행자는 어떤 대상 쪽으로 마음이 달아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형성평온의 지혜가 매우 힘이 좋게 생겨날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대상을 일부러 숙고해 보아도 그 대상으로 달아나지도 않고 달아나더라도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관찰하는 대상 쪽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 대상만 계속 관찰하면서 알고 있습니다.
‘움츠린다, 물러선다’라는 표현처럼 일부러 관찰 대상을 늘려서, 펼쳐서 관찰한다 하더라도 마음이 그 펼치는 대상 쪽으로 달아나지 않고 원래 관찰하던, 미세한 대상, 작은 대상으로만 계속해서 움츠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각 대상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입니다. 움츠리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여러 대상 쪽으로 펼쳐서 나가지 않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이 덕목을 마하시 사야도께서 “다른대상 안달아나”라고 표현하셨고,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 덕목이 특별한 덕목이라는 의미로 “평온지 특별세덕목”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렸을 때 지렁이가 움츠러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형성평온의 지혜의 단계에 이른 수행자가 일부러 이전에 자기가 좋아했던 대상으로 마음을 보내거나 아니면 안 좋았던 일, 나쁜 대상으로 마음을 보내도 달아나 않습니다. 마음이 달아난다 하더라도 바로 원래 관찰하던 대상 쪽으로 계속해서 돌아와서 관찰하게 됩니다.
이 지혜의 단계에 이르면 관찰하다가 결혼하신 분들은 배우자나 자제분, 결혼하기 전의 분들은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생각해 보려 해도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두려울 것 같습니까? 이미 앞서서 두려움이나 좋아함이 없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이 단계에 이르면 일부러 마음을 보내도 달아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얼굴 자체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눈을 감고 얼굴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흐릿한 정도로 떠오르거나 아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형성평온의 지혜 여섯 덕목을 함께 독송해 보겠습니다.
걱정즐김 사라진다
불고불락 평온관찰
애쓰잖고 쉽게관찰
평온지 평온세덕목
오랫동안 유지된다
지날수록 미세하다
다른대상 안달아나
평온지 특별세덕목
사-두 사-두 사-두
(후략)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 ~~^^
고맙습니다 ^^
사-두 사-두 사-두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