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고 설명 잘해주는 약사로 소문나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 소중하게 생각해
많은 한인들 봉사의 기쁨 깨닫게 되었으면…
1. 그녀의 이름은 태양(선,Sun)
세계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널리 알려진 밴쿠버.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운 항구도시로서도 그 명성이 자자한 곳.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져 복합문화가 형성되는 캐나다 서부의 관문이기도 하다.
밴쿠버에 점점 한인사회가 틀을 갖춰 가면서 한인들의 직업군도 다양해 지고 있다.
그 가운데 광역 밴쿠버 포트무디 아이오코(Ioco)지역에서 파마 세이브(Phamasave)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최은선씨를 만나 보았다.
그녀는 한국서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뒤 백병원등지에서 약사로 일하다 남편 최귀암씨를 따라 1981년토론토로 이민왔다.
오자마자 결혼식을 올린 뒤 82년 9월 토론토 대학에 등록하여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였고 1984년 온타리오주 약사고시에 합격해 약사자격증을 땄다.
캐나다는 각 주마다 다른 약사고시 체계를 갖고 있어서 주를 옮기면 다시 시험을 보아야 한다.
처음엔 스카보로(Scaborough)에서 약사로 몇 년간 일했으며 옥빌(Oakville)에서는 직접 약국을 운영했다.
애들이 어릴 때는 일과 양육문제를 병행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주로 베이비 시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예기치 못했던 어려움이 많았다.
때론 어린 딸을 데리고 약국으로 출근해야 할 적도 있었고 한 동안은 밤새워 심야근무를 하기도 했다.
힘에 겨울 때면 샤워하며 소리 내 울던 일도 비일비재 했다.
이민생활을 하며 외롭게 사는 게 싫어서 늘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았다.
2. 사람이 좋아 사람 속에서 산다
이민생활의 자립기반이 다져지기까지 남들처럼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처음 결혼 했을 때 대학 3학년이던 남편의 한 주 수입은 고작 1백 달러였고 허름한 정부아파트에서 싼 임대료를 내고 살며 이민초기 생활을 꾸려갔다.
악착같이 노력해 결혼 일 년 만에 작은 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보다 살기 좋은 여건을 찾아 96년 밴쿠버로 이주해 온 최은선 약사. 처음에는 선배약국에서 일을 하다가 중국인하고 동업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독립해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밴쿠버에서의 약국은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런던드럭, 월마트, 세이브 온 푸드, 세이프웨이 등 대형약국이 대거 진입해 있기 때문에 소규모의 약국일 경우 남다른 장점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실정이다.
약국일은 주로 조제가 많으며 약을 사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이 캐네디언들이며 간간이 한국사람들도 눈에 띈다.
단골 손님이 대부분이며 설명을 잘 해주는 친절한 약사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주로 노인 손님들이 많은데 쿠키를 구워 왔다며 건네기도 하고 때론 꽃다발을 사 오기도 한다.
단골 손님인 어느 캐네디언 할아버지는 여행을 간다며 볼에 키스를 하고 떠나기도 한다.
선(Sun,태양)으로 불리는 그녀의 이름이 진가를 발휘하는 때이기도 하다.
최은선 약사는 본래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데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약국을 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일하는 기쁨이 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비즈니스 마인드는 지역사회에서 최고 약사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고객들을 내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특히 노인들의 경우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
씨니어들이나 장애인들의 경우 약을 무료로 배달해 주기도 한다.
물건 파는 일에만 연연하지 않겠다는 굳은 철학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객들에게 약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고 가능한 모든 설명을 해 준다.
약이란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았을 경우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물론 많다.
사람의 건강을 취급하는 일인지라 바쁜 시간 처방약이 바뀌지 않도록 신경을 쓰다 보면 지치는 적도 많다.
환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응답해 주는 일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증세가 나아졌다며 환자들이 고맙다는 말을 건넬 때면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기도 한다.
그녀의 넉넉한 성품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 많고, 경우 바르고 세상에서 제일 좋으신 분으로 기억되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셔서 제법 넉넉한 살림살이였음에도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고 생활하셨다.
허례허식이란 모르는 분이셨고 절대 돈에 연연하지 않으셨다.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두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셨다.
참으로 특별한 어머님을 둔 덕에 최은선씨 역시 넉넉한 성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할 수 있었다.
화가인 남편 최귀암씨와는 결혼 초부터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고통을 분담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의 아내인 것이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인 듯 여겨진다.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내로서 진정 기분 좋은 일이며 돈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물질이 개입되면 순수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에서다.
남편이 전공한 일, 원하는 걸 돕는 배필이 된 게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된다.
‘남편이 화가인 것이 집안 분위기를 더 나아가 가족들의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한다’고 굳게 믿는다.
3. 열정을 갖고 사는 삶의 아름다움
같은 이민자로서 주위의 한국 이민자들을 보며 안타까운 심정이 드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걸 많이 보기 때문이다.
‘봉사할 일을 찾아보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텐데’하는 생각에서다.
얼마 전 소련에서 온 의사가 열심히 공부해 자연요법 치료사(Naturopethic Doctor)가 돼 일하는 걸 본적이 있다.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면 세상이 달리 보이며 캐나다에 온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고 있기도 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생각’이며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한국 노인회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갖고 싶으며 언어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다.
한인 양로원 건립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장점과 능력이 주어진다고 믿으며 남을 사랑하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쁜 가운데도 가족들과 애정을 돈독히 하기 위해 일년에 두 번씩은 꼭 여행을 다닌다.
그러다 보니 뉴욕, 보스턴, 캘리포니아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며 남다른 추억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살기 좋은 나라에서 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고 애들 또한 원하는 일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캐나다 생활에 만족하지만 저 멀리 두고 온 가족,친지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있다.
‘캐네디언들의 함께 나누는 삶이 인상적’이며 ‘늘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이 배울 점’이라 생각한다.
본래 사람을 좋아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꾸려가는 최은선 약사.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인생은 아름답다’ 믿으며 남의 말을 모두 믿는 천진성을 언제까지고 잃지 말고 살아가고 싶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 생각하며 ‘크리스마스 무렵 밤새워 선물 싸는 일을 매우 사랑’한다.
‘자신은 하나도 선물을 못 받는 적도 있지만 남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누렸다고 생각’하는 보기 드물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기도 하다.
태양은 언제고 희망으로 떠오르며 세상을 밝게 비춘다.
밴쿠버 포트 무디의 빛나는 태양, 최은선 약사. 그녀는 마음속 깊이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간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녀를 찾는 지친 영혼들에게 끝없이 희망의 감로수를 건네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