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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추천작품 24편입니다.
정드리 동인지에 '시작노트' 청탁하고 게재하려 합니다.
이 중에서 10편을 골라 추천 바랍니다 문인수
맑은 물 / 나기철
세수를 했는데
잊고
또 세숫물을 받았다
물을 내리며
두 손을 깍지낀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도서출판b, 2013)
사과를 내밀다
맹문재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뿐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없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이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이어었다
3
참았던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디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같은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사과를 내밀다』2012, 11월
치타슬로
정일근
달팽이와 함께 느릿느릿 사는 사람의 마을에
개별꽃 곁에 키 작은 서점을 내고 싶다
낡은 시집 몇 권이 전부인 백양나무 책장에서
당나귀가 어쩌다 시 한 편 읽고 가든 말든
염소가 시 한 편 찢어서 먹고 가든 말든.
※치타슬로(Cittaslow): 느리게 사는 도시(slow city)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시집『방!』서정시학, 2013, 5월
그립다는 말의 긴 팔
문인수
그대는 지금 그 나라의 강변을 걷는다하네.
작은 어깨가 나비처럼 반짝이겠네.
뒷모습으로도 내게로 오는 듯 눈에 밟혀서
마음은 또 먼 통화 중에 긴 팔을 내미네.
그러나 다만 바람 아래 바람 아래 물결,
그립다는 말은 만 리 밖 그 강물에 끝없네.
시선집『밤 깊어 더 낯선 객지』시와 반시 2013, 5월
하지의 밤
최영철
막차 놓치고 홀로 지새우는 밤이 갓길이다
오늘의 벗은 24시편의점에서 산 양갱
그녀가 좋아했던 달콤한 맛
모처럼 밤이 한 입에 속 들어와 녹는다
입에 무니 그녀 맛이 난다
늦은 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녀는 첫 아이로 여름을 낳았다지
양수에 동동 뜬 하지이 밤
뭘 벗하며 나는 갓길의 첫날밤 새울까
기니긴 낮 축제의 부스러기만 남은 짧은 향연
그러고 보니 하지의 밤은 피라미
양갱을 씹으며 밤낚시 드리워 하지를 낚다
하지의 달을 둥글게 펴 밤 불빛에 방생하다
<현대시학>2013, 6월호
인체 해부도
허 만 하
1
내 흉곽 안쪽은 죽음보다 격렬한 꿈과, 이따금 반짝이는 회한의 별빛과 손풍금처럼 지루하게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하고 있는 심장의 미끈미끈한 촉감으로 도배되어 있지만, 나의 피부 바깥은 푸른 바다에 남아 있는 목마름처럼 다빈치가 그린 인체 해부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2
나의 피부는 나의 국경이다. 나의 피부 바깥으로 으스름이 조용히 서리기 시작하던 낯선 도시와, 밤안개 속에서 스스로의 외로움을 비추고 서 있는 가로등 불빛과 치열하게 쏟아지는 눈송이에 묻히고 있는 희끗희끗 추운 풍경이다.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문예 중앙, 2013
별 물
정윤천
너 때문에 목이 말라서 마실 물 한 잔을 따랐는데, 그릇 안에 별 모양 같은 게 떠서 어른거린다. 무슨 수로도 건져내지 못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마른 목 속으로 천천히 별 물을 들이켜고 말았다. 그때부터 손바닥에도, 손바닥이 스치는 뺨 위에도, 틈만 나면 묻어나오던 별의 기적을 어쩌나. 너 든 가슴은 또 어쩌나.
-출처 :『천 년의 하루, 하루』(시와에세이, 2012)
외로운 개화
손진은
해마다 개화 시기 수첩에 적으며
찾아다니는 김 교수
서둘러 달려가면 꽃봉오리 아직 숨었고
그리움 눌러 참고 다다르면 분분한 낙화 아쉬운 거라
오늘 아침에도 순천시청 문화담당에다
전화를 넣었다
또 그 절정의 시기라고라?
아따 멫번씩 말해야 알아묵는다요
꽃 피는 거사 꽃나무 마음이제
전화벨처럼 화르륵 피어났다
받으려면 떨어지는 게 꽃이랑께요
2013, 7월호
히말라야의 독수리들
촤동호
히말라야 설산에 사는 전설의 독수리들은
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지면
설산의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언어가
펜 끝에 머물러, 눈 감고 있을 때
설산에 머리를 부딪쳐 피에 물든 독수리의 두개골이 떠오른다
2013, 유심작품상 수상작
입술
박제영
윤씨네 막내사위 함 받는다고 사돈에 팔촌까지 모였더랬는데
술이 몇 순 돌고 불콰해진 장인어른 한 말씀 하시는데
술 중에 술이 여 있다 안하나
봐라 내 마누라 입술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술인기라
내 입맛에 이리 딱 맞춘 술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장모님 입술이 그만 빨개졌던 것인데
박서방 퍼뜩 와본나
보소 일마가 내 딸년 입술을 훔쳐간 고얀 술도둑놈인기라!
막내 딸 입술도 따라서 빨개졌던 것인데
애지중지 담근 술이니 평생 애껴 묵그라
혹여라도 술단지 깨지 말고, 알았냐?
『식구』(북인, 2013)
뒷굽
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니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 없이 궁금했다
<불교문예> 2013여름호
통정
고영민
아버지기 돌아가시고
형님댁으로 거처를 옮기신 어머니는
석달 만에 고향집으로 들어서자마자 통곡을 하셨다
안방에 들어가더니
찬 방바닥을 만지며
꺼이 꺼이 우셨다
가만히 문을 닫아드렸다
모두들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한동안 안마당에 서 있었다
방에 들어가려 하자
손사래를 치며
더 우시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굶주렸던 집이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달게 범하고 있었다
조금씩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어머니가 발그레한 얼굴로
안방에서 나오셨다
『사슴공원에서』창비 2012, 11월
버리긴 아깝고
박 철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ㅡ시집『작은 산』(실천문학사, 2013)
아, 어처구니가 없다
김신용
맷돌을 돌리려는데 아, 어처구니가 없다
오래 쓰지 않아 마루 밑에서 나무로 된 손잡이가 삭아버린 것
맷돌에 어처구니가 없으니 손잡이인, 그 어처구니가 없으니
그냥 돌덩이뿐이구나 무거운 돌덩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구나
갑자기 쓸쓸해진 파장의 가설무대 같구나
맷돌의 옆구리에 박혀 마치 척추처럼 돋아 있던 그것
손때 묻어 닳고 닳아 반들반들 윤이 나던 그것
어진 짐승처럼 부드러운 표정이면서도 뿔처럼 단단하던
그 어처구니가 없으니 척추 같았던 그 손잡이가 없으니
돌은 돌로 되돌아가고 외계 같은 황량함만 남는구나
콩을 갈아 손두부를 만들던 국수를 만들던, 돌이
마치 둔부처럼 둥그렇게 포개져 있던, 그 두 개의 돌이
이제 체위도 잊어버린 청맹과니 같은 눈빛을 하고 있구나
메밀 같은, 딱딱한 껍질의 날곡도 부드럽게 분말로 만들어주던
저작이 끊겨버렸으니
돌의 용광로에서 이글거리던 불길이 꺼져버렸으니
『잉어』시인동네, 2013
매미
김남호
올여름에는
전화하지 마!
등이
십(十)자로
찢어진 채
부재중이야
나는,
『고래의 편두통』천년의 시작, 2013
구르는 오디오 1
손택수
자전거 이름을 오디오라 지었다
오디오를 갖지 못한 서운함을 이름으로나마 달래어보자는 뜻이다
나의 오디오는 단칸방에 살던 어머니의
대형 거울과 같은 것,
거울 속으로나마 방을 터놓고 사는 자의 지혜를 누가
남루라 할 것인가
남루라면 그건 좀 향긋해서
향긋한 만큼 아릿하기도 하여서
벼르고 벼르던 오디오 대신
출퇴근용 자전거를 장만한 이후부터다
나의 음악은 모래알 구르는 소리 속에도 있어
온몸을 귀처럼 말아 구부리게도 한다
내 가난한 아비의 잔등처럼 드러누은 땅의 굴곡을 따라
돌아가는 바퀴 밑에서 풀어져 나오는 악보,
한강 어딘가에서는 아직 쓱싹쓱싹 강을 써는 모래톱 연주가 있으니
톱니를 드러낸 낙엽에게도 체인을 감아 나이테 트랙을 따라 달릴 날이 곧 오리라
꽉 막힌 자유로 옆
풀숲 너머 새들을 쏘아올리며
오늘도 돌아가는 나의 턴테이블
<문학나무>2013, 여름호
담장을 허물다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다니는 하루 수백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성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담장을 허물다』<창비>2013
저녁과의 연애
강영은
저녁의 표정 속에 피 색깔이 다른 감정이 피었다 진다
보라 연보라 흰색으로 빛깔을 이동시키는 브룬스팰지어자스민처럼
그럴 때 저녁은 고독과 가장 닮은 표정을 짓는 것이어서
팔다리가 서먹해지고 이목구비가 피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여럿이 걸어가도 저녁은 하나의 눈동자에 닿는다
빛이 굴절될 때마다 점점 그윽해져가는 회랑처럼
그럴 때 저녁은 연인이 되는 것이어서
미로 속을 헤매는 아이처럼 죽음과 다정해지고
골목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화분이 나뒹구는 꽃집 앞에서 콜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생각나기도 한다
내일이면 잊힐 메모지처럼 지루한 시간의 미열처럼
그럴 때 저녁은 연애에 골몰하는 것이어서
낡은 창틀 아래 피어 있는 내가 낯설어진다
어떤 저녁에는 내가 없다
이내 속으로 풍경이 사라진 것처럼
저녁이 남기고 간 자리에 나는 없더라는 말
그럴 때 저녁은 제가 저녁인 줄 모르고 유리창 속으로 스며든다
혼자라는 위로는 불현듯 그때 수백 개의 얼굴로 찾아온다
—《詩로 여는 세상》2013년 여름호
정 답답하면 꽃나무에게 직접 전화 걸어 물어보등가
무정한 洛花처럼 전화는 끊기고
하, 그 뽀얀 이팝친구들이
전화를 받기는 할까
옆구리의 벨소리에 화들짝 흰밥 다 쏟아버리진 않을까
눈앞에 삼삼한
새의 달뜬 날개와
지나가는 구름 궁둥짝을 당기는
설레는 빛 속
떨어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몇 트럭분의 시간들도 순식간에
뒤태도 보이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시인동네》2013년 봄호
나이테
박완호
나일론 꽃나무줄기에 꽁꽁 묶인 마흔셋, 엄마의 나일론 꽃무늬 원피스자락을 문 새벽버스
가 안개 자욱한 아스팔트길을 질주하는 엔딩화면 속, 엄마 잃은 병아리들 종종 걸음으로
제자리를 맴돈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이테가 없어졌다 정맥줄기까지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이파리들. 문도 없는 다락방 쪽창 너머 사춘기의 뒷골목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갈
팡질팡 하는 황사바람이 보인다
마흔넷의 아침, 발가벗은 몸을 거울에 비춰본다 나이테 없이 한꺼번에 저물어 버린
-서정과 현실 2013 하반기호-
일반 4호실
이홍섭
누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는지
화환도 없고
문상객도 겨우 두엇이다
특실로 가는 화환이 긴 터널을 이루는 동안에도
화환 하나 놓이지 않는 곳
신발들도 기대어 졸고 있는데
특실로 가는 문상객이 그마저 어깃장을 놓는다
성근 국화처럼
벽에 기대어 있는 젊은 아낙과, 문 뒤에 숨어
입구까지 덮쳐오는 긴 터널을 바라보고 있는 앳된 소녀
삼일장도 너무 긴
일반 4호실
장난감의 세계
김소연
전화국을 지나
병원을 지나 삼거리에 밥 먹으러 나갔다
생선 한 마리를 오래 발라 먹었다
제 몸 몇 배쯤의 나방을
머리통만 야무지게 먹고서 나머지를 툭 버려버리는
도마뱀을 지켜보면서
하루의 절반
나머지 절반
어떤 절규가 하늘을 가로질러 와 발밑에 떨어졌다
나는 오후에 걸쳐 있었고 수요일에 놓여 있었다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없었던 것들이 자꾸 나타났고
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졌다 이를테면
장난감을 선물 받은 가난한 아이처럼
믿어지지 않게 믿을 수 없게
아침에만 잠시 반짝거리는 수만 개의 서리
하루의 절반
나머지 절반
오전엔 건너의 소가 소에게 뿔을 들이받았고
오후엔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물고 다녔다
개구리야, 너는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에 장난감이었단다
그때 나는 장난감의 내부를 꼭 뜯어보고야 말았지
개구리를 따라 강가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강가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깊어 빠져 죽기에 충분했다.
—《문학동네》2013년 봄호
神書
임희숙
자해의 흔적을 본 적이 있다
손목을 그은 비장한 심장의 혈구들은 소통을 멈추고 비어졌다
임진강 암벽에 불거진 칼날 자국들
빛나는 직선과 오묘한 곡선을 읽는 강물의 碑文낭독은
캄캄한 밤마다 울어대는 짐승 소리에 섞인다
고된 길을 느리게 돌아나가는 물살이
몸을 구부려쓰고 나간 은밀한 답문
아름다운 꽃과 뱃사공의 노래와 죽은 여자의 푸른 치마
이야기를 만드는 건 사람들의 힘이다
물은 무르고 아찔한 손톱을 가졌다
강이 품은 수천 년의 유서는 대필되었다
문장은 산화 되고 박리되어 꽃처럼 피고 지고
죽은 꽃과 새로 뜬 별이 강물에서 하늘로 옮겨 다녔다
암벽의 유적들을 핥는 일은 강물이 얻은 최초의 노릇
새로 神書를 쓰는 핏빛 저녁이다
<현대시학> 2013, 2월호
용두암
서안나
고백하지 마세요
이곳에선 회심도 죄가 됩니다
뒤돌아 보지 마세요
용을 닮은 덩치 큰 사내가
돌 속에 귀신처럼 서 있습니다
두 귀를 막으십시오
용두암은 한 사람을 낳는 감정입니다
당신 등 뒤에서
왼손과 오른손을 붙잡던
서늘한 영혼
역병처럼 당신에게 진득하게 옮겨 앉는
용두암
바위산의 사내가
바위를 가르고
지상의 한 사람 앞에
물짐승처럼 것은 무릎을 꿇을 때
비린 눈빛도 죄가 됩니다
고백하지 마세요
이곳에선 고백도 죄가 됩니다
2013년 시와 정신 -가을호-
지퍼와 단추
반칠환
지퍼는 오늘도 이 악물고 살자 하고,
단추는 오늘도 목매러 가자 한다
*<포엠포엠> 2013년 여름호
달과 매화
송찬호
달 뜨는 초저녁
활짝 핀 매화 아래 서니
매화에 달을 그린
그림쟁이의 마음을 조금 알겠네
매화는
달이 얼마나 맑고 차운지
가까이 불러 한번 어루만져보고 싶었을 테고
달은 또 매화 곁으로 조금씩 옮겨 앉다가
그 향기를
지팡이 삼아
꽃 한 가쟁이를 꺾어 가고 싶었을 테고
그래서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매화 우에 달이 출렁 얹힐 때
달도 한번 몸을 푸르르 떨겠네
<현대문학> 2013, 7월호
첫댓글 허은호 시인 부음과 겹쳐 더 바쁘고 마음이 싱숭생숭 할 줄 압니다.
2013, 좋은 시 추천작 20편도 공지사항과 '좋은 시' 란에 다시 옮겨 놓았으니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확정 할 수 있게 딱 이틀(30일까지)만 연장합니다. 추천바랍니다.
고영민, 공광규는 4집에 들어 갔으니 또 5집에 넣는 다는건 살짝 무리가 있구요...최영철, 서안나,손택수님 빼고 되도록 안 넣으셨던 분으로 가셨으면 좋을 듯 해요. 여기에 계신 분들은 어느 분 작품을 넣어도 믿고 읽는 시인 들이니까요...송찬호님은 원고를 주신다 약속했었는데 제가 못 받은 시인 중 한분 입니다. 그래서 슬쩍 꺼려 지네요..
예 잘 알겠습니다.^^
맹문재 박철 김남호 강영은 박완호 이홍섭 김소연 임희숙 서안나 반칠환 을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영철 허만하 손진은 최동호 박제영 박철 강영은 박완호 서안나 반칠환 시가 좋아요.
감사합니다.^^
맹문제,박제영,허형만,강영은,박완호,이홍섭,정윤천,임희숙,최동호,손진은, 이렇게 추천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맹문재,최동호,허형만,박철,김신용,반칠환,강영은,박완호,이홍섭,송찬호, 10명 추천합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마음 가는 데로 골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맹문재 반칠환 박완호 이홍섭 송찬호 김신용 박완호 강영은 김남호 한명은 아, 이번호에 정일근 시인의 시는 없으려나
예. 문인수 , 정일근시인 작품 찾아서 올리겠습니다. 근데 박완호시인을 두번 찍었네요.^^
맹문재 반칠환 송찬호 이홍섭 손진은 고영민 정일근 문인수 강영은 김남호
지금 문인수, 정일근시인 작품 올렸습니다.
맹문재 반칠환 문인수 정일근 김신용 김남호 박완호 강영은 이홍섭 김소연 10명추천합니다.
문인수는 3집인지...아님 4집 인지 넣었으니까 되도록 1집 이나 2집에 넣으셨던 작품을 하시는건 어떨런지요?? 작품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러고보니 여류시인이
강영은 김소연이 그러지 않은가?
아, 가만 김남호 시인 대신에 '나기철' 시인 작품 한 편 찾아보심은 어떨런지
예 알겠습니다.
강영은 김소연 김신용 나기철 맹문재 문인수 반칠환 박완호 이홍섭 정일근 조용미
11명 이렇게 확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