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409) - 대만일주걷기 기행록(1)
- 춘절 분위기 물씬한 타이베이
2월 10일 저녁 10시 반, 김해공항에서 제주항공편을 이용하여 타이베이로 향하였다. 일행 중 한사람이 부산에 거주하고 광주에서도 인천공항보다 김해공항이 가까울 뿐더러 항공료도 저렴한 이점을 살려서.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교통체증을 우려하였는데 의외로 원활한 소통이다. 공항에서 개성공단 폐쇄뉴스를 접하니 불안한 마음, 정부와 국민 모두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출국 수속을 밟는 뒷줄에 대형하물을 지참한 젊은이들이 서 있다. 사연을 물으니 대만일주 자전거 대장정에 오르는 대학생, 도보와 자전거로 대만일주에 오르는 이들이 동승하는 우연을 뜻깊게 여기며 무사완주를 빌었다.
두 시간 반의 비행 끝에 대만의 타오위엔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지났다. 대만 측에서 권고한 정보에 따라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타이베이로 들어가기로 정한 터, 난데없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공항 입국장의 넓은 공간 곳곳에 밤샘 여행객들이 진을 치고 있다. 교통편을 살피니 새벽 5시 50분부터 예약한 호텔을 경유하는 버스노선이 있다. 오전 8시에 버스 승강장에 이르러 표를 끊으려니 상냥한 여직원이 패스포드를 보여 달라더니 경로우대의 할인요금(일반요금 83 대만위엔, 경로 43 위엔)을 적용해 준다. 여행안내 책자에 대만이 친절하다고 평하는데 실제로 이를 확인한 셈,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하늘이 밝아진다.
8시 20분에 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도중 몇 차례 정거한 후 50분 만에 호텔에 도착한다. 대만 측에서 미리 예약한 상태, 방을 배정받은 후 짐을 맡겨놓고 인근지역 탐방에 나섰다. 2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옷차림을 가볍게 하였는데도 땀이 난다. 공공기관과 상점들은 설 명절로 문을 닫았고 명소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한 시간 쯤 걸어 인파가 몰리는 행천궁(行天宮)에 들렀다. 행천궁에서 만든 안내문에는 관성제군(關聖帝君, 삼국지에 등장하는 關羽)을 주로 공양하는 신상(神像) 등을 참배하러 하루에 수만 명이 찾는다고 적혀 있다. 오륜(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과 팔덕(孝, 悌, 忠, 信, 禮, 義, 廉, 恥)을 중히 여기는 관성제군의 성훈(聖訓)을 배워야 한다고도. 설립자는 현공사부(玄空師父, 1911~1970)인데 근면하게 일하여 광업경영으로 부자가 된 후 종교, 문화, 교육, 의료, 자선의 5대 봉사활동을 주창하였다는 설명이다. 참배객들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절하기, 책을 펴들고 주문 외우기, 점치기, 제비뽑기 등 다양한 참배행사가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용과 봉황을 새긴 건축물도 볼만하고.
네 시간여 주변 탐방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 일본의 메이코 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어제 밤, 무사히 타이베이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친절하게 알려준 대로 국광여객버스를 타고 산토스호텔에 쾌적하게 올수 있어서 일행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경로라고 65세 이상은 버스요금도 절반 가까이 할인해 줍니다. 일본 팀들도 국광여객 1841을 이용하면 편리하겠다고 전해주세요.
오전 9시 반에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맡겨놓고 도보로 춘절 분위기가 물씬한 타이베이의 이모저모를 돌아본 후 오후 2시에 12층의 방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주최 측에서 예약을 잘 해 놓아서 대단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침에는 비가 오더니 낮에는 약간 더운 날씨입니다. 며칠간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겠습니다. 메이코 씨도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이내 답이 왔다.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을 엔도 회장님에게 전달했습니다. 일본 팀은 내일 합류 할 수 있군요 즐거운 대만 일주 여행의 성공과 여러분이 웃는 얼굴로 귀국 할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파이팅!!’
2월 12일 아침,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몸이 가뿐하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호텔 가까운 곳의 학교에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산책코스로 눈도장을 찍고 아내와 함께 나섰다. 학교에 이르니 규모가 큰 초등학교, 위통을 벗고 조깅하는 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여자, 무슨 종목인지 낯선 도구를 지참한 초등학생을 훈련하는 코치 등 아침부터 다양한 체력증진활동이 펼쳐진다. 아내는 스트레칭 그룹에 합류하여 몸을 풀고. 교정에는 중화민국의 건국을 주도한 손문과 장개석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 교정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처럼.
오전 10시, 일행들과 지하철을 타고 시내 탐방에 나섰다. 첫 탐방코스는 대안삼림공원, 호텔 인근 지하철역에서 일곱 정거장 가는 곳에 있다. 요금은 25위엔(약 천원), 외국인은 경로할인이 안 된다는 역무원의 설명이다. 전날의 버스 할인이 새삼 고맙다. 넓은 삼림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인근에 있는 옥(玉)시장과 꽃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옥시장가는 길은 아름다운 가로수가 조성된 곳, 여러 차례 길을 묻는데 모두들 친절하게 답해준다. 춘절 휴일로 일부만 문을 연 옥시장의 규모가 크고 진열된 상품들이 진귀하고 다양하다. 일행이 아내에게 보석을 사주라고 권하기에 내가 보석인데 따로 사줄 것 있느냐고 답하니 까르르 웃는다.
꽃시장은 주말에만 문을 열어서 발길을 돌려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 장개석기념관)으로 향하였다. 도보로 30여분, 전날에 이어 대만일주걷기 예행연습을 충실히 하는 셈이다. 중정기념당은 전에도 들렀던 곳, 대형의 장개석 동상이 우람하고 항일전쟁의 궤적을 담은 전시실이 볼만하다. 기념당 앞 광장의 대형천막에서는 빙설전시관이 작년 12월부터 금년 4월까지 운영되는데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아열대의 대만이라 눈과 얼음잔치가 인기를 끄는가보다.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2시 반, 이후는 휴식이다. 아내는 일행들과 야시장에 다녀오고.
카톡으로 타이완 행보를 접한 제자가 14일부터 일정 시작인데 그동안 뭐하느냐 묻는다. ‘여행 때마다 바쁜 스케줄에 쫓겨서 이번에는 느긋하게 즐기려는데 글쎄?‘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편치 않다. 개성공단 철수를 둘러싼 국내정세가 마음에 걸려서. 언제나 우리는 마음 놓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 아무쪼록 편안한 밤 보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