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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마음 / 정채봉
만둣국 한 그릇에 한 해의 소망을 담다
새해, 희망으로 채우다
눈부신 태양의 희망찬 기운과 함께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해도 늘 변치않는 것이 있다면 새해 새날에 품는 기대와 희망일 것입니다.
KB국민은행 고객 여러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소품협찬 표지에 빨강 복주머니(금단제) 촬영장소 강원 영월 조견당
기쁘게 마음 편하세요!
인간이 해[年]를 만든 까닭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순환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바탕이 되는 먹거리 마련이 그 순환에 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굳이 해를 바꾸는 것으로 정하지 않고 그저 순응해도 무방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별로 거둔 성과 없이 한 해를 보냈다거나,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인생의 황혼이 짙어지는구나 하는 씁쓸함 따위는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 말이다.
덕담은 덕담인데 이제 슬슬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복을 많이 받으라는 덕담은 노력만으로 이루기는 어려운 일에 행운을 기원하는 뜻이다.
기대에 대한 실망으로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뭔가 나아진 것이 있어 상실에 대한, 불만에 대한 감정이 과잉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감당하기도 어려운 큰 것만을 좇으니 점점 불만과 욕심이 들어차고, 사랑할 가족을 두고서도 외롭지 않으려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부자 되세요!’가 귀에 쏙 들어올 수밖에 없고, 그만큼 마음은 바빠진다.
글 김정현(소설가) 포토그래퍼 김재이 촬영장소 강원 영월 조견당
이형록 ‘화첩中설중향시도’(38.8x28.2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새해를 희망이라 말하는 우리 정신
새해가 ‘밝았다’고 우리는 말한다. 새해는 언제나 좋은 것, 그리고 밝은 것이다. 혹자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라 여기기도 하지만, 우리 선조에게 새해는 여러 의식과 놀이를 통해 각자의 소망과 주위의 안녕을 비는 시간이었다.
새해 문화의 핵심은 ‘우리’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은 매번 한국의 매력으로 ‘정’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꼽는다. 식당에서 ‘이모’를 부르는 것이 좋고 이웃과 음식 나눠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모여 돕는 풍경에 찬사를 보낸다.
옆집에 잠시 마실 좀 다녀온다고 하면 다른 문화 사람들은 놀란다. 미리 약속도 안 하고 남의 집을 방문하는 모습이 영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식으로 돌보는 이 없는 이웃을, 늙은 친구를, 일거리 많은 친척을 도우러 간다. 마실은 내 볼일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타인의 안부를 위한 것이다. 내 집에 넘치는 게 있으면 반드시 싸서 부족한 집에 주고 그 집에 남는 것은 얻어 온다.
말도 못하고 고생하는 이가 마음에 밟히면 조용히 들어가 곁에 있어준다. 이 책 <GOLD&WISE>를 통해 선조의 지혜를 돌아볼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은 ‘남을 위하고 가족을 섬기라’이다. 오죽하면 집을 지을 때도 있으나마나 한 낮은 담장과 사립문을 들였을까.
신윤복(申潤福) ‘한정도閑庭圖’ (50.0×35.5cm, 조선 시대,국립중앙박물관)
작자 미상 ‘운포필호도’ (74.7x62.5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닫아도 닫히지 않는 문
김광인 시인이 쓴 시 ‘사립문’은 이런 정서를 잘 보여준다. 엉성하게 얽은 나뭇가지를 대문이랍시고 놓아두고 살아온 모습에서 한국인의 ‘우리’ 개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립문은 그저 안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나타내거나 바깥과 안의 경계만 표시할 뿐 지금 시대의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빈대떡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조선 시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하면 숭례문 밖으로 백성이 몰려들었다. 이때 부잣집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소달구지에 싣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음식이라는 ‘빈자(貧者)떡’으로 불리다가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빈대떡을 포함한 전은 손님이 와야 만드는 전통 음식이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누군가와 나눠 먹기 위해 부친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음식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동악시단’의 한 사람인 이안눌이 쓴 ‘기가서(寄家書)’, 즉 집에 부칠 편지에 그 마음이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수장생문오색낭
예를 다하는 궁궐 새해 풍경
한편 도화서에서는 왕을 위해 세화(장수의 신이나 악귀를 쫓는 상징물을 그려 한 해 행운을 비는 그림)를 만들어 진상했다. 신령스러운 동물을 그려 대문에 붙이기도 했는데, 호랑이와 용이 서로 위용을 뽐내는 ‘용호문배도’가 대표적인 예다. 또 관청의 아전들은 새해에 찾아뵙지 못하는 선생이나 상관에게 종이에 이름을 적어 명함을 보내기도 했다. 이를 세함이라고 한다. 일종의 연하장인 셈. 직접 문안하지 못하지만 인사를 차린다는 의미로, 상관의 집에서는 부재중일 때를 대비해 옻칠한 소반을 따로 마련해두고 여기저기서 오는 세함을 받았다.
16세기 학자 미암 유희춘은 <미암일기>에서 세함을 보낸 이가 30명이라 기록했다.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55세 되던 1567년부터 세상을 떠난 1577년까지 11년 간 쓴 일기로, 여기에는 조정의 새해 풍경도 잘 드러나 있다. 그가 근무한 홍문관의 정초를 보자.
"이른 아침에 홍문관으로 가서 입번을 한 다음 정언신, 우성전을 데리고 대전(大殿)에 문안을 갔더니 술을 하사하셨고, 의성(인성왕후)께 가서 문안을 드리니 또 술을 주셨다. 끝난 뒤에 본관에 별선온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잠시 홍문관으로 가서 눈을 붙였다. 오시(午時)가 되어 궁중의 사자가 선온을 가져왔다. 희춘 등 3인이 뜰에서 절을 하고, 곧 당으로 올라가 사자와 더불어 편을 갈라서서 선온에 절을 하고 받은 뒤에 큰 잔으로 순차에 따라 잔을 돌렸다. (1573년 1월 1일)"
진재해(秦再奚)벽은(僻隱). 숙종어제잠직도[肅宗御題蠶織圖](137.6×52.4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세종실록>에도 궁궐의 새해 풍경이 나타나 있다. ‘왕이 면복 차림으로 왕세자와 문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망궐례를 행하고, 근정전에서 여러 신하의 조회를 받고 경회루에서 종친과 2품 이상의 관원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이는 왕과 신하들이 모여 신년 하례식을 하는 풍속을 설명한 것이다. 특히 정조는 새해가 되면 ‘권농윤음’, 즉 농사를 장려하는 글을 내렸다. ‘내가 왕위에 오른 이후 새해에 언제나 권농윤음을 내리는 것은 열성조께서 근본을 중시하고 농사에 힘쓰셨던 거룩한 법도를 계승한 것이다. 원량이 나라의 근본이 되듯 백성도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이 편안해야만 나라가 평안한 법이다. 둘의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이치로 연결되어 있음은 자명하면서도 명백하다’라고 해 백성이 하는 일에 가장 신경을 쓰며 새해를 맞았다.
또 40세가 되던 해에는 새해 첫날 왕의 어진이 있는 선원전에 인사를 올리고 종묘와 경모궁에도 예를 표했다. 그리고 조정에 70세 이상의 신하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가정에 문안하고 쌀과 고기를 주며 각별히 챙길 것을 명했다. ‘이런 경사스러운 때를 맞아 노인을 공경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노인을 공경하는 정사는 또한 은혜를 베풀어 봉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설파하며 새해의 마음가짐으로 예를 강조했다.
김홍도 ‘투호도’ (58.8×41.5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민속놀이에 담긴 특별한 의미
고려 말 학자 이색이 쓴 <목은고>에 나오는 시를 보자.
동방의 풍속이 예로부터 세시를 중히 여겨
윷놀이에는 늙음의 지혜도, 젊음의 치기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강이 이기고 약이 지는 법칙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교만해질 수 없는 놀이로 그 숨은 뜻이 예상외로 철학적이다. 그 밖에도 새해 희망을 빌며 행한 세시 풍속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이름도 특이한 ‘양괭이 물리치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도 재미있어한 풍습이다. 양괭이는 한자어로 ‘야광귀(夜光鬼)’를 뜻한다. 이 귀신은 섣달 그믐날 밤 사람들 집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아이들은 신발을 감추고 마루 벽에 체를 걸어둔 뒤에야 잠을 잤다. 체를 두는 이유는 호기심 많은 야광귀가 신발을 훔치러 왔다가 체 구멍에 정신이 팔릴 거라 믿은 것.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체 구멍을 세고 있다가 새벽닭이 울면 부리나케 도망가는 야광귀라니, 소박하고 귀여운 발상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집안의 가솔이 다 같이 밤을 지새우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깜빡 잠들면 영영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할머니 말씀에 사촌들과 서로 꼬집으며 잠들지 않으려고 애쓴 기억이 있다. 이 기회에 어른들은 밤새도록 그간 못했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아이들은 먼저 잠든 사람에게 밀가루를 발라 놀리기도 했다. 장난처럼 보이는 이 풍속은 사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누구보다 남달랐던 우리 선조의 면면을 보여준다.
잠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그날이 특별한 날임을 역설한다. 잠들 것이 아니라 묵은해를 잘 보내고 새로운 해에 걸맞은 마음가짐으로 다듬으라는 지혜가 숨어 있다. 이때 부녀자들은 실을 매듭지어 불을 붙이고 조금 타서 꺼지면 초년에 고생하고, 중간쯤 타면 중년에 고생하고, 다 타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믿으며 점을 쳤다. 초년을 지낸 사람은 한시름 놓을 것이고 중년을 앞둔 사람은 중년만 잘 보내면 된다고 위로할 것이었다. 불이 꺼질까 조마조마하며 실을 바라보고 있는 부녀자들의 마음은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터다.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조선평전>(신병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새해 소원을 비는 솟대 문화
“무릇 50여 나라가 각기 소도라는 별읍을 두고 있다. 또 나무를 세워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고 귀신을 섬겼다. 도망 온 자가 그곳에 들어서면 잡아가지 못했다. 소도는 절에 세워놓은 부도, 곧 찰주(사찰 기둥)와 흡사하다.”
장대가 꽂힌 곳이 성역이 되었다는 말인데, 그런 의미로 볼때 솟대는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물이다.
福 짓는 마음으로 한 해를 준비하다.
수복강녕을 꽃피우다
새해 새로운 희망과 꿈을 소망하며, 매화를 꽃병에 담아 향기로운 새해 아침을 맞이해본다.
세화에 깃든 복을 선물하다
민화의 한 갈래로 주로 새해의 복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내용을 담았는데, 조선 시대 도화서에서는 해마다 정초가 되면 세화를 그려 임금에게 올리고 또 서로 선물도 했다. 특히 세화는 부적의 기능도 있어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악귀를 쫓는다는 호랑이, 기쁜 소식을 알려준다는 까치, 소나무와 학 같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을 그리는 등 복을 기원하고 잡귀를 쫓는 내용이 담겨 있어 계층을 초월해 모든 사람이 즐겼다.
에디터 조민진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선우 스타일리스트 양은숙(스튜디오 밥) 어시스턴트 김소혜, 박은미 촬영장소 강원 영월 조견당
GOLD & W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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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安訥) 동악집(東岳集) > 東岳先生集卷之一 > 北塞錄 北塞錄
欲作家書說苦辛。 恐敎愁殺白頭親。 陰山積雪深千丈。 却報今冬暖似春。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塞遠山長道路難。 蕃人入洛歲應?。 春天寄信題秋日。 要遣家親作近看。
목은집(牧隱集) > 목은시고 제35권 > 장단음(長湍吟) 장단음(長湍吟) 이웃집 늙은이인 이 상서(李尙書)와 박 중랑(朴中郞), 김석(金碩), 김언(金彦), 이우중(李祐仲), 손숙휴(孫叔畦)가 윷놀이를 하기에 옆에 앉아서 구경하다. 동방의 풍속이 예로부터 세시를 중히 여겨 / 風俗由來重歲時 흰머리 할범 할멈들이 아이처럼 신이 났네 / 白頭翁?作兒嬉 둥글고 모난 윷판에 동그란 이십팔 개의 점 / 團團四七方圓局 001] 정과 기의 전략 전술에 변화가 무궁무진하이 / 變化無窮正與奇 002] 졸이 이기고 교가 지는 게 더더욱 놀라우니 / 拙勝巧輸尤可駭 강이 삼키고 약이 토함도 기약하기 어렵도다 / 强呑弱吐亦難期 노부가 머리를 써서 부려 볼 꾀를 다 부리고 / 老夫用盡機關了 가끔씩 다시 흘려 보다 턱이 빠지게 웃노매라 / 時復流觀笑脫? [주D-001]둥글고 …… 점 : 윷판의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고, 안쪽의 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며, 윷판의 중심에 있는 점은 북극성을 상징하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점들은 28수(宿)를 상징한다고 한다. [주D-002]정(正)과 기(奇) : 병법(兵法)의 용어로, 각각 정도(正道)와 편법(便法)에 의한 작전을 말한다.
/ 한국고전종합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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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