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식구를 맞이하며 *류 근 홍
오늘 아침 이른 새벽 아버님 산소에 다녀왔다.
두 달만인데도 산소에 오르는 산능선 외길이 잡초로 무성하다.
뒤따르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막대기로 잡풀을 헤치며 길을 만들며 갔다. 칡넝쿨과 망초대 등이 잡초와 엉켜 아주 높은 풀담장을 만들었다. 역시 6월의 잡초는 질기고 강하다.
지난 3월에 예정이였던 아들의 결혼식을, 코로나19로 인해 3개월 연기하여 오늘 치르게 되었다.
이에 아버님께 손주결혼 신고식을 하러 간 것이다.
오늘 결혼식은 간소하고 소박하게 주례없는 결혼식으로 신부 아버지가 성혼 선언문을 신랑 아버지인 내가 혼주사(婚主辭)겸 덕담을 하기로 했다.
여전히 코로나의 불안속에 어렵고 불편하며, 모두가 조심스러운 시기임에도 양가의 많은 하객들이 흔쾌히 참석을 하였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사회자가 ‘다음은 신랑 아버님의 덕담과 축사가 있겠습니다.’라고 하자 조명이 나를 안내한다.
연단(演壇)위에서의 나와 신랑과 신부 세 명은 오늘 결혼식의 조명속 연극 배우이다.
나는 신랑인 아들과 이제 며느리로서 새 식구가 되는 신부에게 당부한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결혼은 두 사람 외에 양가의 부모와 그 집안의 내력까지도 함께 오는 것이니 만큼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 아니겠는가? 실로 남녀가 부부가 된다는 것은 인연과 우연이 얼마나 많이 겹쳐야만 가능한건지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한다.
아들아, 며늘아기야!
그래 지금까지는 너희 둘이 젊고 아름다운 사랑, 달콤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미운사랑과 고달픈 현실사랑 가끔은 피곤한 민낯사랑을 더 많이 해야만 행복하단다.
결혼은 결코 사랑만이 만병통치가 아님을 빨리 터득 하거라. 살아가면서 연애사랑과 결혼사랑이 서로 다름에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아니다. 부부는 분명 이심이체란다. 서로가 자라온 환경과 성격과 사고방식 등 둘이 서로의 다름을 빨리 인정하고, 그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맞추어간다면, 자연스레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어가는 거란다.
그래야만 너희들의 인생에서 너희가 항상 오늘 같은 주인공으로 살아 갈수가 있다.
아들아!
33년전 네가 우리 집안에 태어나 가족 모두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준 것이 엊그제 같구나. 그래 너도 기억 할 것이다. 너는 어린시절 엄마 아빠보다도 유독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진한 손주사랑을, 그리고 고모들의 유별나고 특별한 조카사랑을 참 많이 받았지.
지금 이렇게 너희 두 사람을 마주하고 보니, 대견스럽고 든든하며 참으로 자랑스럽고도 고맙다.
아들아, 돌아보니 잊지 못할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들이 참 많구나.
어린시절 목욕탕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등을 밀어주다 미끄러져 모두가 놀랬던 일,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회 달리기에서 응원을 하시던 할아버지를 힐끔 쳐다보다 넘어졌는데도 울면서 끝까지 뛰어 꼴찌이면서도 1등 같은 박수를 받았던 그때의 그 모습.
군입대후 한 달 즈음에 네 방을 청소하다가 울컥한 마음에 갑자기 네가 보고 싶어, 진주 공군교육사령부까지 700리길을 달려가, 정문앞에서만 맴돌다 돌아왔던 기억도...
그리고 그 어려웠던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그날 밤을 온 가족이 벅찬 기쁨에 뜬눈으로 함께 지새웠던 즐거운 추억 등 모두가 금쪽 같이 소중하고도 생생한 많은 추억들을 이제 오늘 아들의 결혼선물로 새 식구인 며늘아기에게 넘겨 주고자한다.
아마 이 모든 추억들도 아들이 사랑하는 색시를 맞이하는 오늘을 많이 기다렸을 것이다. 정말 우리가족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추억들이기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없이 아쉽고 서운하구나.
아들아 며늘아가야, 너희들의 오늘 이 결혼이야말로 양가의 자랑이며, 최고의 효도란다. 그런데 어찌하랴, 이제는 각자의 가족들과는 결혼이별을 해야만 한단다.
두 분 사돈께도 감사드립니다.
여기 두 아이들이 맺어준 소중한 사돈의 인연으로 한 가족이 되었음에 이제는 친구 같이 친한 사돈, 사돈 같지 않은 이웃 같은 사돈으로서 두 아이들의 그림자 버팀목이 되어 줍시다.
신랑신부 두 아이들에게 가벼이 축하포옹을 하고는 연단을 내려온다.
덕담을 하는 4-5분 정도의 시간이 그동안 너와 함께해 온 33년의 세월 같구나. 가까운 추억이 또 생각난다.
네가 발령을 받아 첫 출근하던 그날의 벅찬 설레임과 기쁨에 얼마나 행복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할수록, 힘이 솟고 웃음이 절로 난다.
함께 집을 나서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네 옷매무새를 만져주면서 함께 웃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5년전 딸아이를 시집보낼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렸는데, 오늘 아들 결혼에는 허전하고 서운함으로 온몸에 힘이 풀린다.
딸에 이어 오늘 아들과도 또 결혼이별을 하는구나.
함께 살 때는 몰랐던 너 없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어찌하랴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래 세월은 이제 다시 또 엄마와 아빠 둘만을 남겨 놓는구나.
혼주(婚主)의 덕담이 괜스레 쓸데없는 나만의 넋두리나 잔소리는 아니었는지?
그냥 간단히 한마디로‘ 이제는 너희 둘만의 인생을 함께 멋있게 가꾸어가면서 너희들 멋대로 멋지게 살아라’하면 될 것을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