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의 사랑
원제 : Daisy Kenyon
1947년 미국영화
감독 : 오토 프레밍거
출연 : 조안 크로포드, 다나 앤드류스, 헨리 폰다
루스 워릭, 마샤 스튜어트, 페기 앤 가너
코니 마샬, 아트 베이커
'애수의 사랑' 거의 알려지지 우리나라 개봉작입니다. 똑같은 고전 영화라도 국내 개봉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인지도가 다르고, 똑같은 개봉작이라도 감독이나 배우가 유명한가 아닌가에 의해서 인지도가 다릅니다. 가령 제프 챈들러나 코넬 와일드 라는 배우가 출연한 작품들이 각각 국내에 15편 이상 개봉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억조차 대부분 못하는 영화들이죠.
그런 면에서 '애수의 사랑'은 극히 예외적인 영화입니다. 유명감독, 유명배우, 그리고 국내 개봉, 그런데 고전영화 좋아하는 분들도 거의 모르는 영화지요. '제 17 포로수용소' '로라 살인사건' '돌아오지 않는 강' '슬픔이여 안녕' '영광의 탈출' 등 유명한 영화가 즐비한 오토 프레밍거 감독, 그리고 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꾸준히 국내에 영화가 개봉된 유명 배우 헨리 폰다,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여배우 조안 크로포드가 출연합니다. 이들보다 인지도는 낮아도 '로라 살인사건' '우리생애 최고의 해' '발지 대전투' '거상의 길' 등에 출연한 40년대 유명배우 다나 앤드류스까지
이런 스팩을 가진 영화라도 보기 드물게 완전히 잊혀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실은 좀 이유를 찾을 수 있지요. 우선 헨리 폰다는 서부극, 전쟁물 등에서는 인지도가 있어도 이렇게 심심해 보이는 삼각 드라마에서 관심을 가질 배우는 아닙니다. 조안 크로포드는 그녀가 가진 배우로서의 역량이나 인지도에 비해서는 국내에서 관심이 많은 배우는 아니고요. 활약한 시대가 30-40년대이다 보니 주로 50-60년대 영화를 많이 접한 '명화극장 세대' 에게는 그냥 나이든 배우로 기억되는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자니 기타'에서 이미 나이가 지긋했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중 매우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던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역시 50대 후반에 출연했으니까요. 다나 앤드류스는 뭐.... 대부분의 할리우드 배우가 그렇듯 40년대 맹활약한 배우들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별로입니다. 거기다 오토 프레밍거 라는 이름은 별 위력이 없습니다. 고전영화 시대에 감독의 이름때문에 영화에 관심을 가진 경우보다는 거의 스타배우들을 보려고 영화를 찾은 것이니까요.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릴린 먼로 같은. 그리고 영화의 장르도 문제입니다. 액션, 서부극, 미스테리, 범죄, 전쟁, 시대극이 아니라 세 명의 남녀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심리 로맨스이니까요. 선남선녀의 애절한 멜로신파와는 다른.
아무튼 저도 좀 심심하게 본 '애수의 사랑' 입니다. 저 역시 조안 크로포드는 좀 심심하게 느낍니다. 큰 눈에 뭔가 히스테릭한 느낌의 그녀는 수난을 당하는 스릴러에서는 흥미롭습니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가 전형적으로 그렇고 연하의 여자 등쳐먹는 사기꾼에게 당하는 '서든 피어'도 그렇지요. '자니 기타' 처럼 터프한 역할도 나름 괜찮고. 하지만 남자의 구애를 받는 로맨스의 여인역할이라면? 이건 심심합니다. 이 배우가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이 그리 관심이 가질 않아요.
조안 크로포드는 로맨스 영화에 많이 등장했지만 수월한 사랑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서든 피어'에서 그녀를 사랑한다고 따라다니는 잭 팔란스는 돈 많은 연상녀 등쳐먹는 사기꾼이었습니다. '낙엽'에서 사랑하고 결혼을 한 클리프 로버트슨은 정신적으로 아픔이 있는 남자로 엄마처럼 자신을 보살펴줄 연상녀가 필요했습니다. '애수의 사랑'에서도 호락호락한 로맨스 아니지요.
데이지 캐년(조안 크로포드)은 잘 나가는 변호사 댄 오마라(다나 앤드류스)와 연인이었지만 댄은 유부남이었습니다. 그것도 장인이 운영하는 거대한 로펌에서 근무하는. 즉 처가집 신세를 톡톡히 지는 남자인 것입니다. 당연히 이혼은 생각도 않고 있고 그냥 '내연녀' 신세로 머물러야 할 처지입니다. 나름 지적이고 사리분별 능력 있는 데이지는 결국 대체제를 찾을 수 밖에 없지요. 그 대체제로 낙점된 인물이 피터(헨리 폰다)라는 퇴역군인입니다. 사실 데이지가 찾았다기 보다 피터가 데이지를 필요로 한 것이죠. 피터는 사고로 아내를 잃고 그 충격으로 참전하여 전쟁까지 겪은 인물입니다. 역시 죽은 아내에 대한 대체제가 필요했던 거죠. 데이지와 피터는 결혼했고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둘 다 핸디캡이 있지요. 피터는 여전히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데이지는 댄을 사랑했지만 유부남이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니까요. 누군가의 대제인물이 되어서 서로 결합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그래도 나름 이해하고 행복할듯 합니다. 둘 다 착한 사람들이니까요.
이렇게 그냥 흘러가면 굳이 영화로 만들만한 이야기가 아니죠. 중간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댄이 결국 데이지를 잊지 못하고 찾아오고 찌질한 행동을 하지요. 재판에 진 피로감때문에 무심히 데이지를 찾아와서 매달린 것도 모자라 밤에 전화질을 해댑니다. 이걸 댄의 아내가 알게 되고 이혼소송을 걸게 되죠. 댄의 아내는 댄을 버리려던게 아니고 오히려 그에게 더 매달리는 심정으로 일종의 복수심으로 이혼 소송을 건 것지요. 댄이 잘못했다고 매달리길 바랬지만 오히려 댄은 아내에게 더 싸늘합니다.
이렇게 되서 이야기는 3각 구도가 됩니다. 데이지를 놓고 댄과 피터가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지요. 댄은 오히려 이혼하고 많을 것을 잃게 되겠지만 데이지와 결합할 기회가 되는 것이고, 피터는 댄과 데이지 사이에서 틈새를 공략하여 데이지를 차지했지만 댄이 데이지를 포기하지 못하여 자신이 들어갈 틈새가 없어지면 데이지를 놔줄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루하고 심심하던 영화는 댄과 피터가 데이지를 놓고 본격 경쟁을 하면서 조금은 흥미로워집니다. 둘이 나름 꽤 페어플레이를 합니다. 찌질하던 댄이 어느새 상남자가 되는 느낌이고, 소심해 보이는 피터는 오히려 더 합리적인 게임을 할줄 아는 듯 합니다. 이를 지켜보는 데이지의 마음도 착잡하지요. 자신이 뭐 둘의 물건도 아니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것이 나름 흥미있는 정도의 영화입니다. 한 여자를 두고 삼각관계를 벌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 댄의 아내도 있다고요? 댄의 처가는 그냥 영화의 장식이나 인테리어 이상이 아닌 들러리입니다. 셋의 이야기지요. 심심하다가 그럭저럭 볼만하던 후반부인데 그래도 마지막에 인상적인 대사 하나가 나오지요. 피터는 사지를 넘나드는 전쟁을 치룬 인물이었다는 점.
우수한 '드라마장르 영화'가 매우 많았던 1940년대 영화고 심리 로맨스 장르인데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유명 배우들이 나오고 유명 감독이 연출한 개봉작이라서 본 영화인데, 조안 크로포드가 두 남자 사이에서 줄다리기의 대상이 되는 여성으로 등장하는 자체가 핸디캡이 된 느낌입니다. 지적이고 사려깉은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는 적합했지만 좀 더 젊고 아름다웠어야 어울렸습니다. 상대역인 다나 앤드류스와 헨리 폰다가 상대적으로 젊고 멋졌지요. 중심이 되어야 할 여배우가 늙수그레해 보이는 것이 결정적 핸디캡입니다.
원제는 '데이지 캐년' 여주인공의 이름이 영화제목이지만 '애수의 사랑'이라는 임의의 제목이 붙여져셔 개봉했습니다. (일본 개봉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애수스럽지 않았던 영화입니다. 조안 크로포드가 남자와 사랑을 할때는 스릴러가 아니면 심심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다나 앤드류스나 헨리 폰다의 캐릭터는 두 배우의 이미지에 잘 어울렸습니다. 어자피 모두가 행복한 결론으로 내기는 어려운 스토리라서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느냐의 결론만 남은 영화였습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을 하려는게 무척 어렵고 고난스런 결정이라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 문제입니다. 뭔가 얻기 위해서 뭔가를 버려야 하는 것, 정말 쉽지 않은 문제지요.
ps2 :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 주연의 '애수'가 히트한 이후로 '애수'라는 제목이 들어간 영화가 여럿 있었지요. 이 영화 '애수의 사랑'도 그렇고 '애수의 여로' '애수의 크리스마스' '애수의 호수' '애수의 셰리' '남국의 애수' '로마의 애수' '애수의 이별' 등
ps3 : 다나 앤드류스의 큰 딸로 나온 페기 앤 가너는 '제인 에어'를 비롯하여 '천국의 열쇠' 에서의 어린 노라 역할, 감동적 휴먼 고전인 엘리아 카잔 감독의 '나무는 자란다' 에서의 비중있는 아역 등 재능있는 아역배우였는데 성인 배우로는 성공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영화가 아닌 TV전문 배우가 되었지요. 재능을 일찍 보인 아역배우가 성인배우로 성공하긴 정말 어렵습니다. 아역배우의 전설이 된 셜리 템플과 마가렛 오브라이언 조차 못 그랬으니까요.
[출처] 애수의 사랑(Daisy Kenyon, 47년) 잊혀진 유명배우 출연 고전 개봉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