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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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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한국의 美 . 새해
이장희 추천 0 조회 84 16.01.14 23: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첫마음 / 정채봉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어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만둣국 한 그릇에 한 해의 소망을 담다

 

새해, 희망으로 채우다

 

 

 

 

눈부신 태양의 희망찬 기운과 함께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해도 늘 변치않는 것이 있다면 새해 새날에 품는 기대와 희망일 것입니다.
새로운 해에 대한 벅찬 희망과 꿈을 가슴에 안고 시작하는 1월 <GOLD&WISE>는 우리 정신문화에 깃든 새해를 맞는 자세로 첫 문을 열겠습니다.

 

KB국민은행 고객 여러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에디터 조민진 캘리그래피 강병인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선우 스타일리스트 양은숙(스튜디오 밥)어시스턴트 김소혜, 박은미

소품협찬 표지에 빨강 복주머니(금단제)

촬영장소 강원 영월 조견당

 

 

 

 

기쁘게 마음 편하세요!

 

인간이 해[年]를 만든 까닭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순환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바탕이 되는 먹거리 마련이 그 순환에 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굳이 해를 바꾸는 것으로 정하지 않고 그저 순응해도 무방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별로 거둔 성과 없이 한 해를 보냈다거나,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인생의 황혼이 짙어지는구나 하는 씁쓸함 따위는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 한 해를 보내고,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아무리 애써도 삶이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고, 그래도 다시 시작해 기어이 뜻을 이루겠다는 ‘오뚝이 정신’의 각오기도 할 테다. 결국 해를 만든 것은 다시 하겠다는 각오와 더 나아지겠다는 희망인 셈이었으니 영악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문명을 만들고 진보를 이루었겠구나 싶다.


‘복 많이 받으세요!’ 기억이 시작된 뒤로 줄곧 듣고 해온 새해 인사말이다. 어느 해부터인가는 ‘부자 되세요!’가 자주 듣는 인사말로 등장해 당혹스럽기도 했다.

덕담은 덕담인데 이제 슬슬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덕담은 노력만으로 이루기는 어려운 일에 행운을 기원하는 뜻이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라는 인사는 어쩌면 돈 벌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나도 해가 바뀔 때마다 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무심히 해왔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많은 행운을 받아온 셈이다. 어쨌거나 여전히 살아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으며, 배우고 익힌 것이 있어 새해를 살아가는 데 당장 큰 걱정은 없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마음 가는 무엇이 있어 기꺼이 익히면 한 해가 아니라 더 많은 날을 더 즐겁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기꺼이 익히면 말이다. 그런데 굳이 큰 행운, 많은 돈이라는 쉽지 않고, 필경은 뜬구름이 되고 말 것을 덕담이라고 나누고 기원해야 할까.


지난해도 참 다사다난했다. 유난히 아픔과 실망이 많은 해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전해에도, 그 전해에도, 어쩌면 언제나 그랬지 싶기도 하다. 그것은 꼭 기억의 흐려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대에 대한 실망으로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뭔가 나아진 것이 있어 상실에 대한, 불만에 대한 감정이 과잉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 타협, 투쟁을 반복하며 오늘의 이만한 문명을 이뤄냈을 만큼 영악하거나 현명하다.
영악의 과함으로 삶을 마주하고서는 느리고 작은 나아짐이 보일 리 없다. 그러나 현명함의 맑은 눈으로 마주하면 시련 속에서도 나아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럴 때의 차분한 감정으로 지난 ‘다사다난’을 돌아보면 아픔의 근원이 욕심이었음을 깨우칠 수 있고 상처를 아물릴 수 있다.


옷가지, 먹거리, 공간, 만남…. 심지어 집 안의 온도까지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입을거리는 마땅치 않아 초라하게 여겨지고, 별것도 아닌 맛 집에 휘둘려 지갑을 마구 연다.

감당하기도 어려운 큰 것만을 좇으니 점점 불만과 욕심이 들어차고, 사랑할 가족을 두고서도 외롭지 않으려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부자 되세요!’가 귀에 쏙 들어올 수밖에 없고, 그만큼 마음은 바빠진다.


새해를 맞으며 서가(書架)를 정리하고 의복을 정갈하게 해 단정히 좌정한 선비는 마음부터 가다듬었다.


고요한 마음 겸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감사한 마음으로 가까운 이들과 덕담을 나눴다. 건강을 기원하고, 복을 기원했지만 그때의 복은 허황한 행운이 아니라 순리의 기원이었다.


넘치는 것을 정리하며 차분히 새해를 맞으려고 한다. 저절로 마음 가는 것을 배워 기쁨을 느끼며 또 내년을 준비하자면 인사부터 바꿔야겠다. ‘부자 되세요!’는 경망스러운 데다 허황하고 부담스러우니 빼고, ‘복 많이 받으세요!’는 ‘순리대로 풀리세요!’로. 아니다, ‘기쁘게 마음 편하세요!’

 

글 김정현(소설가) 포토그래퍼 김재이 촬영장소 강원 영월 조견당

 

 

 

이형록 ‘화첩中설중향시도’(38.8x28.2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눈 덮인 설경이 펼쳐진 동네를 가로질러,마을 사람들이 황소를 앞세우고 옹기종기 장으로 향한다.먼 길을 떠날 때나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도 우리는 늘 이웃과 함께했다.

 

 

새해를 희망이라 말하는 우리 정신

 

새해가 ‘밝았다’고 우리는 말한다. 새해는 언제나 좋은 것, 그리고 밝은 것이다.
옛사람이 정초에 주고받은 덕담이 ‘건강하거라’가 아니라 ‘건강을 회복했다니 좋구나’라는 희망완료형이었음을 감안하면 새해가 밝았다는 과거형 인사도 선조의 지혜를 반영한 말로 들린다.

혹자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라 여기기도 하지만, 우리 선조에게 새해는 여러 의식과 놀이를 통해 각자의 소망과 주위의 안녕을 비는 시간이었다.

 

 

새해 문화의 핵심은 ‘우리’


왕이 고령의 신하를 보살피고, 제자가 스승에게 문안을 드리며 주변 사람과 서로의 복을 비는 풍습은 우리 민족의 뿌리인 정과 예, 그리고 나눔의 정서에서 비롯한다.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쉽게 묶고 정으로 감싸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익숙하나 외국인에게는 낯설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정서로 보이는 모양이다.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은 매번 한국의 매력으로 ‘정’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꼽는다. 식당에서 ‘이모’를 부르는 것이 좋고 이웃과 음식 나눠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모여 돕는 풍경에 찬사를 보낸다.

 

옆집에 잠시 마실 좀 다녀온다고 하면 다른 문화 사람들은 놀란다. 미리 약속도 안 하고 남의 집을 방문하는 모습이 영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식으로 돌보는 이 없는 이웃을, 늙은 친구를, 일거리 많은 친척을 도우러 간다. 마실은 내 볼일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타인의 안부를 위한 것이다. 내 집에 넘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싸서 부족한 집에 주고 그 집에 남는 것은 얻어 온다.

 

말도 못하고 고생하는 이가 마음에 밟히면 조용히 들어가 곁에 있어준다. 이 책 <GOLD&WISE>를 통해 선조의 지혜를 돌아볼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은 ‘남을 위하고 가족을 섬기라’이다.

오죽하면 집을 지을 때도 있으나마나 한 낮은 담장과 사립문을 들였을까.

 

 

신윤복(申潤福) ‘한정도閑庭圖’ (50.0×35.5cm, 조선 시대,국립중앙박물관)
정자관을 쓴 선비가 단정하게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담은 풍속화로, 선비 정신의 요체는 사회 지도층의 책임과 의무를 가리킨다. 잘못이 있으면 묵은해와 함께 보내고,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있으면 새롭게 출발하는 희망의 지점, 누구라도 행복을 향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때. 그래서 우리 민족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거듭 일깨우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작자 미상 ‘운포필호도’ (74.7x62.5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선조는 힘과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신수(神獸)로 여겨 새해에는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세화로 활용했다.

 

 

닫아도 닫히지 않는 문
언제나 반쯤 열려
툇마루 밥상 보이는 문
보리밥에 열무 비비는 소리
할아버지 기침 소리
객지 나간 아들 기다리는
울타리 안 어머니의 긴긴 밤이 보이는 문

 

김광인 시인이 쓴 시 ‘사립문’은 이런 정서를 잘 보여준다. 엉성하게 얽은 나뭇가지를 대문이랍시고 놓아두고 살아온 모습에서 한국인의 ‘우리’ 개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립문은 그저 안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나타내거나 바깥과 안의 경계만 표시할 뿐 지금 시대의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경계 없이 나누는 문화는 우리 전통 음식인 빈대떡으로도 알 수 있다.

빈대떡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조선 시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하면 숭례문 밖으로 백성이 몰려들었다. 이때 부잣집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소달구지에 싣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음식이라는 ‘빈자(貧者)떡’으로 불리다가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빈대떡을 포함한 전은 손님이 와야 만드는 전통 음식이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누군가와 나눠 먹기 위해 부친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음식이다.


남을 이렇게 생각했으니 자기 식구 섬기는 일은 오죽했을까. 효를 집안의 기본으로 삼았던 선비는 부모님에게 심려 끼치는 것이 가장 나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떠나 나와 있어도 식구들 걱정하지 않도록 자주 편지를 부쳤고, 편지에는 주로 노부모 안부와 스스로의 정신을 다잡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동악시단’의 한 사람인 이안눌이 쓴 ‘기가서(寄家書)’, 즉 집에 부칠 편지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흰머리 어버이 근심하실까 저어하여
그늘진 산, 쌓인 눈 깊이가 천장인데
올해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말하네


먼 변방 산은 깊고 길은 험하니
서울에 닿을 제면 한 해도 늦었겠지
봄날 올린 편지에 가을 날짜 적은 뜻은
근래 부친 편지로 여기시라 함일세

 

수장생문오색낭
5가지 색의 비단 조각을 이어 장생무늬를 색실로 수놓은 오방낭자는 신년 정월에 임금과 왕비에게 진상했다.

 

예를 다하는 궁궐 새해 풍경


신병주 교수가 쓴 <조선평전>에는 조선 시대의 새해 풍속도가 소개돼 있다.
왕실에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각종 의식을 거행했고, 신하들은 그림과 축문, 축시를 지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더 좋은 대우를 해주며 공경의 자세를 강조했다.
선대왕을 위한 의식을 치르고, 부모에게 문안을 드리고, 나이 많은 신하와 백성에게 상을 내렸다.

 

한편 도화서에서는 왕을 위해 세화(장수의 신이나 악귀를 쫓는 상징물을 그려 한 해 행운을 비는 그림)를 만들어 진상했다. 신령스러운 동물을 그려 대문에 붙이기도 했는데, 호랑이와 용이 서로 위용을 뽐내는 ‘용호문배도’가 대표적인 예다. 또 관청의 아전들은 새해에 찾아뵙지 못하는 선생이나 상관에게 종이에 이름을 적어 명함을 보내기도 했다. 이를 세함이라고 한다. 일종의 연하장인 셈. 직접 문안하지 못하지만 인사를 차린다는 의미로, 상관의 집에서는 부재중일 때를 대비해 옻칠한 소반을 따로 마련해두고 여기저기서 오는 세함을 받았다.

 

16세기 학자 미암 유희춘은 <미암일기>에서 세함을 보낸 이가 30명이라 기록했다.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55세 되던 1567년부터 세상을 떠난 1577년까지 11년 간 쓴 일기로, 여기에는 조정의 새해 풍경도 잘 드러나 있다. 그가 근무한 홍문관의 정초를 보자.

 

"이른 아침에 홍문관으로 가서 입번을 한 다음 정언신, 우성전을 데리고 대전(大殿)에 문안을 갔더니 술을 하사하셨고, 의성(인성왕후)께 가서 문안을 드리니 또 술을 주셨다. 끝난 뒤에 본관에 별선온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잠시 홍문관으로 가서 눈을 붙였다. 오시(午時)가 되어 궁중의 사자가 선온을 가져왔다.

희춘 등 3인이 뜰에서 절을 하고, 곧 당으로 올라가 사자와 더불어 편을 갈라서서 선온에 절을 하고 받은 뒤에 큰 잔으로 순차에 따라 잔을 돌렸다. (1573년 1월 1일)"

 

 

진재해(秦再奚)벽은(僻隱). 숙종어제잠직도[肅宗御題蠶織圖](137.6×52.4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숙종 임금의 명으로 그린 농사짓기와 누에치기를 소재로 한 그림. 임금은 새해가 되면 농사짓는 백성의 수고를 잊지 않고 헤아리겠다는 다짐과 약속의 의미로 ‘권농윤음’을 반포했다.

 

 

<세종실록>에도 궁궐의 새해 풍경이 나타나 있다.

‘왕이 면복 차림으로 왕세자와 문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망궐례를 행하고, 근정전에서 여러 신하의 조회를 받고 경회루에서 종친과 2품 이상의 관원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이는 왕과 신하들이 모여 신년 하례식을 하는 풍속을 설명한 것이다. 특히 정조는 새해가 되면 ‘권농윤음’, 즉 농사를 장려하는 글을 내렸다.

‘내가 왕위에 오른 이후 새해에 언제나 권농윤음을 내리는 것은 열성조께서 근본을 중시하고 농사에 힘쓰셨던 거룩한 법도를 계승한 것이다. 원량이 나라의 근본이 되듯 백성도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이 편안해야만 나라가 평안한 법이다. 둘의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이치로 연결되어 있음은 자명하면서도 명백하다’라고 해 백성이 하는 일에 가장 신경을 쓰며 새해를 맞았다.

 

또 40세가 되던 해에는 새해 첫날 왕의 어진이 있는 선원전에 인사를 올리고 종묘와 경모궁에도 예를 표했다. 그리고 조정에 70세 이상의 신하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가정에 문안하고 쌀과 고기를 주며 각별히 챙길 것을 명했다. ‘이런 경사스러운 때를 맞아 노인을 공경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노인을 공경하는 정사는 또한 은혜를 베풀어 봉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설파하며 새해의 마음가짐으로 예를 강조했다.

 

 

김홍도 ‘투호도’ (58.8×41.5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양반은 명절이나 정월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투호나 승경도와 같은 놀이를 즐겼다. 투호는 연회에서 여흥을 즐기거나, 집안 잔치나 명절날 일가 친척이 모이면 후원 마당에서 즐긴 대표적인 놀이다. 살이 적중해 항아리 안에 들어가면 춤추며 기뻐했는데, 궁중에서 왕족들이 투호를 즐길 때는 임금이 상을 내리기도 했다.
더불어 관직 이름을 적은 판에 5각형의 나무 막대인 윤목을 굴려 말을 이동하는 승경도는 윷놀이와 비슷한 말판놀이로, 정월에 자주 즐겼다. 일부에서는 승경도의 승부를 두고 1년의 운세를 점치기도 했다.

 

 

민속놀이에 담긴 특별한 의미


주변에 예를 다하고 나면 민가에서는 다 같이 모여 본격적으로 놀이판을 벌였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도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윷놀이로,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풍년을 비는 소망을 담은 것이라 전해진다.

고려 말 학자 이색이 쓴 <목은고>에 나오는 시를 보자.

 

동방의 풍속이 예로부터 세시를 중히 여겨
흰머리 할아범, 할멈들이 신이 났네
둥글고 모난 윷판에 동그란 이십팔 개 점
정(正)과 기(奇)의 전략 전술에
변화가 무궁무진하이
졸(拙)이 이기고 교(巧)가 지는 게 더더욱 놀라우니
강(强)이 삼키고 약(弱)이 토함도 미리 알기 어렵도다
늙은이가 머리를 써서 부려볼 꾀를 다 부리고
가끔 다시 흘려 보다 턱이 빠지게 웃노매라

 

윷놀이에는 늙음의 지혜도, 젊음의 치기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강이 이기고 약이 지는 법칙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교만해질 수 없는 놀이로 그 숨은 뜻이 예상외로 철학적이다.

그 밖에도 새해 희망을 빌며 행한 세시 풍속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이름도 특이한 ‘양괭이 물리치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재미있어한 풍습이다.

양괭이는 한자어로 ‘야광귀(夜光鬼)’를 뜻한다. 이 귀신은 섣달 그믐날 밤 사람들 집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아이들은 신발을 감추고 마루 벽에 체를 걸어둔 뒤에야 잠을 잤다.

체를 두는 이유는 호기심 많은 야광귀가 신발을 훔치러 왔다가 체 구멍에 정신이 팔릴 거라 믿은 것.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체 구멍을 세고 있다가 새벽닭이 울면 부리나케 도망가는 야광귀라니, 소박하고 귀여운 발상이다.


또 다른 풍습으로 ‘원일소발(元日燒髮)’도 있다. 이는 한 해 동안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가 새해를 맞을 때 문 밖에서 태우는 것을 말한다. 우리 선조는 이렇게 하면 나쁜 병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또 지금도 남아 있는 ‘수세(守歲)’도 있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집안의 가솔이 다 같이 밤을 지새우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깜빡 잠들면 영영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할머니 말씀에 사촌들과 서로 꼬집으며 잠들지 않으려고 애쓴 기억이 있다. 이 기회에 어른들은 밤새도록 그간 못했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아이들은 먼저 잠든 사람에게 밀가루를 발라 놀리기도 했다. 장난처럼 보이는 이 풍속은 사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누구보다 남달랐던 우리 선조의 면면을 보여준다.

 

잠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그날이 특별한 날임을 역설한다. 잠들 것이 아니라 묵은해를 잘 보내고 새로운 해에 걸맞은 마음가짐으로 다듬으라는 지혜가 숨어 있다. 이때 부녀자들은 실을 매듭지어 불을 붙이고 조금 타서 꺼지면 초년에 고생하고, 중간쯤 타면 중년에 고생하고, 다 타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믿으며 점을 쳤다.

초년을 지낸 사람은 한시름 놓을 것이고 중년을 앞둔 사람은 중년만 잘 보내면 된다고 위로할 것이었다. 불이 꺼질까 조마조마하며 실을 바라보고 있는 부녀자들의 마음은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터다.

 


글 김선미(자유기고가)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조선평전>(신병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새해 소원을 비는 솟대 문화


솟대는 우리의 대표적 마을 신앙이다.
삼한 시대에 신을 모시던 ‘소도’에서 유래한 용어라고 알려졌다. <삼국지> ‘마한전’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무릇 50여 나라가 각기 소도라는 별읍을 두고 있다.

또 나무를 세워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고 귀신을 섬겼다. 도망 온 자가 그곳에 들어서면 잡아가지 못했다. 소도는 절에 세워놓은 부도, 곧 찰주(사찰 기둥)와 흡사하다.”

 

장대가 꽂힌 곳이 성역이 되었다는 말인데, 그런 의미로 볼때 솟대는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물이다.
농가에서는 섣달 무렵 새해 풍년을 바라며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장대에 높이 매단다.
소나무를 베어 마당 한복판에 세우고 짚을 묶어 매단 뒤 그 위에 곡식을 넣어놓는 식이다. 긴 장대에 곡식을 넣어둔다고 해서 ‘낫가릿대’ 또는 ‘볏가릿대’라고 했다.
볏가릿대를 마당에 세워두고 정월 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벌이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하늘에 이렇게 많은 곡식을 달라고 비는 것이다. 선조는 장승 옆에 장대를 세우고, 장대 끝에 나무로 깎은 새를 달아 새해 바람을 더욱 공고히 했다.

 

 

 

福 짓는 마음으로 한 해를 준비하다.

 

 

수복강녕을 꽃피우다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귀히 여긴 매화는 깨끗한 마음, 곧은 절개, 고귀함의 상징으로 도자기, 자수 등 우리나라 전통 공예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새해 새로운 희망과 꿈을 소망하며, 매화를 꽃병에 담아 향기로운 새해 아침을 맞이해본다.

 

 

 

세화에 깃든 복을 선물하다


세시 풍속으로 정초에 그림을 선물하며 새해를 맞이했던 옛사람의 멋들어진 문화가 바로 세화(歲畵)다.

민화의 한 갈래로 주로 새해의 복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내용을 담았는데, 조선 시대 도화서에서는 해마다 정초가 되면 세화를 그려 임금에게 올리고 또 서로 선물도 했다.

특히 세화는 부적의 기능도 있어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악귀를 쫓는다는 호랑이, 기쁜 소식을 알려준다는 까치, 소나무와 학 같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을 그리는 등 복을 기원하고 잡귀를 쫓는 내용이 담겨 있어 계층을 초월해 모든 사람이 즐겼다.

 

 

에디터 조민진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선우 스타일리스트 양은숙(스튜디오 밥) 어시스턴트 김소혜, 박은미
소품협찬 러너ㆍ보자기ㆍ돈보자기ㆍ배씨댕기ㆍ패물함(금단제), 꽃병(문지영 작가)
민화 두 작품 모두 서공임 작가의 ‘행복한 일상’(korean paper, mineral color, 50x70cm, 2010)

촬영장소 강원 영월 조견당

 

 

GOLD & WISE
KB Premium Membership Magazine
ISSUE 114 JANUARY 2015

www.kb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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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安訥)

동악집(東岳集) > 東岳先生集卷之一 > 北塞錄

 

北塞錄

 

欲作家書說苦辛。

恐敎愁殺白頭親。

陰山積雪深千丈。

却報今冬暖似春。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흰머리 어버이 근심하실까 저어하여
그늘진 산, 쌓인 눈 깊이가 천장인데
올해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말하네

 

塞遠山長道路難。

蕃人入洛歲應?。

春天寄信題秋日。

要遣家親作近看。


먼 변방 산은 깊고 길은 험하니
서울에 닿을 제면 한 해도 늦었겠지
봄날 올린 편지에 가을 날짜 적은 뜻은
근래 부친 편지로 여기시라 함일세

 

 

 

목은집(牧隱集) > 목은시고 제35권 > 장단음(長湍吟)

 

장단음(長湍吟)

 

이웃집 늙은이인 이 상서(李尙書)와 박 중랑(朴中郞), 김석(金碩), 김언(金彦), 이우중(李祐仲), 손숙휴(孫叔畦)가 윷놀이를 하기에 옆에 앉아서 구경하다.

 

동방의 풍속이 예로부터 세시를 중히 여겨 / 風俗由來重歲時

흰머리 할범 할멈들이 아이처럼 신이 났네 / 白頭翁?作兒嬉

둥글고 모난 윷판에 동그란 이십팔 개의 점 / 團團四七方圓局 001]

정과 기의 전략 전술에 변화가 무궁무진하이 / 變化無窮正與奇 002]

졸이 이기고 교가 지는 게 더더욱 놀라우니 / 拙勝巧輸尤可駭

강이 삼키고 약이 토함도 기약하기 어렵도다 / 强呑弱吐亦難期

노부가 머리를 써서 부려 볼 꾀를 다 부리고 / 老夫用盡機關了

가끔씩 다시 흘려 보다 턱이 빠지게 웃노매라 / 時復流觀笑脫?

 

[주D-001]둥글고 …… 점 :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안쪽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며, 윷판의 중심에 있는 점은 북극성을 상징하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점들은 28수(宿)를 상징한다고 한다.

[주D-002]정(正)과 기(奇) : 병법(兵法)의 용어로, 각각 정도(正道)와 편법(便法)에 의한 작전을 말한다.

 

 

/ 한국고전종합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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