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Nicholas of Cusa, 1401년~1464년) 또는 니콜라이 쿠잔스키(Nicolai Kusansky)
▪︎독일의 철학자·신학자, 법학자, 그리고 광학자·수학자·천문학자이다.
▪︎근세철학의 선구적 사상가이며 성직자로서 교회개혁에 진력하였다.
▪︎1401년 독일 모젤 강 유역의 쿠에스(Kues)에서 태어났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당시 교양 과정인 자유 학예(artes liberales: 문법·수사학·논리학·대수학·기하학·음학·천문학)를 이수하고, 파도바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Doctor decretorum)를 받았으며, 쾰른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431년에 개회한 바젤 공의회의 신앙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어 다양한 종교 및 종파의 신앙고백 형식의 일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 따라 ≪공동체의 친밀성(De usu communionis)≫, ≪교회의 일치(De concordantia catholica)≫, ≪박학한 무지(De docta ignorantia)≫, ≪가늠에 관하여(De conecturis)≫, ≪가려 계신 하느님(De Deo abscondito)≫, ≪하느님을 찾아서(De quaerendo Deum)≫, ≪하느님의 자녀-됨(De filiatione Dei)≫, ≪성부께서 비추신 빛(De dato patris luminum)≫ 등을 집필했다.
▪︎1450∼1455년에는 교황 사절(Delegatus apostolicus) 직분을 겸하면서 독일과 보헤미아,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지역 분쟁을 해결하는 데 공헌했다.
▪︎1464년 8월 11일 교황 비오 2세의 명에 따라 터키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고자 베네치아로 가던 중 산악 도시 토디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카톨릭만이 유일한 종교??)
▪︎그의 시신은 그가 첫 본당을 맡았던 빈콜리의 성 베드로 쇠사슬 성당에 안치되었고, 뒤에 그의 심장은 그가 생전(1458년)에 고향 쿠에스에 봉헌했던 성 니콜라우스 병원의 부속 소성당으로 이전되었다.
■쿠자누스의 사상
▪︎신플라톤주의, 특히 프로클로스와 마이모니데스 등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는데,
▪︎그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치명타를 준 예비적 작업임과 더불어 형식적인 논리학을 극복할 수 있는 학적 시원을 제공하였다고 평가받는다.
▪︎근세 철학사상의 사람들, 특히 브루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헤겔 등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당대 목적론과 주류 스콜라의 형이상학을 비판하였다.
▪︎그는 신을 자연 전체로 보았고, 자연의 운동이 곧 신의 운동으로서 능산적임을 강조하였다.
▪︎모든 사물에는 내인과 외인이 있는데, 외인은 내인의 필연적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라 함으로써 결정론을 승인하였다.
▪︎그는 운동을 자연의 모순으로 파악하였다. 자연은 그 태초에 근원적인 모순을 지니고 있으며, 점차 그 모순이 동일성을 얻게 되고, 동일성을 얻게 된 모순이 이전의 대립이라는 규정을 소멸하고, 그에 걸맞는 대립물을 생성하여 운동을 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하게 근원적인 모순은 만물을 산출하였다고 하였는데, 가장 간단한 운동조차 대립물의 동일성 없이는 파악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만물에 내재된 모순을 파악·그것을 통일하는 것이 신앙의 과제라고 하였다.
■쿠자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앎의 한계 밖에 계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 자체이기 때문에 진리 밖에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는 진리 자체 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신에 대해서 어떤 것을 참으로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며, 진리에 대한 무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쿠자누스는 유한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모든 것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과
▪︎또한 자신이 신에 대해서 알고(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은 신을 닮지 않았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장님이 볼 수도 없으면서 전우주를 보고 알려는 행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 혹은 절대적 진리로서, 신에 대한 인간의 모든 생각들과 관념들을 무한히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한자는 아무리 그의 생각을 확대한다고 하더라고 무한자에 미칠 수 없으며, 참으로 유치한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5세기의 신비가 디오니수스 아레오파지트가 그의 저서 <신비 신학>과 <신의 이름>에서 누누히 말해 준바 있다.
Dionysius Areopagite(5C 말 - 6C 초)
디오니시우스 사상의 중심 주제는 신과 세계의 인과관계에 관한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의 모델에 따르면, 현실의 근원이신 신은 존재 너머에 계십니다. 모든 실재는 신현(Theophany), 곧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나 나타남입니다.
■유세비오스가 말한 디오니소스는 무엇으로 유명했습니까?
개종 후 디오니시우스는 아테네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지만 때로는 히에로테우스 다음으로 두 번째 주교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그는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아테네의 수호성인이며 판사와 사법부의 수호자로 존경받고 있다.
유세비우스는 그가 아테네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다고 보고합니다. 다마리는 비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테네의 낮은 개종율 때문에 바울이 전도 전술을 바꾸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다마리는 사도행전의 한 절에 언급된 여성의 이름으로, 기원전 타르수스의 바울이 아테네에서 아테네 아레오바고 앞에서 설교할 때 그곳에 있었던 여성의 이름입니다. AD 55. 다마리를 묘사한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라파엘의 성 바울의 세부 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