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부산 토박이로 20대 중반까지 부산서 살다가, 님처럼 뜻(?)한바 있어서
부모님 원망을 등뒤로 한 채, 야밤에 입석 열차 끊어서 야반도주 하다시피
서울로 상경 했었습니다...
당시 내 수중엔 50cc 스쿠터(텍트) 판 돈 20만원이 전부였었죠...
그리고 스쿠버 다이버용 백 하나랑, 여행자용 카트 백 하나 달랑 끌고
그렇게 서울로 상경 했더랬습니다...
새벽에 서울역 도착해서 당장 갈곳이 없어서( 그당시엔 찜질방도 없었슴)
주변을 둘러보니 허름한 사우나가 있길래, 거기 들어가서 날 밝을때까지 버텼습니다...
사우나 때밀이 아저씨가, 시커멓고 커다란 넘이 시커멓고 커다란 가방 두개 들고 들어서니
몹시도 수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잠도 안오더군요...
그렇게 뜬눈으로 버티다가 아침이 됐는데...
뉴스에서 계속 뭔가 몹시 시끄럽더군요... 그리고 때밀이 아저씨의 호들갑 떠는 목소리...
뭔 백화점이 무너졌대나...뭐래나...
그랬습니다... '삼풍 백화점' 이 무너진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상경한 날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암튼...
하루 왠종일 나라가 그일로 떠들썩한데, 나는 그길로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부대에서 절친했던 동기넘이 당시 인천에서 살고 있었는데... 내가 복무당시에 그넘에게
약간의 위기를 모면 할수있게 도움을 준 일이 있었더랬습니다...
그 넘은 그일이 몹시도 고마웠었는지 그 이후로 늘 내게 친절히 대해줬었고,
제대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 받을때마다 입버릇처럼 한번 찾아오라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난 부대 동기의 호의(?)를 차마 거절할수가 없어서 정말 그 넘을 찾아갔던거 였었죠...
놀라는 그넘을 적당히 설득 시킨후...
인천에서 일단 타지 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철저히 계획하고 상경했던것이 아녔기에, 마땅히 할 일이 없더군요...
가진게 부모님이 물려주신 튼튼한 몸뚱아리 뿐이라서... 몸으로 때우는 일을 찾아봤었죠...
인천항 부두 하역 작업...
노가다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녔기에 무작정 시작했었습니다...
아... 정말 험한 일이더군요...
제1의 항만 도시인 부산에서 살때도, 부산항 근처도 잘 안갔었는데...
주변에 같은 팀원중 내가 제일 영계였습니다... 대부분이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
아저씨들이라서 요령이 늘대로 늘어서, 힘쓰는 일은 주로 날 시키더군요...
불평 한마디 못하고 열심히 일하다가 어느날 하루... 중간 참으로 나온 음식을 잘못 먹곤
아다리가 걸려서 설사를 시작했는데... 아... 정말 하늘이 노래지더군요...
담날에도 설사... 그 담날에도 설사... 3일간을 설사만 주구장창 하다가 결국엔 결근을 하고 친구집에 드러 누워 버렸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근처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급성 장염' 인데 상태가 몹시 안좋다고
입원 하라고 겁을 주더군요...
나는 의사 말대로 입원할 처지가 안됐었기에 그냥 약이나 좀 여유있게 처방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한 3~4일을 죽만 먹고 약 먹고 데운 게토레이 먹고... 그렇게 반복하니 좀 나아지더군요...
없던 데피네이션도 생기구요... ㅎㅎㅎㅎ...
그이후로 부두 노동은 자연스레 관두고 다른 일을 찾느라 며칠을 친구 집에서
눈치보며 지냈는데... 어느날 밤... 소변이 마려워서 살금살금 안방을 지나
화장실을 가려는데... 그만...안방에서 친구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습니다...
(전략) 어머니: 근데 쟤는 집에 부모님도 안계시니...?
친구: 왜요...? 두분 다 계시는걸로 아는데요...
어머니: 근데... 어쩜 자식이 타지에 나와 있는데 전화 한통 없으시냐...?
저렇게 고생하며 지내는데... 자식 걱정도 안되나...? 아님, 내가 모르는 뭔 일이
있는거냐...?
친구: 조용히 말씀하세요... 어머니... 저넘 듣겠어요...
어머니:..........
친구:............(후략)
아...
아마 그날 밤 담배를 대략 두갑은 폈을겁니다...
그리곤... 정성스레 메모를 남겨 놓고(그동안 정말 신세 많이졌고 너무 고마웠었다고...)
새벽에 일 찾아 나가는것 처럼 가장하고 그길로 다시 서울역으로 갔습니다...
후일담이지만, 그 친구 어머니에겐 결국 신세를 갚지 못했습니다... 항상 맘 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친구 어머니가 지병으로 그만 얼마 못사시고 돌아가셨었죠...
물론 그 친구랑은 지금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친구넘 결혼할때 내가 사회도 봤구요...
그리곤...
사람이 역시 평소에 인간관계를 잘 다져놔야 된다는게....
우연찮게 부산 살때 알고 지내던 또 다른 넘이랑 연락이 되어서 그넘에게 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보광동...
이태원과 한남동 사이에 위치한 동넨데... 여기서 또 터를 잡고 부벼대기 시작했죠...
이 넘은 당시에 여자랑 동거를 하다가 여자가 도망가버리고 원룸 비스무리한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느데, 밤일(?)을 하는 넘이라서 아침엔 늘어지게 디비자고 밤에 밤귀신처럼
일 나가는 그런 패턴을 가진 넘이었습니다... 눈치빠를 분들은 대략 알겠지만....네...
맞습니다... 기둥서방 비스무리한 일을 이태원에서 하는 넘이었죠... 가끔씩 내가 자고 있는데 새벽에 불쑥불쑥 빠순이들을 데려와서 난 몹시 당황하는척 해주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넘과 밤에 마주치기가 싫어서 난 하루에 두탕을 뛰었습니다... 아침엔 이태원 카페에서
빠텐을 보고, 저녁에 퇴근해서 잠깐 눈붙이고 밤엔 보광동 24시 편의점에서 야간타임 뛰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한 6개월을 생활하니 수중에 앵이가 좀 모이더군요... 당시 두탕 뛸때 합쳐서
대략 150만원 정도 받았는데, 친구넘에게 매너상 생활비조로 20만원 주고, 내 용돈 좀
써도 100만원이 넘게 남더군요... 고스란히 다 저축했더니 6개월후엔 돈이 꽤 모였습니다.
더이상 이태원 생활을 계속하다간 타성에 젖을것 같아서 하루 날 잡아서, 친구넘이랑
그동안 내 의지완 전혀 상관없이 알게 되었던 빠순이들 여럿 불러서 성대한(?) 파티를
한 후, 난 또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사당동...
어찌어찌 흘러들어가서 또 다시 정착을 하게 된 곳이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사당동 다세대 주택가 방 한칸짜리 반지하를 월세로 얻었습니다...
이후론 좀 정상적인 직장을 구해서 다소 사람 모양새 나게 생활을 하며 나의 꿈을 향해서
하루 하루 노력했었죠...
암튼...
그 이후로도 얘깃꺼리와 에피소드는 무지하게 많지만, 다 쓰려면 글이 너무 길어질것
같아서 이쯤에서 접어야 겠습니다...
아...
그리고 부산에서 날 믿고 그 동안 참고 기다려준 여인과 결혼도 했구요... 마이 주니어도
둘이 생겼죠... 울 마눌은 아직도 부산 사투리를 못고치는군요...
내가 지금 성공해서 성공담을 늘어 놓는건 아니지만, 뭐든지 독한 맘 품고 하면 성공할수
있단 얘기를 해줄려다가 그만 글이 길어 졌네요...
윗글 쓴 분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왠지 동향 출신 동생 같아서 뭔가 힘을 줄 수
있을까 해서 쓴 글이니 걍 부담없이 읽어 주셨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화이링...!!!
보태기: 지금은 결혼 한후에 이사해서 '창동' 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젠 거의 서울 사람 다돼서 내가 먼저 말 안하면 내가 부산 출신이란걸 모를 정도죠...
가끔씩 부산 내려가서 곧휴친구덜 만나서 나도 모르게 서울말 쓰면 친구넘들이
사시미칼 찾으러 갑니다...ㅎㅎㅎㅎ
첫댓글 20대 초반에 와서 7년째인데 제가 먼저 말안해도 부산 출신인걸 알 정도더군요
잘읽었습니다 재밌네요... 근데 보태기는 제껀데요
열심히 사셨네요.........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잘읽었슴다..저도 부산에 살고있습니다..이참에..확 상경해버려,ㅎㅎㅎ....늘 행복한 일만생기세요^^
영화 스토리...
오~멋진삶이시네요~
재밋게 잘읽었습니다윗글쓴분한테는 힘이되겠네요
이야 감동스토리군요. 저도 부산에서 상경해서 지금 창동 바로 옆 상계동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도 파티 열어주세요. ㅡㅡ;;;;;
감동적입니다. 쌍문동과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시는군요.
강북신기 제 1.2 멤버 여러분...새로운 멤버 영입계획 하십니까???
멋있으십니다~!
서울 온 지 4년이 넘었는데도 지방에서 놀러왔냐고 묻더군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