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이야기 (450) 꿈 사시오
“꿈 사시오∼ 꿈.”
정초에 유 대감이 일찍 일어나 상념에 젖어 있는데 한줄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별의별 장수가 다 있다지만 꿈 장수는 꿈에도 못 들어 봤다.
“여봐라, 꿈 장수를 불러오렷다.”
골목이 쩌렁쩌렁하게 외치며 꿈을 팔러 다니는 녀석을 하인이 데려왔더니 총각 새우젓 장수다.
안마당에 새우젓 지게를 괴어놓고 사랑방으로 들어와 유 대감 앞에 꿇어앉았다.
유 대감이 말했다.
“그래, 무슨 꿈을 얼마에 팔겠다는 게야?”
새우젓 장수의 귓속말에 유 대감은 화들짝 놀라 하인을 시켜 진 처사를 모셔 오도록 일렀다.
은퇴하고 한양에서 충북 영동으로 낙향한 유 대감은 삼라만상의 원리를 깨치겠다고 주역(周易)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선생이 바로 산속 토굴에서 도를 닦는 진 처사다.
진 처사가 눈길을 걸어 유 대감댁 사랑방으로 들어왔다.
유 대감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진 처사가 총각 새우젓 장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그 좋은 꿈을 자네가 갖지 왜 팔려는 게야?”라고 묻자 새우젓 장수 총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새우젓을 아무리 잘 팔아봐야…”라며 말끝을 흐렸다.
새우젓 장수를 사랑방에 두고 유 대감과 진 처사가 밖으로 나갔다.
“거짓말이 아니오.
그리고 관상이 좋소.
새우젓 장수지만 귀골이오.
인성도 좋고.”
진 처사의 말에 유 대감은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 대감은 사시사철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내년 봄 꽃 피고 지는 춘삼월에 혼례 날짜까지 받아뒀는데 약혼자가 과거에 일곱번째 낙방하고
낙향한 후 선산에 있는 소나무에 목을 매자 막내딸이 별당에 처박혀 허구한 날 울고만 있는 것이다.
유 대감이 주역을 공부하는 것도 막내딸의 기구한 운명 때문이다.
전날 밤 새우젓 장수가 산마루 주막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청룡이 내려와 자신을 휘감고 구름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꿈을 깨니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꼬끼오 새벽닭이 울었다.
주역에 통달한 사람은 귀신도 피해간다지.
진 처사가 말했다.
“용 꿈의 효력은 하루뿐이오.
서둘러야 합니다.”
진 처사는 별당으로 들어가 유 대감의 막내딸을 설득하고 유 대감은 총각 새우젓 장수를 설득했다.
부랴부랴 대청에 혼례상을 차리고 막내딸과 새우젓 장수 총각이 맞절했다.
미시(未時)에 혼례식을 마치고 별당에 신방을 차려 술시(戌時)에 합방을 했다.
세달 동안 별당에서 신혼 생활을 이어갔다.
신랑 하 서방은 사람이 반듯했다.
막내딸도 정이 들었는지 가끔씩 까르르 웃음소리를 흘렸다.
사랑방에서 빙긋이 웃으며 술잔을 비운 유 대감은 ‘우리 막내 웃음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 만이냐’ 생각하며
감격에 겨워 대낮부터 계속 자작해 먹은 술에 취했다.
봄이 왔다.
단봇짐을 진 하 서방과 진 처사가 집을 떠났다.
백리길을 걸어 진천 땅에 다다라 주막에 묵으며 진 처사는 패철을 들고 집터를 찾아 나섰다.
함께 있어보니 하 서방이 까막눈이 아니어서 진 처사가 적이 놀랐다.
저녁에 하 서방과 술잔을 기울이며 진 처사가 물었다.
“자네는 새우젓 장사를 하면서 글공부는 언제 했는고?”
“글공부라 할 것은 없고,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 ‘사자소학’ ‘동몽선습’까지 익힌 정도지요.
부끄럽습니다.”
생거진천(生居鎭川) 땅, 만뢰산 남향받이 산자락에 집터를 잡고 아담한 기와집을 지었다.
진 처사가 돌아가고 유 대감의 막내딸 송화가 입덧하는 몸으로 사인교를 타고 진천 새집으로 왔다.
육년의 세월이 흘렀다.
유 대감은 사인교, 진 처사는 나귀를 타고 백수십리 길을 왔다.
일곱살 하청룡이 옥골 같은 얼굴에 비단 전복을 입고 외할아버지인 유 대감에게 큰절을 올렸다.
보름을 묵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청룡을 데려갔다.
뒷산 동굴에 살면서 유 대감에게 주역을 가르치던 진 처사가 하산한 뒤 영동에 있는 유 대감댁으로 거처를 옮겨 청룡을 가르쳤다.
일곱살 청룡은 아버지·어머니로부터 ‘동몽선습’까지 배운 터라 진 처사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쳤다.
열다섯에 소과에 합격하더니 열일곱에 대과에 합격해 어머니 송화의 한을 풀었다.
청룡은 어사화를 꽂은 사모관대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내려오고 진천에 있던 부모도 내려와 사흘 동안 잔치를 벌였다.
<원작자: 조주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