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이모(35ㆍ여)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3년전 매입한 강원도 고성 땅(임야 250평) 관련 소송 때문이다.
2004년 투자하면 서너배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한 기획부동산업체의 말만 믿고 결혼자금으로 모아 돈 목돈을 투자한 게 화근이 됐다. 그는 기대와는 달리 땅값이 오르지 않고, 투자금을 되돌려받기도 어렵게 되자 최근 업체를 상대로 법원에 분양대금 반환소송을 냈던 것.
하지만 소송에서 이겨도 분양대금을 다 되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 업체가 분양대금의 대부분을 직원 수당지급 등에 써버렸기 때문이다.
양도세 중과 등의 규제로 찬바람이 불고 있는 토지시장에 각종 땅 사기분양 관련 소송이 많다. 투자하면 큰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기획부동산의 말만 믿고 땅을 샀던 투자자들이 예상대로 땅값이 오르지 않자 사기를 당했다며 소송을 통해 배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분양업체 폐업 많아 대부분 속수무책
이런 사례는 기획부동산업체가 극성을 부린 토지시장 활황기(2003∼2005년)에 땅을 샀던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당시 기획부동산업체에서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제시했던 각종 개발재료들이 3∼4년이 지난 지금 거짓으로 판명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유모(47)씨. 그는 2004년 온천으로 개발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부동산업체의 유혹에 넘어가 강원도 양양군 임야 400평을 평당 15만원에 샀다.
하지만 최근 법률상 문제로 온천개발이 불가능한 것으로 최종 판명나자 사기를 당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분양대금 반환신청 소송을 냈다. 유씨가 투자한 땅은 전체 면적이 13만여평으로 투자자만 370여명(투자금액 208억원)에 달한다.
그는 “업체가 그럴듯한 개발도면을 제시하며 투자를 권유하는 바람에 땅을 비싸게 샀다”며 “현재 소송이 진행중이지만 이미 업체 대표가 구속돼 분양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기도 용인 자연녹지 1500평에 투자했던 김모(53)씨도 요즘 소송을 준비중이다. 한 부동산업체가 2005년부터 수립중인 용인시 도시기본계획에 시가화 예정지로 편입될 것이라며 꾀는 바람에 이 땅을 샀지만 최근 확인 결과 거짓으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그는 “대형 보험회사의 재무상담사가 투자를 권유하는 바람에 믿고 땅을 매입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누리 전영준 변호사는 “지난해 기획부동산의 대부격인 김현재 삼흥그룹 회장 구속 이후 땅 사기 분양 관련 소송 문의가 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현재 2건의 소송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계약자들 자체 모임결성하기도
땅을 판 업체 대표가 폐업신고를 하고 잠적하자 분양 계약자들이 자체적으로 모임을 결성,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이모(43)씨는 요즘 생업(보험업)을 제쳐놓고 관공서를 드나드는 일이 잦다.
재작년 그는 한 기획부동산업체로부터 개발허가를 받아준다는 조건으로 경기도 용인 임야 300평을 공유지분 형태로 매입했다. 하지만 최근 이땅이 연접제한에 걸려 개발허가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나면서 업체 대표가 잠적하자 분양계약자들은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씨는 이 모임의 대표를 맡아 개별등기 이전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지만 그 결과를 자신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계약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OK시골 김경래 사장은 “토지시장 활황기를 틈타 난립했던 기획부동산들은 확정되지 않는 각종 개발계획을 내세우며 땅을 팔고 잠적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업체로부터 쓸모없는 땅을 분양받은 계약자들의 상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 컨설팅업체인 다산서비스 이종창 대표는 “기획부동산업체로부터 땅을 분양받은 계약자들은 대개 부동산 지식이 전무한 서민들”이라며 “투자 규모도 3000만∼5000만 정도로 소규모가 많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상운의 이상문 변호사는 “땅 분양 관련 소송이 늘고 있지만 업체 대표가 이미 재산을 빼돌린 경우가 많아 분양대금을 돌려받은 사례는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07.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