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761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경계(境界), 경계 같은 것도 경계가 여러 가지 경계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중생이 보고 들은 것이 많아놔서 그때그때 가만히 앉아 있으면은 벼라별 경계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경계라는 것은 다 사실은 허망한 것입니다. 부처님 같이 모양을 하는 그런 경계도 나올 수가 있는 것이고 또는 관세음보살같은 그런 경계도 나올 수가 있는 것이고 또는 광명도 훤히 밝아 나올 수가 있는 것이고 다 그래요. 모두가 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모두가 다 허망한 것입니다. 다만 보다 더 비교적으로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있겠지요. 그러나 좋고 나쁜 것은 상대적인 문제인 것이지 허망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경계가 나오든지 간에 제아무리 재미스럽고 환희스러운 광명 찬란한 것이 나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집착하면 결국은 그냥 악화가 됩니다. 그런 집착을 말고서 오직 하나의 초점, 하나의 근원적인 우리 생명의 본래의 자리, 아까 말씀드린 바 그 자리가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 아닙니까. 한도 끝도 없는 그 자리 말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무량광불(無量光佛) 자리이고 진여불성 자리고 그 자리가 바로 나무아미타불 자리고 관세음보살 자리입니다. 우리 불성(佛性) 가운데는 자비나 지혜나 다 원만히 충만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불성을 자비로운 쪽으로 보면은 관세음보살이고 지혜로운 쪽으로 보면은 문수보살이고 또 전체로 보면은 그때는 아미타불이고 지장보살 또는 약사여래, 무슨 치성광여래 모두가 다 그것이 우리 불성공덕이어요.
불성공덕이 한도 끝도 없이 많아서 그와 같이 여러 갈래로 이름을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인데 본래의 자리는 똑같이 우주의 모든 근본자리, 일미평등(一味平等)한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입니다. 일미평등한 진여불성 자리에다가 마음을 두고 공부를 해야 결국은 근본을 안 떠나고 또는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참선이 됩니다. 똑같은 나무아미타불을 외인다 하더라도 단순히 우리가 복을 빌어서 복을 비는 자세로 외이고 상(相)에 걸리고 하면은 그때는 참다운 염불(念佛)이 못됩니다. 같은 염불도 염불참선(念佛參禪)이라, 염불인 동시에 참선이 되기 위해서는 방금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지 우주의 하나의 생명 자리, 하나의 생명 자리는 진여불성 자리를 안 떠나고서 염불을 하면은 바로 그것이 염불인 동시에 염불참선 그러는 것입니다.
화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기독교를 오랫동안 믿다가 갑자기 하기 곤란스러운 분들은 그대로 하나님식으로 진여불성 자리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서 “오, 주여!” 하고 그대로 공부해도 되지요. 그도 역시 하나의 참선이 됩니다. 꼭 불교적인 이름만 붙여가지고 해야 참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본 고향 자리, 모든 존재의 근원자리, 거기다가 마음만 두면은 모두가 그때는 화두를 드나 화두를 안 드나 염불을 하나 주문을 하나 다 참선이라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와 같이 아무런 벽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통무애(圓通無碍)라, 원통무애라. 진여불성 자리는 우리 생명의 고향입니다. 거기에서 와서 우리가 거기로 갑니다.
업(業)을 많이 지으면은 더디 가고 윤회전생(輪廻轉生) 을 많이 하겠지요. 여가 태어나고 저가 태어나고 한 것도 그도 허무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 몸은 다 공(空)이고 허망하지만은 우리 업(業)이라는 것은 업을 지어놓으면은 수백 겁 지나도 업은 다 우리가 보상을 해야 됩니다. 보상할라면은 함부로 먹어서 안 되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고 합니다. 즉 말하자면 욕계번뇌, 그 업業 가운데서 욕계번뇌의 업이 가장 무거운, 즉 말하자면 저 한 뿌리의 업 아닙니까. 먹는 것과 또는 남녀 이성 간에 사귀는 것과 그런 것이 가장 한 뿌리의 욕심입니다. 그걸 꼭 떼어야, 업이 녹아지고 또는 윤회를 하지 않고 우리가 해탈로 다 갑니다.
우리가 더러는 우리 선배들 가운데 깊은 삼매(三昧)에 못 들어서 알기는 제법 알지만은 못 들어서 함부로 행동한 분들이 없잖아 있어요. 그것은 우리가 정확히 비판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치로는 알지만은 불교 말로 하면은 해오(解悟)라, 해석할 해[解]자, 깨달을 오[悟]자, 해오(解悟)라, 해오는 그냥 일념에 알 수가 있지요. 그러나 증오(證悟)라, 우리가 증명해서 아는 것은 그때는 깊은 삼매에 들어야 됩니다. 오랫동안 참선에 잠겨야 됩니다.
부설(浮雪)거사 「사허부구(四虛浮漚)」 가운데서. 가사설법여운우(假使說法如雲雨)하니, 가사 설법을 구름ㆍ비같이 막힘없이 설법을 잘한다 하더라도, 간혜미능면생사(乾慧未能免生死)라, 마를 간[乾]자, 지혜 혜[慧]자. 그 깊은 삼매가 없는, 깊은 선정이 없는 지혜는 결국은 간혜(乾慧)입니다. 간혜란 말입니다. 우리 간혜로 해서는 생사의 업을 못 녹입니다.그래서 염불한 분들은 생각생각에 부처님 자리를 안 떠나고 염불을 해서 우리 업을 녹여야 할 것이고 또 화두를 참구하는 분들이나 참선하는 분들은 생각생각에 그분들도 역시 똑같이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 영원(永遠)의 우리 고향 자리,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그렇게 화두도 참구하고 또는 다른 묵조(黙照)도 하고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하셔서 가장 행복스럽고 또 모든 면에서 집안에 운수로 보나 어떠한 면으로 보나 최상의 길, 최선의 길, 그 길인 부처님 되는 공부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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