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밖은 고요해
그래도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인 사과를 베어 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 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담겼다 비워지지
심장을 잃어버린 것들의 박동을
너는 들어본 적 있니?
둘레로 퍼지는 침묵의 빛,
사과를 잃어버리고도
접시가 깨지지 않은 것처럼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식탁과 접시는 말없이 둥글고
창밖은 고요해
괄호처럼 입을 벌리는 빈 접시,
새는 날아가고
나는 다른 심장들을 훔치고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지
1
빗방울이 구름의 죽음이라는 것을 인디언 마을에 가서 알았다
빗방울이 풀줄기를 타고 땅에 스며들어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2
인디언 무덤은
동물이나 새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멀리서도 빗방울이 길을 찾아올 수 있도록
3
새 형상의 무덤은 흙에서 날고
사슴 형상의 무덤은 아직 풀을 뜯고 있다
이 비에 풀이 다시 돋아날 것이다
4
나무들은 빗방울에서 냄새로 이야기한다
숲은 향기로 소란스럽고
오래된 나무들은 빗방울의 기억을 털고 있다
5
쓰러진 나무들은 비로소 쓰러진 나무들이다
오래 직립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나무들의 맨발을 빗방울이 천천히 씻기고 있다
6
빗방울은 구름의 기억을 버리고 이 숲에 왔다
그러나 누운 뼈를 적시고
다시 구름과 천둥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7
구름이 강물의 죽음이라는 것을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죽은 영혼을 어루만진 강물이
햇빛을 따라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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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