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3호묘의 내부
고구려 고분-안악3호분
중국의 요동 지방에 고구려 석실묘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 묘실을 다수 발굴하였다.
묘실의 구조나 벼화의 내용도 비슷하였다. 이것은 요동-압록강 유역-평양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문화가 동일 문화권이라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는 안악 3호분은 선비족의 묘실이며, 묘의 주인도 중국에서 망명 온 동수라는 사람의 무덤이라고 하였다.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구려가 이 지역의 주체가 아니고, 고구려가 그들에게 존속된 듯이 하는 주장 때문이다.
안악 3호 분은 고구려 고분 중에 년대가 제일 빠르고, 규모도 크다. 안악 3호 분이 조성될 당시의 중국은 5호 16국 시대여서 고구려는 끊임없이 그들과 교섭하면서 충돌도 자주 하였다. 그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묘실 벽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존속이라는 주장에는 우리 학자들이 반박하는 연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왜냐면 지금 중국은 고구려를 자기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학문적 연구가 왕성하다. 우리도 그에 대항하는 연구가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고구려 미천왕이나 고국원왕의 왕묘로 보나, 중국이나 일본의 학자는 전연에서 귀순한 동수라는 자의 무덤이라고하기 때문이다.
묘의 조성 연대는 고구려 고분 중에는 이른 357년이라고 한다.
벽화의 설명은 앞에서 대강 하였으므로 벽화의 사진을 보도록만 하겠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