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7
Thunderbolt.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비행 중전차 (Flying Heavy Tank) 주력
전투기 겸 지상
공격기. 러시아 출신 개발자가 세운 리퍼블릭(Republic)사에서 제작한 전투기로 특징을 꼽으면 육덕진 몸매와 사기적인 방어력과 강력한 2,000마력의 엔진이다.
당초 리퍼블릭사는 날렵한 경전투기로 설계하고 있었는데, 미
육군항공대에서 화력과 방어력 강화를 요구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M2 중기관총 8정을 장착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그러다보니 항공기 덩치가 당초 계획보다 커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항공기 엔진이 증가한 동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리퍼블릭사는
프랫&휘트니사가 개발한 2,000마력의 R-2800-8 공랭식 레디알 피스톤기관을 설치하고, 아예 대형전투기로 설계를 변경하였다. 그러면서 남아도는 엔진파워는 모두 장갑을 두르는데 사용하면서 육군 항공대의 요구를 맞춰버렸다. 이런 방식은 이후 작품인
F-105를 제작할 때도 적용되어서 세계 최대의 1인승 전투기가 나와 버렸다.
간단히 미 육군항공대의 요구를 맞추려다 보니 저 세 가지 특징이 나온 셈이다(…). 그 때문에 상당히 둔중하게 보이는 외모를 지녔으며, 실제로도 비행속도를 제외하면 둔한 편이었다.
영국에 처음 이 비행기를 가져다놨을 때, 영국
공군의 반응은
"님하 이거 지상공격기죠?" 전투기란 사실을 알려주자
"님 지금 장난하시나효?" 하지만 의외로 롤(Roll, 항공기를 좌/우로 뒤집는 것) 속도는 빠른지라 이것과 빠른 비행속도를 활용하면 꼬리물기에서도 위협적인 전투기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P-47 에이스 한 명이 스핏파이어와 가상공중전에서 이 성능을 활용하여 스핏파이어를 잡아버리기도 했다.
이래도 공격기라고 무시함? 깝ㄴㄴ
하지만 새끈한
스핏파이어의 조종사들은 P-47을 대놓고 비웃기도 했고(특히 영국에 의용병으로 가서 스핏파이어를 몰던 미군 조종사들), 조종사중에는 심지어 탑승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양은 성능과는 다른 법. 한번 썬더볼트를 탑승해 전투를 치른 조종사들은 P-47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무시무시할 정도로 무거운 저 거대한 기체가, 의외로 에너지 파이트에는 굉장히 유리했다고. 엔진 힘이 워낙 좋기 때문에 상승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저속에서 엔진힘만으로 올라가는 지속상승력이 아니라, 일단 가속을 붙인뒤 그 탄력으로 올라가는 Zoom Climb시에 강력했다는 이야기다. 미군 전투기들은 P-38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속상승력이 그저그런 수준이었던데다가, P-47은 엔진힘이 있다고는 해도 워낙에 무거운 기체라 꽤 안 좋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무게 때문에 한 번 급강하를 시작하면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었던 것. 원래 급강하는 독일군의 장기였는데, 유일하게 독일이 보유한 그 어떤 전투기보다 우수한 급강하능력을 보여준 게 바로 P-47이었다. 당장 독일군의 에이스 발터 크루핀스키의 말로는 급강하하는 P-47은 '나중에 다시 보자' 하고 사라지는 악마 같았다고 한다. 영국군 파일럿 왈 "저렇게 생긴 전투기는 당연히 아래로 떨어지는 건 잘 할 수밖에!" 워낙 급강하 성능이 좋다보니 급강하중 음속에 도달했다거나 돌파했다는 말도 나돌 정도. 물론 프로펠러기는 음속근처에 도달하면 프로펠러가 추력을 만드는게 아니라 되려 항력을 만들기 때문에 급강하로 음속을 돌파했다는 것은 낭설에 불과하다.
따라서 P-47은 한 번 치고 빠지는 고전적인 전법에서는 말 그대로 무적에 가까운 기체였다. 여기에 우수한 맷집과 우수한 속력, 고속 선회 능력이 괜찮은 점 등 저속 선회가 당대 전투기 중 최악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격투전에서조차 P-47을 무시할 수 없는 기체로 만들었으므로, 사실상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운용한 가장 위력적인 전투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다.
로켓을 발사해서 독일군 전차의 뚜껑을 따고계시는 P-47.
독일공군 역시 썬더볼트를 꽤나 난감한 상대로 평가를 했었는데, 어지간한 독일공군기보다 고공성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썬더볼트는
터보수퍼차져라는 것을 사용했다. 터보슈퍼차져는 수퍼차져(과급기)의 일종으로, 엔진에서 나오는 고온고압의 배기가스를 재활용하여 공기를 압축하여 공급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희박한 고공에서 효율이 높으며 출력도 비약적으로 커지는 효과가 있다. 덩치가 커지는 것이 단점이지만. P-47이 비슷한 R2800 엔진을 사용하는 F6F나 F4U 보다더 훨씬 덩치가 큰 것도 이 터보수퍼차져 탓. 고급 차량중에 '터보'라는 것이 달렸다는 것도 대부분이 터보수퍼차져가 달렸단 말이다. 이것은 본래 크기 때문에 폭격기에 쓰던 물건이나, 전투기 중에는 드물게 썬더볼트도 채용했다. 본래 썬더볼트가 맡은 주 임무는 고고도로 비행하는 폭격기를 호위하는 고고도 전투기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은 2차대전 이전에
제트엔진 및
가스터빈 연구를 하다가 어렵다보니 때려치고 대신 폭격기의 고고도 비행을 위하여 이 터보수퍼차져를 연구했다. 덕분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제트엔진기술이 뒤처졌던 반면, 고고도를 비행하는 폭격기용 터보수퍼차져 기술에서는 꽤 앞서있던 편이라 양산되는 전투기에도 이 장비를 달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독일의 급강하전술을 엿먹일 정도로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다 썬더볼트를 가장 격추시키기 힘든 전투기로 평가하기도 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너무 날렵해서 맞추기 힘든 것이 아니라 아무리 때려도 끄덕않는 그 놈의 사기적인 맷집 때문이었다. 덕국에 티거가 있다면 쌀국은 P-47이 있다. 오오 역시 공군!
독일 조종사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히 독일 전투기가 먼저 사격을 가하고 엄청난 수의 명중탄을 기록했는데,
탄환이 먼저 바닥나고 썬더볼트는 여전히 비행하고 있었다(…)거나,
미군 조종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너무 얻어맞아서
엔진이 반쯤 정지됐는데 자력으로 귀환했다거나, 격렬한 전투를 마친 후에 귀환해서 확인했더니
피탄자국만 세 자리 수가 되더라는 이야기는 썬더볼트에겐 거의 '일상'이나 다름없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든든한 출력과 충만한 맷집 그리고 빠른속도로 선회력을 커버한다는것은 일본의
제로센과는 정 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셈이다.
근데 이쪽은 워낙 병맛이라
썬더볼트의 내구성을 증명하는 유명한 사례로는 1943년에 미 육군항공대 파일럿 로버트 S. 존슨이 겪은 사건이 있다. 편대를 유지하며 비행하던 중
Fw-190 포케불프의 붐앤줌 공격에 의해 20mm 기관포에 피탄당해서 엔진 실린더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 화재가 발생하고, 캐노피 일부가 깨지고 오일이 튀어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다가, 파편에 부상까지 입었고, 탈출하려고 해도 캐노피까지 열리지 않는 상태로 기지로 귀환하던 중에 또다시 다른 포케불프의 기습을 받았다. 한마디로 말해 전투불가에 그냥 고정표적인 상태. 그래서 존슨은 조종석 패널에 발을 지탱해서 캐노피를 열어보기도 했고, 깨진 유리 사이로 뛰어나갈 생각도 해 봤지만 전부 허사. 캐노피가 고정되어 열리지도 않았고, 창틀이 애매하게 가려버려서 낙하산을 들고 뛰어내릴 수도 없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물론, 유리는 다 깨지고 얼굴과 앞쪽 윈드쉴드는 오일 범벅이라 정상적으로 조종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
정상적 조종이 불가능하였으므로 포케불프가 3번에 걸쳐 정확히 조준하여 근거리에서 쏟아부은 20mm와 7.92mm 기관포탄을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썬더볼트는 수백 발의 탄막을 그대로 맞고도 기지로 귀환했다. 게다가 이 당시 공격기는 이때까지 무려 66기를 격추시킨 독일군 에이스 에곤 마이어로 역시 떡장갑을 자랑하는 미군 중폭격기를 공격할 때 12시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실천한 사람이다.
무적귀환 돋네
게다가 이 당시 썬더볼트를 발견한 포케불프의 파일럿은 한 번 일제 사격을 퍼부은 뒤 로버트 존슨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는데, 이 때는
넌 그래도 죽었어 라는 의미였다. 로버트 존슨은 그 표현이 독일군이 포기한 것이라 생각했으나 독일군은 한 차례 더 공격을 가했고 정말로
탄을 모두 소모하자 로버트의 옆으로 날아가 날개를 흔들어
더러운 성박휘색히 경의를 표하고는 그대로 날아가 67번째 격추 기록에 실패했다. 즉
Fw-190의 공격을 두 번이나 앉은 상태로 얻어맞았다는 의미. 로버트는 간신히 착륙 후 자기 기체에 난 총알자국을 세어보았는데, 기체 한쪽에만도 20밀리 21개와 더 작은 구멍(7.92 mm) 200개 정도 센 뒤에 질려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훗날 유럽전선 미군 에이스 2위(27~28대)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히스토리 채널의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에서도 재현되었다.
나중에는 독일 전투기들과 마주치면 아예 정면공격을 걸었다. 보통 공중전에서 헤드온은 제아무리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기피하는 전술이지만, 워낙 맷집이 사기적인데다 8정의 중기관총이 동시에 뿜어내는 총알의 카페트 덕분에 독일 전투기들은 정면에서 공격해오는 P-47을 상대할 수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헤드온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선회를 한다면 이미 방어기동에 들어가는 입장에 처해지는 것이라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골치아픈 상대였다고 한다.
아르덴 대공세에서도 P-47의 맷집은 증명되는데, Y-29비행장 상공에서 난전중에 독일군
Bf109 두 대 에게 일격일탈 공격을 당해 오른쪽 날개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던 상황에서도 기동이 가능했으며, 도리어 꼬리를 잡아 두 대중 하나를 격추시키고, 나머지 하나는 아군
P-51 무스탕이 처리해 버리는 어이없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야말로 리분 전성시대의 징벌기사
P-51 무스탕이 개발되기 전까지 제공전투와 폭격기 호위도 담당했었는데, 연료를 만땅으로 채워도 독일 영토 근처까지도 못가는 항속거리로 인해서 연합군의 항공작전에 수많은 애로사항을 꽃피웠다. 외부연료탱크를 채택해서 항속거리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 때는 이미 무스탕이 실전배치된 뒤였다. 결국 무스탕이 최대속도도 더 빠르고, 선회성능도 좀 더 좋았으며 결정적으로
값이 더 쌌다. 대신 고고도 비행성능만은 터보수퍼차저를 단 썬더볼트가 더 우수했고, 무스탕은 연료탱크가 기체 전반에 걸쳐 있었기에 연료 잔량에 따라 비행 특성이 달라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종합적으로는 무스탕이 더 낫다고 판단되었으므로 폭격기 호위 및 독일 전투기 사냥에 투입되었는데 효과 만점!!!
그래도 제공전투에는 꾸준히 참여하였는데, 이 때문에 무스탕만 운용하는 부대와 썬더볼트만 운용하는 부대 사이에는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고 피튀기는 격추 경쟁이 펼쳤다고 한다. 물론 서로 조종하는 전투기에 대해서
디스질하는 건 기본이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제4전투비행대(P-51)와 제56전투비행대(P-47)간의 혈투. 전투비행대 총 격추수가 둘이 비등하였다. 참고로 제4전투비행대는 한국전당시 F-86을 몰고 한반도에서 싸왔으며, 제 56전투비행대는 현재
주한미군 소속으로
대한민국에 주둔중.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는 지상공격 임무의 비중이 늘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무스탕을 투입했더니 지상 포화에 냉각계통에 피탄당하고 엔진과열로 뻗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스탕 뿐 아니라 수냉식 레시프로 전투기면 냉각계통에 피탄시 과열로 뻗는 것은 공통적인 단점에 해당한다. 어쨋든 지상공격에는 무스탕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점을 입증했기 때문에 그동안 보여준 썬더볼트의 사기적인 맷집과 생존성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었다.
역시나
어지간한 지상포화는 잘근잘근 씹어드시면서 쑥을 재배하는 포스를 보여주었는데, 연합군의 지상진격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미 육군의 가장 우수한 기갑 장비(tank weapon)가 P-47이었다는 발언이 있을 정도다.
참조. 독일군은 썬더볼트와 영국군의 타이푼 전폭기를 야보(Jabo)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전폭기의 독일어인 Jagdbomber(전투 폭격기)의 약어다.
P-47의 위력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영토로 진격하던 미군 보병부대가 독일군의 토치카에 가로막혀 발이 묶였다. 통신병은 아군 전투기를 호출했지만, 날아온 것은 단 한 대의 P-47... 이 P-47을 향해 독일군 진지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었지만, P-47은 유유히 날아다니면서 기관총과 로켓을 퍼부어 독일군 토치카를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쑥대밭을 만들어버렸다. 이 광경을 보던 미군 병사들은 "우왕굿 우와, 굉장하다! 저 비행기만 있으면 우린 베를린까지 한걸음에 갈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
이런 활약상으로 한 P-47조종사는
"자네들은 정말 굉장한 일을 해냈어. 자네들만 나타나면 적군의 포화가 울러퍼지다가도 금새 멈추니 말일세.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네."라고 씌여진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런 활약상 덕분에 그 이름은 제공 전투기가 아닌 지상 공격기
A-10이 물려받았고, 선대의 명성에 한점 부끄럼 없는 활약상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P-47은 초반부터 전쟁에 투입되어 전쟁 후반까지 잘 써먹었던지라 미군이 생산한 단발 전투기 중에 가장 많은 숫자가 생산되었다. 하지만 대전이 종전된 후 급격하게 퇴역해서 해체된지라 현재 남아있는 숫자는 무스탕보다 적다.
P-47의 활약은 유럽전선에서의 활약만 잘 알려져 있으나, 태평양에서도 많은 활약을 한 편이다. 특히 P-47 최후기형인 P-47N은 연료탑재량을 크게 늘려서
사이판에서 일본을 폭격하러 가는
B-29 호위임무에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