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인과 아벨
에덴의 동쪽에서 외치는 인간의 위대한 선언: "팀쉘(Timshel)“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East of Eden)》과 성경 창세기 4장의 카인과 아벨(Cain and Abel) 이야기를 비교·분석한 상세 연구 및 서평.
문학적 구원론과 인류 원형의 재현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의 1952년 작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은 20세기 미국 문학이 도달한 가장 거대한 모랄리티(Morality) 서사시 중 하나입니다. 스타인벡 스스로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이전의 모든 작품을 써왔다"고 고백했을 만큼, 이 작품은 그의 문학적 집대성격인 대작입니다.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계곡(Salinas Valley)을 배경으로 트래스크(Trask) 가문과 해밀턴(Hamilton) 가문의 3대에 걸친 역사를 다루는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서부의 개척사와 가족사적 대립을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본질적 뼈대는 인간 고유의 원죄, 자아의 선택,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신학적·문학적 시도입니다.
이 글은 《에덴의 동쪽》을 구약성경 창세기(Genesis) 4장에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의 원형 서사와 정밀하게 대비하여 분석합니다. 스타인벡은 성경의 거대한 비극적 신화를 현대적·개인적 맥락으로 치환하면서, 신의 인정(Acceptance)을 받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열망과 거절(Rejection)이 불러오는 파멸적 질투, 그리고 그 극복 과정을 정교하게 배치하였습니다. 이 글을 통해 각 인물 간의 대립 구조, 구체적인 도상학적 기호, 신학적 핵심 개념인 '팀쉘(Timshel)'의 의미망을 체계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스타인벡이 제시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보편적 구원론의 가치를 찾아보려 합니다.
창세기 4장 '카인과 아벨' 서사의 구조적 이해
성경 창세기 4장의 카인과 아벨 신화는 인류 최초의 살인과 비극을 담은 텍스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낳은 두 아들 중 형 카인은 땅을 개간하는 농부였고, 아우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신(Yahweh)에게 제물을 바칩니다. 카인은 땅의 결실을,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으나, 신은 아벨과 그의 제물만을 반기고 카인의 제물은 거절합니다.
이 거절의 경험은 카인에게 치명적인 분노와 몹시 어두운 얼굴 빛(낙담)을 가져다줍니다. 신은 카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죄가 문에 엎드러져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통제할지니라"라고 경고하지만, 카인은 들판에서 아우 아벨을 돌로쳐 죽이고 맙니다. 그 결과 카인은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땅에서 방랑하는 자가 되며, 신은 카인이 타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카인의 표(Mark of Cain)'를 주어 그를 에덴의 동쪽, '놋(Nod) 땅'으로 쫓아냅니다.
이 신화적 서사는 단순히 형제간의 우애 파괴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거절에 대한 공포', '아버지(혹은 신)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본능적 욕망', 그리고 '선과 악의 사선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선택의 비극'을 대변합니다. 스타인벡은 이 세 가지 정서를 소설의 핵심 주제 의식으로 삼습니다.
신화적 원형의 이식: 대립 구조 및 인물 대치성
트래스크(Trask) 가문의 2대에 걸친 카인-아벨 구조
《에덴의 동쪽》에서 카인과 아벨의 서사는 한 세대에 머물지 않고 부자(父子) 세대를 거쳐 반복(Iteration)되는 평행 구조를 가집니다. 스타인벡은 이름의 이니셜(Initial)을 통해 이 신화적 대치 관계를 다분히 의도적이고 명시적으로 드러냅니다. 카인(Cain) 계열의 인물들은 'C'로, 아벨(Abel) 계열의 인물들은 'A'로 시작하는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1세대: 찰스 트래스크(Charles)와 아담 트래스크(Adam)
1세대에서 아버지는 군대 기장을 위조하여 명예를 얻은 위선적 존재 사이러스(Cyrus)입니다. 사이러스는 두 아들에게서 선물을 받는데, 찰스는 자신이 어렵게 일해서 번 돈으로 산 비싼 칼(Pocketknife)을 바치고, 아담은 숲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잘것없는 강아지를 선물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이러스는 찰스의 비싼 선물을 외면하고 아담의 보잘것없는 선물에 깊은 감동과 사랑을 표합니다.
이 사건은 찰스에게 극심한 좌절과 질투를 심어줍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찰스는 광기에 사로잡혀 들판에서 형제 아담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습니다. 찰스의 이 행위는 성경 속 카인이 아벨을 들판에서 쳐죽인 사건의 정확한 서사적 재현입니다. 이 폭행 사건 이후 찰스의 이마에는 어두운 흉터가 남게 되는데, 이는 성경의 '카인의 표(Mark of Cain)'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2세대: 칼 트래스크(Cal)와 아론 트래스크(Aron)
신화적 잔혹성은 2세대인 칼(Caleb)과 아론(Aron)에게서 더욱 정밀하게 되풀이됩니다. 아버지 아담 트래스크는 온순하고 영적이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론만을 일편단심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반면 어둡고 복잡하며 내면의 악마성과 싸우는 칼을 은연중에 멀리합니다.
칼은 아버지의 사업 파산을 막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추수감사절 날,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콩 값 인상으로 번 거금 15,000달러를 봉투에 담아 선물로 바칩니다. 그러나 성격상 이상주의자이자 도덕적 완벽주의자였던 아버지 아담은 차익 잔금을 번 칼의 노력을 전쟁 폭리로 규정하며 거절하고, 오히려 아론의 대학 입학 소식에만 열광합니다.
"네가 번 이 돈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들의 피로 번 돈이다. 차라리 네가 아론처럼 정직하고 바르게 살았더라면, 그것이 내게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이 일갈과 거절은 칼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카인의 광기를 일깨웁니다. 좌절한 칼은 아론이 절대적 순결성을 바쳐 우상화하던 어머니 캐시(Cathy/Kate)가 실상은 멸망한 창녀촌의 포주로 살아가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그 충격으로 아론은 도덕적 아노미에 빠져 군대에 자원입대하고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즉, 칼은 물리적 돌이 아닌 '진실의 폭로'라는 정신적 무기로 형제 아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현대적 카인이 됩니다.
거절(Rejection), 질투(Jealousy), 그리고 카인의 표식
인정받지 못한 자의 비극: 사랑의 부재가 낳은 악
스타인벡은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을 '인정의 거부(Rejection of Love)'에서 찾습니다. 성경에서 신이 카인의 제물을 왜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유효 사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에서도 사이러스가 왜 찰스의 칼보다 아담의 선물을 더 좋아했는지, 아담이 왜 칼의 15,000달러보다 아론의 순종을 더 가치 있게 여겼는지는 완전한 논리성보다는 성격적·운명적 비합리성에 기반합니다.
스타인벡은 소설 22장에서 다음과 같이 독백하듯 적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거절당하는 것이다. 사랑의 거절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죄를 낳으며, 죄는 범죄를 낳는다. 어린아이가 사랑받지 못할 때, 아이는 사랑을 얻기 위해, 혹은 사랑받지 못함에 대한 보복으로 악을 저지른다.“
이 문장은 《에덴의 동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심리학적 명제입니다. 찰스와 칼이 보여주는 악행은 본질적으로 사악함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구걸'이 거절당했을 때 발현되는 비틀린 애정 결핍의 방어기제입니다.
카인의 표(Mark of Cain)의 재해석
성경에서 카인의 표는 두 가지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죄인의 낙인, 즉 형제를 죽인 자라는 신체적·도덕적 저주의 표식이자, 카인을 죽이는 자에게는 벌이 칠 배나 내릴 것이라는 보호의 표식인 신의 보호막을 상징합니다. 소설 내에서 스타인벡은 이 표식을 신체적, 정신적 층위로 분화시켜 상징화합니다.
스타인벡은 '카인의 표'를 단순히 형벌의 증거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내면에 어두운 죄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인간성(Humanity)의 징표'로 확장시킵니다. 찰스와 칼은 이 표식을 지님으로써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자신이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를 고뇌하는 주체로 거듭납니다.
절대적 악의 형상화: 캐시(Cathy Ames)와 에덴의 뱀
'절대 악'으로서의 캐시의 위치
성경의 창세기 4장이 카인과 아벨의 인적 대립에 집중한다면, 스타인벡은 창세기 3장의 '원죄와 뱀(Serpent)'의 형상을 소설 속 여성 인물인 캐시 에임스(Cathy Ames / Kate)에게 집중적으로 투영합니다.
캐시는 소설 속에서 도덕적 감각이 완전히 부재한 '괴물(Monster)'로 묘사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를 불태워 죽이고, 아담 트래스크를 유혹해 결혼한 뒤, 쌍둥이(칼과 아론)를 낳자마자 아담의 어깨에 총을 쏘고 도망쳐 살리나스 최고의 창녀촌 포주가 됩니다.
스타인벡은 캐시의 신체적 특성을 묘사할 때 유독 뱀과 파충류의 도상학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녀의 눈은 회색빛이며 차갑고, 위기 상황에서 몸을 사리는 모습이나 타인의 약점을 포착해 독을 뿜는 특성은 성경에 나오는 뱀의 형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캐시와 아담: 낙원 환상의 해체
아담 트래스크에게 캐시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 살리나스 계곡에 구축하고자 했던 '지상 낙원(에덴동산)'의 여신이었습니다. 아담은 캐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순결한 환상을 그녀에게 투영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아담이 하와를 얻고 낙원의 기쁨을 누리던 상태와 평행을 이룹니다.
그러나 캐시가 아담에게 총을 쏘고 떠남으로써 아담의 에덴동산은 철저히 파괴됩니다. 아담은 수년간 심각한 정신적 유기 상태(Stupor)에 빠지며, 자신이 구축하려던 서부의 전원적 낙원은 황폐해집니다. 캐시는 인간의 삶에 불시에 개입하여 낙원의 환상을 깨부수는 '체화된 죄와 악'의 상징입니다.
캐시와 칼의 대립: 내면의 카인과의 투쟁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캐시의 피를 물려받은 칼(Cal)의 내적 갈등입니다. 칼은 자신이 어머니 캐시의 사악한 피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극심한 공포에 시달립니다.
"나는 어머니의 피를 가지고 있다. 내 안에는 어둡고 나쁜 것이 들어있다."
칼은 아론과 달리 자신의 내면에 뱀의 독(캐시의 악)과 카인의 질투(찰스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직시합니다. 그러나 캐시가 악에 전적으로 굴복하여 스스로 파멸(자살)을 선택한 것과 달리, 칼은 자신의 어둠을 인지하고 그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이 지점에서 스타인벡은 카인 서사를 순수한 악의 승리가 아닌, 악과의 투쟁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으로 방향을 틉니다.
구원의 키워드: '팀쉘(Timshel)'의 신학적·문학적 탐구
현자 리(Lee)와 '팀셸' 해석의 전개
《에덴의 동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신학적·문학적 도약은 중국인 하인 리(Lee)의 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리는 중국계 미국인이지만 동양적 지혜와 절정의 지성을 지닌 인물로, 트래스크 가문의 비극을 옆에서 지켜보며 구원의 열쇠를 추적합니다.
리는 창세기 4장 16절, 신이 카인에게 하신 말씀의 원 번역을 두고 오랜 시간 노학자들과 함께 히브리어 원전을 연구합니다. 그는 성경의 번역본들에 나타난 결정적인 어휘적 차이에 주목합니다.
Thou Mayest' (너는 ~할 수도 있다)의 구원론적 의미
리가 발견한 '팀쉘(Timshel - Thou Mayest)'의 위대함은 선택의 자유에 있습니다.
Thou Shalt(너는 할 것이다): 인간에게 선택권이 없으며, 결국 그렇게 되리라는 예언적 결정론입니다.
Do Thou(너는 하라): 인간에게 강요되는 의무이며, 실패 시 죄책감만을 안겨줍니다.
Thou Mayest(너는 할 수도 있다): 길을 인간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악에 굴복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지로 선(Goodness)을 선택하여 죄를 다스릴 수도 있습니다.
리가 스타인벡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외치는 다음 대목은 작품 전체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이 단어(Timshel)는 세계의 그 어떤 단어보다 위대합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문을 열어줍니다. 이것은 인간을 거대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결코 위대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지만, 이 선택권을 통해 위대함의 반열에 오릅니다... '너는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 악을 극복할 선택권을 줍니다.“
성경의 카인은 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악을 선택하여 파멸했습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팀쉘'의 개념을 통해, 카인의 후예인 모든 인간에게는 성경의 카인과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스스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율성(Free Will)이 주어져 있음을 선언합니다.
공간과 도상학: '에덴'과 '에덴의 동쪽(놋 땅)'의 대비
살리나스 계곡(Salinas Valley)의 지리적 상징성
소설의 주요 배경인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계곡은 그 지형적 구조 자체가 성경적 비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타인벡은 소설의 서두에서 살리나스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두 산맥을 대비시키며 운명적 서막을 엽니다.
동쪽의 가빌란 산맥은 항상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온화한 곳으로 인간이 지향하는 '낙원' 혹은 '에덴'을 상징합니다. 반면 서쪽의 산타 루시아 산맥은 어둡고 험준하며 석양이 질 때 무서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으로, 성경에서 카인이 쫓겨난 '에덴의 동쪽, 놋(Nod) 땅'을 상징합니다.
살리나스 계곡의 주민들은 이 두 공간의 사이에 살아가면서, 본능적으로 빛을 갈망하지만 늘 서쪽의 어둠(산타 루시아)에 침윤될 위협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내면이 에덴의 순수함과 놋 땅의 죄의식 사이에 위치하고 있음을 정교하게 시각화한 것입니다.
제물의 도상학: 강아지, 칼, 그리고 15,000달러
성경에서 카인은 '농산물'을,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바쳤습니다. 신이 양의 제물만을 받으신 것에 대해 수많은 신학적 해석이 존재하지만, 핵심은 '마음이 담긴 최상의 것'에 대한 가치 판단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제물들은 각 인물의 내면과 신화적 위치를 정확히 대변합니다.
찰스의 주머니칼과 칼의 15,000달러는 모두 정성과 노동이 들어간 것이었지만, 받는 이(아버지)의 도덕적·정서적 결에 맞지 않아 거절당합니다. 특히 칼의 15,000달러는 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애정이었음에도 불의한 전쟁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함으로써, 구약의 카인이 느꼈던 존재론적 거절의 수치심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죽음과 용서, 그리고 새로운 시작
아론의 죽음과 칼의 죄책감
아론이 카투인(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전보가 도착하자, 트래스크 가문은 완벽한 파국에 직면합니다. 아론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칼은 극심한 죄악감과 자책감에 시달립니다.
칼은 자신이 바친 15,000달러의 돈을 난로에 불태워 버립니다. 이 행위는 불로 바치는 속죄의 제사(Burnt Offering)이자, 아버지의 사랑을 돈으로 사려 했던 자신의 욕망에 대한 완전한 번민과 청산입니다.
칼은 밤거리를 헤매다 아버지가 침대에 임종을 앞두고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칼은 신에게 징벌을 기다리듯, 아버지 아담의 응징을 기다립니다.
"제가 아론을 죽였습니다. 제가 그를 어머니에게 데려갔습니다. 내 안에 있는 악마가 그를 죽였습니다.“
이 대목은 성경에서 신이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카인이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오만하게 반문했던 것과 정반대의 양상을 보입니다. 칼은 성경의 카인과 달리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수용합니다.
아담의 임종과 '팀쉘'의 축복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아담 트래스크는, 하인 리의 간곡한 청을 듣습니다. 리는 죽어가는 아담에게 칼을 용서하고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달라고 탄원합니다.
"아담 도련님, 칼에게 축복을 내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칼은 평생 카인의 저주 속에서 죽어갈 것입니다. 칼에게 삶의 기회를 주십시오!“
아담 트래스크는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끌어모아, 죄책감에 떨고 있는 아들 칼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손을 올려 칼의 이마(카인의 표식이 새겨진 곳)에 축복의 표식을 하듯 움직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한 단어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Timshel!" (팀쉘!)
아담이 남긴 이 마지막 단어는 칼에게 내려진 용서이자 선언입니다. 아버지는 칼에게 "너는 나쁜 놈이다"라고 단죄하지도, "너는 무조건 선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너는 네 안의 악을 물리치고 선을 선택할 수도 있다(Thou Mayest)"라는 자유의지의 열쇠를 넘겨준 것입니다. 이로써 세대를 이어 내려오던 트래스크 가문의 카인-아벨 비극의 잔혹한 사슬은 마침내 끊어지게 됩니다.
스타인벡의 인문주의적 구원론과 현대적 의의
성경 원형과 소설의 핵심 대조 요약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은 성경 창세기 4장의 구도를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그 신학적 결말을 인문주의적으로 위대하게 재창조하였습니다. 위 글에서 논의한 성경 서사와 소설 서사의 대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교 항목 : 성경 창세기 4장 (Genesis Ch.4) / 소설 《에덴의 동쪽》
=============================================================================
1. 대립 구도: 카인(Cain) vs 아벨(Abel) / 찰스 vs 아담 , 칼 vs 아론
2. 심판/인정 주체 : 여호와 하나님 (Yahweh) / 아버지 (Cyrus / Adam)
3. 거절의 이유: 신적 주권 / 아버지의 이상주의와 정서적 한계
4. 표식 (Mark): 카인의 표 (살인의 낙인/보호) / 찰스의 이마 흉터 , 칼의 내면의 어둠
5. 결과: 처벌 에덴 동쪽(놋 땅)으로 쫓겨남 / 방랑 아론의 전사, 칼의 죄책감과 고백
6. 구원의 메시지: 죄의 통제 명령 (Thou Shalt)/ 자유의지의 선택 가능성 (Timshel)
=============================================================================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단어: "팀쉘(Timshel)“
소설 속, 리가 구약성경 창세기 4장 7절, 신이 카인에게 하셨던 원문을 히브리어 학자들과 수년간 연구한 끝에 밝혀낸 비밀이 있습니다. 성경 번역본들은 신의 말씀을 이렇게 옮겼습니다.
영국의 권위 있는 King James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ou Shalt rule over him" (너는 죄를 통제할 것이다) —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리라는 '결정론'입니다.
미국 Standard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Do Thou rule over him" (너는 죄를 통제하라) — 이것은 인간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강제적 '의무'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전에 적혀 있던 단 하나의 단어, '팀쉘(Timshel)'의 진짜 뜻은 전혀 달랐습니다.
"Thou Mayest rule over him!"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
이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너는 할 것이다(Thou Shalt)'도 아니고, '너는 해야만 한다(Do Thou)'도 아닙니다.
'너는 할 수도 있다(Thou Mayest)!'입니다.
이 한 단어는 인간에게 강요나 운명적 굴레를 씌우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Free Will)'라는 위대한 열쇠를 쥐여줍니다. 우리는 내면의 악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의 자율적인 의지로 악을 물리치고 선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에덴의 동쪽》이 던지는 현대적 메시지
성경의 카인은 비극의 대명사였고, 거절당한 자의 절망을 극복하지 못해 인류 최초의 형제 살해범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존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을 통해 인류에게 전혀 다른 희망의 구원론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카인의 표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부모나 사회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상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질투와 잔인함, 그리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악의 유혹은 인간이 지닌 원죄적 조건입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칼(Cal)의 성장을 통해, 인간은 세습되는 악의 운명이나 혈통에 얽매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함을 입증합니다.
'팀쉘(Timshel)'이라는 위대한 유산은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줍니다.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권능은 환경이나 유전, 과거의 상처를 핑계 대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선(Good)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에 있습니다.
결국 《에덴의 동쪽》은 성경의 결정론적 신화를 극복하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주체성을 찬양한 20세기 최고 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어두운 '에덴의 동쪽'을 방랑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스타인벡은 아담의 입을 빌려 지금도 나직이 속삭이고 있습니다.
"너는 다스릴 수도 있다(Thou Mayest).“
에덴의 동쪽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는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험난하고 어두운 '에덴의 동쪽'을 살아가는 방랑자들입니다. 우리 내면에는 누군가를 질투하는 카인의 어둠이 있고, 상처받은 마음이 있으며, 부모나 사회로부터 거절당한 아픔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존 스타인벡은 오늘 우리에게 나직하지만 강력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전이나 환경의 노예가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나 혈통의 굴레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매 순간, 내 안의 어둠을 다스리고 빛과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위대한 권능, '팀쉘(Timshel)'이 주어져 있습니다.
삶의 기로에서 좌절하고 계십니까? 내 안의 어둠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택은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Thou Mayest!" — 당신은 선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위대한 구원의 메시지가 오늘 여러분의 삶에 희망의 빛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By Torah & Judaism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