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도
오동도 입구
오사카 도로
1920년 전남 제빙회사. 중앙동 부근
1920년대 여수 최초의 종포 어시장.
산밑의초가는 현 삼성냉동의 부속 건물이다.
1920년대 여수신항 매립과 철도 부지 조성 광경.
당시 바다였던 덕흥동앞 일대를 매립했다.
1925년 나귀타고 출장가는 여수군청 수산계 직원들
종고산과 신월동
교동 충무동
해양 공원
1930년대 부유층의 행렬
일제 강점기에서 태평양 전쟁 패전 시기까지 일본 해군은 한반도 내에 여러 곳의 항공기 기지를 설치하였지만 수상기만을 위한 전용 정비 시설과 이착륙 시설을 구비한 곳은 진해와 이곳 여수 수상기 기지뿐이었다.
여수 수상기 기지는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에 계획 정비된 수상 비행기 기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만의 탄수이 수상기 기지와 더불어 영구적 시설과 배후 정비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일본 해군이 나름 심혈을 기울인 수상기 전용 기지였습니다.
원래 진해 항공대 소속의 기지로 설치되었으나 기록에 따르면 1944년 12월 15일부터 제 951 항공대 분견대가 주둔하였다고 합니다.
1930년 여수보통학교 학생들의 체조 광경.
당시 진남관에서 임시 운영했었다.
1930년 오동도 방파제 공사
현 쌍용시멘트 공장자리에서 채석 공사를 하고 있다.
1937년 여수군청.
여수군은 1897년 6월 1일 신설하였는데 순천군에 속해있던 율촌, 소라, 삼일, 여수면을 관할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여수역
둔병도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조발리에 있는 섬.
194,50년대 추정 중앙동 로타리에서 진남관방면
1948년 여수·순천사건(麗水順天事件)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에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제주도 4·3사건 진압출동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려고 일어났던 사건으로 여순사건, 여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이라고도 부른다.
제주4·3사건과 함께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이다.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였다.
흔히 여순반란사건이라고 하였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라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고 하여 1995년부터는 '여수·순천사건' 또는 '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 사용한다.
1958년 여수 서시장 상가
1970년대 여수역
여수역은 국내 최남단 역이자 전라선의 종착역이다.
1977년 구봉산에서 내려본 국동
1977년 진남관과 종고산
1978년 신기동
1978년 안심산아래 소호동지역
1980년 공사중인 여수시청과 쌍봉동
1984년 쌍봉동 가운데 보이는 땅이 거북선 공원
1984년 돌산대교 부근
1987년 중앙로타리에서 서강동가는길
1990년 쌍봉사거리
구 여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