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삼성대에 살면서 하천 위에 놓인 뽕뽕다리를 바라보곤 했다. 그 다리 너머에 보이는 동네는 어떤 곳일까?
어느 날, 옆집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강 건너 반짝이는 불빛은 무엇인가요?” 아저씨는 “저곳은 똥꼴 동네란다”라고 했다.
그 말은 나를 섭섭하게 했지만 그곳이 어떤 곳일지 꼭 가보고 싶었다.
이제 70세가 넘어서야 가보고 싶었던 동네가 문화동네였고
삼성대가 똥골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가보고 싶었던 그곳을 가보려 한다.
삼성대 표식판
사직동 자연마을이였던 석사마을 전경
1957년 금정산 자락의 온천동과 명륜동
마안산에서 본 1957년 동래전경
사직단 주거지 기초작업
3호선 사직역 4번 출구
대건성당 담 벽화
협성맨션에서 본 사직단 유문 (붉은 문) 뒤
쇠미산
사직단 정면
재실
유문 유담 신실
사직단
주산신위
사직단터
동래 사직단(東萊 社稷檀)
사직단은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기원하기 위해 토지신 사
(社)와 곡식신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직에 대한 제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늦어도 삼국시대부터이지만 각 지방마다
사직단이 세워진 것은 조선 세종 때이다.
동래 사직단은 1481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었으나,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
으로 추정된다.
그 후1640년에 다시 세워졌고, 1709년 현재 자리의 동북쪽 약 60m 지점에 옮겨졌다가 일제강점기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제사를 모두 금지함에 따라 없어졌다.
동래 사직단은 그 소중한 가치를 되찾고, 부산시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고취하며, 복원을 염원
하는 주민여론에 부응하고, 문화관광자원 등으로 활용을 위해 복원되었다.
복원장소는 일제강점기 없어진 사직단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 주변에 심은 소나무 숲이 있던 곳이다.
2021년 1월에 복원된 사직단 한 변의 길이는 6.5m, 높이는 0.78m이고, 사방에 3단 계단을 두었으며, 단의 바깥 주위로는
유와 유문을 설치하였다.
신실은 1칸, 재실은 4칸에 각각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금정산 자락의 온천 1동 현재 모습
마안산에서 본 현재 동래전경
석사로
사직시장
사직고등학교
달북초등학교
동래삼정그린코아
포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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