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신학교를 졸업할 대까지 무수한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아직도 시험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될 그 시험은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인생이 순탄하고 평탄할 때 보다는
내가 가장 행복할 때나 가장 힘겨울 때 또다시 찾아오리라!
성경에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 경우
- 사탄이 우리의 본성을 자극하는 유혹 (Temptation)
- 인생살이에서 겪는 고난이나 시련 (Trial)
-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주시는 시험 (Test)에 사용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test입니다.
1.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한 Test
100세에 겨우 낳은 외아들을 20여 년 장성하도록 키웠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인생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을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의 시험이 치러집니다.
“너의 첫 번째 사랑은 나(하느님)냐 이사악(아들)이냐?”
아브라함이 치른 시험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됩니다.
“너 나를 가장 사랑하느냐?
온갖 두려움과 근심 속에서도 삶의 모든 통제권을 나에게 넘길 수 있느냐?”
2. 타볼산의 제자들이 치러야 할 Test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습니다.
이를 목격한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외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초막을 지어 드리겠습니다.”(마르 9,5)
제자들은 산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없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오시며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기쁨을 제자들에게 바라보라 하십니다.
우리들도 산 아래(삶의 자리)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3. 우리가 통과해야 할 Test
신자 여러분! 우리의 신앙 성숙을 위한 주님의 시험은 계속됩니다.
유난히도 기쁠 때, 더없이 서러울 때도 찾아옵니다.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신앙 여정에서 문득 말문이 막힐 때,
바오로 사도의 고백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는
우리에게 지혜를 줍니다. 하느님께서 내 편이시라는 믿음을 갖고,
기쁨과 슬픔들이 공존하는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시험을 담대하게 치러내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성장은 우리에게 생사가 걸림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글 : 광주대교구 양요섭 요셉 신부
희망의 힘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당신의 모습을 온전히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의 옷이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고 마르코 복음사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높은 산에서, 놀랍게 천상적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인간적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저 새하얗게 빛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변모는 단순히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 만족하라고 보여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제자들에게 어려움이 닥칠 터인데, 그때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어려움과 시련을 잘 견디어내라는 의도일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미리 하늘나라의 기쁨을 제자들에게 잠깐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쁨은 항상 시련과 고통을 수반합니다.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이를 ‘무서운 역설의 진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면서 고통을 주시고,
고통과 시련을 주시면서 기쁨과 희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아브라함도 이러한 역설의 진리를 체험합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늘그막에 어렵게 얻은 외아들 이사악을
모리야 땅으로 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인간의 판단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자는 것인지….
아브라함은 수없이 고뇌하고 생각하면서,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끝까지 당신께 순명한 아브라함에게 더 많은 축복으로 보답해주십니다.
우리 인간의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어떤 때, 우리 앞에 전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문제들이 있을 때,
하느님은 이를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해결시켜주시며,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예수님의 변모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에서의 최후의 복락을 생각하고 희망한다면,
우리들의 삶에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에도
결코 좌절하거나 힘들어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르 9,5)
글 : 전주교구 김희남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