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9일 묵상 본문 : 아가서 6장 1절 - 13절 - 주님과 온전한 관계를 세움으로 다른 이들과도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은혜 가운데 하루를 시작하며 주께로 나아갑니다.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가 늘 변함없기에 오늘도 은혜 가운데 지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신실하신 사랑을 누리며 평안과 기쁨으로 하루를 보내게 하옵소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면 죄의 세력으로 인해 관계가 어려워지고 상대방에 맞춰서 대하면 자신의 이중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만으로는 결코 온전한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온전한 관계는 주님 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세워져 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그 관계를 이루도록 도와주시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를 통해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꿈 속에서 솔로몬을 애타게 찾던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솔로몬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대답을 듣게 됨을 보여준다.
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인들과 더불어 솔로몬을 찾았으나 솔로몬이 성 안에 없음을 알고 솔로몬이 자기의 동산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여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솔로몬의 정원은 예루살렘에서 1~2km 정도 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찾아 내려오는 것을 본 솔로몬은 감탄하며 노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르사는 즐거움이라는 뜻을 지닌 성읍이며 이곳은 솔로몬의 정원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한다. 솔로몬의 정원은 여러 군데 있었고 그 중에 디르사의 정원이 아름다웠던 것으로 볼 수 있음. 군대와 같다는 표현은 술람미 여인이 왕비로서도 매우 절도 있고 기품이 있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5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눈이 놀라게 한다는 것은 술람미 여인의 눈이 사랑으로 불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길르앗 염소의 털은 매우 기름지고 검었는데 이에 비유하여 머릿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6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7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솔로몬은 4장의 첫날밤에 표현했던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다시 반복하여 표현하고 있다.
8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왕상 11:3에는 후궁은 700, 첩이 30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솔로몬 후기의 기록이기에 본서는 솔로몬 재위 기간 중 초기인 B.C. 970~960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한다.
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외딸이라는 것은 외동딸이라는 의미보다 특별히 사랑받는 딸이라는 의미이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본 절은 화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구절로 여겨진다. 학자들은 술람미 여인을 목격한 동산 준변의 사람들로 추정한다. 그리고 그들도 술람미 여인을 향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술람이 여인은 과거 솔로몬과 좋은 관계에 있을 때 만남을 가졌던 곳을 기억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계획되지 않게 솔로몬을 발견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은 술람미 여인이 관계 회복을 위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본 절의 화자는 호도동산에 있던 사람들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은 솔로몬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계속해서 머물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나의 묵상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향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자 예루살렘 여인들은 솔로몬을 찾는 일에 함께 동참하여 도와주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술람미 여인의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가진 성도의 모습은 다른 이들도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그에 따른 열매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알고자 하는 이들이 적은 시대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세상과 구별된 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술람미 여인의 마음이 솔로몬에게 전달되었는지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정원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를 발견하여 재회하게 된다.
이러한 만남은 여전히 신실하게 일하시고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또한 하나님과의 재회는 늘 기쁨과 만족과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가장 아름답게 여기신다는 것도 보여준다.
솔로몬에게 왕비가 60명이고 후궁이 80명이라는 사실은 술람미 여인 말고도 솔로몬의 주변에 많은 여인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솔로몬의 사랑은 술람미 여인에게 향해 있었고 그녀와의 만남과 교제를 가장 가치 있게 여겼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솔로몬의 모습은 성도들을 사랑하고 교제하기를 원하시며 가장 귀한 존재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의 모습을 술람미 여인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특별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서 사랑을 누리며 온전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자신을 버린 제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직접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주며 다시 온전한 관계를 세우도록 인도하셨다.
제자들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은 성도가 누구를 통해서 온전한 관계를 세워갈 수 있는지를 보여며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관계를 통해 다른 제자들과도 연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함께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공동체가 세워지고 운영되고 있지만 그 공동체를 세우는 능력은 사람들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전한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끔씩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보면 서로 마음과 생각이 다는 것을 경험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불편하게 생각하고 멀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온전한 관계를 가지게 되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리스도가 연결점이 되어서 서로 같은 생각과 방향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공동체가 왜 지속적인 결속력을 가지고 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연합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가능하기에 성도 각자가 주와 연합되어 살기를 힘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온전한 공동체로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 이유는 어떤 태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도 갈등과 오해와 실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의 허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진정한 바른 관계는 주님을 통한 관계임을 고백하게 된다.
주님 안에서는 땅의 것이 중심이 되지 않기에 제한적이고 오해를 불러오는 일을 줄어든다.
온전하신 하나님만 중심이 되기에 온전한 관계로 나아가는 힘이 됨을 겸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관계를 세우려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연합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된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교제와 연합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1:1~4)
갈수록 세상의 기쁨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힘들게 만들여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돌아갈 길은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임을 고백하며 주 안에서만 온전한 관계를 세울 수 었음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사도 요한이 고백한 기쁨이 나의 마음에, 그리고 지체들의 마음에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지속적인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는 자로 살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을 통해 온전한 관계를 주님 안에서만 이루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 가치, 나눔, 노력은 허점을 만들고 오해를 만들며 갈등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인생의 연약함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지속할 수 없는 모습으로 이끕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께 나아감으로 기쁨이 있게 하시고 연합이 있게 하시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은 여전히 세상의 것을 누리며 그것을 나눌 때 온전한 연합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갈등과 분열과 오해와 아픔으로 나타남을 봅니다.
헛된 것에서 눈을 들어 온전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만족을 가지고 다른 이들도 기쁨과 만족을 누리도록 돕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일정 속에서 무지함을 벗어나 주님과 교제하는 모습으로 하루를 잘 마무리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온전한 교제 가운데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